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0:10

조회 수 251 추천 수 0 2024.03.08 20:12:13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51

20: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는 세력을 요한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라고 말합니다. 짐승은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최상층부 권력자인 로마 황제입니다. 로마 체제 전체를 가리키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분명히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교를 박해할 뿐만 아니라 신으로 자처합니다. 자신을 숭배하라고 강요합니다. 그들에게는 나름으로 신적인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긴 합니다. 요즘의 대통령에게도 막강한 권력이 보장되는데 로마 황제야 오죽하겠습니까.

짐승으로 호명되는 이들은 그렇다 치고, 여기 거짓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스스로는 거짓 선지자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겠지요. 그렇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주니까 옳은 말을 하는 줄 착각합니다. 참된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의 차이는 종이 한 장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은 비슷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거나 하나님이 자신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그리고 나름으로 진정성도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그들이 거짓 선지자인지 눈치채지 못합니다. 요한의 눈에는 그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그들을 짐승과 같은 반열에 놓고 비판하는 겁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된 설교자가 있고, 거짓 설교자가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저는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다음과 같은 말로 대신합니다. 거짓 선지자와 그가 내뱉은 말들은 결국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집니다.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라는 말씀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영원한 고통이라는 표현을 사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 부정되니까요. 하나님은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요한이 짐승이라고 표현한 이들이나 거짓 선지자들도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들의 잘못은 물론 그들의 책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아보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았으니까 영원한 고통을 받는 게 당연해 보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선하시고, 더구나 전능하시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들을 구원하실 수 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겠지요. 그들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권능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을 정도로 악에 물들었다면 결국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요?

이 문제는 신정론(神正論, theodicy)과도 연결됩니다. 신정론은 죄가 없는 사람들의 고통과 고난 앞에서 하나님의 옳으심이 어떻게 확보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입니다. 죄가 없는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죄의 탓이라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인간의 고통은 많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극심한 장애가 있다거나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인한 어린아이와 여자들의 죽음, 그리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교통사고 등등은 죄로 인한 것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정의롭고 전능하시다면 이런 억울한 고통이나 죽음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거죠. 욥의 친구들이 접근한 방식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욥은 자기도 모르는 죄를 지은 게 분명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욥의 믿음을 더 강하게 하시려고 시험하신다는 것입니다. 욥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왜 고난과 고통이 있나요? 하나님은 잘못한 사람을 끝까지 찾아내서 벌을 주고야 마는 분이신가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일부 사람들을 영원한 고통을 당하리라는 말로 판단해도 될까요?

우리는 이런 궁극적인 질문 앞에서 완전한 대답을 모릅니다. 성경과 그리스도교 역사에 기대서 그 대답에 가까이 가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그 길을 가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신다는 사실을 믿기에 우리는 깨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의 세계와 그리스도교 역사 안으로 순례자처럼 쉬지 않고 들어갑니다. 제가 보기에 요한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라고 말한 이유는 일정한 사람들의 고통을 마땅하게 여겼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승리를 확신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의 행위와 발언을 결국에는 영원한 무의미와 허무에 떨어지게 하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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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막 1:1), 3월20일 [15]

  • 200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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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0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하나님의 아들>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술로부터 복음서 쓰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우리를 여러 가지 면에서 곤란하게 만듭니다. 우선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다는 말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영으로 존재하는 성서의 하나님이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재현하는 헬라 신화의 여러 신들처럼 자식을 두었다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아들(막 1:1), 3월20일 [9]

  • 200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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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막 1:1), 3월21일 [5]

  • 200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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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1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어떤 사본에는 생략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루터는 1절 말씀을 이렇게 번역했군요.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사본에 따라서 성서의 내용이 아주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들쑥날쑥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현재 발견된 수천 개에 이르는 사본 중에서 동일한 게 전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오늘 우리가 자세하게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

예수 그리스도 (막 1:1), 3월21일 [4]

  • 200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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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막1:1), 3월22일 [2]

