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막 1:1), 3월20일

조회 수 14581 추천 수 102 2006.03.20 23:20:18
2006년 3월20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하나님의 아들>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술로부터 복음서 쓰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우리를 여러 가지 면에서 곤란하게 만듭니다. 우선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다는 말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영으로 존재하는 성서의 하나님이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재현하는 헬라 신화의 여러 신들처럼 자식을 두었다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이 말을 예수님의 초월적 능력의 근거로 받아들이는 경향도 있습니다.
우리는 성서를 읽을 때 그 진술들이 곧 ‘해석’이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해석했다는 뜻입니다. 신약성서 공동체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여러 방식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신약성서에는 예수님에 대한 칭호가 많습니다. 메시아, 퀴리오스, 다윗의 후손, 재림주, 인자, 외아들 등등, 많은 칭호가 때로는 겹치기도 하고 때로는 단독적으로 등장합니다. 이 말은 곧 예수님에게서 전혀 새로운 구원을 경험한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그 당시 전승되던 칭호를 통해서 이 예수님을 해명했다는 뜻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마가의 해석은 어떻게 나온 걸까요? 사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이미 구약성서에도 나옵니다. 약간 간접적인 표현이지만 시편 2:7절을 보십시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스라엘의 왕이 즉위할 때 이런 시편이 합창대에 의해 불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구약의 전통에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되었습니다. 또한 여기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했다는 사실이 들어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런 진술의 핵심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경험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진술은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할까요? 혹시 여성신학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건 아닐까요? 아들이 뭐냐, 딸이라고 하자. 예수님이 생물학적으로 남자이기 때문에 딸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자식”이라고 하자. 대충 이렇게 나오면 저로서는 할 말이 궁합니다. 초기 기독교 시대의 영지주의자들과 비슷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진술에서 예수님의 인간성을 부정할 수도 있겠군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지 인간이 아니었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나오면 성서를 바르게 읽는 게 아닙니다. 성서와 기독교 전통은 예수님의 인간성을 축소하기 위해서 이런 호칭을 받아들인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메시아로 경험되었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 경험에 대한 여러 표현 중에서 하나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무슨 일이 발생했기에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을까요? 그들의 경험이 오늘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나요? 이 질문은 다시 하나님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만드는군요.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는 게 중요합니다. 무조건 믿는다거나, 단순하게 교리를 외우는 것에 머물지 말고 하나님 자체에 우리의 영혼을 쏟아야 합니다. 그럴 때만 우리의 삶은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곧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6.03.20 23:48:05

오늘부터 <마가복음 묵상>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매일 원고지 7,8매 정도 분량으로 마가복음을 묵상하는 글을 쓰는 겁니다.
영적 일기를 쓴다는 심정으로 써볼 생각입니다.
힘들다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새벽기도회를 하지 않고 있으니까
이걸로 대신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16장을 꼼꼼히 살피려면 아마 3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 합니다.
일단 여기 <성구명상> 메뉴에 올렸는데,
앞으로 조금 생각해 보고
적당한 꼭지를 새로 만들어 넣을까 합니다.
이 묵상의 성격을 어떻게 잡는 게 좋을지 아직 확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일반적인 큐티는 너무 실용적이고,
바르트의 신학묵상은 너무 사변적이고,
그렇다고 설교는 아니고,
이전에 쓴 성구묵상과 비슷한 성격이 좋겠지만,
조금 더 일상과의 관계를 두텁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 작업의 목적은
신학생들과 젊은 목사님들에게
성서 텍스트와 신학을 접목시킬 수 있는 해석학적 공부에 도움을 준다는 것과
바른 신앙을 추구하는 지성적인 평신도들에게 신앙의 본질과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입니다.
앞으로 3년 후쯤에 어떤 결과로 나올지 모르겠지만
관심이 있는 분들과 함께 가는 길이라면 덜 심심하겠지요.
야심차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슨 큰 업적을 내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럴듯한 작품을 낼만한 능력도 없기도 하구요.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글쓰기를 하는 것 뿐입니다.

