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50)

조회 수 956 추천 수 0 2019.11.07 20:59:45

아멘

 

송영은 아멘신앙을 근본으로 한다. 아멘은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거나 동의한다는 뜻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오직 아멘만 필요하고 아멘만 가능하다. 난민 가족을 상상해보라. 한 살 된 아이는 아버지 품에 안겨 있다. 아이는 아버지가 자기 생명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안다. 간혹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도 아버지의 행동에 아멘이라고 반응할 수밖에 없다. 아버지는 가슴에 안겨 있던 아이를 땅에 내려놓고 멀리 떠난다. 아이는 아버지가 자기를 버리는 줄 알았다. 아버지는 멀리서 군인들이 쫓아오는 걸 눈치치고 적군의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서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안 계신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멘한다. 이런 영적인 내공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즉 하나님의 창조 능력이 충만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졸저 <주기도란 무엇인가>(홍성사)에서 한 대목(189)을 인용한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아멘만 아는 사람들이오. 하나님 앞에서는 아멘 외에는 우리가 선택할 것을 아무것도 없소. 이것은 의 신앙이오. 하나님 앞에서는 예만 있을 뿐이지 아니오는 없소. 이를 공자 왈로 듣지 마시오. 습관적으로 예를 하라는 말이 아니오. 예수님의 비유를 보시오. 일하러 가라는 아버지의 말에 형은 예만 했지 실제로는 가지 않았소. 이것은 예가 아니오. 마음이 없는데 입만 연 것이오. 예에는 당연히 아니오도 포함되어 있소. 하나님의 뜻 앞에서 예 하려면 사람의 요구에 아니오를 할 수 있어야 하오. 우리가 늘 만 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하오. 하나님의 뜻이 우리 삶을 전폭적으로 지배하면 우리는 아니오를 말할 기회가 없소. 이것을 가리켜 큰 긍정의 영성이라고 말할 수 있소. 긍정이라는 단어가 오해를 불러일으키오. <긍정의 힘>을 쓴 오스틴 유의 신앙을 가리키는 게 아니오. 그가 말하는 긍정은 심리적인 자기 암시에 불과하오. 짝사랑에 빠진 소녀의 나르시시즘과 비슷하오. 큰 긍정은 자기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또한 자기를 확장하는 삶의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도적 구원 행위에 집중하는 것이오.

 

오늘날 세상살이에 쫓기는데도 아멘 신앙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말이냐, 또는 그런 신앙은 땅에서의 삶을 부정하는 열광주의 아니냐, 하는 질문이 가능하다. 아니다. 아멘 신앙은 하나님의 크고 선하신 능력에 대한 큰 긍정이지 현실을 나 몰라라 하는 패배주의나 몰()역사주의가 아니다. 세상살이가 얼마나 비루한지도 잘 안다. 아무리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현실과 어쩔 수 없이 타협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8:28) 흔들림 없이 믿는다. 일종의 바알숭배인 자본주의가 극으로 치닫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아멘 신앙으로 살아가려면 물질 숭배의 허상을 뚫어보고 성경과 2천 년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영적인 내공을 갖추는 수밖에 없다.

설교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방인들의 삶을 추종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라는 예수의 말씀에 끊임없이 영적인 촉수를 맞추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게 안 되면 우리는 기독교라는 외피를 쓰고 실제로는 일종의 기복주의에 떨어져 있는 셈이다. 6:31-33절 말씀은 이렇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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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예식 기도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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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8일(금) *내일 대구샘터교회 남청년이 구미에서 결혼한다. 신부가 경북 구미에 살기 때문이다. 관례대로 신부측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 주례를 감당하시고, 나는 기도를 맡았다. <매일 기도하라>에 이미 쓴 결혼 기도문을 기초로 해서 다시 살을 붙였다. 혹시 결혼예식에 기도할 기회가 있는 분은 내 허락을 미리 받지 않아도 이 기도문을 사용하실 수 있다. 오석원, 윤성희 결혼예식 기도 주님, 꽃처럼 아름다운 신부 윤성희 자매와 늘 푸른 나무처럼 듬직한 신랑 오석원 형제가 지금 여기 부부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과 많은 증인들 ...

오순절 마가 다락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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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6일 오순절 마가 다락방 어제 성령강림절 설교 본문은 행 2:1절 이하에 나오는 오순절 마가 다락방 이야기였다. 바람, 불, 방언 현상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나마 설교 시간에 했으니, 오늘은 다른 이야기를 하자. 120명이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다는 말은 100% 정확한 거는 아니다. 120명은 행 1:15절에 근거한 것이고, 마가의 다락방은 행 1:13절과 행 12:12절에 근거한 것이다. 마가의 다락방이 아무리 커도 120명이 들어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에 교회에 모이는 숫자는 들쑥날쑥하지 않았겠는가. 장소도 경우...