  • 200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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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2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신약성서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네 복음서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분적으로 예수님의 출생설화와 열두 살 때의 에피소드가 나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출가한 후 갈릴리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에 이르러 체포당하고 십자가 처형을 당한, 소위 공생애가 핵심입니다. 그 기간은 짧게 잡으면 1년여, 길게 잡으면 2년여가 됩니다. 다른 종교창시자나 성인들과 비교할 때 전체 삶도 짧았을 뿐만 아니라 활동...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막1:1), 3월22일 [2]

  • 200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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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1), 3월23일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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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1), 3월23일 [6]

  • 200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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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2), 3월24일 [4]

  • 200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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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4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2> 마가복음 기자가 전하는 복음(福音,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의 역사를 배경으로 기록된 구약성서에서 볼 때 가장 큰 기쁜 소식은 출애굽과 바벨론포로 귀환입니다. 먹고살기 힘들어 이집트 땅으로 이민 갔던 이스라엘 민족이 그곳에서 소수민족으로 당해야만 했을 고난, 그리고 전쟁에서 패배하여 인질로 잡혀갔던 바벨론 제국에서 당해야만 했을 모욕이 그들에게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이었는지는 긴...

복음 (2), 3월24일 [2]

  • 200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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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3) 3월25일 [1]

  •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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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5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3> 저는 앞서 출애굽과 포로귀환을 ‘기쁜 소식’으로 이해하는 구약의 해석이 신약에서는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혹시 이 말에 오해가 있을까 해서 변명해야겠습니다. 우리의 억압된 삶의 구조가, 그런 것들은 대개 경제와 정치에 연관된 것인데, 해방의 구조로 바꾸는 일들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사는 분들이 한국 사람들과 아무런 차별이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사회구조를 바꿔나가는 일은 ...

복음 (3) 3월25일 [1]

  •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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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이사야, 3월26일 [1]

  •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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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6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 요즘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 각주를 달듯이 마가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가의 속을 내가 뚫어볼 수는 없지만, 아마 자신의 글을 읽어야 할 독자들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선지자들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집단은 없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은 왕이며, 종교적인...

선지자 이사야, 3월26일 [1]

  •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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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이사야의 글, 3월27일 [12] [1]

  • 200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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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7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의 글 마가는 지금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인용하고 있는 글은 분명히 이사야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마가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사야의 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곤란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성서 기자들의 글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 문제입...

선지자 이사야의 글, 3월27일 [10]

  • 200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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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7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의 글 마가는 지금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인용하고 있는 글은 분명히 이사야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마가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사야의 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곤란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성서 기자들의 글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 문제입...

주님의 사자(使者), 3월28일 [4]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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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8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주님의 사자(使者) 만약 마가복음이 학위 논문이었다고 한다면 불합격 처리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면서 엉뚱하게 말라기서의 글을 인용했으니까 말입니다. 마가가 선지자 이사아의 글이라고 인용한 본문 2절은 말라기서 3장1절 말씀입니다. 이사야의 글은 3절에 나옵니다. 마가가 착각을 일으켰는지, 아니면 알고 있었지만 굳이 구분해서 두 사람의 원작자를 거론하는 게 번거롭다고 생각했...

주님의 사자(使者), 3월28일 [3]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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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8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주님의 사자(使者) 만약 마가복음이 학위 논문이었다고 한다면 불합격 처리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면서 엉뚱하게 말라기서의 글을 인용했으니까 말입니다. 마가가 선지자 이사아의 글이라고 인용한 본문 2절은 말라기서 3장1절 말씀입니다. 이사야의 글은 3절에 나옵니다. 마가가 착각을 일으켰는지, 아니면 알고 있었지만 굳이 구분해서 두 사람의 원작자를 거론하는 게 번거롭다고 생각했...

광야 (1), 3월29일 [1]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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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9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막 1:3) 광야 (1) 마가가 3절에서 인용한 글은 이사야서 40:3절 말씀입니다. 물론 이사야의 글을 문자적으로 인용한 게 아니라 약간 손질을 했습니다. 이사야서를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마가복음은 이사야의 글을 한 절만 인용했지만 누가복음은 이 뒤로 이어지는 이사야...

광야 (1), 3월29일 [1]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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