[레벨:7]허정수

2006.03.20 23:58:58

기대는 잠시 기다림이 돌보게 하고,
우선 건투를 빕니다.^^* 아자!!
profile

[레벨:16]홍종석

2006.03.21 00:02:12

아까 공부시간에 듣고 참 좋은 소식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도 게을러서 새벽기도를 못나가는데
이 참에 동참해볼까 합니다.
힘드실 목사님 생각하면서 묵상하겠습니다. ^^
profile

[레벨:4]이상훈

2006.03.21 03:08:20

목사님의 진도에 맞춰서 저도 관련 성구들을 읽고,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조금더 바빠지시겠네요...^^

이길용

2006.03.21 06:49:29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용어는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임금'에게 부치는 일반화된 호칭들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는 마가의 기록을 받아든 독자들 입장에서는 마가복음은 황망하기 이를데없는 책이기도 하겠죠.
마가는 예수가 왕이었다고 선포하고 있고, 그 내용도 첫 구절에서부터 밝히고 있으니까요.
마가가 예수를 왕으로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은 뒤이어 11절에 이미 정목사님도 인용하셨듯이
당시 왕들의 즉위식 때 불려지던 정형화된 노래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납니다.
그렇게 본다면 마가복음은 왕이신 예수에 대한 실록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제 문제는 "그 왕은 도대체 어떤 스타일의 왕이냐"라는 것이겠죠. 바로 그 점에서 마가복음의 재미는 쏠쏠하게 피어납니다.

마가복음은 요즘 저도 학생들을 위해 풀고있는 내용입니다. 지난 1월 1일부터 시작했는데, 아직 2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거들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기차타러 나가야 겠네요~

그럼~

[레벨:1]똑소리

2006.03.21 18:37:32

정목사님!
기대됩니다.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는군요.

[레벨:6]유희탁

2006.03.21 22:06:32

이번에도 무임승차를 좀 하겠습니다.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공부를 하고 싶은데...여러가지 여건이 되지 않던 차에 이곳에 저에게는 참 유익한 곳입니다....오늘도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

[레벨:4]tj

2007.10.12 14:30:45

일년반전에 출발한 다비아 QT 열차를 아직도 승차할 수있다니, 은하철도 다비아....
와 길고나. 늦게 만난 것도 크으은 은혜죠.
하루에 이틀분을 한다면 일년 반후에 먼저 간 분들을 텃치할 수도 ^^
열씨미해서 창조주 하나님 가슴에 들어가기도, 예수오라버님이 내 안에서 기쁘하시도록...ㅎㅎ
참말로 감사함미데이..목사님

[레벨:18]눈꽃

2008.10.30 16:36:21

이년반전에 시작한 마가복음 묵상 !
저는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볼랍니다 늦은만큼 열심히!!!!우연인지 필연인지 저희교회 주일오후에배 시간에 씨리즈로 마가복음강해 설교하시고있어요 정목사님! 감사드립니다







profile

[레벨:41]새하늘

2009.03.27 08:55:33

오늘은 과거로 회귀합니다.
최근 2달동안 마가 복음 묵상에 빠졌습니다.
중간부터 시작해서 그런지 처음 부분부터 욕심이 나네요.
처음 시작 했던 부분인 한 2년치를  읽어야 겠죠?

당일치 마가 복음을 매일 묵상하고, 지난 마가 복음을 하루에 5개이상씩 읽으면 올해 안에 진도를 맞출 수있을것 같습니다.
진도를 맞추는 그 날까지.

[레벨:18]눈꽃

2009.03.27 09:28:01

새하늘님!


새하늘님의 댓글을 따라 들어와보니 5개월전에 제가올린 댓글이 있네요


님도 저와 같은 경로를 밟고 계시네요


마가복음묵상 시작한지 5개월이 된 지금 .........


