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3:10

조회 수 815 추천 수 0 2023.02.11 07:50:4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9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요한은 지금을 시험의 때로 규정합니다. 앞에서 짚었듯이 당시 교회는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소멸하는가, 아니면 버텨내서 살아남는가, 하는 갈림길입니다. 사실은 당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은 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일종의 시험입니다. 마틴 루터도 그런 갈림길에 자주 섰습니다. 교황청의 요구를 받아들여서 타협의 길을 갈 수 있었으나 그는 그 길이 진리가 아니기에 저항했습니다. 파문당했습니다. 그의 선택은 죽음을 담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같은 종교개혁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렸을 때도 루터는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토마스 뮌처는 농민전쟁을 선봉에서 이끌었고, 루터는 뒤로 물러섰다가 오히려 영주 편에 섰습니다. 뮌처는 전투 중에 죽었고, 루터는 영주의 도움으로 종교개혁 운동을 본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민중신학계열의 신학자들은 루터를 비판합니다.

시험의 때를 버텨내려면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나의 인내의 말씀을 빌라델비아교회가 지켰기에 시험받은 기간을 버텨낼 수 있었다고 요한은 말합니다. 인내가 말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상황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초조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다가 대충 타협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바울의 권면을 들어보십시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을 자랑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새번역 롬 5:3, 4) 여기서 말하는 인내는 마지못한 인내가 아니라 자발적인 인내이겠지요. 하나님의 뜻을 깨닫거나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영적인 결기 말입니다.


profile

[레벨:41]새하늘

2023.02.11 18:22:49

공동번역[3:10 참고 견디라는 내 명령을 너는 잘 지켰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시험하기 위해서 앞으로 온 세계에 환난이 닥쳐올 때에 나는 너를 보호해 주겠다.]

새번역 [3:10 인내하라는 내 말을 네가 지켰으니,
온 세상에 닥쳐올 시험을 받을때에, 나를 너를 지켜 주겠다
시험은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시험하려고 닥치는 것이다.]

하산에서 버스타고 묵상을 합니다.
스마트 폰으로 타자 치려니 쬐금 힘드네요.
오늘 강원도 평창의 선자령 대궁산을 갔다 왔습니다.
이곳은 하얀 눈빛으로 가득하네요.
일주일 동안 체력적으로 지치네요.
몸 운동의 과부하로 체력이 방전입니다.
몸은 지쳤지만 마음만은 선계(仙界)에 온 듯 합니다.

나만의 산길을 걸으며 구절 묵상을 해 보았습니다.
내 시험은 뭐 일까?
시험이 올때마다 늘 피하고 싶습니다.
아직 신앙의 하수라 시험 올때마다 투덜 거립니다.
환난을 견디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운명이라면 환난 후의 영광은 나중 문제고 도망가고 싶네요.

그래서 영적수련이 더 필요한가 봅니다.
시험,, 시련을 잘 이길 수 있게
주님의 도우심을 지금도 간구합니다.

1676792490715.jpg 

첨부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3.02.11 21:16:21

적당하게 피곤할 정도의 산행 후에 성경묵상이라,

멋지네요.

복된 주일을 맞으세요.

profile

[레벨:29]최용우

2023.02.13 08:03:17

"인내"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 했는데

요즘 상담심리학자들은 참지 말라고 하네요. 

참으면 스트레스가 되고 스트레스는 각종 질병원인이라고...


"인내의 말씀"

'네가 나의'의 '나'는 요한이 아니고 요한의 입을 빌린 예수님이신것 같고 그래서

앞뒤문맥상으로는 <예수님께서 '재림'할 것이니 잘 참고 기다리라>고 하셨던 말씀을

"인내하라는 말씀(인내의 말씀)"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그 '인내'가 그때뿐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에 

예수님이 오시기전 모든 세대에게 해당되는 말씀인것 같습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3.02.13 21:44:38

ㅎㅎ 忍者 仁者 人子

어디론가는 다 통하겠네요.

profile

[레벨:29]최용우

2023.02.14 08:35:57

仁은 忍의 명백한 오타입니다.

