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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덕담 한 마디, 1월1일(화) [5]

  • 2013-01-01
  • 조회 수 3225

2013년이 오늘 시작되었다. 오늘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얼마나 많은 신생아들이 태어났는지 모른다. 그들에게는 오늘 하루가 특별한 날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는 오늘이 어제와 다를 게 없었다. 우주의 역사에는 오늘 하루만이 아니라 금년 한 해가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긴 우주의 역사라고 하더라도 이런 한 해와 하루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지 않은가. 아직 까지 숨이 붙어 있는 우리는 모두 2013년을 함께 시작한 사람들이다. 이게 얼마나 특별한 인연인지 모른다. 지금까지 세상에 ...

부음 광고 [6]

  • 2010-09-24
  • 조회 수 3220

9월3일자 조간 한겨레신문 2면 하단에 옥한흠 목사님의 부음 광고가 한 면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큼지막하게 났소. 2010년 9월2일 오전 8시43분에 소천 하셨다는 내용이오. 아마 10개에 이르는 중앙지 모든 신문에 광고가 나간 게 아닐까 생각하오. 이미 옥 목사님의 별세 소식은 긴급 뉴스로 나와서 다 알고 있었지만 이런 광고 덕분으로 장례절차에 관한 것까지 다 알게 되었소. 빈소, 장례예배 일시, 장지, 하관예배에 관해서, 그리고 유족관계와 장례위원 목록이 길게 나왔소. 고문, 장례위원장, 공동장례위원장, 대략 국내외 ...

예수 어록(374) 요 16:24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3]

  • 2020-07-15
  • 조회 수 3219

예수 어록(374) 요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라는 말씀은 마태복음의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마 7:7)라는 말씀과 상응한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구하라.”는 “찾으라.”이기도 하고, “문을 두드리라.”이기도 하다. 구원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의 구도적 태도를 가리킨다. 예수의 발언은 세상살이에 필요한 ...

7월1일 엘리야와 모세 [3]

  • 2008-06-30
  • 조회 수 3217

2008년 7월1일 엘리야와 모세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막 9:3) 예수님의 변형 순간에 함께 했다는 엘리야와 모세는 몇 가지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모두 산에서 하나님 경험을 했습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둘째, 그들은 모두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엘리야의 승천 기사는 아주 분명하게(왕하 2:11) 기록되었지만, 모세의 승천은 유대교 이외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셋째,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

예수 어록(338) 요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 2020-05-23
  • 조회 수 3216

예수 어록(338) 요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는 표현은 위인전이나 동화에 나올만하다. 이 발언은 예수에서 직접 온 게 아니라 요한복음 기자의 문학적 수사로 보인다. 앞에서 여러 번 언급했듯이 요한복음은 예수를 향한 초기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는 성격이 강해서 이런 표현이 나올 수 있었다. 문학적 수사라고 하더라도 본질에서는 옳다. 예수는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은 분이시니 이를 통해서 우리가 예수의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이 친구라...

김사인 시(6)- 치욕의 기억 [3]

  • 2014-02-06
  • 조회 수 3216

치욕의 기억 김사인 영화배우 전지현을 닮은 처녀가 환하게 온다 발랄무쌍 목발을 짚고 (다만 목발을 짚고) 스커트에 하이힐 스카프는 옥빛 하늘도 쾌청 그런데 (뭔지 생소하다 그런데) 오른쪽 하이힐이 없다 오른쪽 스타킹이 없다 오른쪽 종아리가 무릎이 허벅지가 없다 나는 스쳐 지나간다 돌아보지 못한다 묻건데 이러고도 生은 과연 싸가지가 있는 것이냐! * 감상- 시인은 ‘이러고도 생은 과연 싸가지가 있는 것이냐!’ 하고 외친다. 문장은 의...

