베드로전서 강해(32)

조회 수 1270 추천 수 0 2019.10.12 19:28:04

318-22 옥에 있는 영

18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22.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벧전 3:18-22절에는 전체 문맥으로 볼 때 약간 색다른 내용이 나온다. 기독론이다. 교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내용의 토대는 신론과 기독론과 성령론이 결합한 삼위일체다. 그중에 기독론은 기독교의 가장 고유한 관점이다. 기독론의 내용은 여러 가지이다. 이 구절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기독론 중에서 가장 특이하다. 18절에 나오는단번에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구원 능력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에 대한 강조다. 예수의 죽음이 어떻게 우리 죄를 해결할 수 있나, 하는 질문이 가능하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극복하지 못한다. 구약은 율법을 통해서 의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바울은 로마서에서 정확하게 진단했다. 율법은 우리가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이다. 죄의 해결은 하나님에게 달려 있다. 하나님이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보시고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신다. 이런 설명이 어떤 이들에게는 하늘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프로메테우스가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힌다는 그리스신화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살아있는 자로 경험했고, 그를 통해서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는 경험을 했다. 이런 경험은 세상의 그 어떤 대상에서도 하지 않았다. 이런 경험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고 말할 수 있었다.

19절에는 아주 특이한 표현이 나온다.“옥에 있는 영들에게라는 표현에서 은 죽은 자들이 간다는 하데스(음부)를 가리킨다.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가 하데스에 내려간다는 말은 고대인들의 신화적인 생각을 빌려서 기독교의 진리를 표현한 것이다. 우리 사도신경과 달리 영어 사도신경과 독일어 사도신경에는 예수의 지옥(음부)행 문장이 나온다. “He descended into hell.” 로마 교회가 이 문장을 일종의 세례 문답을 위한 신조에 삽입한 이유는 몇 가지 신학적인 요청이 발생했다는 데에 있다. 예수 믿지 않고 죽은 이들은 무조건 영원한 형벌에 떨어져야 하는가? 자기의 책임이 아니라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이유로 예수를 믿지 않는 이들은 어찌할 것인가? 예수의 지옥행에 근거해서 만인 구원론을 주장하기는 어렵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능력이 우주론적이라는 사실을 로마 교회가 강조했다고 보면 된다. 쉬라게의 설명이다.“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구원과 그의 말씀의 힘이 죽음의 세계에까지 미치며 그것을 가장 심각한 타락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이다.”(Wolfgang Schrage, 한국신학연구소 <베드로전.후서/ 유다서> 90)

21절에 세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약간 이상하게 보이는 표현이 나온다. 세례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라고 했다. 우리는 보통 세례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부도덕한 삶과 죄를 씻는다고 생각한다. 세례를 받아도 다시 잘못을 행하지만 죄의 씻김이라는 의미는 분명하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세례를 전혀 다른 차원에서 해석한다. 하나님을 향한 간구라는 것이다. 세례를 인간적인 삶의 차원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생명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양심에서 하나님과 영적인 소통을 나누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안 볼 것이다.

22절의 내용도 사도신경에 나온다.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는 1) 하늘에 오르시고, 2) 하나님 우편에 계시고, 3) 천사와 권세들과 능력들에게 복종을 받는다. 하늘은 생명이 은폐된 곳이다. 하나님의 우편은 하나님과 같은 영적 권위가 보장된 자리이다. 천사와 권세들과 능력들이 복종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 즉 하나님에게만 가능한 생명의 원천이라는 뜻이다. 이런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는 실제로 하나가 되었는지, 그런 인식과 경험이 주어졌는지, 수행하듯이 자신을 살펴야 한다. 이런 신앙의 깊이로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위축되거나 과부하에 걸린다. 베드로전서의 주제에서 본다면 이런 신앙의 깊이로 들어가야만 고난을 견뎌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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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막 1:1), 3월20일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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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막 1:1), 3월21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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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막 1:1), 3월21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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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막1:1), 3월22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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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1), 3월23일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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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1), 3월23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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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2), 3월24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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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4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2> 마가복음 기자가 전하는 복음(福音,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의 역사를 배경으로 기록된 구약성서에서 볼 때 가장 큰 기쁜 소식은 출애굽과 바벨론포로 귀환입니다. 먹고살기 힘들어 이집트 땅으로 이민 갔던 이스라엘 민족이 그곳에서 소수민족으로 당해야만 했을 고난, 그리고 전쟁에서 패배하여 인질로 잡혀갔던 바벨론 제국에서 당해야만 했을 모욕이 그들에게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이었는지는 긴...

복음 (2), 3월24일 [2]

  • 200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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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3) 3월25일 [1]

  •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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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5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3> 저는 앞서 출애굽과 포로귀환을 ‘기쁜 소식’으로 이해하는 구약의 해석이 신약에서는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혹시 이 말에 오해가 있을까 해서 변명해야겠습니다. 우리의 억압된 삶의 구조가, 그런 것들은 대개 경제와 정치에 연관된 것인데, 해방의 구조로 바꾸는 일들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사는 분들이 한국 사람들과 아무런 차별이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사회구조를 바꿔나가는 일은 ...

복음 (3) 3월25일 [1]

  •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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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이사야, 3월26일 [1]

  •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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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6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 요즘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 각주를 달듯이 마가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가의 속을 내가 뚫어볼 수는 없지만, 아마 자신의 글을 읽어야 할 독자들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선지자들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집단은 없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은 왕이며, 종교적인...

선지자 이사야, 3월26일 [1]

  •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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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이사야의 글, 3월27일 [12] [1]

  • 200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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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7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의 글 마가는 지금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인용하고 있는 글은 분명히 이사야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마가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사야의 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곤란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성서 기자들의 글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 문제입...

선지자 이사야의 글, 3월27일 [10]

  • 200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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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사자(使者), 3월28일 [4]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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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8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주님의 사자(使者) 만약 마가복음이 학위 논문이었다고 한다면 불합격 처리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면서 엉뚱하게 말라기서의 글을 인용했으니까 말입니다. 마가가 선지자 이사아의 글이라고 인용한 본문 2절은 말라기서 3장1절 말씀입니다. 이사야의 글은 3절에 나옵니다. 마가가 착각을 일으켰는지, 아니면 알고 있었지만 굳이 구분해서 두 사람의 원작자를 거론하는 게 번거롭다고 생각했...

주님의 사자(使者), 3월28일 [3]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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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1), 3월29일 [1]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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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9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막 1:3) 광야 (1) 마가가 3절에서 인용한 글은 이사야서 40:3절 말씀입니다. 물론 이사야의 글을 문자적으로 인용한 게 아니라 약간 손질을 했습니다. 이사야서를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마가복음은 이사야의 글을 한 절만 인용했지만 누가복음은 이 뒤로 이어지는 이사야...

광야 (1), 3월29일 [1]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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