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2일 예루살렘을 향하여(2)

조회 수 1547 추천 수 2 2008.12.12 08:32:18
||0||02008년 12월12일 예루살렘을 향하여(2)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10:33)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자신이 어떻게 죽음에 처해질 것인지를 정확하게 예측하셨습니다. 우선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라고 칭하셨습니다. ‘인자’는 그냥 낱말 뜻으로만 본다면 ‘사람의 아들’(人子, son of men)입니다. 그러나 성서의 세계에서는 전혀 다른 뜻입니다. 인자는 묵시사상에서 마지막 때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메시아로 인식했는지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의하지 맙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초기 기독교인들의 인식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인자로 인식했습니다. 그 이외에도 다윗의 후손, 주, 둘째 아담, 그리스도 등등의 칭호가 여기에 속합니다. 이런 칭호는 지역과 시기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위의 구절도 예수님의 말씀과 초기 기독교인들의 인식이 서로 연관해서 나온 텍스트입니다. 그들의 예수님 경험에 대한 해석이며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이 모두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냐,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분들이 계실 겁니다. 이런 문제는 앞에서도 몇 번 다룬 적이 있을 겁니다. 성서 텍스트는 신문보도가 아니라 신앙 고백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보다 더 중요한 해석된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인자이신 예수님은 지금 예루살렘을 향해서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벌어질 일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신학적인 근거가 있었겠지요. 이 문제는 수난설화가 시작되는 14장에 들어가서 다루겠습니다. 예루살렘으로의 길은 수난의 길이며, 역설적으로 인류 구원을 위한 길이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profile

[레벨:23]모래알

2008.12.12 23:33:08

정 목사님!
어디 다른 곳에서 이미 언급하셨는지도 모르지만
묵상 가운데 자주 사용하시는 '설화' 또는 '신화' 라는 어휘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시는지 알려 주시면 좋겠어요. ^^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8.12.13 00:00:56

설화는 말 그대로 '이야기'라는 뜻이에요.
또는 전승이라는 말도 되는데,
일정한 공동체의 역사를 통해서
형성된 이야기를 가리킵니다.
수난설화는 수난 전승, 즉 수난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이에요.
초기 기독교에는 예수님의 수난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이 전해내려왔습니다.
그것이 일정한 시기에 이르러
정형화되었습니다.
마치 사도신경이 형성되듯이 말입니다.
여기서 많은 사건들이 해석되고 첨삭되고 편집되는 과정에서
이런 전승층을 이루게 되었다는 게 중요합니다.

신화는 설화, 또는 전승과 전혀 다른 뜻입니다.
쓰임새의 맥락이 다른 거지요.
수난설화나 수난전승은 말이 되지만
수난신화는 말은 되지 않습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예수님의 수난을 역사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설화와 신화를 '역사'라는 하나의 잣대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신화도 나름으로 역사 경험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신구약성서에도 신화적인 요소가 적지 않기는 합니다.
고대사회는 기본적으로 신화적인 세계관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서가 그런 영향을 받았다는 건 어쩔 수 없겠지요.
바벨론과 이집트 신화 등등의 영향을 받은 거지요.
설화(전승)와 신화에 관한 더 자세한 설명은 여기서 필요하지 않겠지요.

이렇게 질문하신 이유는 '설화'라는 말이
'신화'라는 말과 비슷한 뉘앙스를 보이기 때문이겠지요.
예수님의 수난이 신화적인 사건이냐, 하고 말이지요.
수난은 내용 자체가 신화적이지 않고 오히려 사실적입니다.
결론적으로,
수난설화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 전해져 내려온
예수님의 수난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그 이야기에 초기 기독교인들의 예수님에 대한
고유한 신앙적 해석이 담겨 있는 거지요.
구약이 말하는 대로 인류 구원을 위한 수난말입니다.
대림절의 평화가.




profile

[레벨:23]모래알

2008.12.13 00:58:59

가끔 한국어 단어들의 정확한 뜻을 파악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냥 대충 알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는 뜻이지요.

성경말씀들도 그렇게 대충 알고 있었다는 걸
요즘에서야 재확인하고 있답니다.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2009년 1월1일 여리고에서 [2]

  • 2008-12-31
  • 조회 수 2007

||0||02009년 1월1일 여리고에서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10:46) 신약성서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위 구절인 10:46절부터 13:37절까지의 본문이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행적에 관한 보도라고 합니다. 14:1절 이후로는 십자가와 부활이 이어집니다. 결국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예수님의 수난 설화가 전체 복음서의 삼분의 일 이상을 차지하는 셈입니다. 복음서의 중심이 바로 그것이라는 의미이겠지요. ...

12월31일 대속자 예수(2) [5]

  • 2008-12-30
  • 조회 수 2034

||0||02008년 12월31일 대속자 예수(2)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고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어제 저는 예수님이 대속자라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이 오늘 우리의 신앙고백과 똑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문제는 기독교 신앙의 모든 것이라 할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보충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본문은 분명히 이렇게 언급합니다.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을 대속, 또는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은 분명히 유대...

