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6월28일

조회 수 1411 추천 수 0 2020.06.29 20:07:50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628, 성령강림 후 넷째 주일

 

1) 냉수 한 그릇- 오늘(628) 설교 제목은 약간 낭만적으로 들립니다. “냉수 한 그릇의 궁극적 의미라는 제목만으로 설교를 예측하는 교우들도 있었을 겁니다. 제자들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사람은 결단코상을 잃지 않는다는 문장이 이번 설교의 핵심입니다. 제가 보기에 상에 초점이 있는 게 아니라, 또는 상 받을 자에게 초점이 있는 게 아니라 제자들의 사역에 초점이 있습니다. 그들의 사역에 간접적으로 동참하는 사람들까지 하나님의 보상이 주어질 정도로 제자들의 사역이 소중하다는 뜻입니다. 이 포인트를 설교에서 더 집중적으로 다루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냉수, 작은 자, 참새라는 단어를 한데 엮어서 설명한 시도는 괜찮아 보입니다. 설교 마지막 단락에서 말하다 보니 냉수와 예수가 연결되었습니다. 이것도 깊이 있는 발상은 아니나 참신하긴 합니다. 어쨌든지 사람들이 소소하다고 여기는 것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삶의 태도가 기독교 영성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게 말로만 끝나지 않고 우리 삶의 영적 동력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는 일이겠지요.

 

2) 강단 조명- 대구 샘터교회 예배실은 지하입니다. 원래는 유치원 강당으로 사용하던 공간입니다. 천정이 낮고 강단이 상대적으로 넓습니다. 유치원 어린이들의 재롱잔치 무대로 사용하려고 넓게 만들었겠지요.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라이브 방송을 본격화하면서 강단 앞에 놓였던 설교단을 뒤로 물렸습니다. 회중석과 거리를 두는 조치였습니다. 요즘 예배 장면을 유튜브로 자세하게 보니 강단이 전체적으로 어두웠습니다. 어느 부분은 그림자도 보였습니다. 조명 밝기를 높이는 게 좋겠습니다. 예배 후에 시설을 담당하는 두 분 집사가 검토하시던데, 문제가 잘 해결되겠지요.

 

3) 방송실- 예배 후에 유튜브 방송 관련하여 몇몇 교우들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운영위원장, 촬영담당 이 집사, *혁 집사, 정용섭 목사, 그리고 등록 교우가 아니면서 가끔 예배에 참석하면서 우리 교회 음향 관계 업무에 도움을 주는 아무개 교회 박*수 안수 집사입니다. 방송실과 장비와 설치 등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였습니다. 결론으로 두 가지를 말씀드리면 되겠습니다. 첫째, 천정에 한 대의 카메라를 설치하고 노트북을 사용해서 방송하는 방식을 기준으로 이 작업을 진행합니다. 둘째, 7월 둘째 주일에 전문가의 조언과 견적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이 전문가는 대구 교동 시장에서 이런 업무에 종사하는 분으로서 마 집사의 지인이라고 합니다. 방송 시설이라는 게 좋게 하려면 돈이 한없이 많이 들어가니까 일정한 한도 안에서 준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는 2백만 원 정도 수준입니다. 방송실은 본격으로 갖추지 않고 노트북을 올려놓을 수 있는 공간만 확보하면 되겠습니다.

 

4) 7월 담당 운영위원-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운영위원들이 매월 돌아가면서 식사 친교 모임을 이끌어갔습니다. 식사 친교 모임이 없어져서 이제는 예배가 잘 진행되도록 관리하는 역할로 바뀌었습니다. 예배가 시작하기 전에 자리를 정리하고 끝난 뒤에 청소하는 당번은 따로 있습니다. 해당 운영위원은 전체를 총괄하면 됩니다. 예배 전에 방역수칙이 제대로 지켜지도록 하고, 예배가 시작하면 예배실 입구에 앉았다가 자리를 찾지 못하는 교우들을 적당한 자리로 안내합니다. 매주 바뀌는 안내위원은 예배 시작 전까지만 주보를 나눠주면서 인사를 하고 예배 자리에 앉으면 됩니다. 7월 양*, 8월 이*, 9월 박*, 10월 신*, 11월 홍*, 12월 김*.

