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12월1일 대림절 1주

조회 수 1180 추천 수 0 2019.12.01 19:44:24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121, 대림절 1

 

1) 칼과 창- 오늘 설교 본문을 기록한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가 오래, 그리고 깊이 간직해야 할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람이 더는 싸우지 않고 전쟁 연습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때를 사람이 만들어낼 수 없고 하나님이 실행하십니다. 이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이제 세상에서 평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평화 연습을 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이루실 평화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칼과 보습, 창과 낫의 관계를 깊이 생각하는 대림절 절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 국악 찬송- 오늘 국악 찬송이 예배 참석자들에게 낯설었나 봅니다. 우리 교회 신자들의 찬송가 부르기 실력이 뛰어나다는 말을 평소에 들었는데, 오늘 국악 찬송은 어설프게 불렀습니다. 알리는 시간에 다시 한번 연습했습니다. 오는 주일에도 이 찬송가를 부르겠습니다. 잘 기억하고 있다가 산만하지 않게, 은혜롭게 잘 불러봅시다.

 

3) 대림절-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한 번 더 설명하겠습니다. 교회력은 대림절부터 시작합니다. 성탄절 전 4주간이 대림절입니다. 올해 대림절은 121일입니다. 어떤 해에는 11월 마지막 주일이 여기에 해당하기도 합니다. 대림절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과 현재의 임재(파루시아)를 의미합니다. 초림은 과거를 가리키고, 재림은 미래를 지향한다면, 임재는 현재의 생명 경험을 의미합니다. 이 세 차원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예수로 인해서 이미 세상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발생했으며, 예수로 인해서 미래에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될 것이며, 예수로 인해서 현재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상에 놓은 대림절 장식을 보셨는지요. 오늘은 촛불이 한 개만 켜졌고, 차례대로 4개까지 켜질 겁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입니다. 대림절 장식을 준비해주신 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12월 한 달, 대림절의 희망과 성탄절의 기쁨이 교우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4) 1세기 후반- 오늘 2시부터 <초기 기독교의 형성> 10장을 공부했습니다. 10장은 예루살렘 성전이 붕괴한 기원후 70년부터 100년 사이에 주류 기독교가 어떤 선교 정책을 펼쳤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흥미진진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시기의 기독교에는 이미 십여 년 전에 중요한 세 명의 지도자가, 즉 바울과 베드로와 야고보가 죽었기 때문에 구심점이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나름으로 최선을 다해서 유대교를 기독교의 복음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런 시도의 흔적을 저자 트로크메는 야고보서와 마태복음을 근거로 설명했습니다. 그 시도는 결국 실패했습니다. 유대교 바리새파의 개혁 운동은 활성화한 반면에 기독교의 복음 운동은 소수파로 전락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 기독교는 역사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11장에 나옵니다. 내년 1월 첫째 주일은 교인총회가 열리기에 시간 관계상 내년 2월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습니다.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미리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오늘 10장은 내용이 길지 않아서 한 시간만 하고 끝냈습니다. 시간을 반으로 줄이니 모두 호응이 좋네요. 앞으로도 한 시간만 공부하겠습니다. 정확하게 60!

 

5) 빵과 포도주- 성찬 예식이 있는 주일마다 저는 예배에서 받는 느낌이 색다릅니다. 성찬상 위에 놓인 빵과 포도주를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몸과 피로 믿고 받았습니다. 즉 생명의 궁극적인 현실로 받은 겁니다. 기독교 성찬식의 깊은 의미를 알고 경험하려면 빵과 포도주라는 사물의 심연을 뚫어볼 줄 알고, 또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구원 능력을 실제로 깨달아야 합니다. 가장 소박한 먹을거리인 빵과 포도주에 담긴 우주론적인 깊이를 안다면,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로 인한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을 경험한다면 그는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영혼의 자유와 안식을 실제로 누릴 것입니다.

 

6) 교회 간판- 요즘 교회 밴드에서는 교회 간판 디자인에 관해서 여러 의견이 오가는 듯이 보입니다. 제 핸드폰으로는 밴드에 접근이 안 되지만 대략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는 간접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회가 시작한 지 16년 반이 지나는 시점에 처음으로 간판을 달게 되었군요. , 초창기 2년 정도는 예배 처소로 사용하던 아파트 출입문 옆에 작은 목제 간판을 걸어두기는 했습니다. 교우들의 의견을 잘 모아서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7) 카페- 오늘 오후에는 대구에 비가 제법 내렸습니다. 교회에 간 오전에도 뜨문뜨문 빗방울이 떨어지긴 했는데, 예배 마치고 보니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신학책 강독까지 마치고 나왔을 때는 여름비처럼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지더군요. 카페에서 내다보는 비 내리는 겨울 풍경이 낭만적이었습니다. 오늘도 예배 후에 카페에 여러 그룹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중앙의 라운드 테이블은 청년들이 차지했습니다. 마당을 향한 유리창 옆자리에는 비슷한 나이 또래의 여자 교우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입니다. 카운터 쪽으로 탁자 몇 개를 늘어놓고 앉은 팀도 있었습니다. 어느 교우의 다음과 같은 멘트가 인상 깊네요. “아무래도 우리가 이 카페, 접수해야겠습니다.”

