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8일 자리(3)

조회 수 1974 추천 수 3 2008.12.17 23:31:27
||0||02008년 12월18일 자리(3)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10:37)

어제 저는 신자들이 교회의 과도한 일에 지쳐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열정이 강해서 일을 많이 하겠다는 거야 제삼자가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의 영성을 훼손하는 길이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구원의 기쁨으로 충성 봉사하는 게 왜 영성의 훼손이냐, 하고 생각할 분들도 있겠지요. 그건 착각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길들여진 겁니다. 영성의 중심에 들어간 사람은, 그 맛을 아는 사람은 가능한 일을 줄인답니다. 하나님의 구원 통치에 집중하고 그걸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없답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중요한 일을 동시에 두 가지는 못하거든요.

오늘 한국교회 목사들에게 치명적인 병은 일 중독증이라는 겁니다. 워커홀리커라는 말이 있다면, 그건 곧 목사에게 딱 맞습니다. 몸에 병을 얻을 정도로 교회 일에 몰두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들도 많습니다. 어떤 목사는 <게으름>이라는 책까지 썼더군요. 게으름이 죄라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 그는 기독교 영성과는 정반대의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니, 더 할 말이 없습니다. 목사 스스로 일에 중독이 되기도 하지만, 신자들이 그걸 강요하기도 합니다. 목사가 책 읽고, 명상하고, 취미생활을 하면 게으르다고 비난합니다. 그래서 목사들은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척 포즈를 취하기도 합니다.

신자들과 목사, 교회 공동체에 속한 모든 이들이 일을 줄이는 게 한국교회에서 급선무입니다. 남녀선교회를 비롯해서 온갖 조직들도 최소화해야 합니다. 프로그램도 줄여야겠지요. 대신 여러분의 삶을 세상에 투자하십시오. 여러분이 최선을 기울여야 할 자리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랍니다. 교회는 그렇게 살아가도록 신앙적인 동기를 부여하는 곳일 뿐입니다. 그럴 때 교회의 ‘자리’로 인해서 마음 상하는 일도 없겠지요.

[레벨:2]나이스윤

2008.12.17 23:55:49

네~ 맞습니다. 교회일을 하나님을 위한일로 동일시하고
지속적인 주입 또는 권유가 경건함,영성에 집중하기에
어려웠던것이 현실이었습니다.

교회내에서 형제,자매 또는 지체로 보는것이 아니라
자동차부품처럼 일꾼으로만 보거나 일꾼이 되는것이
신앙의 고지로 올라가는것이라는 주장(설교)는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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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8]정성훈

2008.12.18 07:26:18

교회현실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봉사)를 해야 된다고 강요 받습니다.

성도들이 교회에서는 수퍼맨이나 사회(직장)에서는 무능력자들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세상에 투자하십시오. 여러분이 최선을 기울여야 할 자리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랍니다."

오늘도 온전히 예수그리스도에게 집중하길 바라며 목사님말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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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6]병훈

2008.12.18 10:20:00

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교수도 칼럼에서 비슷한 지적을 했었지요 물론 경제학적 접근이었지만 교회를 다니거나 다녔던 분인거 같았어요

전 게을러서인지 원래부터 교회에서 뭔가를 하는 걸 싫어했던듯합니다.. 교회에서는 하는게 참 많습니다.. 클스마스부터 시작한다고 치면 초,중,고는 클수마스 행사준비 교사라도 한다면 뭐 어느정도 붇담이 있죠. 그다음은 신년 야유회 or 동계수련회 새학기가 되었으니 뭐 하나 그 다음 잠잠할 쯤 사순절 특별새벽기도 부활절 5,6월은 약간 뜸했다가 여름수련회 준비 가을 되면 학생부 or 청년부 집회 그리고 이쯤 시작되는 어떤 명목의 특별기도회 or 부흥회.. 교사겸 청년부 임원정도 되면 위 행사를 거의 두번씩해야되니까 부담 두배에 기본적인 모임들이 매주 있지요..

전 저기에서 반도 안했는데 피곤하더라구요.. 그래서 가끔 배째라 할 때도 있는데 신실하신(?)분들은 그러질 못하더라구요.. 직장 5일에 무임금 교회봉사2일로 쉬는 날이 없어서 뭔가 그렇게 믿음이 좋다는 분들보면 별로 부럽지 않아요..-_-;

대구샘터교회에서도 남모르게 수고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전 너무 그냥 날로 먹는거 같아서 죄송스럽습니다..
그분들의 영적인 기쁨을 조금씩 뺏고 있는거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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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1]홀로서기

2008.12.18 10:38:34

QT말씀을 보면서도 감동하고, 댓글들을 보면서도 감동합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항상^^

[레벨:3]구름

2008.12.18 11:19:23

목사님의 말씀...한 마디로 너무너무 통쾌한(?)의 씀....
전 사실 교회일에 너무 찌들려서 살고 있었거든요...
이제 좀 내려놓고 하나님께 조용히 갈렵니다...
휴유....숨 쉬기가 훨씬 편해졌습니다...목사님...감사.

