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2월2일

조회 수 972 추천 수 0 2020.02.03 18:46:35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22, 주현 후 4

 

1) 가난 영성- 오늘 설교의 성경 본문은 마 5장의 팔복입니다. 첫째 항목은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누가복음은 직접 가난한 자라고 하는 데 반해서 마태복음은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표현만 다르지 실제 내용은 다를 게 없습니다. 실제로 가난한 자들은 심령이, 즉 영혼이 가난한 자들입니다. 물질로 영혼의 위로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가 극에 달한 오늘날 가난 영성이라는 말이 성립할까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을 가난한 교회가 복이 있다는 말로 바꿔도 됩니다. 가난한 교회가 복이 있다는 말을, 더 나아가서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라는 사실을 실제로 이해하고 믿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모두 언젠가 어쩔 수 없이 완전한 가난, 완전한 무소유로 돌아갈 터이니, 그 가난과 무소유로 인한 안식과 자유가 무엇인지를 미리 당겨서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난 영성,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습니다.

 

2) 최민식- 주보 표지 사진이 아주 강렬합니다. 몇 살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아이가 엎드려서 동냥을 구하고 있습니다. 등 쪽의 어깻죽지 뼈가 앙상합니다. 목발이 엉덩이 아래에 놓여 있습니다. 머리 뒤통수의 한 부분에 머리카락이 없습니다. 큰 종기가 났든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얻어맞아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렸나 봅니다. 저 자세는 부처 앞에서 절을 하는 자세와 비슷합니다. 두 손을 펴서 하나로 모아 위로 향했습니다. 성찬 빵을 받는 기독교인의 손 모양과 비슷합니다. 오체투지를 하듯이 머리를 땅에 처박고 저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구도자의 모습입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하고 다른 한편으로 감격스럽기도 합니다. *수 집사는 며칠 전에 도서관에서 최민식 작가의 사진집을 빌려다 보는 중이라고 합니다.

    최민식.PNG

 

3)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나라 안팎이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중국에서 초기에 잘 대처했어야만 했는데, 안타깝게도 일이 너무 커졌습니다. 이제라도 치료와 방역 활동에 최선을 기울여야겠지요. 정부 당국에서 비교적 적극적으로 선방하고 있으니 우리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만이 아니라 이미 잘 알려진 바이러스로 인해서 매년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미국도 이번 겨울에 독감으로 8천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공중에 떠다니지는 않습니다. 확진자가 기침할 때 나오는 그 바이러스를 우리가 직접 호흡하지만 않는다면 전염되지 않습니다. 주변에 감염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스크를 쓰고 손만 잘 씻으면 큰 문제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 소동으로 인해서 오늘 예배에 빠지는 분들이 제법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예상외로 오실 분들은 다 오신 거 같습니다. 하루빨리 이 소동이 큰 불상사 없이 지나갔으면 합니다.

 

4) 손님- 몇 분들이 오늘 예배에 손님으로 참석하셨습니다. 얼굴이 익숙한 분도 있고, 낯선 분도 있었습니다. 네 분은 예배 후에 돌아갔고, 60대 후반의 부부는 식사도 하고 1층 카페에서 대화도 나누고 2시에 열린 신학 공부에도 참석했습니다. 이 노부부의 아내는 서울이 고향이고 남편은 대구가 고향입니다. 포항에서 살다가 3년 전에 대구로 이사 왔고, 지금 태전동에 사신다고 하네요. 앞으로 종종 뵐 수 있을 거 같습니다.

 

5) 초기 기독교의 형성- 오후 2시부터 에티엔트 트로크메의 책 초기 기독교의 형성11바울 후예들의 소생을 강독 방식으로 공부했습니다.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크게 유대 기독교이방 기독교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유대 기독교는 야고보와 베드로를 주축으로 하는 예루살렘 교회이고, 이방 기독교는 바울을 주축으로 하는 소아시아와 그리스 지역 교회입니다. 이방 기독교는 60년대 바울 사후 80년 이전까지는 힘을 잃었다가 그 이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방 기독교가 기독교의 모든 세력을 규합할 정도로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습니다. 바울 문헌은 2세기 기독교 저술가들의 주목을 별로 받지 못하다가 조금씩 힘을 얻게 되었고, 4세기 말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서 최고의 권위 있는 신학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초기 기독교 역사에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다 하나님의 섭리이자 은혜이겠지요.