문맹자가 한글에 눈 떠 갈때의 느낌이랄까........


요즘 호기심 천국이랍니다  요즘 이 왕성한 말씀의 욕구때문에 식욕까지 없어질 정도로 .........



새하늘님!


진도를 맞추는 그날까지 아자!   아자!


성령의 인도하심을 빌며.................

profile

[레벨:41]새하늘

2009.03.27 10:41:55

눈꽃님 감사합니다.
응원에 힘입어 끝까지 완수 하도록 하겠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빌며.... 

[레벨:18]은나라

2016.06.28 13:49:06

평상시 매일묵상을 매일 읽는데..

처음부터 목사님 글을 따라가고 싶어서 들어와 보니 참 좋네요..

진도뺄 목적보다는 그냥 천천히 목사님의 뒷태를, 발자국을 따라간다고 생각하며 묵상해 보겠습니다.

신앙의 본질을 파악하는 기회가 되겠군요.

글을 마음껏 읽을수 있는 은혜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날마다의 삶이 설레임으로 지낼거 같습니다.ㅎ

새로운 성경세계를 여행하는 것으로 인해서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6.06.28 15:54:19

뭐라 옆에서 말 붙이기도 힘들 정도로

열공 모드로 들어가셨네요.

머리끈 동여매고 연필심에 침 바르고 ...

은나라 님이 지금 10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신 겁니다.

그때 무슨 생각으로 마가복음 매일묵상을 시작했는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다.

하루 빼지 않고 매일 썼지요.

그게 저의 수행이라고 생각한 거지요.

<마가복음 매일묵상>을 홍성사에서

아마 내년에는 나오지 않을까 생각, 기대합니다.

다비아 시스템을 중간에 업그레이드 하는 바람에

마가복음 묵상이 중복되거나 빠진 게 있을지 모르니

감안해서 읽으세요.

[레벨:18]은나라

2016.06.29 00:16:18

"머리끈 동여매고 연필심에 침 바르고.."

ㅎㅎ 표현이 재밌네요.. 국민학교 때 모습이 연상되는 글입니다. ㅋㅋ

10년전 시간여행이면.. 10년이나 뒤진거라고 생각이 드는데..

이제라도 알게되어 감사하고, 이제라도 연필심에 침 바르고,

천천히라도 따라갈수 있는 은혜주셔서 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답니다.

"고난조차도 감사하라"는 목사님의 말씀이 얼마나 커다랗게 제 마음에 와 닿았는지?

아마 목사님은 모르실거예요..

초기 기독교 단체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해석했다는 말씀이 참 새롭네요.

성경이 하나님 말씀자체가 아닌 그들이 경험한 예수, 그들이 경험한 하나님을 그들의 방식으로 해석했다는 거쟎아요..

그동안 그냥 맹목적으로 믿었던 것들을 하나씩 허물 벗기며, 이유와 근거와 설명을 들으면서 다시 신앙의 본질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입니다.

지난주부터 목사님 글을 읽으며, 본질에 대한 단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계 22:8 new

  • 2024-05-03
  • 조회 수 1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1 22: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글을 쓴 이가 요한이라는 사실은 여기 계 22:8절만이 아니라 계 1:1, 2, 4절 등등에도 나옵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요즘도 영어 이름으로 ‘존’이 흔하듯이, 당시에도 흔해서 실제로 그가 누군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소아시아 지역에서 그리스도교 지도자로 활동하던 사람이라는 사실 정도만 분명합니다. 그는 ‘보고 들은 자’라고 했습니다. 보고 듣는 행위...

계 22:4

  • 2024-04-29
  • 조회 수 4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7 22: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하나님과 어린 양을 섬기는 종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것이라(4절) 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얼굴은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걸 문학적으로 무엇이라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하자 하나님께서는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 33:20)라고 말씀하셨고, 이어서 출 33...

