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41)

조회 수 464 추천 수 0 2019.10.26 19:07:44

장로

장로는 교회의 양 무리를 돌보는 목회자다. 그가 지녀야 할 세 가지 태도가 2절과 3절에 나온다. 1)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라. 2)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 하지 말고 자발성으로 하라. 3)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방식으로 하지 말고 본이 돼라. 당시에도 문제가 보이는 교회 지도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어느 집단이나 이런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다. 수도원과 수녀원에는 왜 그런 이들이 없겠는가.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도 이런 부류의 지도자가 될지 모른다는 경각심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두 번째 항목이 재미있다. 아마 자기 지위를 이용해서 재물을 모은 이들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일들은 그 사람이 반드시 의도적으로 악을 행하기 때문에만 벌어지지 않는다. 선의로도 벌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느 교회의 담임 목사가 재정 장로와만 아는 비밀 계좌를 열었다고 하자. 교회가 어려움에 떨어지거나 선교할 일을 대비해서 현금을 따로 관리하는 것이다. 수십억, 수백억이 쌓일 수 있다. 재정 장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거나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그 재정을 사사롭게 사용할 수 있다. ‘기꺼이하라고 말한 걸 보면 교회 지도자들은 사례비보다는 소명에 더 충실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세 번째 항목은 오늘에도 아주 실감 나는 이야기다. 권위주의에 떨어지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교회 지도자들만이 아니라 일반 신자들도 자기주장에 특히 강한 사람들이 있다. 자기주장이 교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교만

벧전 5:5절은 젊은이들에게 주는 충고다. 사실은 젊은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주제는 아니다. 나이가 젊다기보다는 교회 지도자들인 장로와 대비되는 뜻으로 젊은이라고 한 것 같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거꾸로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주신다는 것이다. 교만과 겸손은 교양처럼 보이기에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있다. 그건 착각이다. 교만은 소위 원죄에 해당한다. 어거스틴은 죄를 휘브리스’(교만)이라고 규정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모르 수이’(자기 사랑이라고 했다. 교만한 자의 특성이 자기 사랑이다. 판넨베르크는 죄를 자기 집중, 자기 연민(나르시시즘)이라고 규정했다. 다 통하는 개념들이다. 자기를 중심에 두는 삶의 방식, 또는 그런 기질을 가리킨다. 자기를 중심에 두기에 하나님에게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현대 심리학이나 철학은 자기에게 집중하라고 강조한다. 긍정 심리학이다. 이게 죄인 이유는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자기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인간은 생명에서 소외된다. 자기를 확인하려고 재물과 사회 지위에 집중한다. 재물이 늘고 신분이 높아진다고 해서 사람이 만족하는 게 아니다. 집착할수록 공허도 비례하여 더 깊어진다. 생명과 더 멀어지는 것이다.

C.S. 루이스는 교만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순전한 기독교> 192쪽 이하에서 교만을 가장 큰 죄라고 말한다. 그 내용은 발췌 방식으로 요약하겠다.

 

성도덕은 기독교 도덕의 중심이 아니다. 중심은 교만이다. 성적인 부정, 분노, 탐욕, 술 취함 등은 교만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악마는 교만 때문에 악마가 되었다.

교만은 다른 이들의 교만과 경쟁 관계에 있다. 다른 악은 우연히 경쟁적으로 되지만 교만은 본질적으로 경쟁적이다. 교만은 단순히 무언가를 더 가지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옆 사람보다 더 가져야만 만족하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 이상을 얻어도 자기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한다. 교만한 사람은 항상 눈을 내리깔고 사람과 사람을 본다.

기독교인인데도 교만한 사람은 상상 속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자신이 신앙생활을 하기에 스스로 선한 사람으로 느껴질 때는 악마를 따르는 것이다. 덜 나쁜 악들은 사탄이 우리의 동물적인 본성을 이용하기에 생기지만 교만은 지옥에서 곧장 온다. 다른 악들에 비해서 훨씬 더 교묘하고 치명적이다.

