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6일 자리(1)

조회 수 2561 추천 수 3 2008.12.15 23:27:42
||0||02008년 12월16일 자리(1)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10:37)

야고보와 요한이 노골적으로 요구합니다. 하나는 주의 우편에, 다른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들 형제가 중요한 자리를 다 차지하면 나머지 제자들은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요. 뒤에서 다른 제자들이 이들의 말을 듣고 화를 냈다고 하는 걸 보면, 뭔가 문제가 있기는 있는 거 같습니다. 문제는 ‘자리’입니다.

사람들이 자리에 예민한 이유는 그 자리가 그 사람의 위치를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일단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은 낮은 자리로 내려오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인격적으로 다 된 사람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게 그만큼 힘든 일이라는 뜻입니다.

신앙 공동체에서는 자리가 그야말로 무의미해져야 합니다. 실제로는 교회 공동체에서도 자리 때문에 다툼이 많이 일어나지만 본질적으로는 그것이 하찮게 여겨져야만 합니다. 그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하나는 인식의 차원이고 다른 하나의 제도의 차원입니다.

인식의 차원은 신앙생활의 모든 내용이 오직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일치로 집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제도의 차원은 자리를 어떤 한 사람이 독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식의 차원만 부연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우리가 진실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면 가능한대로 자리를 맡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왜냐하면 자리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결국 자기의 영성에 피해가 오는 일이지요. 신앙의 문제에서는 우리가 이기적으로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 불편한 ‘자리’를 남에게 넘겨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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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7]희망봉

2008.12.16 09:36:16

혹시 저의 자리를 탐하시는 분은 안계시나요??
임시 운영위원장도 자리는 자리인데....ㅠㅠ
예배에 집중하고 싶어요~!!
웃돈을 엊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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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12.16 10:16:04

그렇지요?
봉사 자리는 언제나 그렇답니다.
나도 설교자의 자리에서 내려와
회중석에서 온전히 예배에만 집중했으면 합니다.
서울샘터교회는 저 같은 사람도 한 구석에 앉아
예배드리고 싶은 그런 주일예배공동체로 자리를 잡아갔으면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상처럼
어느 하나 과하지도 않고,
어느 하나 못미치지도 않은
그런 예배 드라마가 열리는 공동체 말이지요.
비유적으로 말해서 예배는 마치 베를린 필의 연주와 같답니다.
지휘자, 오케스트라, 청중이 모두 한 호흡으로
어떤 음악 세계에 몰입하는 거지요.
이런 음악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입장권을 파는 일이나 한다는 건 비극이지요.

처음 시작하는 교회 공동체라 힘든 게 많지요?
그래도 뭐 부부가 함께 뜻이 맞으니
잘 이겨 나가리라 봅니다.
마치 계주처럼 또 바톤을 이어 받을 사람들이 나오겠지요.
대림절의 평화가...

[레벨:2]greysnow

2008.12.16 10:36:52

저는 희망봉님과 시와그림님께 감사드립니다. 모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조금은 뻣뻣한 제가 서울샘터교회에 잘 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마 희망봉님과 시와그림님의 도움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만나고 설교에 집중하고가 제일이 되겠지만 그래도 저같은 '뻣뻣이'들에게는 희망봉님과 시와그림님 같은 분들이 고맙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목사님께도 감사합니다. 주일에 대구에서 서울까지 오셨다가 또 가시기가 힘드실텐데 피곤한 기색없이 설교해 주셔어 아주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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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8]시와그림

2008.12.16 15:57:24

그레이스노우님, 딱 제 모습을 얘기 하시네요~
모이는 거 좋아하지 않구 조금은 뻣뻣한 거~
게다가 그레이스노우님처럼 호감형도 아니라는 거~
보기보다 엄청 내성적이기 까지...ㅠㅠ

희망봉님 댓글에 좀더 덧붙이자면
모든 사람에게 예배 집중의 기회를 고루게 주기위해
또 자리에 고착되지 않기 위해
주기적인 인사이동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옆에서 바라만 봐도 느낌이 오더군요 ^^*