 

5) 교회 확진자-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상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서 지금도 그 추세가 여전합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 우리나라는 상황이 좋습니다. K방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초기에 대구 경북 지역은 신천지 집단을 통해서 두려울 정도로 폭발적인 현상을 보였습니다만 지금은 비교적 조용합니다.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 인천, 경기도에서 꾸준하게 확진자가 나오는군요. 그중에 교회에서의 감염이 그치지 않습니다. 성당과 절은 상대적으로 조용합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대충은 알지만, 그 속사정은 우리가 다 알지 못합니다. 모든 교회가 철저하게 방역수칙을 지켰으면 합니다. 마스크와 손 씻기만 잘해도 대부분의 바이러스를 막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교회의 공식적인 모임이 끝난 뒤에 교우들끼리의 작은 모임이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모임까지 다 막을 수는 없는 거 아닐까요? 저도 지난 몇 주간에 걸쳐서 예배 후에 몇몇 교우들과 인근 칼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고 1층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대구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이것마저 멈춰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태 추이를 잘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대구 샘터교회도 철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만 보이기에 감염자가 교회당에 들어올 가능성이 아예 차단됩니다. 발열 체크와 소독제 사용하기, 예배 때 거리 두고 앉기도 잘합니다. , 거리 두기는 그렇게 철저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평소보다 참석 숫자가 많은 주일에는 충분한 거리가 확보되기 어렵네요. 친교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합니다. 정 목사는 옛날부터 그랬지만 지금도 계속해서 원당리 촌에서 거의 격리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니 저에게서 감염될 염려는 놓으셔도 됩니다. 참고로 북안면에는 지금까지 단 한 명의 확진자도 나오지 않는 청정 지역입니다. 코로나19 이전의 교회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순간이 오긴 올까요?

 

6) - 지난 613일에 결혼한 황*언 정*늘 신혼부부가 오늘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교회 밴드에 결혼사진 몇 장과 인사말을 올렸더군요. 주례자인 저의 모습도 거기에 보입니다. 신랑 신부의 표정이 얼마나 밝고 편안한지 다시 사진을 보니 당시 느낌이 살아나는 듯합니다. 떡 두 상자를 들고 왔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언제 이런 걸 준비했을까요. 호박과 콩이 들어간 백설기입니다. 모든 교우가 한 개씩 들고 돌아갔습니다. “웬 떡이야!” 하고 말이죠. 두 가지 종류의 떡이더군요. 다음 날 아침에 먹어보니 그야말로 꿀떡이었습니다. 이렇게 글로 쓰는 순간에도 군침이 도는군요. , 정 신혼부부가 주님 안에서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랍니다. , 오늘따라 청년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들이 따로 점심밥 먹으러 간다던데, 신랑 신부도 함께 갔는지 모르겠군요. 이제 달성군 현풍(유가)에 우리 교우가 세 가정이 되었네요.

 

7) 복음과 상황- 괜찮은 기독교 월간지 중에 <복음과 상황>이 있습니다. 대구 샘터교회가 정기후원하는 잡지입니다. 그 잡지가 왜 괜찮은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요. 알만한 분들은 다 알고 계실 테니까요. 일반 신자들이 개인적으로 정기구독해도 좋은 잡지입니다. ‘차례앞쪽에 교회를 찾고 계신가요?”라는 제목으로 후원교회 명단이 나옵니다. 저는 처음 보았습니다. 후원교회가 서울과 경기도에 제일 많고, 나머지 지역에는 드뭅니다. 예상외로 인천처럼 큰 광역시에도 한 교회뿐이네요. 대구에는 대구 샘터교회 하나입니다. 교회 명단 외에 개인 정기구독자는 어느 정도 있을 겁니다. 사진으로 찍어서 올립니다. 재미 삼아 보십시오.

