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5일 그가 살아나셨다(8)

조회 수 55856 추천 수 0 2009.12.24 23:21:21
 

2009년 12월25일

그가 살아나셨다(8)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16:5)


어제 묵상에서 천사는 바로 고대인들의 하나님 경험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경험은 확실한 겁니다. 확실하지만 직접적일 수 없는 하나님 경험을 고대인들은 천사를 매개로 설명했습니다.

위의 설명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말이 안 되는 거라고요. 생각해 보십시오. 태초에서 종말에 이르는 전체 역사를 통해서만 그 실체를 드러내는 분을 우리가 어떻게 지금 여기서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다만 그분은 우리를 찾아오십시오. 그걸 우리는 계시라고 말합니다. 그 계시가 곧 하나님입니다. 신학적으로 그것을 하나님의 ‘자기 계시’라고 합니다. 계시는 하나님 자신의 드러남이지 다른 어떤 것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경험에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일단 접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비견할만한 것이 이 세상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존재유비(analogia entis)가 불가능하다는 칼 바르트의 말은 옳습니다. 본문에 천사는 바로 그런 사태를 문학적 수사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천상적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은 사람을 큰 충격으로 몰아갑니다. 위 구절에서 여성 제자들도 천사를 보고 놀랐습니다.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모든 생각과 경험을 넘어서는 어떤 존재, 또는 어떤 힘에 사로잡혔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천사를 경험할까요? 이는 곧 어떻게 하나님을 경험하는가라는 질문과 똑같습니다. 각자 다르겠지만, 그 결과에서 나타나는 공통되는 현상은 생명의 깊이로 인한 놀라움입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경험은 놀라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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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09.12.30 01:35:21

놀람은 생명 앞에서의 (아득한) 현기증 같은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대체 알수도 없고, 알아 지지도 않았던, 생명의 세계, 그 세계가 보였을때,

'놀람'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놀람'이겠지요.

새로운 세계와의 충돌!!

아마 그 자리에 남자제자들이 있었다면, 덜 놀랬을까요?

남자들은 씩씩하니까요^^

아마, 생명을 보는 눈은 남녀노소 구분이 전혀 없겠지요.

다만, 부활의 실재, 실체 앞에서 그 누가 자지러지지 않을까요?

우리가 거대한 자연물 앞에서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데..

 

천사가 누군지 참 궁금했었습니다.

"놀람"의 또다른 표현법이군요.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참 멋진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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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42 20: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요한은 ‘좀 심하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묵시적 심판을 반복해서 말합니다. 이렇게 글을 쓰면 완성도가 크게 떨어집니다. 요한은 전문적인 학자이거나 문필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이 글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서 자기의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묵시적 환상을 믿음의 동료들에게, 특히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열정적으로 선포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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