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15

조회 수 756 추천 수 0 2023.01.13 07:57:5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35

2: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에베소 교회에 관해서 언급할 때 나온 니골라당(2:6)이 다시 나옵니다.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 당을 배척했으나 버가모 교회의 일부는 여전히 추종했나 봅니다. 니골라 당이라고 부르기보다는 니골라 파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에 여러 파가 있었습니다. 크게는 히브리파, 디아스포라 헬라파, 이방인파입니다. 고린도교회에는 바울, 아볼로, 게바, 그리스도파가(고전 1:12) 있었습니다. 요즘에도 크게는 로마가톨릭, 정교회, 개신교회가 있고, 개신교회 안에도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등등이 있듯이 말입니다. 니골라파가 오늘날의 구원파와 결이 비슷하다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저도 설교하거나 강의할 때 영혼 구원, 또는 영혼의 만족이라는 표현을 종종 합니다. 저의 생각을 이 단어가 충분하게 담아내지는 못합니다. 영육 이원론적인 시각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인간에게 영과 육이 어떻게 결합해 있는지는 여전히 비밀입니다. , 또는 영혼은 육체와 다르면서도 동시에 육체를 포함한 개념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는 인간의 생명 개념과 연결됩니다. 신구약의 관점에서 육체를 배제한 인간은 없습니다. 육체는 하나님의 창조라는 점에서 선합니다. 다만 그 육체가 세상의 조류에 휩쓸려서 삶을 위축하고 파괴하는 쪽으로 흐르기가 쉽습니다.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고전 9:27)라는 바울의 진술은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나온 겁니다. 니골라 파는 이런 고민을 이원론적 관점에서 쉽게 빠져나가려다가 벌어진 현상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이해가 되나 그들의 종교적 행태에 동조하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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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23.01.13 14:41:58

공동번역 [2:15 또 너희 중에도 니골라오파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


이제서야 따라 묵상을 따로 잡았습니다. 

아직 연초라 그리 바쁘지 않아, 여유가 생겨 종종 묵상에 접했네요.

좀 있으면 정신없이 바쁘겠지만, 하루의 한 구절만큼은 할 수 있겠지요.


구절에서 교회안에서 니골당이 분명 아니다라고 이야기를 해도,

니돌당을 쫓는 이들을 왜 그럴까요?

니골당에서 영적 체험을 절대화 시켜서 그런 것일까요?

오늘날 신천지 뿐만 아니라 사이비 대해 그렇게 언론과 교회에서 아니다라고 이야기를 해도

미동조차 없습니다.

왜 사실을 사실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것을 개인의 잘못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나는 이 길이 맞다고 갔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선 사람이라고 비난 받는게  맞을까요?

외줄 타듯 조심스러 하면서 보고 또 보고, 검증해야 가야 되는 건가요?

그러면 뭐가 문제일까요?

이런 유혹과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기 위해 늘 깨어 있어야 하나요?


그래서 바른 신학공부와 영성이 필요하다고 알면서

이런 노력들의 길에서 멈칫 딴소리 합니다.

결국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가요?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면 우리 또한 노력 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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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3.01.13 21:14:35

새하늘 님, 바짝 따라오느라고 수고 많았습니다.

저도 힘을 내서 묵상의 깊이와 폭을 넓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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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최용우

2023.01.14 07:49:43

'니골라당의 교훈'

어제는 조문을 위해 멀리 광주 장성에까지 다녀오면서 오랫만에 친구 목사님들 만나고 왔습니다.

"광주는 이미 '신땡땡'교인 숫자가 정통 교인 숫자를 넘었습니다. 광주에서 제일 큰 교회보다 신땡땡교회 교인수가 열배 더 큽니다.  지난번 광주기독교방송앞에서 신땡땡 청년들이 시위를 하는데 수만명이 방송국을 겹겹이 둘러 싸버리더군요. 기존 교회에는 청년들이 씨가 말랐는데 전부 신땡땡에 가 있습니다."

왜 청년들이 전부 신땡땡에 몰려가 있을까요? 