계 22:5

  • 2024-04-30
  • 조회 수 53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8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불리면서 거룩한 성이자 새 예루살렘으로 불리는 그곳에는 밤이 없다고 합니다. 빛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빛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밤이 없다는 말은 두려움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악이 준동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주 하나님’이라고 할 때 ‘주’는 그리스어 Κύριος(Lord)이고, ‘하나님’은 Θεὸς(God)입니다. 퀴리오스라는 ...

계 22:2

  • 2024-04-25
  • 조회 수 6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5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생명 나무가 하나의 품종인지, 아니면 서로 다른 열매를 맺는 나무를 포괄하는 이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생명 나무 열매를 먹고 살겠지요. 매력적입니다. 과일만으로도 영양 공급이 충분할 테니까 말입니다. 육식을 즐기는 분들은 에덴동산도 그렇고 여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계 22:7 update [2]

  • 2024-05-02
  • 조회 수 6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0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내가 속히 온다.’라는 문장에서 주어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로 추정되기는 하나 문맥으로만 보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요한은 지금 일곱 천사 중의 한 천사에게서 말을 듣고 그가 보여주는 환상을 따라가는 중입니다. 이런 문맥에서만 본다면 속히 올 자는 천사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전체 관점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맥락에서 본다면 속히 올 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느 쪽이 맞을까요? ...

계 21:26

  • 2024-04-22
  • 조회 수 7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2 21: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6절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 모든 사람이 영광스럽고 존귀한 존재가 된다는 뜻이겠지요. 영광(δόξα, glory)은 요한계시록에 흔하게 나오는 단어입니다. 요한계시록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가리켜서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붙일 수 없는 개념입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완전히 변화된 세상이라서 사람도 영광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영광...

계 21:27

  • 2024-04-23
  • 조회 수 7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3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27절에 다시 생명책 이야기가 나옵니다. 생명책에는 구원받을 자의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적히지 못한 자들은 이 세상의 악한 권력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계 13:8절입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그들은 구원에서 영원히 제외...

계 22:1

  • 2024-04-24
  • 조회 수 7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4 22: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우리는 이제 요한계시록 마지막 22장까지 왔습니다. 22장에서도 요한은 일곱 천사 중의 한 천사를 통해서 묵시적 환상을 경험합니다. 생명수의 강은 창 2:10-14절 내용과 연결됩니다. 창세기가 전하는 에덴동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이 아니라 여러 줄기의 강이 나옵니다. 첫째 줄기의 강은 비손이고, 둘째는 기혼이며, 셋째는 힛데겔이고, 넷째는 유브라데입니다. 창세기...

계 22:6 [1]

  • 2024-05-01
  • 조회 수 83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9 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6절부터 21절까지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단락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표제가 달렸습니다. 앞에서 묘사된 모든 묵시적 미래가 예수의 오심으로 실현된다는 뜻이겠지요.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냥 하나님이라도 해도 괜찮았을 텐데 선지자들의 영이라는 표현을 ...

계 22:3 [2]

  • 2024-04-26
  • 조회 수 13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6 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요한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절대적인 생명의 세계로 묘사하려고 온갖 묵시적 상상력을 동원합니다. 이미 앞에서 그런 이야기는 수도 없이 나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아무런 생각 없이 반복해서 읽다 보면 하나님을 옥황상제나 임금 이미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보좌도 임금이 앉는 최고급 의자 이미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착각입니다. 성경 문장은 메타포(은유)이...

계 21:25

  • 2024-04-19
  • 조회 수 16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1 21: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25절 문장이 약간 이상합니다. 거룩한 성에는 밤이 없어서 낮에 성문을 닫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문은 보통 밤에 닫지 않습니까. 낮에는 원래 열어두는 거고요. 밤에도 성문을 잠그지 않는다고 해야 자연스러운 표현인데, 위 구절은 자연스러운 문장이 아닙니다. 아예 문이 필요 없겠지요. 그래서 <새번역> 성경은 “그 도성에는 밤이 없으므로, 온종일 대문을 닫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려는 ...