교만을 통해서 인간적인 유혹을 극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교만이라는 독재정권을 세우기 위해서 악마는 우리를 순결하고 절제하며 용감하게 살도록 허락한다. 교만은 영적인 암이다.

정말 겸손한 사람은 나는 정말 부족한 사람이지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역겨운 사람이 아니라, 누가 어떤 말을 하든지 진지하게 관심을 보이는 쾌활하고 지적인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겸손을 의식하지 않는다. 아예 자신을 의식하지 않는다.

 

우리는 평생 걸쳐서 겸손한 사람이 되기 힘들 것이다. 교만이 몸에 뱄다. 무엇인 교만인지도 모른다. 교양으로 겸손을 위장하는 것 자체가 교만이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점에서 하나님 앞에서 매우 곤란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18:9-14) 비유 앞에서 우리의 생각은 복잡하다. 실제로는 바리새인처럼 살고 싶어 한다. 실제로 자기를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당연히 이렇게 살아야 한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자기를 높인다는 사실이다. 실제로는 바리새인처럼 살면서 마음으로는 예수님이 칭찬한 세리와 자기를 동일시한다. 기독교인의 심리가 이중적으로 작동하는 게 아닐는지.

어떻게 실제로 겸손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가? 다른 뾰족한 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게 최선이다. 그것의 하나를 나는 앞에서 순교 영성이라고 말했다. 순교 영성을 거리가 먼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게 좋다. 삼위일체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사실, 그 세례 의식이 반복이라 할 성찬식의 참된 의미 안으로 구도 정진으로 태도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와 함께 이미 죽었기에 자기는 없고, 예수와 함께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에 지금의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의 메커니즘을 따르지 않는다. 가장 소박한 먹을거리인 빵과 포도주로 생명을 얻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더는 무엇이 더 우리에게 필요하겠는가. 이런 세례 영성과 성찬 영성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모든 것이다. 이런 신앙 경험은 한 번으로 완성되지 않기에 우리는 순례자처럼 푯대를 향하여 천천히, 그러나 치열하게 좌고우면 없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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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1]하늘연어

2019.10.27 16:54:24

오늘 말씀은 골백번 읽고, 묵상하고, 통곡해야 할 것같습니다. 저는.....,

할 말이 없고, 멍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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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5]정용섭

2019.10.27 22:54:46

예, 저에게도 찔리는 구석이 많습니다. 키리에 엘레이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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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강해(44)

  • 201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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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중세기 유럽 사람들은 ‘memento mori’라는 라틴어 문장을 그릇이나 옷, 또는 현관문에 새겼다. 죽음을 기억하라. 이 말의 근원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은 로마 시내에서 개선 행진을 벌인다. 왕이 하사한 말을 타거나 마차를 탔을 것이다. 그 뒤로는 수많은 부하의 줄이 이어진다. 구름떼처럼 몰려나온 로마 시민들이 가도에서 환호를 올린다. 개선장군이 영광을 한몸에 받는 순간이다. 바로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메멘토 모리”를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환영식의 한 소재다. ...

베드로전서 강해(43)

  • 201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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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영광 근신하라는 말만 생각하면 기독교인의 삶이 처절해 보인다. 어려움을 당하지만 인내하면서 기도로 버티라는 말로 듣는다. 오만상을 찡그리면서 삶을 버거워하는 인상을 준다. 시쳇말로 찌질해 보인다. 아니다. 기독교인은 어느 순간에도 비관론에 떨어지지 않는다. 실패가 아니다. 답답한 마음에 휩싸여 살지 않는다. 굳이 구분한다면 기독교 신앙은 낙관론에 가깝다. 큰 성공과 큰 긍정으로 산다. 즐거움과 희망으로 가득한 삶이다. 하나님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임마누엘 신앙이다. 베드로 사도도 그 사실을 10...