 

6) 통합 예배- 매월 첫째 주일의 통합 예배가 오늘 있었습니다. 오늘은 부모들도 옆에 앉아서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보기에 좋았습니다. 엄마 아빠가 자녀들에게 주보를 보는 방법과 성경 읽는 방법을 가르쳐주더군요. 부모가 옆에 앉으니 자녀들도 훨씬 안정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저도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 설교한다는 부담감이 있기는 하나, 어린이의 눈높이로 기독교 신앙을 바라볼 기회라 생각하니 즐거웠습니다. 우리 교회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어렴풋하게나마 인상 깊게 기억되는 예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앉아서 예배드리는 전통이 자리를 잡기 바랍니다.

 

7) 성찬식- 성찬식을 진행할 때마다 저는 특별한 경험을 합니다. 성찬상 위에 놓은 빵과 포도주가 빛처럼 다가옵니다. 빵과 포도주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자리에까지 왔는지를 생각하면 현묘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빵의 소재는 밀가루입니다. 밀가루가 발효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박테리아가 활동합니다. 밀가루는 호주나 캐나다 같은 지역에서 자란 밀에서 나온 겁니다. 그 밀이 자라는 과정 역시 신비롭습니다. 빵을 손에 들고 신자들에게 떼어 주면서 전하는 주님의 몸입니다!”라는 말에는 우주의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신자 중에서 이를 느끼는 사람도 있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성찬식이 진행될 수 있도록 매번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장*아 집사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8) 예배 참석인원: 88, 헌금: 2,630,000(통장 350,000원 포함)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예수 어록(260) 요 12:26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 2020-02-20
  • 조회 수 864

예수 어록(260) 요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위 구절을 예수의 직접적인 발언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2천 년 전 텍스트를 우리가 무슨 수로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요한복음은 예수 공생애를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기술한 공관복음과 달리 그리스 철학의 관점에서 변증했다는 점에서 예수 어록의 역사적 문제를 판단하기 어렵다. 저 구절은 해석에 따...

예수 어록(259) 요 12: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 2020-02-19
  • 조회 수 1342

예수 어록(259) 요 12: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위 구절의 ‘생명’이라는 단어에 달린 각주에는 ‘영혼’이 나온다. 생명을 영혼으로 읽어도 된다는 뜻이다. 원래 생명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조에’다. 요 14:6절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할 때의 그 생명이 조에다. 위 구절에 나오는 단어는 self, inner life를 뜻하는 ‘프시케’다. 프시케는 보통 영혼으로 번역되는 게 맞다. 헬라어를 충실하게 따르면 프시케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

예수 어록(258) 요 12:24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2]

  • 2020-02-18
  • 조회 수 951

예수 어록(258)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 ”이라는 위 경구는 요한복음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요 14:6)와 같은 구절도 유명하기는 하지만 교회 밖에도 잘 알려진 경구는 위 구절이다. 내 기억에 톨스토이의 소설 중에서 이 구절을 간지에 들어가는 성구로 삼은 소설도 있다. 한 알의 밀이 많은 열매를 거둔다는 말은 아주...

주간일지 2월16일

  • 2020-02-17
  • 조회 수 915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2월16일, 주현 후 6주 1) 백수- 오늘 설교 중에 총선 후보자와 백수를 비교했습니다. 총선 후보자는 표를 얻는 일에 몰두하느라 자신의 걷는 행위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는 표만 얻을 수 있다면 지구 끝이라도 허둥지둥 달려갈 겁니다. 백수는 영적으로 준비만 되어 있다면 걷는 행위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지구의 중력과 늦겨울 바람을 황홀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다른 것에 분산되지 않고 숨 쉬고 보고 듣는 일에 집중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의 ...

예수 어록(257) 요 12:23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 2020-02-15
  • 조회 수 1148

예수 어록(257) 요 12:23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요 12:12-19절에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이야기가 나온다. 유월절 성지순례로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이 예수를 맞이하려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환호했다고 한다. 세 공관복음도 다 다루는 이야기다. 요한복음의 예수 이야기가 공관복음과 크게 차이가 나지만 예루살렘 입성에서 시작하는 수난 전승 대목에서는 상대적으로 결을 같이 하는 편이다. 예루살렘 입성 이후로 예수의 운명은 ...