 

8) 2020 예배 위원 외- 이제 2019년이 끝나는 12월에 들어섰으니 내년 2020년 새로운 예배 위원을 결정해야 합니다. 기꺼이 맡아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회자: 류동규(1,2), 박정연(3,4,5), 성경봉독자: 방성수(1), 권정숙(2), 신광혜(3), 정지은(청년 몫, 4), 5주는 돌아가면서 맡습니다. 사정에 따라서 순서를 바꿀 수 있습니다. 참고로 내년부터는 예배 때 목사와 예배 위원 모두 가운을 입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운영위원으로는 현재 청년회 몫으로 한 명이 결정되었고, 다른 한 명은 미정입니다. 인사 문제는 전체적으로 잘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9) 예배 참석인원: 90, 헌금: 2,8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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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0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하나님의 아들>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술로부터 복음서 쓰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우리를 여러 가지 면에서 곤란하게 만듭니다. 우선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다는 말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영으로 존재하는 성서의 하나님이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재현하는 헬라 신화의 여러 신들처럼 자식을 두었다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아들(막 1:1), 3월20일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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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2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신약성서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네 복음서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분적으로 예수님의 출생설화와 열두 살 때의 에피소드가 나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출가한 후 갈릴리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에 이르러 체포당하고 십자가 처형을 당한, 소위 공생애가 핵심입니다. 그 기간은 짧게 잡으면 1년여, 길게 잡으면 2년여가 됩니다. 다른 종교창시자나 성인들과 비교할 때 전체 삶도 짧았을 뿐만 아니라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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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1), 3월23일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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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3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1> 한국에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같은 이름의 교단만 있는 게 아니라 아예 ‘복음’을 간판으로 내건 교단도 있습니다. ‘복음교회’가 그 교단입니다. 복음교회는 그렇게 보수적이지만도 않고 그렇다고 진보적이지만도 않은, 비교적 건전한 교단입니다. 복음을 간판으로 내걸지는 않았지만 복음교회보다 훨씬 더 복음이라는 단어와 밀착된 교단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회’가 그 교단입니다. 이 하나님의 성회도 나뉘어졌기 때문에 지금 제가 정...

복음 (1), 3월23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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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2), 3월24일 [4]

  • 200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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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4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2> 마가복음 기자가 전하는 복음(福音,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의 역사를 배경으로 기록된 구약성서에서 볼 때 가장 큰 기쁜 소식은 출애굽과 바벨론포로 귀환입니다. 먹고살기 힘들어 이집트 땅으로 이민 갔던 이스라엘 민족이 그곳에서 소수민족으로 당해야만 했을 고난, 그리고 전쟁에서 패배하여 인질로 잡혀갔던 바벨론 제국에서 당해야만 했을 모욕이 그들에게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이었는지는 긴...

복음 (2), 3월24일 [2]

  • 200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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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3) 3월25일 [1]

  •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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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5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3> 저는 앞서 출애굽과 포로귀환을 ‘기쁜 소식’으로 이해하는 구약의 해석이 신약에서는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혹시 이 말에 오해가 있을까 해서 변명해야겠습니다. 우리의 억압된 삶의 구조가, 그런 것들은 대개 경제와 정치에 연관된 것인데, 해방의 구조로 바꾸는 일들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사는 분들이 한국 사람들과 아무런 차별이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사회구조를 바꿔나가는 일은 ...

복음 (3) 3월25일 [1]

  •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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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이사야, 3월26일 [1]

  •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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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6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 요즘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 각주를 달듯이 마가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가의 속을 내가 뚫어볼 수는 없지만, 아마 자신의 글을 읽어야 할 독자들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선지자들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집단은 없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은 왕이며, 종교적인...

선지자 이사야, 3월26일 [1]

  •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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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이사야의 글, 3월27일 [12] [1]

  • 200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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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7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의 글 마가는 지금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인용하고 있는 글은 분명히 이사야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마가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사야의 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곤란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성서 기자들의 글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 문제입...

선지자 이사야의 글, 3월27일 [10]

  • 200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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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사자(使者), 3월28일 [4]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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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8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주님의 사자(使者) 만약 마가복음이 학위 논문이었다고 한다면 불합격 처리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면서 엉뚱하게 말라기서의 글을 인용했으니까 말입니다. 마가가 선지자 이사아의 글이라고 인용한 본문 2절은 말라기서 3장1절 말씀입니다. 이사야의 글은 3절에 나옵니다. 마가가 착각을 일으켰는지, 아니면 알고 있었지만 굳이 구분해서 두 사람의 원작자를 거론하는 게 번거롭다고 생각했...

주님의 사자(使者), 3월28일 [3]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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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1), 3월29일 [1]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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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9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막 1:3) 광야 (1) 마가가 3절에서 인용한 글은 이사야서 40:3절 말씀입니다. 물론 이사야의 글을 문자적으로 인용한 게 아니라 약간 손질을 했습니다. 이사야서를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마가복음은 이사야의 글을 한 절만 인용했지만 누가복음은 이 뒤로 이어지는 이사야...

광야 (1), 3월29일 [1]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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