베드로전서 강해(42)

  • 2019-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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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6-11절: 영원한 영광과 잠깐의 고난 6.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시리라 8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10.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

주간일지 10월27일 file [4]

  • 2019-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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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년 10월27일, 창조절 9주 1) 해바라기 씨- 오늘(10월27일) 설교에서 ‘해바라기 씨 2개’ 비유를 말씀드렸습니다. 한 개는 땅에 심겨 2미터 높이의 기둥과 화려한 꽃의 형상으로 변화했고, 다른 하나는 본래의 씨 그대로 남았습니다. 이 차이는 너무 커서 연결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일상에도 이런 극적인 변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대개의 사람은 다른 데에 마음이 떨어져서 그걸 무시하고 삽니다. 그런 삶은 추상적인 삶입니다. 이런 추상성을 극복하고 가장 실질적인 세계로 들어갈 수 있어야...

베드로전서 강해(41) [2]

  • 2019-10-26
  • 조회 수 464

장로 장로는 교회의 양 무리를 돌보는 목회자다. 그가 지녀야 할 세 가지 태도가 2절과 3절에 나온다. 1)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라. 2)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 하지 말고 자발성으로 하라. 3)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방식으로 하지 말고 본이 돼라. 당시에도 문제가 보이는 교회 지도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어느 집단이나 이런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다. 수도원과 수녀원에는 왜 그런 이들이 없겠는가.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도 이런 부류의 지도자가 될지 모른다는 경각심을 놓치지 말아...

베드로전서 강해(40)

  • 201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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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하이데거는 사물(Ding)을 사중자, 즉 네 가지 힘의 회집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네 가지는 하늘과 땅, 사멸할 자들과 신성들이다. 그에 의해서 사물은 신비의 차원에서 존재를 드러낸다. 게오르그 트라클(Georg Trakl)의 시를 설명하는 대목이 예사롭지 않다. 우선 오스트리아 시인 트라클(1887-1914)의 시 ‘어느 겨울 저녁’을 보자. 눈이 창가에 내릴 때 저녁 종이 길게 울리고 식탁은 여럿을 위하여 차려지고 집안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많은 사람이 방랑하다가 어두운 오솔길로 문밖에 이른다. 은혜...

베드로전서 강해(39)

  • 201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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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1-5 장로와 젊은이들에게 1.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5.젊은 자들아 이와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주간일지 10월20일 창조절 8주 file [2]

  • 201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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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년 10월20일, 창조절 8주 1) 고립무원-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서 가르침을 주실 때가 많았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인 눅 18:1-8절도 그런 비유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과부는 고립무원, 절체절명의 신세에 떨어진 사람의 운명을 대변합니다. 예수님 스스로 이런 운명에 떨어졌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라고 외쳤습니다. 신(神)으로부터 버림받은 상태가 어떤 것일까요? 저는 설교에서 우리의 실존이 고립무원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아는 데서부터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갈망이 시작...

베드로전서 강해(38)

  • 2019-10-19
  • 조회 수 376

베드로 사도는 13절에서 대담한 발언을 한다. 기독교인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니 즐거워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날 때 우리가 즐거워할 수 있는 계기가 바로 고난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어떤 이들에게는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고난은 우리를 괴롭고 힘들게 할 뿐이지 어떻게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계기냐고 말이다. 기독교 신앙은 두 가지 성경이 있다. 하나는 역설적이라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현실적인 능력이라는 사실이다. 여기 정말 복음에 충실하게 목회하는 목사가 있다...

베드로전서 강해(37)

  • 2019-10-18
  • 조회 수 354

4장 12-19 고난 앞에서 12.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

베드로전서 강해(36) [2]

  • 2019-10-17
  • 조회 수 448

만물의 마지막과 기도에 대해서 말한 뒤에 본문은 이제 구체적인 삶에 대해서 말한다. 서로 사랑하라(8절). 서로 원망 없이 대접하라(9). ‘원망 없이’가 중요하다. 이게 쉽지 않다. 원망이 나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10절에서 은사를 말한다. 은사론은 고전 12장에 자세하게 나온다. 직책에 따른 은사가 있고, 기능에 따른 은사가 있다. 은사론에는 몇 가지 개념이 따른다. 첫째, 은사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 둘째, 모든 은사는 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셋째, 은사의 독립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넷째, 은사의 목표는 섬김과 봉사다. ...

