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 4월2일

조회 수 7289 추천 수 105 2006.04.02 23:08:37
2006년 4월2일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막 1:4)

세례 요한

공관복음서만이 아니라 요한복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복음서가 예수님의 공생애를 설명하기 전에 세례 요한을 다루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심지어 세례 요한의 출생설화를 예수님의 출생설화와 연결시키기까지 합니다. 요한은 이미 가임기가 끝난 엘리사벳의 몸을 통해서, 그리고 예수는 동정녀인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여섯 달 간격으로 태어났으며, 이 과정에서 양쪽 모두에게 똑같이 천사가 등장합니다. 그 뒤로도 요한과 예수의 관계는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예수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지만 요한은 예수의 신발끈을 맬 자격도 없다고 자신을 낮추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내서 “당신이 메시아인가?”하고 묻기도 했고, 자신은 망하고 예수는 흥해야 한다는 경구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복음서는 근본적으로 세례 요한을 예수의 협력자로, 또는 보조자로 묘사하지만, 실제로는 요한이 예수의 경쟁자였을 개연성이 완전히 없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경쟁자였을지 모른다는 말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복음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요한과 예수 사이의 경쟁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겠지요. 그러나 그들에게 선의의 경쟁이라는 말도 붙일 수 없을까요? 요한은 자기 나름으로 최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고, 예수는 예수 나름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전했습니다. 바울은 요단강 가에서, 예수는 갈릴리 호수 가에서 자신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람들에게 전한 것이지요. 그런 과정에서 서로에 관한 소문을 들었을 것이며, 따라서 서로에게 관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구체적인 위기를 절감하면서 상대방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요한은 예수가 메시아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으며, 예수는 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라고 일컬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요한이 예수의 경쟁자였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예수의 제자들 사이에 모종의 갈등이 없었던 것은 이 문제를 이 두 사람에 있었을 법한 경쟁구도로까지 비약시킬 생각도 없습니다. 이런 생각은 기본적으로 복음서 읽기의 정도가 아니기도 합니다. 다만 저는 요한의 운명을 조금 더 진지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한 것뿐입니다. 예수와 요한, 양자의 활동 기간이 매우 짧았을 뿐만 아니라 요한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죽었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하더라도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을 겁니다.  
불을 토하는 설교와 금욕적인 삶을 통해서 유대 민중들의 영혼에 불을 지른 세례 요한은 유대의 마지막 예언자로서 그 당시에 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인물입니다. 그가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는 민중들만이 아니라 유대교의 고위 성직자들까지 모여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대중의 인기라는 건 그야말로 거품처럼 쉽게 사그라지기도 합니다. 요한이 헤롯의 부도덕성을 비판하다가 감옥에 갇혔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구명운동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급기야 그가 참수형을 당했어도 대중봉기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요한을 통한, 혹은 요한을 위한 민중 혁명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아주 허무하게 역사의 중앙무대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삶은 무의미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의 길을 열었습니다. 우리의 문학적 상상력을 조금 발휘해서 설명한다면, 예수는 세례 요한의 출가와 그의 활동에 영적인 자극을 받았을지 모릅니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마가복음을 비롯한 복음서 기자 모두가 동일하게 증언하고 있듯이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에 등장할 수 있는 길을 준비한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각자의 영역에서 요한처럼 살아야하는 게 아닐는지요. 그렇게 살다가 때가 되면 무대에서 빨리 내려오는 게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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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41 19: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검에 죽는다거나 모든 새가 나머지 사람들의 살로 배를 불린다고 표현한 19절은 섬뜩한 느낌이 정도입니다. 표현만 그렇지 실제로 그 문장이 가리키는 의미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심층적인 차원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 탄 자’의 검에 나머지가 죽는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심판받는다.’라는 뜻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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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38 19:18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18절부터 새들에게 아주 구체적으로 끔찍한 명령이 내립니다. 모든 사람의 살을 먹으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모든 자’는 실제로 모든 사람을 가리는지, 아니면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지 불분명합니다. 아마 후자겠지요. 어쨌든지 새들이 사람의 살을 먹는 풍경은 끔찍합니다. 우리가 볼 때 끔찍할 뿐이고 새들에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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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20 18: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요한이 묵시적 심판을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24절에 나옵니다. 이 말을 하려고 앞에서 동어반복으로 들릴 정도로 길게 심판에 관해서 이야기한 것입니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죽임을 당한 모든 자가 로마에서 피를 흘렸다는 역사적 사실이 그것입니다. 실제로 목숨을 잃거나 박해를 피해서 고향을 등지거나 일자리를 잃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았습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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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30 19: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요한은 천사에게 절하고 경배하려고 했습니다. 천사의 아우라는 우리를 무릎 꿇게 할만합니다.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선 산악인의 심정을 상상해보십시오. 에베레스트의 위용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초라한지를 절감합니다. 등정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본격 등정에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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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1 21: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25절 문장이 약간 이상합니다. 거룩한 성에는 밤이 없어서 낮에 성문을 닫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문은 보통 밤에 닫지 않습니까. 낮에는 원래 열어두는 거고요. 밤에도 성문을 잠그지 않는다고 해야 자연스러운 표현인데, 위 구절은 자연스러운 문장이 아닙니다. 아예 문이 필요 없겠지요. 그래서 <새번역> 성경은 “그 도성에는 밤이 없으므로, 온종일 대문을 닫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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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25 19: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보좌에서 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보좌는 ‘하늘’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거룩한 존재가 거기에 있기에 지금의 생명형식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보좌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요한은 보좌에는 하나님이 앉아 계실 뿐 아니라 이십사 장로들이 앉아있다고 이미 4장에서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이 장로들을 지금 한국교회에서 활동하는 장로가 아닙니다. 보좌에 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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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45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요한은 보좌에 앉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우리말 <개역개정>은 앉은 ‘자’들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틀린 번역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매끄러운 번역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

계 19:20

  • 202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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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40 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열리면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잡힙니다. 그들이 더는 악한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짐승은 ‘무저갱’(계 11:7)에서 올라온 세력이라고 묘사할 수밖에 없는 악한 무리입니다. 계 13:1절 이하에는 짐승에 대한 설명이 더 자세하게 나옵니다. 뿔이 열이고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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