손글씨로 쓰면 오타가 안날텐데 

캄퓨터 자판은 한문 여러개 중에 하나를 골라 변환시켜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잘못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중에 보면 꼭 잘못선택해서 오타가 나 있더라구요.ㅠㅠ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계 3:19 [4]

  • 2023-02-22
  • 조회 수 67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8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라오디게아 교회가 아예 버림받은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나 봅니다. “내가 사랑하는 자”이기에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합니다. 미지근한 신앙에서 변해야 합니다. ‘열심’을 내라고 했다 해서 극성스러워지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겉으로 열심을 내는 듯해도 속으로는 여전히 미지근할 수 있고, 겉으로는 미지근한 듯해도 속으로는 열심을 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예수를 사랑하느냐에 달려 ...

계 3:18 [4]

  • 2023-02-21
  • 조회 수 69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7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요한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세 가지 처방을 내립니다. 1)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 참된 신앙을 회복할 때만 영혼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연단한 금은 세상의 온갖 시련을 겪은 뒤에 얻게 되는 신앙을 가리킵니다. 이게 맞는 말일까요? 영혼의 부자가 되는 게 실제 삶에서 부자가 되는 것보다 더 행복한...

계 3:17 [6]

  • 2023-02-20
  • 조회 수 70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6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7절에서 이제 라오디게아 교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밝혀집니다. 그들은 부자라서(I am rich.) 부족한 게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실제로 그 지역은 정치, 상업, 의학 등등의 수준이 고급스러웠다고 합니다. 요즘 식으로 개인 소득 수준이 높고, 복지가 잘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숙제는 인생을 즐기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신...

계 3:16 [6]

  • 2023-02-18
  • 조회 수 85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5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우리말 성경이 정말 강렬하게 번역했군요. 원어로 보면 입에서 뱉어낸다는 뜻입니다. 저런 표현은 당시 관용어로 들립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계속해서 미지근하면 앞으로는 상대하지 않겠다, 말도 꺼내지 않겠다, 또는 아예 신경을 끊겠다,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뜻을 함축하는 표현으로 보입니다. 이러쿵저러쿵 책망하면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는 거지만 그런 언급...

계 3:15 [4]

  • 2023-02-17
  • 조회 수 73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4 3:15 내가 네 행위를 나오니 네가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 3:15절은 정말 유명한 구절입니다.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는 말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 흐리멍덩하다는 뜻이겠지요.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한다는 말은 신앙의 색깔을 분명하게 하라는 거고요. 사데교회를 향한 충고와 비슷합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골 4:2절에 나오는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

계 3:14 [7]

  • 2023-02-16
  • 조회 수 69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3 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서 마지막으로 거론된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이 교회도 칭찬은 받지 못하고 책망만 받습니다. 일곱 교회에 말씀을 주시는 이에 관한 묘사가 각각 다릅니다. 1) 에베소 교회에서는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로 나오고 2) 서머나 교회에서는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

계 3:13 [4]

  • 2023-02-15
  • 조회 수 60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2 3: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문장을 이해하기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대충 그러려니 하면 별 어려움이 없긴 합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성령은 무엇, 또는 누구인지, 교회는 무엇인지, 말씀은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한 가지만 보겠습니다. 성령은 기본적으로 진리의 영이십니다. 따라서 성령의 말씀을 듣는다는 말은 진리를 경험했다는 뜻입니다. 그 진리는 독단적인 게 아니라 보편적입니다. 자기 혼...

계 3:12 [4]

  • 2023-02-14
  • 조회 수 67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1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문장이 거칠게 번역된 구절입니다. <새번역>으로 다시 읽겠습니다. “이기는 사람은,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다. 그는 다시는 성전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도시,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계 3:11 [4]

  • 2023-02-13
  • 조회 수 62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0 3: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내가 속히 오리니 … ”라는 문장은 알쏭달쏭합니다. 문장만 본다면 예수께서 머지않아 재림하신다는 뜻이 분명합니다. 그걸 암시하는 이야기가 복음서에, 주로 요한복음인데, 나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도 나옵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당시 일부 교인들이 재산을 팔아서 사도들 앞에 가져오면 그것으로 모든 교우가 함께 생활했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예수께서 재림한다고 믿었기...

계 3:10 [5]

  • 2023-02-11
  • 조회 수 81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9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요한은 지금을 ‘시험의 때’로 규정합니다. 앞에서 짚었듯이 당시 교회는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소멸하는가, 아니면 버텨내서 살아남는가, 하는 갈림길입니다. 사실은 당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은 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일종의 시험입니다. 마틴 루터...