예수 그리스도 (막 1:1), 3월21일 [5]

  • 200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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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1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어떤 사본에는 생략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루터는 1절 말씀을 이렇게 번역했군요.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사본에 따라서 성서의 내용이 아주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들쑥날쑥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현재 발견된 수천 개에 이르는 사본 중에서 동일한 게 전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오늘 우리가 자세하게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막1:1), 3월22일 [2]

  • 2006-03-22
  • 조회 수 10567

2006년 3월22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신약성서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네 복음서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분적으로 예수님의 출생설화와 열두 살 때의 에피소드가 나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출가한 후 갈릴리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에 이르러 체포당하고 십자가 처형을 당한, 소위 공생애가 핵심입니다. 그 기간은 짧게 잡으면 1년여, 길게 잡으면 2년여가 됩니다. 다른 종교창시자나 성인들과 비교할 때 전체 삶도 짧았을 뿐만 아니라 활동...

원당일기(70)- 창 file

  • 2020-09-18
  • 조회 수 10142

저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서 보냅니다. 건강에는 나쁘지요. 그래서 생각날 때마다 스트레칭을 합니다. 책상이 창 바로 옆에 놓여 있어서 창을 바라보는 시간도 상당히 깁니다. 제 방의 창이 마음에 듭니다. 오늘 하루 종일 설교 준비하다가 오후에 찍은 사진인데, 한번 보세요. 의자에 앉아 눈에 들어오는대로 그대로 찍은 탓에 네모 반듯하게 나오지 않았네요. 오른쪽으로 치우친 사진입니다. 밖이 밝으니 창틀이 어둡게 나왔습니다. 창 자체가 마음에 든다기보다는 창을 통해서 보는 밖을 좋아하는 거겠지요. ...

6월23일 발먼지를 털어내라.

  • 2007-06-23
  • 조회 수 9987

2007년 6월23일 발먼지를 털어내라.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막 6:11) 제자들이 지켜야 할 또 하나의 규칙은 사람들에게 거부당했을 때 발먼지를 털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발먼지를 어떻게 털어내라는 것일까요? 발을 땅바닥에 대고 쾅쾅 울리라는 것인지, 아니면 발을 들고 신발에 묻는 먼지를 손으로라도 털어내라는 것인지, 무엇일까요? 이것은 그 당시의 일반적인 습관, 또는 격언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

교회 일꾼들을 위한 기도, 11월20일(화) [1]

  • 2012-11-20
  • 조회 수 9842

주님,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최선으로 수고와 봉사를 아끼지 않는 일꾼들을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그들은 마지막 때에 당신께서 부르신 일꾼들입니다. 청지기들입니다. 당신의 부르심을 허투루 듣지 않고 영혼을 기울여 순종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의 수고와 희생이 있었기에 교회 공동체가 살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땀은 바로 하나님의 땀입니다. 주님, 교회 일꾼들은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며 살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기에 인간적인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의 오해와 시기심으로 인해서 ...

선지자 이사야, 3월26일 [1]

  • 2006-03-26
  • 조회 수 9617

2006년 3월26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 요즘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 각주를 달듯이 마가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가의 속을 내가 뚫어볼 수는 없지만, 아마 자신의 글을 읽어야 할 독자들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선지자들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집단은 없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은 왕이며, 종교적인...

복음 (2), 3월24일 [4]

  • 2006-03-24
  • 조회 수 9612

2006년 3월24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2> 마가복음 기자가 전하는 복음(福音,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의 역사를 배경으로 기록된 구약성서에서 볼 때 가장 큰 기쁜 소식은 출애굽과 바벨론포로 귀환입니다. 먹고살기 힘들어 이집트 땅으로 이민 갔던 이스라엘 민족이 그곳에서 소수민족으로 당해야만 했을 고난, 그리고 전쟁에서 패배하여 인질로 잡혀갔던 바벨론 제국에서 당해야만 했을 모욕이 그들에게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이었는지는 긴...

선지자 이사야의 글, 3월27일 [12] [1]

  • 2006-03-27
  • 조회 수 9544

2006년 3월27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의 글 마가는 지금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인용하고 있는 글은 분명히 이사야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마가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사야의 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곤란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성서 기자들의 글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 문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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