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1월26일

조회 수 982 추천 수 0 2020.01.27 14:07:21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126, 주현 후 3

 

1) 하나님의 현존- 언제부터인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예수의 첫 선포가 저의 영혼을 가득 채웠습니다. 예수의 이 메시지가 거짓이 아니라면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이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저 메시지는 하나님의 현존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어느 한 장소에 구체적인 형체를 지니고 존재하지 않기에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기가 간단하지 않습니다. “언어가 나에게 왔다.”라고 말하는 시인들의 언어 경험과 비슷합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신경 쓰지 않고 살아도 괜찮겠지만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의 현존을 구하고 사색하고 씨름하고 붙들고 외치면서 살아야겠지요. 저 역시 목사이기 전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남은 삶을 온전히 하나님의 현존에 쏟으면서 살아야겠습니다.

 

2) 교회 간판- 오늘 교회에 들어가다 보니 교회 간판이 달라졌습니다. *현 권사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간판집 기술자를 불러서 해결했나 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세련된 작품이 되었군요. 저렇게 만드니 안쪽으로 채광이 잘 됩니다. 다만 작은 실수가 나왔습니다. 교회 이름에 대구가 빠졌습니다. 대구 샘터교회가 졸지에 <샘터교회>가 되었습니다. 사실은 16년 전 처음 교회가 시작할 때 이름이 <샘터교회>였고, 5년 뒤 서울 샘터교회가 시작하면서 우리도 대구를 앞에 붙였습니다. 이번 기회에 아예 교회 이름을 <샘터교회>로 바꿀까요? 아니면 나중에라도 대구라는 글자를 넣어야겠습니다. 교회가 지하에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표기되었으니 그냥 두어도 괜찮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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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회자석- 우리 교회 예배는 일반 신자가 사회를 보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예배 전반을 총괄하는 역할입니다. 사회자에게는 마이크 상태와 앞에 놓인 탁자가 역할을 감당하는 데에 중요합니다. 마이크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아주 좋아졌는데, 제가 보기에 탁자는 시원치가 않습니다. 주보와 찬송가를 함께 놓기에는 탁자가 너무 좁아서 사회자가 불편해 보입니다. 그런데 요즘 사회를 보는 박*연 집사는 아무런 불편이 없다고 하네요. 괜찮으면 됐습니다. 사회자가 사용하는 마이크 스텐드가 두 주일 전에 망가졌는데, 오늘 보니 새로운 것으로 교체 설치되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해주신 교우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4) 133- 설교 후 찬송가 133하나님의 말씀으로는 주현절에 부르는 찬송가입니다. 이 가사는 프루덴티우스(348-413)가 썼습니다. 정말 오래된 가사입니다. 곡조는 11세기 상투스에서 왔습니다. 이를 1940년에 더글라스가 편곡했습니다. 대중적이지 않은 찬송가인 탓인지 오늘 우리는 서툴게 불렀습니다. 주보가 금요일 저녁에 교회 홈페이지에 돌아가니 집에서 확인해보고 낯선 찬송가는 미리 연습해보기 바랍니다. 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세상이 창조되지/ 그는 알파와 오메가 처음이요 끝이시라/

지난날과 장래 일을/ 모두 주관하시네/ 존귀 영광 주의 권세 영원하신 승리를 영원토록 영원토록 아멘

 