12월30일 대속자 예수(1)

  • 2008-12-29
  • 조회 수 1968

||0||02008년 12월30일 대속자 예수(1)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고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마가복음 기자는 야고보와 요한의 일방적인 요구로 불거진 제자들 사이의 다툼을 기독론의 관점으로 마무리 짓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섬김을 받지 않고 오히려 섬기러 왔으며, 더 나아가서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 위해서 왔다고 말입니다. 대속적 죽음은 예수님이 자기를 가리켜 직접 하신 말씀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초기 기독교의 신앙고백이라고 보아...

12월29일 집사(4) [2]

  • 2008-12-29
  • 조회 수 1808

||0||02008년 12월29일 집사(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10:44) 43절과 44절은 똑같은 내용입니다. 43절의 디아코노스가 44절에서는 둘로스로 단어만 바뀐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둘로스는 종이라는 뜻의 헬라어인데, 뉘앙스로 보더라도 섬긴다는 의미가 디아코노스보다 훨씬 강합니다. 교회 일꾼인 집사는 곧 종처럼 굴어야 한다는 뜻이겠군요. 바울도 자신을 일컬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일컬은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롬 1:1) 그가 완전히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 존적이라는...

12월28일 집사(3)

  • 2008-12-27
  • 조회 수 1498

||0||02008년 12월28일 집사(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10:43) 디아코노스가 식당에서 서빙 하는 사람이라고 앞에서 몇 번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단지 집사를 비롯한 교회의 직분에 대해서 종교적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하기 위한 수사가 아니라 아주 실제적인 진술입니다. 그 이유를 찾아봅시다. 교회 안에서는 디아코노스가 주목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멋진 식당에 들어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종업원이 옆에서 시중을 드는 식당입니다. 그 종...

12월27일 집사(2) [5]

  • 2008-12-26
  • 조회 수 2433

||0||02008년 12월27일 집사(2)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10:43) 한국교회의 직제 중에서 서리 집사와 안수 집사가 있습니다. 같은 집사인데도 서리 집사는 일 년 마다 재임명을 받아야 하며, 안수 집사는 특별한 사고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정년이 보장됩니다. 안수 집사를 항존직이라고 부릅니다. 안수 집사 제도가 교회에 정착한 자세한 이유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상식적으로만 본다면 서리 집사로는 아까운 인물이지만 장로로 세우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한...

12월26일 집사(1) [5]

  • 2008-12-25
  • 조회 수 2163

||0||02008년 12월26일 집사(1)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10:43) 위 구절 후반절의 ‘섬기는 자’는 헬라어 ‘디아코노스’의 번역입니다. 여기서 집사(執事)라는 뜻의 영어 단어 deacon이 나왔습니다. 집사는 어떤 교권을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식탁에서 남을 돕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마가복음 기자가 위 구절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우선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를 주목하십시오. 바로 앞절 42절은 고관들의 권세 부리기에 대...

12월25일 권세 부리기

  • 2008-12-24
  • 조회 수 1598

||0||02008년 12월25일 권세 부리기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10:42)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의 문제로 화를 내는 제자들을 불러다가 세상 고관들이 보이는 권세의 속성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들은 권세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압박합니다. 이런 메커니즘에 묶인 사람들에게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권세가 그런 사람들의 영혼을 지배하는 모든 것이 되고 맙니다. 인간에게는 이런 권세 지향성이 매우 강합니다. 이런 성향은...

12월24일 제자들의 화 [4]

  • 2008-12-23
  • 조회 수 1875

||0||02008년 12월24일 제자들의 화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10:41) 야고보와 요한의 행태를 보고 제자들이 화를 냈다고 합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럴 만도 합니다. 하나는 열 두 제자가 똑같이 고생한 마당에 그들 형제들만 특별대우를 받겠다고 나섰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지금 예루살렘을 향해서 가시는 예수님의 상황이 제자들의 자리를 배려해줄만한 때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 행은 십자가형의 길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열 명의 나머지 제자들이 화를 냈다는 건 아무래도 모...

12월23일 성탄의 신비 [6]

  • 2008-12-22
  • 조회 수 1990

||0||02008년 12월23일 성탄의 신비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는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10:40) 예수님은 야고보에게 좌우편을 줄 수 있는 권한이 자신에게 없다고 이르셨습니다. 하나님과 동일한 영적 능력이 있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건 조금 의아스럽습니다. 그 문장을 정확하게 읽으면 권한이 없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그 자리가 이미 결정된 것이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또는 그 자리는 그것에 적합한 사람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지 여기서 예수님...