예수 어록(256) 요 12: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 2020-02-14
  • 조회 수 1231

예수 어록(256) 요 12: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가난한 자’는 유대교 전통에서 볼 때도 도움을 받아야 할 중요한 대상이었다. 가난한 사람이야말로 의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보편적이었다. 이런 전통과 맥을 같이 하여 예수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눅 6:20, 마 5:3)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는 자신을 찾아온 부자 청년에게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마 19:21)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다. 공관복음이 다 다루고 있는 이야기다. 초기 기독교 역시 고아...

예수 어록(255) 요 12:7 그를 가만두어 나의 장례 할 날을 위하여

  • 2020-02-13
  • 조회 수 1019

12장 예수 어록(255) 요 12:7 그를 가만두어 나의 장례 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나사로를 살린 예수 언행은 44절로 끝났다. 매우 길다. 45절부터 57절까지 후속 담론이 계속된다. 유대교 지도층은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해서 예수에 얽힌 이 사안을 다뤘다. 48절에 그들의 생각이 나온다. “만일 그를 그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그 내용은 두 가지다. 어떤 조처를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예수에게 몰려들 것이라는 사실이 하나이고, 이로 인...

예수 어록(254) 요 11:44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 2020-02-12
  • 조회 수 1102

예수 어록(254) 요 11:44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죽었던 나사로가 동굴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손과 발이 베로 묶였고 얼굴은 수건으로 싸인 모습이다. 괴기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요즘도 간혹 장례가 진행되는 중에 고인이 살아났다는 소식이 토픽으로 나올 때가 있다. 나사로 이야기는 이런 거와 다르다.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일이 드러났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나사로 이야기가 요한복음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요한복음은 이 장면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강시 모습으로 비쳤을 나사로를 보고 사람들이 보...

예수 어록(253) 요 11:43 나사로야 나오라

  • 2020-02-11
  • 조회 수 923

예수 어록(253) 요 11:43 나사로야 나오라 예수는 큰소리로 외쳤다. “나사로야 나오라.” 초상집에 있던 사람 중에 아무로 예상하지 못한 퍼포먼스를 예수가 펼친 셈이다. 나는 앞 구절을 설명하면서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 자체가 여기서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했다. 이런 일이 실제로 그 집에서 일어났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요한복음 외의 공관복음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라고 한다면 당시 기독교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역시 분명해 보인다. 요한복음 기자는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었던 예수에게 당연히...

주간일지 2월9일 file

  • 2020-02-10
  • 조회 수 1327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2월9일, 주현 후 5주 1) 사람- “십자가에 못 박힌 이”라는 제목으로 오늘(2월9일) 저는 설교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 처형으로 몰아간 유대교 권력자들의 생각과 예수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면서 짚은 단어가 ‘사람’입니다. 유대교 권력자들에게는 종교 이데올로기와 체제가 중요했지만, 예수에게는 사람이 중요했습니다. 안식을 위해서 사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안식일이 존재한다거나 하나님의 사랑이 율법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고 말씀하신 데서 이를 알 수...

예수 어록(252) 요 11:42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 2020-02-08
  • 조회 수 1136

예수 어록(252) 요 11: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나사로 이야기의 핵심은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게 아니라 예수와 하나님의 특별한 관계를 주변 사람들이 믿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이 예수에게 나타났다는 사실이 바로 그 관계를 가리킨다. 예수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일은 인간 구원이다. 그 인간 구원은 하나님의 현존을 통해서 우리에게 경험된다. 하나님은 세상을 무로부터 창...

예수 어록(251) 요 11:41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 2020-02-07
  • 조회 수 1069

예수 어록(251) 요 11:41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사람들이 무덤 입구의 돌을 옮기자 예수는 기도를 드렸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정확히 말하면 간구하는 기도는 아니고 감사의 기도다. 또는 기도라기보다는 감사 찬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찬양이 가장 높은 수준의 기도가 아니겠는가. 이런 찬양에는 간구가 이미 성취되거나 선취(先取)되었다는 사실이 암시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이미 아신다고 말씀했다(마 6:8). 그 말은 우...

예수 어록(250) 요 11:40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 2020-02-06
  • 조회 수 1241

예수 어록(250) 요 11:40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다시 마르다가 등장해서 돌을 옮겨 놓으라는 예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이렇게 말한다.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요 11:39). 죽음은 박테리아를 통해서 인간 몸을 매우 빠르게 본래 자연 상태로 돌린다. 우리 몸이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건 마땅하다. 죽음이 임박하지 않았을 때 미리 흙으로 돌아가는 준비를 하는 사람은 지혜롭다. 그리스 사람들은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본질을 물, ...