베드로전서 강해(35)

  • 2019-10-16
  • 조회 수 365

4장 7-11절: 만물의 마지막 7.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11.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

베드로전서 강해(34)

  • 2019-10-15
  • 조회 수 384

기독교 신앙은 ‘최후의 심판’을 중심에 두고 있다. 복음서는 이를 여러 비유로 묘사한다. 마 24, 25장에 집중적으로 그 이야기가 나온다. 재난의 징조, 가장 큰 환난, 인자가 오는 것, 무화과나무,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 비유, 인자의 심판이 그것이다. 마 25:31-46절에 나오는 인자의 심판 이야기만 보자. 인자(人子)는 세상 마지막 때 세상에 와서 심판하실 자를 일컫는 묵시사상 용어다.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으로 놓는다. 오른편으로 분류될 이들은 구원받을 자들이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

주간일지 10월13일

  • 2019-10-14
  • 조회 수 376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년 10월13일, 창조절 7주 1) 말다툼- 딤후 2:14절에 말다툼을 하지 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걸 엄히 가르치라는 겁니다. 디모데가 목회하던 교회에서 말다툼으로 인한 불상사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어디나 말도 많고 다툼도 많습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이 많습니다. 사랑도 특별하고 희생과 평화 운동에서도 특별합니다. 말다툼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본문에서는 신학적인 말다툼이 문제였습니다. 신학 논쟁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는 ...

베드로전서 강해(33강) [1]

  • 2019-10-14
  • 조회 수 360

4장 1-6 세상 사람들의 비방 1.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2.그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4.그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5.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

베드로전서 강해(32)

  • 2019-10-12
  • 조회 수 371

3장 18-22 옥에 있는 영 18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

베드로전서 강해(31)

  • 2019-10-11
  • 조회 수 319

상투스! 이사야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는 스랍들의 찬송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반복되는 설명이지만, 이런 구절을 교회당에서 성가대가 부르는 합창을 직접 듣는 거와 같은 것으로 보면 곤란하다. 다른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고 이사야의 귀에만 들린 합창 소리다. 객관적인 실체로서의 합창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에게만 들리는 영적인 합창이다. 시인이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작곡가가 다른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 거와 같다. 오늘 ...

베드로전서 강해(30) [3]

  • 2019-10-10
  • 조회 수 450

소망의 이유 베드로 사도도 고난의 이유를 따지지 않는다. 고난을 피할 방법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매우 역설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한다.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으니 세상 사람들과 세상의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광신자처럼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무조건 두려워하지 않는 게 아니다. 고난과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는 희망 가운데 있다는 게 중요하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다가 마음이 상해도 심각한 정도로 낙심하지는 않는다. 집에 들어가면 더 행복한 일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너희 속에 ...

베드로전서 강해(29)

  • 2019-10-09
  • 조회 수 333

한 인간의 궁극적인 운명에 대해서도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어떤 철학자가 말했듯이 피투적 존재로서 이 땅에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런 마당에 이유 없는 고난에 대해서 완벽한 대답을 바란다는 것은 속된 말로 장님이 코끼리 만져 보고 모든 실체를 말하려는 것과 같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작은 범위 안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들만 어렴풋이 짐작하며 살아갈 뿐이지 이것이 전체적으로 어떤 근원과 목표를 가졌는지 잘 모른다. 그렇다면 이유 없는 고난에 대한 질문 앞에서 “우리가 아는 것이 없다.”라는 ...

베드로전서 강해(28)

  • 2019-10-08
  • 조회 수 320

신정론 “무죄한 자의 고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기독교인들에게 풀 수 없는 수수께끼와 같다. 간혹 ‘병원 24시’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는데, 불의의 사고를 만난다거나 불치병에 걸려 투병하는 사람들 앞에서 무슨 이유나 위로를 제시하기가 힘들다. 특히 태어날 때부터 심각한 장애를 가진 어린아이들을 볼 때는 더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의, 사랑, 전능과 같은 속성의 하나님 바로 그분이 이 세상을 창조하고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런 숙명적 고난의 이유를 해명할 길이 막막하다...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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