신땡땡은 '영만 구원 받으면 된다. 육신의 정욕을 억제하면 안 된다, 먹고 마셔도 영만 구원받았으면 된다'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구원만 강조하기에 '구원파'라고 합니다. 니골라당의 교리와 같죠. 니골라의 교리로 인하여 고린도 교회는 우상숭배와 음란 등으로 타락했습니다. 기존교회의 '윤리도덕'선생님 잔소리가 없으니 청년들이 옳다쿠나 하고 다들 땡땡으로 몰려가 있는 것입니다. 기존 교회는 청년들을 부려먹을줄만 알았지 청년들의 마음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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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5 2: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사탄의 ‘깊은 것’에, 즉 성적인 문란과 우상숭배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굳게 잡는다는 말은 신앙을 기분에 따라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아니라 수행하듯이 흔들림 없이 지켜내라는 뜻입니다. 예배드리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교우들끼리 친교를 나누고, 서로 봉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가능한 한 신학을 공부하면 더 좋습니다. 그런 일이 지루하게 여겨지기도 하겠으나 계속 이어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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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4 2: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요한의 말인가요, ‘하나님의 아들’(계 2:18)의 말인가요? 계시록을 쓰는 사람은 분명히 요한이니까 요한의 말이라고 봐야겠으나, 그가 하나님의 아들에게서 받은 말씀을 전하는 거니까 하나님 아들의 말씀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성경은 이중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글을 기록한 저자가 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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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1 2: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 ”라는 문장은 문학적인 성격이 강한 겁니다. 묵시 문학적인 성격이 그것입니다. 요한이 당시 그리스도교 상황에 대해서 기도하는 중에 깨달은 바를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이런 문장을 예수께서 직접 나타나서 요한에게 일일이 불러서 적게 하신 것처럼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미 이 세상 분이 아닙니다. 그런 분이 이 세상에 사는 요한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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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0 2: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두아디라 교회도 역시 요한의 책망을 피하지 못합니다. 갑자기 이세벨의 호출됩니다. 그녀로서는 억울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북이스라엘 왕 아합의 부인 이름이 이세벨입니다. 그녀는 이방 나라의 공주였다가 아합 왕의 부인이 되었습니다. 열왕기를 기록한 이는 이세벨을 대표적 악녀로, 일종의 ‘팜므 파탈’로 묘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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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39 2: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으나 두아디라 교회는 ‘나중 행위’가 처음보다 좋다고 합니다. 처음 사랑을 잃지 않았나 봅니다. 처음과 나중이 다 좋다면 최선이겠으나 그게 어렵다면 나중이 좋은 게 좋겠지요. 죽을 때 좋은 게 우리 개인의 삶에서도 최선이 아니겠습니까. 죽을 때 삶의 절정에 오르기 위해서라도 살아 있는 동안에 죽음을 준비하는 게 좋습니다. 늙어가면서 삶이 더 투명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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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36 2: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고 요한이 자신의 견해를 단호하게 피력했습니다. 신학 논쟁을 불사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초기부터 치열하게 신학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걸 이단 논쟁이라고도 부르고, 진리 논쟁이라고도 부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런 논쟁을 불편하게 여깁니다. 당사자들에게는 신경 소모가 많은 일이고, 제삼자에게는 양쪽 의견이 비슷하게 보입니다.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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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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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35 2: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에베소 교회에 관해서 언급할 때 나온 니골라당(2:6)이 다시 나옵니다.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 당을 배척했으나 버가모 교회의 일부는 여전히 추종했나 봅니다. 니골라 당이라고 부르기보다는 니골라 파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에 여러 파가 있었습니다. 크게는 히브리파, 디아스포라 헬라파, 이방인파입니다. 고린도교회에는 바울, 아볼로, 게바, 그리스도파가(고전 1:12) 있었습니다. 요즘에도 크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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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34 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버가모 교회도 책망을 받습니다. 발람과 발락 이야기는 구약 민 22~24장에 나옵니다. 발람은 선지자이기도 하고 무당 비슷한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워한 모압 왕 발락이 발람에게 복채를 내고 이렇게 청원합니다. “청하건데 와서 나를 위하여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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