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7월5일

조회 수 1445 추천 수 0 2020.07.06 21:38:16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75, 성령강림 후 다섯째 주일

 

1) 안식-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라는 말씀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 말씀 중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잘 알려진 것입니다. 세상의 힘든 일을 힘들지 않게 해주겠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예수 잘 믿어도 세상의 짐은 그대로 남습니다. 미국 흑인 노예들은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노예 신세를 면할 수 없었습니다. 폴 틸리히는 이 말씀이 율법이라는 짐에서의 해방이라고 설교했습니다. 그 율법이 단순히 종교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니 쉬게 하리라는 예수 말씀은 인간의 총체적 삶에 관한 것이겠지요. 이 말씀의 중심에 쉼이, 즉 안식이 놓여 있습니다. 예수에게 가면 실제로 우리가 총체적 삶에서 안식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예수를 믿을 필요는 없겠지요. 설교자인 저부터 이 말씀에 저 자신의 삶을 더 세밀하게 비춰봐야겠습니다.

 

2) 재정보고- 6월 재정보고가 주보에 실렸습니다. 6월 수입은 (, 오프 포함)헌금 외 이자 포함하여 7,686,914이고, 지출은 6,641,158원입니다. 월 잔액은 1,045,756원입니다. 다음 달로 넘어갈 전체 잔액은 11,544,425원입니다. 재정 상태가 양호한 편입니다. 일 년 전체 예산이 1억 원도 되지 않으니 교회 치고 가난한 살림살이라고 할 수 있으나 마이너스로 돌아서지 않으니 넉넉한 살림살이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교회 재정에 어려움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하는 교우들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성실하게 헌금에 참여하시고, 교회 교우로 등록하지 않는 분들도 헌금하고, 지출이 약간 줄어든 결과로 보입니다. 재정에 여유가 있어서 유튜브 방송을 위한 전용 카메라와 노트북과 모니터 스피커를 구입하고, 일부는 어려운 이들을 위한 재정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헌금에 참여한 모든 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수 입

지 출

헌금

1

2,405,000

예배부

50,000

주보인쇄 렌탈비

2

908,000

교육문화부

0

 

3

1,810,000

봉사 경조부

211,200

경조 2인 외

4

2,560,000

나눔선교부

1,650,000

정기후원(15, 단체 및 개인)

5

0

어린이청소년부

0

 

7,683,000

사무관리부

1,523,958

예배처소 임차료,

카니발 주유비 외

기타

예금이자

3,914

재정부

3,206,000

목사 사례비(22십만), 퇴직적립, 일반적립 외

합 계

7,686,914

합계

6,641,158

6월 잔액 (1,045,756)

전기이월

10,498,669

차기이월

11,544,425

총계

18,185,583

총계

18,185,583

 

3) 니케아 신조- 오늘 예배에 오랜만에 니케아 신조로 신앙고백을 드렸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성찬식을 거행하지 못하게 된 3월부터 6월까지는 쉬었다가 성찬식이 가능한 때를 더는 기다릴 수 없어서 7월부터 다시 니케아 신조로 신앙고백을 드리게 된 것입니다. 니케아 신조는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낯섭니다. 이런 신조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기독교인도 많습니다. 사도신경을 유일한 신앙고백문으로 여기는 겁니다. 사도신경은 로마 교회의 세례 문답을 위한 신조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의 문장은 주어가 라는 1인칭 단수로 되었으나 니케아 신조는 세계 전체 교회의 신조라서 주어가 우리라는 1인칭 복수로 되어있습니다. 엄격하게 따지면 사도신경보다는 니케아 신조의 권위가 더 큽니다. 참고로, 한국 기독교인들은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도 눈을 감는 경향이 있습니다.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공연한 일입니다. 사도신경은 기도가 아니거든요. 예배 시에 성시교독이나 성경을 읽을 때 반드시 눈을 감는 게 아닌 것처럼 사도신경을 읽을 때도 눈을 감을 필요가 없습니다. 만에 하나 제가 생각을 잘못한 것일지도 모르니, 그냥 참고만 하세요. 니케아 신조는 함께 읽기에 좀 기네요. 내용을 깊이 생각하는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4) 어린이- 요즘 우리 교회에서는 어린이 모임을 전혀 하지 못합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완전히 진정되어야 다시 시작할 수 있겠지요. 부장 신*국 집사도 은근히 걱정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선물로 줄 수 있는 책을 한 권 소개하겠습니다. 성서유니온 선교회에서 만든 어린이를 위한 신앙 낱말사전이라는 책입니다. 중고등 학생들에게도 필요하고, 어쩌면 아이들이 있는 부모들에게 필요한 책인지 모르겠습니다. 교회에서 자주 사용하는 신앙용어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어울리도록 해설한 책입니다. 한 번 살펴보시고 단체로 구매하는 것도 좋을 방법인 것 같습니다. 제가 책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성서유니온이라는 출판사가 믿을만해서 제가 추천하는 겁니다. 다음은 알라딘 제공 책 소개 문건입니다. “교회 안에서 흔히 사용하는 신앙낱말을 어린이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머릿속에 맴도는 낱말의 뜻을 어린이가 알아듣게 알려 주려면, 친절한 목소리와 더불어 친절한 내용이 필요하다. 어린이 매일성경4년간 연재한 기사를 차곡차곡 모아 엮은 어린이를 위한 신앙낱말사전은 교회에서 한번쯤 들어 본 스물네 개의 신앙낱말을 손에 잡히는 언어로 풀이한 책이다. 신앙낱말마다 6-7개로 다양하게 설명했기에 자칫 어린이가 어려워할 수 있는 신앙개념을 쉽게 이해하도록 도왔고,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은 마음이 따뜻해지기까지 한다.”