계 3:9 [4]

  • 2023-02-10
  • 조회 수 65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8 3: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사탄의 회당’이라는 표현이 너무 거칠게 들리긴 합니다. 지금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쓰는 요한은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표현이 과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이어지느냐 아니면 크게 위축되거나 사라지느냐 하는 위기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안으로는 유대교...

계 3:8 [4]

  • 2023-02-09
  • 조회 수 70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7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오직 칭찬만 들은 교회로 유명합니다. 그 교회 앞에 열린 문이 있다네요. 천국 문입니다. 그 문의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으니까 아무도 그 문을 닫을 수 없습니다. ‘문’은 물론 문학적인 메타포입니다. 어떤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경계를 가리킵니다. 여기 ‘소리’를 배우는 사람이 있다...

계 3:7 [6]

  • 2023-02-08
  • 조회 수 67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6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이제 여섯 번째로 요한은 빌라델비아교회에 편지하는 명령을 듣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빌라델비아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는 겁니다. 그 사자는 헬라어 ‘ἀγγέλος’의 번역입니다. 앙겔로스는 angel(천사), messenger(메신저)라는 뜻입니다. 요한이 이 편지를 직접 해당 교회에 들고 가는 게 아니라 중간에 그런 역할을 해줄 사람이 있어서 ...

계 3:6 [4]

  • 2023-02-07
  • 조회 수 642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5 3: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 있는 자’라는 표현은 고대 유대인들의 관용어로 보입니다. 예수께서도 이런 표현을 자주 쓰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 11:15, 막 4:9, 23) 들을 귀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는 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당연합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사 43:8) 그렇다면 입이 있어도 말...

계 3:5 [4]

  • 2023-02-06
  • 조회 수 66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4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를 앞에서 시인하리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생명책’이 여기에 등장합니다. 바울은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빌 4:3)라고 썼고, 계 20:12절에는 “또 다른 책이 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리니”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생명책은 그야말로 상징이고 은유입니다. 이를 마치 족보처럼 실제의 ...

계 3:4 [4]

  • 2023-02-04
  • 조회 수 77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3 3: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처음부터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는 질책을 당한 사데 교회에도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었다고 하네요. 아무리 세상이 세속화해도 거기에 휩쓸리지 않는 소수의 사람은 있는 법입니다. 아무리 많은 교회가 본질을 잃어도 여전히 본질에 천착하는 적은 수의 교회는 있는 법입니다. 그들이 누군지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으나...

계 3:3 [4]

  • 2023-02-03
  • 조회 수 693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2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도둑 같이’ 이른다는 표현은 공생애 중에 예수께서 가르치신 비유에도 나옵니다. 요한은 교회에 전승되던 그 비유를 기억하고 있다가 이 구절을 기록했을 겁니다. 마 24:43절입니다.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바울도 비슷...

계 3:2 [4]

  • 2023-02-02
  • 조회 수 70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1 3: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우리는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우리의 중심을 꿰뚫는 말씀이기 때문이기도 하나,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우리의 행위가 어떻게 완전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계속해서 노심초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요? 그런 행위의 완전함은 복음이 아니라 율법 아닌가요? 믿음...

계 3:1 [4]

  • 2023-02-01
  • 조회 수 81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0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다섯 번째로 거론되는 사데 교회는 처음부터 질책을 받습니다. 보통 질책이 아닙니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뼈아픈 질책입니다. 질책을 받는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질책마저 없는 게 더 심각한 상황이니까요. 사데 교회가 이 질책을 어느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그래서 새로워졌는지는 우리가 모릅니다. ...

계 2:29 [4]

  • 2023-01-31
  • 조회 수 67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9 2: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성령은 ‘Πνεῦμα’(프뉴마)의 번역입니다. 영은 몸(소마, 또는 사르크스)이 아니니 몸으로 사는 사람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공기나 숨이 말한다고 볼 수 없듯이 말입니다. 요한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이런 표현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시인들은 나무의 노랫소리를 들을 줄 아는 귀가 있습니다. 겨울나무에서도 어떤 말인가를 듣습니...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