예수 어록(249) 요 11:39 돌을 옮겨 놓으라

  • 2020-02-05
  • 조회 수 1184

예수 어록(249) 요 11:39 돌을 옮겨 놓으라 예수는 나사로 시신이 안장된 무덤 앞에 섰다. 무덤 입구는 돌로 막혀 있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라고 말씀하신다. 돌은 죽음과 생명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죽은 자는 이 장애물로 인해서 생명의 세계로 나올 수 없다. 거기에 모였던 많은 사람은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을 옮겨 놓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옮겨 놓을 수도 없었고, 옮겨 놓을 필요도 없었다. 그들에게 죽은 자는 그렇게 영원히 동굴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예수는 이 장애물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는...

예수 어록(248) 요 11:34 그를 어디 두었느냐 [1]

  • 2020-02-04
  • 조회 수 1201

예수 어록(248) 요 11:34 그를 어디 두었느냐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라는 예수의 말을 들은 마르다는 요 11:27절에서 놀라운 고백을 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이 고백은 마 16:16절이 전하는 베드로의 고백과 사실상 똑같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요한복음 기자에게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세 남매의 비중이 베드로 못지않게 크다는 의미이다. 마르다는 동생 마리아를 부른다. 예수는 여전히 동구밖에 머물러 계셨다. 마...

주간일지 2월2일 file

  • 2020-02-03
  • 조회 수 972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2월2일, 주현 후 4주 1) 가난 영성- 오늘 설교의 성경 본문은 마 5장의 팔복입니다. 첫째 항목은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누가복음은 직접 ‘가난한 자’라고 하는 데 반해서 마태복음은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표현만 다르지 실제 내용은 다를 게 없습니다. 실제로 가난한 자들은 심령이, 즉 영혼이 가난한 자들입니다. 물질로 영혼의 위로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가 극에 달한 오늘날 가난 영성이라는 말이 성립할까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을 가난...

예수 어록(247) 요 11:26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 2020-02-01
  • 조회 수 1152

예수 어록(247) 요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영원히 죽지 않는다.”라는 말을 실제로 죽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문장도 결국은 해석에 달려 있다. 이 문장만이 아니라 성경의 모든 문장은 해석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성경만이 아니라 모든 텍스트는 해석이 필요하다. 텍스트만이 아니라 그림과 사진과 악보와 기보, 그리고 작은 사물까지 해석을 통해서 그 존재가 드러난다. 여기 마당에 나뒹구는 참나무 낙엽을 보자. 지난여름에 녹색이었던...

예수 어록(246) 요 11:25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2020-01-31
  • 조회 수 1763

예수 어록(246) 요 11: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마르다는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라는 예수의 말을 듣고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요 11:24)라고 반응한다. 유대인들에게 부활 신앙은 일반적인 게 아니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부정했고, 바리새인들은 인정했다. 행 23:6절에 따르면 산헤드린 공회에서 심문을 받던 바울은 자신이 바리새인과 똑같이 죽은 자의 부활을 희망한다고 말한다. 공회 구성들 사이에 논란이 벌어졌다.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

예수 어록(245) 요 11:23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 2020-01-30
  • 조회 수 919

예수 어록(245) 요 11:23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예수는 나사로 세 남매가 사는 베다니 집에 도착했다. 나사로는 이미 죽어서 무덤에 안장된 지 나흘이나 되었다고 한다. 무덤에 안장된 지 나흘이라면 죽은 지는 더 오래되었을 것이다. 장례식이 이미 끝났는지 아닌지는 본문만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조문객이 많았다는 19절의 설명이 정확하다면 아직 장례가 진행되거나 끝났다고 하더라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탓에 초상집 특유의 슬픔이 밤안개처럼 집을 가득 채웠을 것이다. 요즘은 가정집에서 장례를 치르는 이들이 ...

예수 어록(244) 요 11:15 믿게 하려 함이라

  • 2020-01-29
  • 조회 수 1213

예수 어록(244) 요 11: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복음서는 예수의 일대기를 사실에 근거해서 기록한 문헌이라기보다는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바로 “믿게 하려고” 기록한 문헌이다. 예수는 생명을 주는 존재라는 사실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나사로가 죽은 지 이미 나흘이나 되었다. 나흘 동안 예수가 그 현장에 없었다는 사실은 여기서 중요하다.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예수의 능력이 확증되기 때문이다. 나사로 이야기에서 핵심은 나사로가 ...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