 

5) 34- 이번 주일에 예배에 참석한 교인 숫자는 34명입니다. 코로나19 거리두기 상황에서 우리 교회당 크기에는 30-40명이 적당합니다. 오늘도 친교실을 사용했습니다. 교우들의 예배에 참석하는 경향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매 주일에 현장예배에 참석하는 일부 교우, 격주로 참석하는 대다수 교우, 1회 참석하는 드문 교우, 두 달에 한 번 참석하는 더 드문 교우, 코로나19 이후 한 번도 참석하지 않는 특별한 상황에 놓인 교우. 현장예배에 오지 않는 분들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예배에 참석합니다. 어제 어떤 교우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집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다 보니 자신에게 딱 어울리더라는 겁니다. 현장에서보다 온라인이 더 집중할 수 있고, 교회에 가기 위해서 차려입는 수고도 덜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또 다른 교우는 현장예배에서 느낀 감동을 온라인으로는 대체 불가능하고 말하더군요. 앞으로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코로나19 재난 사태를 외면할 수 없는 담임 목사로서 교인들에게 현장예배의 중요성을 무조건 강조하기가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현장예배를 소홀하게 대해도 좋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여기에 얽힌 상황을 더 지켜봐야겠으니, 일단은 교우 여러분의 형편에 따라서 현장, 또는 온라인 예배에 참석하십시오.

 

6) 운영위원회의- 예배 후에 오랜만에 운영위원회의가 열렸습니다. 오늘따라 운영위원들이 많이 참석해서 위원장이 번개로 소집한 것 같습니다. 잘했습니다. 간단하게 끝났습니다. 내용은 사무관리부장이 교회 홈페이지에 정리해서 올릴 겁니다. 교인 간담회를 7월 마지막 주일인 26일 예배 후에 현장에서 열기로 했습니다. 물론 일부 교인들만 참석하는 간략한 회의가 되겠지요. 회의 주요 내용은 현장 모임과 교회 밴드에 병행해서 전달될 것입니다. 긴급재난 지원에 관한 문제가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7) 후주- 예배 마지막 부분은 아래와 같이 진행되는 게 좋습니다. 목사의 축도가 끝나고, 반주자가 간단한 후주를 한 다음, 사회자가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7월 둘째 주일에 현장이나 온라인으로 다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등등 자유롭게. 오늘 온라인 영상을 보니 이것으로 예배가 갑자기 끝납니다. 사회자의 맺음말 후에 반주자의 후주가 2,3분 이어지는 게 좋습니다. 그 사이에 교인들은 인사를 나누면서 집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8) 이모저모- 설교단에 예쁜 꽃이 놓인 걸 보셨겠지요. *선 집사가 친정어머니 생신에 갔다가 얻어온 꽃이라고 합니다. 강단 분위기가 달라 보이는군요. 지난 613일에 결혼한 신혼부부가 오늘도 나와서 예배에 참석했기에 예배 후에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소소하게라도 다투지 않고 알콩달콩 잘 지낸다고 합니다. 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친교실 스피커 상태가 괜찮다고 합니다. 예배실 현관문을 활짝 열어둬서 친교실 스피커만이 아니라 예배당 안의 스피커 소리도 비교적 잘 들리는 것 같습니다. 오늘 예배에서 국악 찬송가와 헌금 찬송가 부르기가 시원치 않았습니다. 광고 시간에 404장을 다시 연습했습니다. *진 장로 부부는 친족 결혼식 참석차 토요일에 강원도 횡성을 다녀왔고, *흥 집사 부부도 서울 다녀왔다는군요. 교회 청소 등, 모든 일을 정리한 뒤에 11명이 칼국수 집에서 점심을 더치페이 방식으로 먹었습니다. 교회 소모임을 자제하라는 말을 들었는데, 일반 식당 사용까지 봉쇄할 수는 없는 거 아닐까요? 식당을 운영하는 분들은 손님을 받아야 하고, 식당에서는 마스크를 쓸 수 없으니, 참 애매합니다. 제가 지금 방심하는지 모르겠군요. 대구와 경북의 지역 확진자가 드물게 나온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입니다. 이어진 담소에서 많은 걸 저는 느끼고 배웠습니다. 설거지와 청소와 빨래, 선풍기 먼지 털기 등등에 관한 겁니다. 저는 주로 짤순이의 효능에 관해서 떠벌였습니다. 대개 남자 교우들은 집에서 저처럼 이런 일을 다 하더군요. 집안일에 손도 안 대는 교우는 딱 한 분이었습니다.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물 전문가 교우에게서 사람도 식물과 마찬가지로 물이 마르면 시들해지고 물을 충분히 받으면 싱싱해진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뭔가 크게 깨달아지는 게 있었습니다.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1층 카페에서 이, 박 권사가 사이좋게 앉아서 피자와 마실 거리를 시켜놓고 오순도순 대화의 꽃을 피우더군요.