계 19:19

  • 2024-02-19
  • 조회 수 16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39 19: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지금 요한은 계속해서 묵시적 환상에 사로잡혀서 글을 쓰는 중입니다. 묵시적 환상이라는 표현이 어떤 이들에게는 비현실적인 세계관으로 비칠 겁니다. 하늘 보좌, 무저갱, 용, 짐승, 천사, 천군 등등이 등장하니까요. 비록 신화적인 용어가 사용되기는 하나 묵시적 환상은 아주 분명한 역사 인식이고 세계관입니다. 글쓰기 형식은 신화적이나 내용은 역사적이라는 뜻입...

계 20:3

  • 2024-02-28
  • 조회 수 16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44 20: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당시 사람들은 천년을 세계 역사가 변하는 한 단위로 생각했습니다. 벧후 3:8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시 90:4절입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천년을 날수로 계산하면 365,000일입니다. 하루와 천년은 비교 자체가 ...

계 19:21

  • 2024-02-21
  • 조회 수 16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41 19: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검에 죽는다거나 모든 새가 나머지 사람들의 살로 배를 불린다고 표현한 19절은 섬뜩한 느낌이 정도입니다. 표현만 그렇지 실제로 그 문장이 가리키는 의미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심층적인 차원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 탄 자’의 검에 나머지가 죽는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심판받는다.’라는 뜻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온...

계 19:18

  • 2024-02-16
  • 조회 수 16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38 19:18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18절부터 새들에게 아주 구체적으로 끔찍한 명령이 내립니다. 모든 사람의 살을 먹으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모든 자’는 실제로 모든 사람을 가리는지, 아니면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지 불분명합니다. 아마 후자겠지요. 어쨌든지 새들이 사람의 살을 먹는 풍경은 끔찍합니다. 우리가 볼 때 끔찍할 뿐이고 새들에게는 ...

계 18:24

  • 2024-01-23
  • 조회 수 17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20 18: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요한이 묵시적 심판을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24절에 나옵니다. 이 말을 하려고 앞에서 동어반복으로 들릴 정도로 길게 심판에 관해서 이야기한 것입니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죽임을 당한 모든 자가 로마에서 피를 흘렸다는 역사적 사실이 그것입니다. 실제로 목숨을 잃거나 박해를 피해서 고향을 등지거나 일자리를 잃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았습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교 ...

계 19:10

  • 2024-02-06
  • 조회 수 17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30 19: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요한은 천사에게 절하고 경배하려고 했습니다. 천사의 아우라는 우리를 무릎 꿇게 할만합니다.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선 산악인의 심정을 상상해보십시오. 에베레스트의 위용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초라한지를 절감합니다. 등정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본격 등정에 나서...

계 20:4

  • 2024-02-29
  • 조회 수 17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45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요한은 보좌에 앉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우리말 <개역개정>은 앉은 ‘자’들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틀린 번역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매끄러운 번역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

계 19:5

  • 2024-01-30
  • 조회 수 17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25 19: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보좌에서 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보좌는 ‘하늘’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거룩한 존재가 거기에 있기에 지금의 생명형식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보좌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요한은 보좌에는 하나님이 앉아 계실 뿐 아니라 이십사 장로들이 앉아있다고 이미 4장에서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이 장로들을 지금 한국교회에서 활동하는 장로가 아닙니다. 보좌에 앉...

계 21:23

  • 2024-04-17
  • 조회 수 17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9 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요한은 해가 필요 없고 달도 필요 없는 세상을 내다봅니다. 빛이 필요 없는 세상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이 빛이 되고, 어린 양이 등불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사 60:19-20절에서 이에 관해서 통찰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