5) 강정 외- 식사 메뉴에 디저트로 강정이 나왔습니다. 집에서 많이들 드셨겠지만 이렇게 교회에서 함께 먹으니 맛이 색달랐습니다. 주메뉴로는 짜장이 나왔습니다. 설날에 쉬지 못하고 짜장을 만드느라 수고하신 교우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예배에 빠진 분들이 많았고, 예배에 나왔어도 빨리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서 짜장이 제법 남아서 조금씩 나눠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우리 집에도 왔군요. 교회 마당에 주차하는데, 입구 쪽에 대형 트럭이 있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중에 홍*숙 집사가 마당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오늘 남쪽 마산인가 어딘가에서 친척 모임이 있어서 반찬만 일단 갖다 놓고 예배는 참석할 수 없다는 겁니다. 즐겁게 잘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에 홍 집사가 트럭 운전석에 올라타더군요. 남편이 트럭을 운전하는지, 다른 어떤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나중에 물어봐야겠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반찬을 챙겨주신 홍 집사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6) 목사 가운- 올해 들어서 저는 목사 가운을 입지 않고 예배를 인도합니다. 제 책상 옆 옷걸이에 여전히 가운에 걸려있었습니다. 예배 후 가운을 예배실 강단 왼편 다용도실로 옮겨서 걸었습니다. 그 자리 옷걸이에 걸려있던 아주 오래된 검은 색 목사 가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곳 실밥이 보일 정도로 낡았습니다. 제가 19803월 목사 안수를 받을 때 친구 목사 장모가 자기 사위와 저에게 목사 안수 기념으로 준 가운입니다. 40년 전입니다. 앞으로 가운을 계속 입지 않을 터이니 40년 된 가운은 기념으로 제가 집으로 가져가야겠습니다.

 

7) 다담뜰 한식뷔페- 김 아무개 집사가 예배 후에 목사님, 교회에서 놀다 가시는지, 그냥 가야 하는지요.”라고 물었습니다. 연휴이니 느긋하게 친교를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여러 교우가 1층 카페로 모였습니다. 네 팀입니다. 중간에 돌아갈 분들은 돌아가고, 남은 교우들은 5시까지 담소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떤 집사가 오늘 저녁밥을 함께 먹고 축구 경기 시청도 함께하는 게 어떨까요? 누구네 집으로 갈까요?”라고 바람을 잡았습니다. 분위기가 그런 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저의 의향을 묻더군요. “두 시간이나 함께 축구를 시청하는 건 지루하지 않나요? 그것보다는 어디 가서 설날 떡국이나 함께 먹읍시다. 나는 아직 못 먹었거든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남 집사가 오늘 저녁은 제가 살 테니까, 가요. 경산 다담뜰 한식뷔페가 괜찮아요.” 합니다. 5시 반부터 7시까지 9명이 다담뜰 뷔페에서 맛나게 배불리 먹고 설날 연휴의 여유를 만끽했습니다. 저는 보통 배부르게 먹지 않는데, 이번만은 세 접시를 먹었더니 포만감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소화제를 먹지 않아도 소화는 잘됐습니다. 9명 식사비를 내느라 고생하신 송 집사님.

 

8) 예배 준비실- 제가 예배 시작하기 전에 잠시 머물면서 준비하는 공간은 1층에 있습니다. 부엌 바로 옆에 붙어 있습니다. 그 안에는 고풍스러운 둥근 탁자가 가운데 놓여 있고, 의자는 여덟 개나 놓여 있습니다. 거기서 30분 정도 머뭅니다. 설교 구성을 다시 생각하고, 아주 짧게 스트레칭을 하고, 교우 전화번호부에 실린 이름을 봅니다. 아픈 이, 멀리 여행을 떠난 이, 시험(?)에 들린 이, 아이들 등등, 예배에 참석하든지 못하든지 모두 예배 영성에 접할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기도드립니다. 예배 준비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9) 예배 참석인원: 66, 헌금: 2,480,000(통장 57만 원 포함, 헌금에 참여한 타교인- *정 님)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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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43) 요 11:14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나사로는 잠들었다.”라는 예수의 말을 제자들은 실제로 잠들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똑같은 말이라도 알아듣는 사람이 있고 거꾸로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예수는 제자들의 오해를 풀어준다. “나사로는 죽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언젠가 “정용섭은 죽었다.”는 말을 사람들이 하게 될 것이다. 죽는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노환, 질병, 사고 등으로 죽는다. 똑같은 장소에 있다가도 한 사람은 살고 다른 한 사람은 죽는다.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나선 일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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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42) 요 11:11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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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42) 요 11:11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이제 예수는 나사로에 관해서 직접 말한다. 잠든 나사로를 깨우러 가자고 한다. 나사로는 잠든 게 아니라 실제로는 죽었다. 사실은 잠과 죽음은 일상이 무너진다는 점에서 비슷한 생리 현상이다. 어쨌든지 여기서 그를 깨운다는 말은 살린다는 뜻이다. 그렇다. 예수는 우리를 깨우고 살리는 자다. 예수의 공생애 마지막 대목에서 예수는 세 명의 제자, 즉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를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갔다. 예수는 그들에게 “내 ...

