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인 시(4)- 아무도 모른다

조회 수 4128 추천 수 0 2014.02.04 22:55:35

 

아무도 모른다

 

                                         김사인

 

 

 

     나의 옛 흙들은 어디로 갔을까

     땡볕 아래서도 촉촉하던 그 마당과 길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개울은, 따갑게 익던 자갈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앞산은, 밤이면 굴러다니던 도깨비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으로도 의젓하던 옛 동네어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누님들, 수국 같던 웃음 많던 나의 옛 누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배고품들은 어디로 갔을까 설익은 가지의 그 비린내는 어디로 갔을까 시름 많던 나의 옛 젊은 어머니는

     나의 옛 형님들은, 그 딴딴한 장딴지들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나의 옛 비석치기와 구슬치기는, 등줄기를 후려치던 빗자루는, 나의 옛 아버지의 힘센 팔뚝은, 고소해하던 옆집 가시내는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무덤들은, 흰머리 할미꽃과 사금파리 살림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봄날 저녁은 어디로 갔을까 키 큰 미루나무 아래 강아지풀들은, 낮은 굴뚝과 노곤하던 저녁연기는

     나의 옛 캄캄한 골방은 어디로 갔을까 캄캄한 할아버지는, 캄캄한 기침소리와 캄캄한 고리짝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나의 옛 나는 어디로 갔을까, 고무신 밖으로 발등이 새카맣던 어린 나는 어느 거리를 떠돌다 흩어졌을까

 

 

* 감상- 김사인 시인은 1955년 충북 보은에서 났다. 그런 탓일까.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긴 했으나 주로 시골 같던 천호동에서 경험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깊이 간직하고 사는 나에게 김사인의 시에 소재로 사용되는 내용들은 아주 친숙하다. 우리의 삶은 구름과 같아서 결코 하나로 정지되지 않는다. 이런 모양을 이루다가 흩어져 다시 저런 모양으로 나타난다. 그 모든 것은 흔적도 없이 다시 흩어진다. 그게 어디로 흩어졌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의 결국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구름을 누가 잡겠으며, 그 변화를 예상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무언가를 잡아보려고 애를 쓴다. 세월이 흘러 아무 것도 남아 있는 게 없다는 걸 결국 알게 되고, 그제야 허전해하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 늦기 전에!


[레벨:8]쩡쩡이

2014.02.05 14:57:53

저는 68년 생인데도 저 시의 어느 한 내용도 모르는게 없고 한폭의 그림이 되어 아련하게 다가오네요.

어릴땐 신기 했어요 어째 온마을에 굴뚝의 연기는 같은 시간에 올라 오는지,냇가서 고무신엔 든 모래를 씻어내며 이따 저녁답에 거서 보자한 아버지 들은 어떻게 똑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지...시간이 흘러도  나는 아직도 그 그림속에 앉아 있고  피어나는 연기의 냄새가 느껴지고 어른들이 있던 그 큰 나무 밑에서 놀고 있습니다...

어릴적 최초의 교회에 대한 기억은 첨 나온 색동 고무신을 신고 유치부에 가던 그날 그 예쁜 신발을 잃어버린 것입니다.신발장 앞에 앉아 집에도 못오고 대성통곡을 했었습니다.인생 최고의 상실감을 겪었던것 같습니다.ㅎㅎ

이 모든 기억들은 자주 자주 떠 오릅니다

그럴때면 꺼이 꺼이 우는 아이 옆에 다가가선 이렇게 말합니다 '난 아직도 간혹 뭘 잃어 버리고 운단다..근데 점점 안 울게 될거야... 그리고 그 그림속에 앉아있는 아이에게도 이젠 일어나라고,충분히 아름다웠으니 이젠 가자고 말합니다.

오늘부터 공부하게될 칼 바르트에 대해 눈이 빠지도록 공부하다 이 시를 잠깐 보게 됐습니다.

바르트의 신학과 이 시는 별개의 세상 같았으나 바르트로부터 조금 깨달은 바 있어 

나의 가는 길은 이제 더는 늦지 않게 일어나 가야할 다른 아름다운 길이기에 스스로를 재촉해 봅니다

훌훌 털고 가세!!!.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4.02.05 17:23:38

동해 어느 어촌 비슷한 마을에 살던 어린 소녀가

자신의 미래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집마당, 교회당, 시내, 들과 산, 야생화와 곤충을 친구 삼아

뛰노는 모습이 그려지는군요.

훌훌 털고 가다보면 오늘이 다시 그리워지기도 하겠지요.

바르트는 우리를 기독교 영성의 중심, 또는 보고로 바르게 안내해줄 가이드입니다.