     IMG_3020.JPG

 

8) 헌금: 64주차(628) 2,560,000(오프라인 510,000원 온라인 2,050,000, 등록 교인 외- *, *, *)/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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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3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1> 한국에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같은 이름의 교단만 있는 게 아니라 아예 ‘복음’을 간판으로 내건 교단도 있습니다. ‘복음교회’가 그 교단입니다. 복음교회는 그렇게 보수적이지만도 않고 그렇다고 진보적이지만도 않은, 비교적 건전한 교단입니다. 복음을 간판으로 내걸지는 않았지만 복음교회보다 훨씬 더 복음이라는 단어와 밀착된 교단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회’가 그 교단입니다. 이 하나님의 성회도 나뉘어졌기 때문에 지금 제가 정...

복음 (1), 3월23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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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2), 3월24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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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4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2> 마가복음 기자가 전하는 복음(福音,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의 역사를 배경으로 기록된 구약성서에서 볼 때 가장 큰 기쁜 소식은 출애굽과 바벨론포로 귀환입니다. 먹고살기 힘들어 이집트 땅으로 이민 갔던 이스라엘 민족이 그곳에서 소수민족으로 당해야만 했을 고난, 그리고 전쟁에서 패배하여 인질로 잡혀갔던 바벨론 제국에서 당해야만 했을 모욕이 그들에게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이었는지는 긴...

복음 (2), 3월24일 [2]

  • 200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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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3) 3월25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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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5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3> 저는 앞서 출애굽과 포로귀환을 ‘기쁜 소식’으로 이해하는 구약의 해석이 신약에서는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혹시 이 말에 오해가 있을까 해서 변명해야겠습니다. 우리의 억압된 삶의 구조가, 그런 것들은 대개 경제와 정치에 연관된 것인데, 해방의 구조로 바꾸는 일들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사는 분들이 한국 사람들과 아무런 차별이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사회구조를 바꿔나가는 일은 ...

복음 (3) 3월25일 [1]

  •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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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이사야, 3월26일 [1]

  •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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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6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 요즘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 각주를 달듯이 마가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가의 속을 내가 뚫어볼 수는 없지만, 아마 자신의 글을 읽어야 할 독자들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선지자들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집단은 없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은 왕이며, 종교적인...

선지자 이사야, 3월26일 [1]

  •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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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이사야의 글, 3월27일 [12] [1]

  • 200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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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7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의 글 마가는 지금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인용하고 있는 글은 분명히 이사야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마가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사야의 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곤란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성서 기자들의 글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 문제입...

선지자 이사야의 글, 3월27일 [10]

  • 200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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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사자(使者), 3월28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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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8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주님의 사자(使者) 만약 마가복음이 학위 논문이었다고 한다면 불합격 처리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면서 엉뚱하게 말라기서의 글을 인용했으니까 말입니다. 마가가 선지자 이사아의 글이라고 인용한 본문 2절은 말라기서 3장1절 말씀입니다. 이사야의 글은 3절에 나옵니다. 마가가 착각을 일으켰는지, 아니면 알고 있었지만 굳이 구분해서 두 사람의 원작자를 거론하는 게 번거롭다고 생각했...

주님의 사자(使者), 3월28일 [3]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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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1), 3월29일 [1]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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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9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막 1:3) 광야 (1) 마가가 3절에서 인용한 글은 이사야서 40:3절 말씀입니다. 물론 이사야의 글을 문자적으로 인용한 게 아니라 약간 손질을 했습니다. 이사야서를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마가복음은 이사야의 글을 한 절만 인용했지만 누가복음은 이 뒤로 이어지는 이사야...

광야 (1), 3월29일 [1]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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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9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막 1:3) 광야 (1) 마가가 3절에서 인용한 글은 이사야서 40:3절 말씀입니다. 물론 이사야의 글을 문자적으로 인용한 게 아니라 약간 손질을 했습니다. 이사야서를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마가복음은 이사야의 글을 한 절만 인용했지만 누가복음은 이 뒤로 이어지는 이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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