예수 어록(241) 요 11:10 실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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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41) 요 11: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실족은 발을 잘못 딛는다는 뜻이다. 실족은 실족으로 끝나지 않고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등산 중에 실족하여 중상을 입거나 심지어는 추락사하는 일도 있다. 젊었을 때는 실족하지 않을 상황에서도 늙으면 쉽게 실족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시 하겠다. 별로 실감하지 못하다간 최근에는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을 더 실감하게 되었다. 집안에서 문이나 벽에 살짝 부딪혀도 몸이 크게 충격을 받는다. 발을 조금 잘못 디뎌서 중심을...

예수 어록(240) 요 11:9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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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40) 요 11:9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유대로 다시 가겠다는 예수의 발언을 들은 제자들이 그 위험성을 지적하자 예수는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라는 문장으로 대답했다. 낮이 늘 열두 시간은 아니다. 동지 때는 열 시간이 안 될 수도 있고, 하지 때는 열네 시간이 더 될 때도 있다. 대략 낮과 밤은 반으로 나뉜다. 여기서 낮은 하나님의 빛 안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에 대한 종교적 메타포다. 빛은 생명의 근원이다. 빛이 있을 때는 길을 잃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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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예수 어록(238) 요 11:4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10장을 끝으로 긴 연설 방식의 예수 발언은 끝나고 11장부터 다시 서사가 시작된다. 긴 연설은 14-17장에 다시 나온다. 이 대목에서 17장은 죽음을 앞둔 예수의 기도다. 18장부터 21장까지는 공관복음서와 비슷한 구도로 예수의 수난 전승이 나온다. 이 수난 전승 외에는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은 여러 가지 점에서 크게 다르다. 11장에는 죽을병에 걸렸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 이야기가,...

주간일지 1월19일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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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1월19일, 주현 후 2주 1) 아포칼립시스- 오늘 설교 본문에 속한 고전 1:7절에는 특별한 단어가 하나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나타나심’은 헬라어 ‘아포칼립시스’라고 설교 시간에 설명했습니다. 아포칼립시스는 계시, 또는 묵시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나타난다는 뜻은 아닙니다. KJV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coming)이라고 번역했고, NIV는 ‘계시된’(to be revealed)라고 번역했습니다. 루터 성경은 ‘계시’(Offenbarung)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의 일상 용...

예수 어록(237) 요 10:38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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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37) 요 10: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예수는 대담한 발언을 계속한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예수 당신을 믿지 못하더라도 예수에게 나타나는 일은 믿으라고 말이다. 자신이 하나님의 일에 전적으로 의존해있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예수의 행위에 나타나는 모든 일은 예수가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를 이룬다는 증거다. 그 일은 창조주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다. 즉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예수...

예수 어록(236) 요 10: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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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36) 요 10: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 예수는 일관되게 자기의 행위, 즉 자기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일을 근거로 해서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예수의 행위는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고, 병든 사람과 장애인을 고치고,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한 것이다. 한 마디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곧 하나님의 일이다. 그 사실은 유대인들도 다 안다. 그 사실만으로는 예수를 비난할 수 없었기에 신성모독을 끄집어낸 것이다. 그들은 원래 삐딱한 사람들...

예수 어록(235) 요 10:36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 2020-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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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35) 요 10: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앞에서도 말했듯이 예수는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고 말하거나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이런 표현도 듣기에 따라서 신성모독으로 비치겠지만 예수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 두 표현 모두 예수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고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한다는 의미이다. 예수가 신성을 모독했다는 유대인들의 ...

예수 어록(234) 요 10:35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 202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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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34) 요 10: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 예수는 “당신은 자칭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라는 유대인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 35절에서 부연하여 설명한다. 그 설명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람이 실제로 신이 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신성에 가까이 간다는 뜻이다. 이게 이상한 주장이 아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존재하시고, 말씀을 통해서 사람을 만나신다. 하나님은 태초에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

예수 어록(233) 요 10:34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 2020-01-14
  • 조회 수 1115

예수 어록(233) 요 10:34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유대인들도 예수의 행위가 선하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예수의 행위가 아니라 ‘신성모독’을 문제로 삼은 것이다. 33절은 유대인들의 비난을 이렇게 전한다.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다.” 예수는 자칭 하나님이라고 발언한 적이 없다. 하나님은 세상에 실제 인간으로 나타날 수 없다. 하나님을 본 자는 죽는다는 말이 이를 의미한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에 신적인 능력인 구원을 보이는 존재는 메시야, 또는 인...