바르트와 그가 가리키는 영성의 중심을

내가 어느 정도나 전달할 수 있을는지, 음

부담이 되나, 가는 데까지 가봅시다.

profile

[레벨:43]웃겨

2014.02.05 19:51:21

올려주신 이 시가 가슴에 촉촉히 와 닿는 저녁입니다.

김사인의 시도, 목사님의 감상도..

고맙습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4.02.05 23:32:16

어린시절, 사춘기, 청년시절까지

가깝게, 혹은 멀게 시골교회 사택에서 지내신 분이니

김사인의 저 시가 풍기는 정감을 물씬 느끼실 수 있겠지요.

비록 풍족하지는 못했어도 모든 것이 맛있고, 멋있고, 재미있던 시절이었지요.

죽음 이후에 이생을 기억할 수 있다면

오늘 우리가 어린시절을 기억하는 거와 비슷한 느낌이 아닐는지요.

주님의 평화가...

profile

[레벨:41]새하늘

2014.05.13 22:29:56

충북 보은과 옥천은 같이 인접해 있습니다.

수려한 산 줄기와 금강과 남한강의 줄기라서  곳곳에 시냇물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그곳의 살았던 옥천의 정지용 시인과  보은의 김사인 시인은 서로 공통점이 많네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5월8일 하나님의 나라 (5) [2]

  • 2006-05-08
  • 조회 수 4166

2006년 5월8일 하나님의 나라 (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고, 따라서 하나님을 아직 명료하게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를 그런 차원에서 알 수는 없습니다. 이 문제는 앞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짚었을 때 이미 드러난 사실입니다. 금 하나님의 나라를 직접적으로, 전체적으로, 명료하게 알 수 없다면 결국 그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무의미한 게 아닌가, 하는 주장이 ...

예수님의 시험 (5), 4월29일

  • 2006-04-29
  • 조회 수 4160

2006년 4월29일 예수님의 시험 (5)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막 1:13) 사탄은 예수님에게 온 세상의 영광을 모두 보여주고 다음과 같이 요구했습니다. 이것이 사탄에게서 받은 예수님의 세 번째 시험입니다.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9) 앞에서 제기한 두 번의 시험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확신 내지는 의혹과 연관된 것인데 반해서 마지막 시험은 세상의 명예와 소유에 관한 것입니다. 전자는 비교적 영적인 문제라고 한다면 ...

하나님 나라(31)- 신학과 설교

  • 2010-06-09
  • 조회 수 4157

사람들이 깊이 생각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경우에 설교는 이미 권위주의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기독교 신학의 본질적 진리를 새롭게 규정하는(再定式) 시도가 된다. 이런 새로운 규정은 인간 실존의 모든 차원에 놓인 현실성(realilty)에 대한 현대적 경험과 이해의 맥락에서 수행된다. 그것은 특히 새로운 규정에 참여하도록 초청된 공동체의 삶과 관계되어야 한다. 그래서 설교는 공동체의 성원들이 기독교 신앙과 그 현대적 진리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어떤 지침을 제공한다.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

5월15일 회개와 복음 (2) [1]

  • 2006-05-15
  • 조회 수 4155

2006년 5월15일 회개와 복음 (2)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회개는 이 땅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하늘로 관심의 축을 옮기는 신앙적 태도이며 결단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우주 공간의 어느 한 지역을 복음서가 말하는 그런 하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하늘은 곧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곧 하늘이 가까이 왔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까이 온 그 하늘은 우주 물리학적인 차원에서의...

장로 [12]

  • 2013-08-15
  • 조회 수 4148

8월15일(목) 장로 한국교회의 외적 성장에 가장 크게 공헌한 제도는 당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회는 시무 장로와 담임 목사로 구성된다. 교회에 따라서 부교역자도 참여하기도 하는데, 아마 발언권 회원에 머물 것이다. 당회 제도는 칼뱅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로마가톨릭의 성직자중심주의를 넘어서서 나름으로 민주적 질서를 세우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지금의 장로교회는 모두 칼뱅의 후예들이다. 그래서 당회 제도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감리교회, 성결교회, 하나님의 성회(순복음), 침례교회 등등은 전통적으로 당회제도가 없...

김사인 시(4)- 아무도 모른다 [5]

  • 2014-02-04
  • 조회 수 4128

아무도 모른다 김사인 나의 옛 흙들은 어디로 갔을까 땡볕 아래서도 촉촉하던 그 마당과 길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개울은, 따갑게 익던 자갈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앞산은, 밤이면 굴러다니던 도깨비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으로도 의젓하던 옛 동네어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누님들, 수국 같던 웃음 많던 나의 옛 누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배고품들은 어디로 갔을까 설익은 가지의 그 비린내는 어디로 갔을까 시름 많던 나의 옛 ...