[레벨:5]자유짱

2008.12.18 13:05:54

어제 오늘 말씀에 짓누르면서 엄습해오던 정체모를(?) 압박에서 많이도 자유함을
누립니다..아자~~~~//목사님 내내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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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유니스

2008.12.18 13:57:27

목사님, 이렇게 지내도 되는건가요?
자리(2)에서 말씀하시는 스타일에 가깝게
제가 지내는 편이고
너무 열혈활동으로 지친 교우에게는
이거저거 정리하라고 하지만,
목사님께서 이렇게 생활할 것에 대해 말씀하시니
안도감과 불안감이 교차합니다.
그나마 현교회들도 와해되는 건 아닐까..라고 말이지요.
소시적에 '장'자리 맞으며 활동했을 때보다
예배 후 책 몇 권 싸들고 단골까페에서
몇 시간이고 말 없이 머무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자리' 시리즈를 읽으며
그나마 한자리 하고 있는 것도 정리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연말이라서 또 자리를 정하는 때에
씨즈널한 묵상입니다.

[레벨:2]솔나무

2008.12.18 15:52:23

옳습니다.
감동입니다.
아멘이구요.
"교회는 그렇게 살아가도록 신앙적인 동기를 부여하는 곳이다"...
원심력과 구심력의 그 끈을 놓아야 할텐데...자리욕심...ㅎㅎ...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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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유니스

2008.12.18 17:37:37

다시 오늘 큐티를 기웃거리는 것은
제 안의 안도감과 불안감의 연유가 무엇인가입니다.
'자리'는 신앙생활에서 '이타'이기도 하고 '이기'이기도 한데요,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자리'를 떠난 평신도의 삶이
어떻게 '이타'일 수 있을 지가 생각됩니다.
저의 고민이지요. 저는 '이기'를 택한 쪽이니까요.
저같은 성도들만으로 가시적인 교회의 모습이 유지될까요?
아니면 지금의 가시적인 교회의 모습이 뒤집어지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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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12.18 18:28:06

유니스 님,
가시적인 현실 교회가 유지될까, 하는 염려를 하시는군요.
일단 이걸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보다 하나님의 나라가 상위이랍니다.
교회가 없어도 하나님 나라는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지는 않지요.
또 중요한 점은 이겁니다.
교회가 진리 공동체라고 한다면
유니스 님 같은 신자들만 있어도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진리와 함께 하거든요.
이런 신학적인 설명보다는 실제적인 설명이 필요하지요?
두 가지만 말씀드릴께요.
1. 신앙에서는 이기적이어야 합니다.
2. 교회가 필수불가결한 일에 집중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서로 짐을 나눠질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종교 과소비 형태로 운용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건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건데요.
한국사회는 모든 면에서 과소비랍니다.
교육, 경조사, 인간관계, 그리고 종교생활....
교회라도 좀 조용히 있었으면 합니다.
이게 힘들지요.
존재의 용기( courage to be)가 없는 거지요.
대림절의 평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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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12.18 18:33:08

위에 실제로 대글을 다신 분들과
마음으로 대글을 다신 모든 분들은
이제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 분들입니다.
행위의 강박이 아니라
내면의 해방, 자유, 기쁨, 평화를 향한 갈망이 일어나는 거지요.
어떤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잡히면,
마치 사이비 이단들에게 영혼을 저당잡힌 사람들처럼,
이런 갈망마저 마비된답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가 그걸 말하고 있지요.
대림절의 평화가 모든 분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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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3일 성탄의 신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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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008년 12월23일 성탄의 신비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는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10:40) 예수님은 야고보에게 좌우편을 줄 수 있는 권한이 자신에게 없다고 이르셨습니다. 하나님과 동일한 영적 능력이 있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건 조금 의아스럽습니다. 그 문장을 정확하게 읽으면 권한이 없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그 자리가 이미 결정된 것이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또는 그 자리는 그것에 적합한 사람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지 여기서 예수님...

12월22일 제자들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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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1일 잔과 세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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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008년 12월21일 잔과 세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10:38)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에게 묻습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사태가 갑자기 심각해졌습니다. 이 질문에는 예수님의 수난이 담겨 있습니다. 잔과 세례는 그 수난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빠 아...

12월20일 인식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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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008년 12월20일 인식의 한계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10:38) 우편과 좌편 자리를 달라고 요구하는 야고보와 요한을 향해서 예수님은 그들이 무엇을 구하는지도 모른 채 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에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신앙적인 열정이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인식입니다. 그것은 곧 신앙적 앎, 신앙적 이해를 가리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도 이해는 매우 중요합...

12월19일 자리(4) [9]

  • 2008-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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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008년 12월19일 자리(4)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10:37) 신자들이 착각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본인들이 주님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어떤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라도 교회 일에 몰입합니다. 그것으로 기쁨을 얻는다면 다행이겠지만, 오히려 불편할 때가 많을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공허할 겁니다. 그래도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악순환이지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12월18일 자리(3) [11]

  • 2008-12-17
  • 조회 수 1974

||0||02008년 12월18일 자리(3)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10:37) 어제 저는 신자들이 교회의 과도한 일에 지쳐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열정이 강해서 일을 많이 하겠다는 거야 제삼자가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의 영성을 훼손하는 길이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구원의 기쁨으로 충성 봉사하는 게 왜 영성의 훼손이냐, 하고 생각할 분들도 있겠지요. 그건 착각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길들여진 겁니다. 영성의 중심에 들어간 사람은, 그 맛을 아는 사람은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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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008년 12월13일 예루살렘을 향하여(3)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10:34) 수난을 묘사하는 단어의 강도가 에스카레이트 방식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능욕, 침, 채찍질, 죽임이라고요.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면서도 일인칭이 아니라 삼인칭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부활에 관한 문장은 더 두드러집니다. “그는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 이는 곧 수난, 죽음, 부활이 초기 기독교인들의 가장 기본적인 신앙이었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도신경의 내용에 대해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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