주간일지 2020년 1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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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1월12일, 주현 후 1주 1) 상한 갈대- 설교를 듣는 사람보다 설교하는 사람이 성경 본문에서 더 크게 감동하는 때도 있습니다. 이번 성경 본문이 그랬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다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이 왜 이리 오래 저의 영혼을 그 중심에서 위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말씀대로 살아야겠다는 결단도 더 단단해졌습니다. 설교의 결론은, 너무 뻔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상한 갈대나 꺼져가는 등불이 될까 미리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미리 걱정하지 ...

예수 어록(232) 요 10:32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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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32) 요 10:32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라는 예수의 발언은 거기 모였던 이들을 발칵 뒤집었다. 그럴만하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지극히 존엄한 존재로 여기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대놓고 부르지도 않았다. 야훼(여호와)라거나 엘로힘(하나님), 또는 아도나이(주)나 엘 샤다이(만군의 주)도 하나님을 직접 호명하는 게 아니다. 거룩하신 분, 세상을 창조하신 분,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라는 표현만이 가능하다. 예수...

예수 어록(231) 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 2020-01-10
  • 조회 수 1107

예수 어록(231) 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드디어 가장 위험한 발언이 나왔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이게 예수의 실제 발언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요한복음 공동체의 신앙고백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는 아무도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예수가 실제 이런 자구로 말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런 발언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만한 생각은 했을 것이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영혼 전체로 느끼고 있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하...

예수 어록(230) 요 10: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며

  • 2020-01-09
  • 조회 수 892

예수 어록(230) 요 10: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며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는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만물보다 큰 아버지이다. 만물보다 큰 존재는 만물에 제한받지 않고 만물을 초월한다. 예수는 바로 그 하나님이 자신의 운명을 책임지는 아버지라고 보았다. 이런 사실이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고,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 눈에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런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실제로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예수는 자기...

예수 어록(229) 요 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 2020-01-08
  • 조회 수 914

예수 어록(229) 요 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예수는 우리에게 ‘영생’(eternal life)을 주는 존재라는 사실이 요한복음의 핵심이다. 영원하다는 말은 단순히 시간이 끝없이(endless) 연장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 의미라면 예수를 통해서 우리는 영생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런 영생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얻지 못한다. 무한 반복되는 삶은 공허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영원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다...

예수 어록(228) 요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 2020-01-07
  • 조회 수 1142

예수 어록(228) 요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예수의 양에게 나타나는 특징은 세 가지다. 1) 예수의 음성을 듣는다. 사람은 이상하다. 귀가 똑같이 멀쩡해도 자기에게 들리는 소리가 있고 아무리 들어도 들리지 않는 소리가 있다. 유치원에 수업을 참관하러 온 부모들은 자기 아이의 소리에 민감하다. 음악에 대한 내공이 깊지 않은 사람들은 수준 높은 연주에도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한다. 예수의 음성을 듣는다는 말은 영적인 귀가 열려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영적인 ...

주간일지 2020년 1월5일 file [2]

  • 2020-01-06
  • 조회 수 1279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1월5일, 성탄후 2주 1) 입양- 매월 첫 주일은 설교자로서 큰 도전을 받는 주일입니다. 초등 5학년을 기준으로 설교하기 때문입니다. 초등 5학년에게 들리게 설교하려면 무조건 처음부터 ‘이야기식’으로 말해야 합니다. 오늘은 입양 이야기로 시작해서 입양 이야기로 끝냈습니다. 백일 된 아이가 스웨덴으로 입양을 하였습니다. 그 아이의 품에는 아이와 엄마와 아빠 이름이 새겨진 반지와 가족사진이 남아 있습니다. 이 아이가 커서 친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바로 하나님을 찾는 마음과 같다고 했...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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