5월19일- 말의 힘 [2]

  • 2006-05-19
  • 조회 수 4128

2006년 5월19일 말의 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6) 예수님은 그물을 던지고 있던 시몬 형제들을 보시고 이렇게 말을 거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예수님이 구체적인 사람을 보고 말씀하신 첫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는군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소리를 내어 말씀하셨답니다. 인간은 언제부터 말을 하게 되었을까요? 이를 위해서는 고고학의 도움을 받아야하겠지만, 우리는 정확한 시대를 알 필요가 없으니까 대신 신생아를 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

성탄 전야의 기도, 12월24일(월)

  • 2012-12-24
  • 조회 수 4120

주님, 오늘은 성탄 전야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높은 곳을 버리시고 땅의 낮은 곳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영과 육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성과 속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하나님의 성육신(成肉身)입니다. 주님, 마리아는 자기 몸에 일어난 사건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평범한 한 여자의 몸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다는 사실을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마리아는 세상 물정이나 이치도 알기 힘든 어린 여자였기에 더 충격적인 일이 아니었겠습니까. 마리아는 ‘주...

탈리다 쿰!

  • 2015-06-29
  • 조회 수 4107

6월29일 탈리다 쿰! 어제 설교 제목은 <‘달리다굼’ 말씀하시다>였다. 달리다굼을 원어에 가깝게 발음하면 ‘탈리다 쿰!’이라고 설명했다. 원어는 아람어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혹시 모르는 분들도 있을 거 같아서 성서 언어에 대해서 잠시 설명하겠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히브리어는 사어(死語)였다. 제사장이나 율법학자 등, 전문가 집단만 히브리어를 사용할 줄 알았다. 나라 없이 오랜 세월을 지낸 탓이다. 기원전 8세기부터 아람 사람들이 크게 활동함으로써 그들의 말이 그 지...

하나님의 영광, 1월22일(화) [4]

  • 2013-01-22
  • 조회 수 4105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문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무엇을 가리킬까? 하나님과 영광은 하나다. 하나님은 어떤 실체로가 아니라 영광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는 뜻이다. 출애굽기에 따르면 모세는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수여받았다. 이 사건이 유대교의 출발이자, 뼈대다. 모세는 하나님께 ‘당신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하나님은 모세가 죽을까 염려해서 당신 자신의 영광을 보여줄 수 없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못보고 등만 보았다고 한다. 하나님을 본 자는 죽기 때문이다...

교회에 나가는 이유(3) [5]

  • 2010-06-28
  • 조회 수 4104

그대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나 내가 보기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교회에 나가는 것 같소. 교회에 여러 종류의 모임이 많다는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소.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은 크오. 더구나 종교적으로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을 더 크오. 믿는 사람들끼리의 친교를 부정할 수는 없소. 교회 전통도 그걸 무시하지 않소. ‘코이노니아’(친교)는 초기 기독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신앙적 덕목이었소. 코이노니아는 신앙의 근본이라고 봐야 할 거요. 사람과의 관계...

6월8일- 서로 묻다.

  • 2006-06-08
  • 조회 수 4103

2006년 6월8일 서로 묻다.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막 1:27) 오늘 본문의 구조는 22절과 흡사합니다. 두 구절이 모두 예수님의 권위에 사람들이 놀랐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22절의 가르침과 27절의 명령에 권위가 있었다는 건 곧 기존의 것과 달랐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다른 걸 가르치셨으며,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축귀능력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전혀 다른 권위를 확보하고 있었다는...

찰과상 file [23]

  • 2016-09-08
  • 조회 수 4097

이런저런 일로 기회를 놓치고 있다가 6일만에 오늘 테니스 장에 나갔습니다. 둘째 딸 20분 동안 레슨 해주고 동호회원들과 게임을 했습니다. 요즘 테니스 감각이 좋아졌습니다. 평소에도 늘 생각하고 있던 부분을 좀더 확실하게 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테니스가 아주 미세한 운동이라서, 다른 운동도 사실은 비슷하지만 아주 작은 느낌으로 운동 능력에 큰 차이를 보입니다. 1) 백스윙부터 팔로우스윙까지를 한 묶음으로 처리한다. 부드럽게. 2) 라켓을 밀지 말고 휘두른다. 임펙트 지점에서 가장 큰 힘이 작용하도록...