미래에 대한 불안

  • 2013-08-29
  • 조회 수 3215

8월29일(목) 미래에 대한 불안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가 미래에 대해서 불안하게 생각한다. 직장을 구하지 못할까, 결혼하지 못할까, 집을 장만하지 못할까, 자식들이 말썽이나 피우지 않을까 등등. 끝이 없다. 늙어가면서는 자식들도 다 떠나고 외롭지 않을까, 알츠하이머 같은 병에 걸리면 어쩌나, 궁극적으로는 죽으면 어쩌나 하고 불안해한다. 심리나 정서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은 아마 더 작은 문제로도 심각하게 걱정할 것이다. 남편이나 아내에게 사랑을 받지 못할까, 반찬은 무얼 먹어야 하나, 옆집에 이사 온 사람들...

file [2]

  • 2011-06-14
  • 조회 수 3215

오늘은 하양 장날이었소. 오래 전에 한번 말한 것처럼 4,9 숫자가 들어가는 날이 하양 5일장이오. 오늘 깻닢 모종을 사기 위해서 장에 나갔다가 굵은 칡이 나온 걸 보고 한장 찍었소. 어릴 때 칡 캐러 산을 많이 쏘다닌 기억이 나오. 요즘 칡 캐는 아이들을 찾기 힘들 거요. 좌판을 보니 다른 약초들도 많았소. 이름은 하나도 모르겠소. 아래는 다른 모습이니 구경해보시구료.

삶 경험 [4]

  • 2013-10-23
  • 조회 수 3213

10월23일(수) 오늘 수요공부의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살아있다는 경험을 언제 하느냐고 물었다. 공연한 질문일지 모른다. 모두들 생생하게 잘 살고 있는 마당에 당신 정말 살아있다는 걸 느껴, 하고 물었으니 말이다. 정신없이 그냥 쫓기며 사는 것과 실제로 삶을 느끼면서 사는 것은 다르다. 대개는 정신없이 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거나 허무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그런 느낌이 오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시 정신없는 삶으로 돌아간다. 그게 그나마 자신을 지탱해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

부활이 믿어지나요? [1]

  • 2010-04-03
  • 조회 수 3210

내일은 부활절이오. 그대도 나와 더불어 부활의 주님을 믿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소. 다음의 사실을 잊지 마시오. 부활 신앙은 그렇게 낭만적인 게 아니라오. 부활은 질적으로 다른 생명이기에 우리가 감당하기 어렵소. 쉽게 믿어지지도 않소. 그게 쉽게 믿어진다고 말하는 사람은 좀 웃기는 사람이오. 이에 관한 보충은 내일 예배에서 할 설교의 일부를 지금 미리 전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소. 필요하면 그대의 마음에 담고 그렇지 않거들랑 잊어버려도 좋소이다. 부디 2010년 부활절이 그대에게 생명의 충격으로 경험되기를...

성육신(요 1:14), 요한복음 묵상(8) [1]

  • 2013-04-28
  • 조회 수 3208

요 1:14절은 요한복음의 여러 구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명할 뿐만 아니라 중요하기도 하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곧 성육신(incarnation)을 가리킨다. 말 그대로 육신(肉身)을 이루었다(成)는 뜻이다. 뻔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으나 성육신은 하나님 상에 대한 혁명적인 전환이다. 유대교가 기독교의 다른 것은 다 인정할 수 있어도 이것만은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초월적이다. 하나님은 구체화할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한 어떤 형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 ...

책읽기(8), 2월6일(수) [4]

  • 2013-02-06
  • 조회 수 3208

어제의 묵상으로 책읽기 시리즈를 끝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어서 한 번 더 이야기하겠다. 책읽기가 만능이라는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책이 우리의 직관력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소위 말하는 ‘먹물’의 한계가 그거다. 먹물은 책을 가까이 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책상머리에서만 이야기하기 때문에 현실을 보는 눈이 관념적일 수가 있다. 어쩌면 책보다는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는 훈련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그것이 화두를 붙드는 일일 수도 있고, 역사에 참여하는 것...

주간일지 1월31일 주현절후 4주 [7]

  • 2021-02-01
  • 조회 수 3205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1년 1월31일, 주현절 후 4주 1) “죽임을 당하리라”- 이번 설교 본문인 신 18:20절에는 무시무시한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말씀하지 않은 것을 제멋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하거나 다른 신의 이름으로 전하는 선지자는 죽임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길은 이처럼 위태롭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과 아닌 말씀을 구분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선지자는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을 요구받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목숨 담보로 말입니다. 그 사실을 어느 정도 눈치챈 ...

