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10월13일

조회 수 1030 추천 수 0 2019.10.14 21:25:51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1013, 창조절 7

 

1) 말다툼- 딤후 2:14절에 말다툼을 하지 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걸 엄히 가르치라는 겁니다. 디모데가 목회하던 교회에서 말다툼으로 인한 불상사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어디나 말도 많고 다툼도 많습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이 많습니다. 사랑도 특별하고 희생과 평화 운동에서도 특별합니다. 말다툼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본문에서는 신학적인 말다툼이 문제였습니다. 신학 논쟁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는 일도 필요합니다. 그런 게 없으면 발전도 없습니다. 문제는 그런 방식으로 자기를 내세우는 태도입니다. 이 세상살이는 대체로 이런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2) 스탠드 배너- 우리 교회는 지하 월세로 살기에 밖으로 드러나는 교회 표시가 없습니다. 옥외 십자가도 없고 간판도 없습니다. 간판을 달려면 달수도 있겠지만 건물 미관상 좋아 보이지 않아서 간판 없이 지냅니다. 근처까지 왔다가 교회 팻말을 못 봐서 돌아가는 분들도 아주 간혹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간소하게 생긴 이동식 스탠드 배너를 사용합니다. 오늘은 제가 일찍 와서 스탠드 배너를 건물 입구 쪽에 세워놓습니다. 유심히 보니 배너에 때가 많이 끼었고, 묶는 고리도 한쪽이 빠졌고, 배너를 거는 장치에 문제가 있는지 배너가 균형을 잃었습니다. 빠진 고리를 제가 줄로 묶어서 일단은 세워놓았습니다. 새로 제작하여 교체하는 게 좋아 보입니다.

 

3) 꽁치 통조림- 늘 그렇듯이 저는 식사 친교 시간에 밥을 스테인리스 접시에 담아 몇몇 교우와 함께 앞자리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면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바로 앞에 앉은 류 장로가 저에게 목사님, 이 꽁치는 통조림으로 만든 것이기에 뼈까지 먹어도 됩니다.’라고 하시네요. 제가 뼈를 발라놓는 걸 보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 말을 듣고 뼈를 먹어보니 살이나 별 차이가 없이 부드러웠습니다. 류 장로 집에서 고추와 다른 채소를 넣고 다시 끓여낸 것으로 보입니다. 맛있었습니다. 우리 집에서도 한번 만들어봐야겠습니다. 오늘 반찬 당번 몇 가정이 교회에 빠져서 반찬 문제가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메뉴 내용이 다른 때 못지않게 충실해 보였습니다. 알지 못하는 숨은 봉사자들이 계신가 봅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4) 책 읽기- 몇몇이 모이는 책 읽기 모임이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시작되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도 있었다가 잠시 쉬었는데, 이제 다시 시작했나 봅니다. 제가 서울에 올라가는 주일인 둘째 주일 14:00-16:00에 모입니다. 그에 앞서 성가대 연습이 있으니 겹쳐서 하는 분들은 대단한 열정입니다.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공부가 인생에서도, 신앙생활에서도 남는 장사입니다.

 

5) 설거지- 오늘 짝수달 둘째 주일 당번을 맡은 청년들이 설거지했습니다. 아직 등록하지도 않은 한 남자 청년은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짓거리를 나르고 있었고, 한 달 전에 등록한 아주 친한 사이남녀 청년은 옥외 싱크대 앞에서 사이좋게 그릇을 씻고 있더군요. 다는 청년들도 다 제 몫을 감당했습니다. 정 목사 둘째 딸만 안 보이는군요.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6) 샌드위치- 넷째 주일(1027)에는 교인간담회가 열립니다. ‘도시락 day’ 이벤트가 열린다는 사실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루디아 회에서는 양푼이 비빔밥을 계획했다고 합니다. 저의 아내는 참기름과 깨소금을 가져가겠다고 했다는군요. 각자 가정별로나 개인별로 도시락을 준비해보세요. 빈손으로 와도 해결될 겁니다. 정 안 되면 1층 카페에 올라가서 샌드위치를 먹으면 됩니다. 저도 사실은 그 샌드위치가 마음에 듭니다. 카페가 자랑하는 메뉴라고 합니다. 근처에 칼국수 집도 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여러 모양으로 식사를 하겠습니다.