[레벨:6]디딤

2008.12.17 06:59:20

바지씨들을 울리는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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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31일 대속자 예수(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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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30일 대속자 예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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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008년 12월30일 대속자 예수(1)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고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마가복음 기자는 야고보와 요한의 일방적인 요구로 불거진 제자들 사이의 다툼을 기독론의 관점으로 마무리 짓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섬김을 받지 않고 오히려 섬기러 왔으며, 더 나아가서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 위해서 왔다고 말입니다. 대속적 죽음은 예수님이 자기를 가리켜 직접 하신 말씀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초기 기독교의 신앙고백이라고 보아...

12월29일 집사(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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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008년 12월29일 집사(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10:44) 43절과 44절은 똑같은 내용입니다. 43절의 디아코노스가 44절에서는 둘로스로 단어만 바뀐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둘로스는 종이라는 뜻의 헬라어인데, 뉘앙스로 보더라도 섬긴다는 의미가 디아코노스보다 훨씬 강합니다. 교회 일꾼인 집사는 곧 종처럼 굴어야 한다는 뜻이겠군요. 바울도 자신을 일컬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일컬은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롬 1:1) 그가 완전히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 존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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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008년 12월28일 집사(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10:43) 디아코노스가 식당에서 서빙 하는 사람이라고 앞에서 몇 번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단지 집사를 비롯한 교회의 직분에 대해서 종교적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하기 위한 수사가 아니라 아주 실제적인 진술입니다. 그 이유를 찾아봅시다. 교회 안에서는 디아코노스가 주목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멋진 식당에 들어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종업원이 옆에서 시중을 드는 식당입니다. 그 종...

12월27일 집사(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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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6일 집사(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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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008년 12월26일 집사(1)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10:43) 위 구절 후반절의 ‘섬기는 자’는 헬라어 ‘디아코노스’의 번역입니다. 여기서 집사(執事)라는 뜻의 영어 단어 deacon이 나왔습니다. 집사는 어떤 교권을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식탁에서 남을 돕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마가복음 기자가 위 구절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우선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를 주목하십시오. 바로 앞절 42절은 고관들의 권세 부리기에 대...

12월25일 권세 부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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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4일 제자들의 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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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008년 12월24일 제자들의 화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10:41) 야고보와 요한의 행태를 보고 제자들이 화를 냈다고 합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럴 만도 합니다. 하나는 열 두 제자가 똑같이 고생한 마당에 그들 형제들만 특별대우를 받겠다고 나섰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지금 예루살렘을 향해서 가시는 예수님의 상황이 제자들의 자리를 배려해줄만한 때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 행은 십자가형의 길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열 명의 나머지 제자들이 화를 냈다는 건 아무래도 모...

12월23일 성탄의 신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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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008년 12월23일 성탄의 신비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는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10:40) 예수님은 야고보에게 좌우편을 줄 수 있는 권한이 자신에게 없다고 이르셨습니다. 하나님과 동일한 영적 능력이 있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건 조금 의아스럽습니다. 그 문장을 정확하게 읽으면 권한이 없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그 자리가 이미 결정된 것이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또는 그 자리는 그것에 적합한 사람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지 여기서 예수님...

12월22일 제자들의 운명

  • 2008-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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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008년 12월22일 제자들의 운명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10:39) 잔과 세례가 반복적으로 나오는 문장이 이어집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잔을 마시고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대답을 그대로 인정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앞에서 야고보와 요한이 무엇을 구하는지도 모르면서 구한다고 말씀하셨다가 이제는 그들의 말을 그대...

12월21일 잔과 세례 [1]

  • 2008-12-20
  • 조회 수 1519

||0||02008년 12월21일 잔과 세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10:38)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에게 묻습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사태가 갑자기 심각해졌습니다. 이 질문에는 예수님의 수난이 담겨 있습니다. 잔과 세례는 그 수난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빠 아...