12월22일 제자들의 운명

  • 2008-12-22
  • 조회 수 1789

||0||02008년 12월22일 제자들의 운명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10:39) 잔과 세례가 반복적으로 나오는 문장이 이어집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잔을 마시고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대답을 그대로 인정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앞에서 야고보와 요한이 무엇을 구하는지도 모르면서 구한다고 말씀하셨다가 이제는 그들의 말을 그대...

12월21일 잔과 세례 [1]

  • 2008-12-20
  • 조회 수 1519

||0||02008년 12월21일 잔과 세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10:38)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에게 묻습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사태가 갑자기 심각해졌습니다. 이 질문에는 예수님의 수난이 담겨 있습니다. 잔과 세례는 그 수난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빠 아...

12월20일 인식의 한계

  • 2008-12-19
  • 조회 수 1728

||0||02008년 12월20일 인식의 한계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10:38) 우편과 좌편 자리를 달라고 요구하는 야고보와 요한을 향해서 예수님은 그들이 무엇을 구하는지도 모른 채 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에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신앙적인 열정이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인식입니다. 그것은 곧 신앙적 앎, 신앙적 이해를 가리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도 이해는 매우 중요합...

12월19일 자리(4) [9]

  • 2008-12-18
  • 조회 수 1804

||0||02008년 12월19일 자리(4)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10:37) 신자들이 착각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본인들이 주님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어떤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라도 교회 일에 몰입합니다. 그것으로 기쁨을 얻는다면 다행이겠지만, 오히려 불편할 때가 많을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공허할 겁니다. 그래도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악순환이지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12월18일 자리(3) [11]

  • 2008-12-17
  • 조회 수 1975

||0||02008년 12월18일 자리(3)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10:37) 어제 저는 신자들이 교회의 과도한 일에 지쳐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열정이 강해서 일을 많이 하겠다는 거야 제삼자가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의 영성을 훼손하는 길이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구원의 기쁨으로 충성 봉사하는 게 왜 영성의 훼손이냐, 하고 생각할 분들도 있겠지요. 그건 착각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길들여진 겁니다. 영성의 중심에 들어간 사람은, 그 맛을 아는 사람은 가능...

12월17일 자리(2) [4]

  • 2008-12-16
  • 조회 수 1782

||0||02008년 12월17일 자리(2)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10:37) 자신의 영적 훈련을 위해서 ‘자리’를 남에게 넘겨주자는 어제 묵상의 마지막 문장이 너무 이상적이라고, 그래서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아무리 신앙훈련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 나름으로 교회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체면이 선다고 말입니다. 그런 탓인지 장로가 되기 위한 이전투구도 심심치 않게 벌어집니다. 정상이 아닙니다. 비정상이 정...

12월16일 자리(1) [5]

  • 2008-12-15
  • 조회 수 2564

||0||02008년 12월16일 자리(1)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10:37) 야고보와 요한이 노골적으로 요구합니다. 하나는 주의 우편에, 다른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들 형제가 중요한 자리를 다 차지하면 나머지 제자들은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요. 뒤에서 다른 제자들이 이들의 말을 듣고 화를 냈다고 하는 걸 보면, 뭔가 문제가 있기는 있는 거 같습니다. 문제는 ‘자리’입니다. 사람들이 자리에 예민한 이유는 그 자리가 그 사람의 위치를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

12월15일 무엇을 원하는가? [1]

  • 2008-12-15
  • 조회 수 1491

||0||02008년 12월15일 무엇을 원하는가?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10:36)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는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시기적으로 문제가 될 뿐 아니라 그 태도에서도 문제가 됩니다. ‘무엇이든지’ 자기들의 원하는 것을 해 달라니, 정말 철딱서니가 없어 보입니다. 이런 걸 강청기도라고 해야 하나요? 예수님의 비유나 주변에서 벌어진 이야기 중에도 막무가내로 자기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간 과부 이야기와 강아지 취급을 받았지만 밥상 아래 떨어진 부스러기라도 먹...

12월14일 야고보와 요한 [3]

  • 2008-12-13
  • 조회 수 2330

||0||02008년 12월14일 야고보와 요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10:35) 위 구절 35절부터 45절까지 비교적 긴 구절을 통해서 야고보와 요한 형제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영광을 얻게 될 때 하나는 우편에, 다른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병행구인 마태복음 20:20-28절에는 이런 요구를 한 사람이 이들의 어머니로 나옵니다. 똑같은 이야기에서 이렇게 주체가 다fms 이유는 우리가 여...

12월13일 예루살렘을 향하여(3) [5]

  • 2008-12-12
  • 조회 수 1580

||0||02008년 12월13일 예루살렘을 향하여(3)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10:34) 수난을 묘사하는 단어의 강도가 에스카레이트 방식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능욕, 침, 채찍질, 죽임이라고요.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면서도 일인칭이 아니라 삼인칭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부활에 관한 문장은 더 두드러집니다. “그는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 이는 곧 수난, 죽음, 부활이 초기 기독교인들의 가장 기본적인 신앙이었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도신경의 내용에 대해서 다...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