 

7) 크리스- 일 년에 한두 번, 또는 서너 번 예배에 참석하는 교우가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는 자주 참석했는데 사업장을 서울로 옮긴 뒤로는 보기 힘듭니다. 교회를 서울 쪽으로 옮겨도 되는데, 굳이 아프리카티브이 라이브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 교회 교우로 남아있습니다. 이름이 크리스 킴입니다. 프랑스에서 오래 유명한 셰프로 활동한 분이라서 이름을 저렇게 부릅니다. 정작 말씀드리려는 내용은 오늘 손님으로 예배에 오신 어떤 여자분입니다. 교회에 다니던 분이 아닌데, 크리스의 소개로 처음 나왔습니다. 크리스 집사가 이분에게 소원 하나 들어달라면서 대구 샘터교회에 가보라고 했답니다. 그렇지 않아도 교회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들던 중이라 오셨다고 하네요. 교회에 처음 나온 느낌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 외에 몇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분이 우리 교회에 등록하고 적응이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예배 후 1층 카페에서 여러 교우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식 권사가 음료수를 다 돌리셨더군요. 고맙습니다.

 

8) 오 퐁드 부아- 지난 109일에 열린 성가대 야외 친교 모임에 우리 부부도 참가했습니다. 가창면 주리 골짜기에 있는 오 퐁드 부아”(숲속 깊은 곳이라는 뜻)라는 카페에서 오전 11시부터 하루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국도를 타고 가다가 산길로 들어서서 꾸불꾸불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이런 깊은 골짜기에 무슨 카페가 있겠냐,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막상 도착해서 카페 안으로 들어가 보니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성당 건너 센 강변 어느 유명한 카페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딱딱한 치즈가 곁들여진 빵과 함께 마시는 에스프레소 맛이라니! 다른 데서는 이제 더는 에스프레소를 마시지 못할 거 같습니다. 바깥 경관도 훌륭했습니다. 금년 겨울에 한 번 더 가봐야겠습니다.

 

9) 한강 다리- 둘째 주일이라서 서울 샘터교회를 다녀왔습니다. 반가운 교우들과 함께 성찬식이 있는 예배를 드리고, *형 짱티응옥이엔 부부의 첫 아이 머리에 손 얹어 축복 기도를 하고, ‘설교 한 걸음 더 들어가기특강을 마친 뒤 인근 손짜장 집에 가서 몇몇 교우들과 저녁을 먹었습니다. 서울역까지 윤, 이 집사 부부가 저를 데려다주었습니다. 한강 다리를 지날 때 중천에 뜬 달을 보았습니다. 보름달이었습니다. 서울에서도 장소만 잘 잡으면 이런 운치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네요. 영혼이 갑자기 충만해지는 듯했습니다. 이럴 때 한강 공원을 걸어도 좋았겠지요.

 

10) 예배 참석인원: 72, 헌금: 9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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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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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44 20: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당시 사람들은 천년을 세계 역사가 변하는 한 단위로 생각했습니다. 벧후 3:8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시 90:4절입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천년을 날수로 계산하면 365,000일입니다. 하루와 천년은 비교 자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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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41 19: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검에 죽는다거나 모든 새가 나머지 사람들의 살로 배를 불린다고 표현한 19절은 섬뜩한 느낌이 정도입니다. 표현만 그렇지 실제로 그 문장이 가리키는 의미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심층적인 차원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 탄 자’의 검에 나머지가 죽는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심판받는다.’라는 뜻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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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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