12월20일 인식의 한계

  • 2008-12-19
  • 조회 수 1726

||0||02008년 12월20일 인식의 한계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10:38) 우편과 좌편 자리를 달라고 요구하는 야고보와 요한을 향해서 예수님은 그들이 무엇을 구하는지도 모른 채 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에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신앙적인 열정이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인식입니다. 그것은 곧 신앙적 앎, 신앙적 이해를 가리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도 이해는 매우 중요합...

12월19일 자리(4) [9]

  • 2008-12-18
  • 조회 수 1803

||0||02008년 12월19일 자리(4)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10:37) 신자들이 착각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본인들이 주님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어떤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라도 교회 일에 몰입합니다. 그것으로 기쁨을 얻는다면 다행이겠지만, 오히려 불편할 때가 많을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공허할 겁니다. 그래도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악순환이지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12월18일 자리(3) [11]

  • 2008-12-17
  • 조회 수 1973

||0||02008년 12월18일 자리(3)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10:37) 어제 저는 신자들이 교회의 과도한 일에 지쳐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열정이 강해서 일을 많이 하겠다는 거야 제삼자가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의 영성을 훼손하는 길이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구원의 기쁨으로 충성 봉사하는 게 왜 영성의 훼손이냐, 하고 생각할 분들도 있겠지요. 그건 착각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길들여진 겁니다. 영성의 중심에 들어간 사람은, 그 맛을 아는 사람은 가능...

12월17일 자리(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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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008년 12월17일 자리(2)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10:37) 자신의 영적 훈련을 위해서 ‘자리’를 남에게 넘겨주자는 어제 묵상의 마지막 문장이 너무 이상적이라고, 그래서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아무리 신앙훈련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 나름으로 교회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체면이 선다고 말입니다. 그런 탓인지 장로가 되기 위한 이전투구도 심심치 않게 벌어집니다. 정상이 아닙니다. 비정상이 정...

12월16일 자리(1) [5]

  • 2008-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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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008년 12월16일 자리(1)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10:37) 야고보와 요한이 노골적으로 요구합니다. 하나는 주의 우편에, 다른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들 형제가 중요한 자리를 다 차지하면 나머지 제자들은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요. 뒤에서 다른 제자들이 이들의 말을 듣고 화를 냈다고 하는 걸 보면, 뭔가 문제가 있기는 있는 거 같습니다. 문제는 ‘자리’입니다. 사람들이 자리에 예민한 이유는 그 자리가 그 사람의 위치를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

12월15일 무엇을 원하는가? [1]

  • 2008-12-15
  • 조회 수 1490

||0||02008년 12월15일 무엇을 원하는가?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10:36)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는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시기적으로 문제가 될 뿐 아니라 그 태도에서도 문제가 됩니다. ‘무엇이든지’ 자기들의 원하는 것을 해 달라니, 정말 철딱서니가 없어 보입니다. 이런 걸 강청기도라고 해야 하나요? 예수님의 비유나 주변에서 벌어진 이야기 중에도 막무가내로 자기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간 과부 이야기와 강아지 취급을 받았지만 밥상 아래 떨어진 부스러기라도 먹...

12월14일 야고보와 요한 [3]

  • 2008-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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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008년 12월14일 야고보와 요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10:35) 위 구절 35절부터 45절까지 비교적 긴 구절을 통해서 야고보와 요한 형제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영광을 얻게 될 때 하나는 우편에, 다른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병행구인 마태복음 20:20-28절에는 이런 요구를 한 사람이 이들의 어머니로 나옵니다. 똑같은 이야기에서 이렇게 주체가 다fms 이유는 우리가 여...

12월13일 예루살렘을 향하여(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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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수 1580

||0||02008년 12월13일 예루살렘을 향하여(3)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10:34) 수난을 묘사하는 단어의 강도가 에스카레이트 방식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능욕, 침, 채찍질, 죽임이라고요.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면서도 일인칭이 아니라 삼인칭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부활에 관한 문장은 더 두드러집니다. “그는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 이는 곧 수난, 죽음, 부활이 초기 기독교인들의 가장 기본적인 신앙이었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도신경의 내용에 대해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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