 

9) 헌금: 71주차(75) 1,965,000(오프라인 595,000원 온라인 1,370,000, 등록 교인 외- *, *)/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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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이사야, 3월26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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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6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 요즘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 각주를 달듯이 마가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가의 속을 내가 뚫어볼 수는 없지만, 아마 자신의 글을 읽어야 할 독자들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선지자들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집단은 없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은 왕이며, 종교적인...

선지자 이사야, 3월26일 [1]

  •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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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6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 요즘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 각주를 달듯이 마가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가의 속을 내가 뚫어볼 수는 없지만, 아마 자신의 글을 읽어야 할 독자들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선지자들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집단은 없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은 왕이며, 종교적인...

선지자 이사야의 글, 3월27일 [12] [1]

  • 200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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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이사야의 글, 3월27일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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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사자(使者), 3월28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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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8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주님의 사자(使者) 만약 마가복음이 학위 논문이었다고 한다면 불합격 처리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면서 엉뚱하게 말라기서의 글을 인용했으니까 말입니다. 마가가 선지자 이사아의 글이라고 인용한 본문 2절은 말라기서 3장1절 말씀입니다. 이사야의 글은 3절에 나옵니다. 마가가 착각을 일으켰는지, 아니면 알고 있었지만 굳이 구분해서 두 사람의 원작자를 거론하는 게 번거롭다고 생각했...

주님의 사자(使者), 3월28일 [3]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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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8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주님의 사자(使者) 만약 마가복음이 학위 논문이었다고 한다면 불합격 처리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면서 엉뚱하게 말라기서의 글을 인용했으니까 말입니다. 마가가 선지자 이사아의 글이라고 인용한 본문 2절은 말라기서 3장1절 말씀입니다. 이사야의 글은 3절에 나옵니다. 마가가 착각을 일으켰는지, 아니면 알고 있었지만 굳이 구분해서 두 사람의 원작자를 거론하는 게 번거롭다고 생각했...

광야 (1), 3월29일 [1]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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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9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막 1:3) 광야 (1) 마가가 3절에서 인용한 글은 이사야서 40:3절 말씀입니다. 물론 이사야의 글을 문자적으로 인용한 게 아니라 약간 손질을 했습니다. 이사야서를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마가복음은 이사야의 글을 한 절만 인용했지만 누가복음은 이 뒤로 이어지는 이사야...

광야 (1), 3월29일 [1]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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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9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막 1:3) 광야 (1) 마가가 3절에서 인용한 글은 이사야서 40:3절 말씀입니다. 물론 이사야의 글을 문자적으로 인용한 게 아니라 약간 손질을 했습니다. 이사야서를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마가복음은 이사야의 글을 한 절만 인용했지만 누가복음은 이 뒤로 이어지는 이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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