나무 잎사귀 닦아주기 [3]

  • 2010-09-03
  • 조회 수 4097

그대는 집에서 나무를 키우고 있소? 아니면 개나 고양이는 키우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아파트요. 그래서 다른 생명체를 돌보며 살기가 쉽지 않소. 아파트 베란다에 화초 몇 그루와 나무가 하나 있소. 1미터 정도의 기둥으로 뒤에 잎사귀가 우선처럼 펼쳐있는 나무요. 집사람이 키우는 것들이오. 나도 간혹 물을 주곤 하지만 주로 집사람 몫이오. 화초는 물만 제 때 주면 자라는데 큰 문제는 없지만 나무는 좀 다르오. 벌써 오랜 전부터 잎사귀들이 말라가고 있었소. 내가 이름도 알지 못하는 병에 걸린 탓이오. 작은 반점과 솜...

이사야와 아하스 [2]

  • 2013-12-22
  • 조회 수 4087

12월21일(토) 이사야와 아하스 이사야는 고대 8세기 유다의 선지자이고, 아하스는 이사야 당시의 유다 왕이다. 이사야는 종교인이고 아하스는 정치인이다. 이사야는 신탁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이고, 아하스는 정치권력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고대 이스라엘(유다)는 정교일치의 사회였기에 이 두 사람은 서로 협조해야 할 관계다. 정교일치라고 해서 모든 부분에서 일치되는 건 아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선지자는 왕의 잘못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모든 선지자가 늘 비판적이었던 것은 아...

5월12일- 하나님의 나라 (9)

  • 2006-05-12
  • 조회 수 4081

2006년 5월12일 하나님의 나라 (9)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이 땅의 나라에서 경험하는 생명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묘사되어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면서 사는 게 곧 그리스도교 신앙의 토대라고 어제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 하나님 나라의 속성이 무엇인가를 질문해야 할 차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데 있는 게 아니라는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일단 정의, 평화, 기쁨, 자유 같은 정신적인 ...

지성적 기독교인의 정체 [11]

  • 2010-04-10
  • 조회 수 4073

오늘은 약간 불편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좀 참고 들어주시구려. 오늘 한국교회의 지성인 기독교인들에게 푸념 비슷한 말을 하려는 거요. 혹시 그대도 지성적 기독교인이오? 지성인들은 오늘 한국교회에서 찬밥 신세라오. 한국교회가 반(反)지성주의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라오. 지적인 인식 활동을 부정하고 무조건 믿기만 하라고 강요하는 교회 풍토에서 지식인들이 견뎌내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오. 이런 사태 앞에서 지성적인 신자들이 취하는 태도가 서로 다르오. 가장 대표적인 이들은 교회를 뛰쳐나가는 이들이오. 지금 사...

5월28일- 영성과 소유 (2)

  • 2006-05-28
  • 조회 수 4061

2006년 5월28일 영성과 소유 (2)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 가니라. (막 1:20)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는 그 당시 지중해를 중심으로 국제무역을 하던 거상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외아들인지, 큰 아들인지, 또는 여러 아들 중의 하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후계자였다는 소문이 많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재벌 2세였던 셈이지요. 프란시스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출가합니다. 그리고 탁발수도회를 창설합니다. 최소한의 생존 조건도 준비하지 않은 채 오직 구걸의 방식으로 살아가...

5월9일 하나님의 나라 (6) [1]

  • 2006-05-09
  • 조회 수 4059

2006년 5월9일 하나님의 나라 (6)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오늘의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자기 존재의 근거로 삼지 않는다는 것은 비극이며 불행입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도 역시 하나님의 나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간혹 하나님의 나라(바실레이아 투 데우)를 언급하지만 실제로 그 하나님의 나라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박했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고 그 의미를 되돌아보고 해석하고 선포하는 설교자들이 있나요? 하...

부부싸움 [7]

  • 2010-10-12
  • 조회 수 4058

그대는 결혼하셨소? 아니면 아직 미혼이오. 내가 청년 시절엔 남자들도 서른만 되면 혼기가 지났다고들 했소. 여자는 두 말 할 것도 없소. 요즘은 웬만하면 남녀 불문하고 서른을 넘기기가 예사요. 좀더 옛날에는 조혼이 일반적이었소. 내 아버님도 한 살 더 많은 어머니와 열아홉 살에 결혼하셨다고 들었소. 좀더 올라가면 십대 중반에 결혼하던 시절도 있었소. 결혼 적령기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니 어린나이에 하든지 나이 든 뒤에 하든지 무슨 문제가 있겠소. 여하튼 그대가 아직 결혼하지 않았으면, 또는 결혼한 지 20년이 채 안 ...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