예수 부활의 증언자들

  • 2014-01-18
  • 조회 수 3204

1월18일(토) 예수 부활의 증언자들 어제의 묵상에서 언급한 것처럼 요 20장은 예수 부활의 증언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도 예수의 부활 순간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없다. 죽었던 예수의 호흡이 돌아오고 심장이 뛰고 뇌 활동이 다시 시작된 것을 본 게 아니다. 죽어서 무덤에 묻혀 있어야 할 예수가 다시 제자들 앞에 나타난 것을 본 것뿐이다. 우리의 부활 신앙은 두 단계를 거쳐서 증명되어야 한다. 첫 단계는 예수 부활에 대한 제자들의 증언이 믿을만한 것인지에 대한 자체 검증이다. 복음서...

주기도(6) [2]

  • 2010-07-25
  • 조회 수 3200

세계 교회가 모두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소. 기도한다는 것은 거기에 우리의 영혼을 담는 신앙행위요. 그 기도의 내용대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이기도 하오. 잘 보시오. 우리 아버지를 함께 부른다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한 형제라는 말이오. 도대체 형제라는 것은 무슨 뜻이겠소? 우리가 보통 교회에서도 형제, 자매라는 말을 흔하게 하니, 묻는 말이오. 이런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소. 실제로 마음은 형제와 자매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입만 나불거리는 것 같소. 기독교 역사에는 ...

8월5일 키리에 엘레이송! [7]

  • 2008-08-04
  • 조회 수 3199

2008년 8월5일 키리에 엘레이송!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막 9:22) 간질병 아이와 그 아버지가 처한 형편은 한계 상황입니다. 그 병을 고치기 위해서 지난 세월 그들이 견뎌온 삶의 무게는 지구와 같았겠지요. 이제는 더 이상 할 것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한계 상황에 직면했을 때만 우리는 참된 기도를 드릴 수...

와서 보라!, 요한복음 묵상(38) [2]

  • 2013-06-15
  • 조회 수 3198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와의 대화 끝에 동네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4:29) 이 여자가 예수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인식했다는 증거는 없다. 첫 만남에서 모든 걸 알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다만 자신의 중심을 뚫어본다는 사실을 놀라워한 것 같다. “와서 보라.”는 이 여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런 표현은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예수를 소개할 때도 했던 말이다(요 1:46). 예수를, 혹은 예수 사건을 말로 설명하기...

'장난기 가득한 눈' [7]

  • 2013-05-09
  • 조회 수 3197

來如哀反多羅 7 불어오게 두어라 이 바람도, 이 바람의 바람기도 지금 네 입술에 내 입술이 닿으면 옥잠화가 꽃을 꺼낼까 하지만 우리 이렇게만 가자, 잡은 손에서 송사리떼가 잠들 때까지 보아라, 우리 손이 저녁을 건너간다 발 헛디딘 노을이 비명을 질러도 보아라, 네 손이 내 손을 업고 간다 죽은 거미 입에 문 개미가 집 찾아 간다 오늘이 어제라도 좋은 날, 걸으며 꾸는 꿈은 壽衣처럼 찢어진다 來如哀反多羅 8 내게로 왔던 것은 사랑이 아닐지 모른다 피에로 파올로 파솔리니, 오늘 같이 자주지 못해 미안해요 피에로 파올로 파솔리...

진리의 예배, 요한복음 묵상(36) [1]

  • 2013-06-10
  • 조회 수 3196

참된 예배는 영만이 아니라 진리로 드려진다고 하셨다. 여기서 진리는 헬라어 알레테이아의 번역이다. 우리말로는 참된 것, 한자로는 참된 이치가 진리인데, 그것이 헬라어 알레테이아와 일치하는 건 아니다. 헬라사람들은 철학적인 민족답게 언어에 함축적인 뜻을 담아냈다. 예컨대 사랑이라는 단어도 아가페, 필로스, 에로스 등으로 구분한다. 알레테이아는 계시의 성격이 강하다. 어원적으로 따지만 은폐된 것을 드러내는 힘이다. 진리로 예배를 드린다는 말은 인간의 종교적 욕망이나 자아의 투사, 열광적 엑스타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듭남에 대해, 요한복음 묵상(23) [4]

  • 2013-05-21
  • 조회 수 3196

니고데모 이야기의 중심 주제는 거듭남이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자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신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도대체 거듭난다는 건 무슨 뜻인가? 신학적인 용어로는 그걸 중생(重生, regeneration)이라고 한다. 삶이 바뀌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술 담배 끊고, 도박 끊고, 정직해지고, 등등의 도덕적인 변화를 생각할 것이다. 그런 변화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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