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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10월19일 자색 옷(4) [1]

  • 2009-10-18
  • 조회 수 2220

2009년 10월19일 자색 옷(4)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15:19) 군인들의 조롱이 계속됩니다.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했습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이 갈대는 군인들이 예수님의 손에 들려준 것이었습니다.(마 27:29) 그것은 왕을 상징하는 지팡이였습니다. 군인들이 예수님에게 가한 조롱은 아주 극적입니다. 갈대로 머리를 쳤습니다. 누가 감히 왕의 머리를 왕의 지팡이로 칠 수 있습니까? 보통 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침을 뱉는다는 건 상대방을 인간 취급...

“이제 우리가 강의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2]

  • 2010-03-10
  • 조회 수 2220

“이제 우리가 강의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대는 4대강 사업 중단을 위한 가톨릭 사제들의 기자 회견이 3월8일 오후 2시에 명동성당 들머리계단에서 열렸다는 뉴스를 보셨소? 나는 보았소.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 연대’가 주관한 선언과 실천에 참여한 사제들의 숫자가 물경 1천 1백 명이 넘는데, 그중에는 교구를 책임지고 있는 주교 5명도 포함되었다 하오. 노회장이 참가한 경우요. 4대강 사업 중단을 위한 일에는 개신교회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긴 하지만 가톨릭교회처럼 조직적이거나 광범위하지는 못하오. 지금...

근본주의(3)

  • 2010-07-08
  • 조회 수 2220

기독교 근본주의가 역사에 등장하게 된 배경은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이요.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감정, 교육, 윤리 등에 강조점을 두고 기독교를 변증한 신학운동이오. 그 이전까지 교회는 유럽 사회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소. 종교의 차원만이 아니라 학문, 정치, 예술 부분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권위가 인정받고 있었소. 17-18세기의 근대주의를 거치면서 교회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게 되었소. 이제 교회는 합리성과 계몽, 인문정신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소. 그런 흐름을 가리켜서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하오. ...

12월11일 집으로 모인 무리

  • 2006-12-11
  • 조회 수 2222

2006년 12월11일 집으로 모인 무리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막 3:20) 3장19절은 세 문장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집에 들어갔다. 무리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식사할 겨를도 없었다. 이 집은 물론 가버나움에 있는 어떤 사람의 집입니다. 베드로의 집일 수도 있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제자의 집일 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집에 들어가신 이유는 식사와 휴식이었겠지요.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밖에서의 일이 끝나면 당연히 집에 들어가실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문...

3월24일 바람을 꾸짖다!

  • 2007-03-24
  • 조회 수 2222

2007년 3월24일 바람을 꾸짖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막 4:39) 오늘 본문을 정직하게 읽는다면 황당하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자연현상까지 굴복시키는 일이 예수님에게 과연 가능했을까요? 그런 일들은 주로 마술사들이 하는 겁니다. 삼국지에 보면 제갈공명이 적벽대전에서 바람을 몰고 왔습니다. 그건 그가 직접 바람을 일으킨 게 아니라 과학적 통계를 통해서 그 시각에 바람이 불어올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예측한 것뿐이었...

저는 누굽니까, 11월15일(목) [3] [1]

  • 2012-11-15
  • 조회 수 2222

주님, 저는 누굽니까? 저는 목사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친구로, 선생으로, 글쟁이로 삽니다. 그런 역할이 바로 저 자신은 아닙니다. 그런 역할은 늘 변합니다. 잠시 머물다가 떠나야 할 자리입니다. 그런 것으로 저를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 그리고 중년을 지나 이제 장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곧 노년이 올 것입니다. 어느 시절의 제가 바로 저 자신입니까? 저는 계속 변했습니다. 생김새도 변하고 신체적인 능력도 변했습니다. 지식과 감정과 세계관도 변했습니다. 제가 누군지 알 길이 없습니다....

팔복(25) 소외된 자들

  • 2013-07-20
  • 조회 수 2222

팔복은 이사야의 메시야니즘이라 할 수 있는 사 61-3절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메시야)가 해야 할 일의 목록이 나온다.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회당에서 이 구절을 그대로 인용해서 읽으셨다(눅 4:18). 여기에 열거된 이들과 팔복에 열거된 이들의 상황이 비슷하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서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내서 당신이...

예수와 천사들, 5월1일

  • 2006-05-01
  • 조회 수 2224

2006년 5월1일 예수와 천사들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막 1:13) 마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이 시험받는 마지막 장면은 예수님을 돕는 천사들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도왔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자세한 내막은 말할 수 없지만 예수님도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만은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짐승들이 예수님과 함께 했던 것처럼, 이제 천사들이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서 예수님을 도왔습니다. 성서는 천사에 대해서 자주 언급합니다. 그것만...

헤셸(12) [4]

  • 2014-03-06
  • 조회 수 2225

하나님을 가리키는 개념들은 사람의 의식(意識) 범위를 넘어선다. 그분을 말하는 언어들은 영혼의 능력을 넘어서며, 영혼의 능력을 넘고 또 넘어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강한 헌신을 요구한다.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위험한 일로서 의식 자체를 넘어서는 힘이다. 그분을 말하는 것은 거의 자신 밖으로 나간다는 뜻이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얼마나 진지한 행동인지를 안다. 왜냐하면 기도의 언어는 도구가 아니라 그 언어가 가리키는 대상에 대한 성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언어가 정신보다 위대하...

누가복음 톺아 읽기 123 [2]

  • 2021-04-22
  • 조회 수 2225

대구 성서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123, 눅 4:34 https://youtu.be/Qaqoo7Tdy14

2월11일 하나님을 믿으라 [4]

  • 2009-02-10
  • 조회 수 2226

2009년 2월11일 하나님을 믿으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11:22) 무화과나무가 말랐다는 베드로의 보고를 받은 예수님은 뜬금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아침에 저주를 받은 무화과나무가 저녁에 말랐다는 사실과 하나님을 믿는 것과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씀일까요? 그 대답은 어제의 묵상에서 이미 주어졌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믿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은 말라버린 무화과나무와 다...

8월17일 “귀신아!”(5) [9]

  • 2008-08-16
  • 조회 수 2226

2008년 8월17일 “귀신아!”(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막 9:25) 우리는 성서가 왜 귀신을 거론하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악한 힘을 존재론적 차원에서 접근했다는 게 첫 번째 대답입니다. 이 대답은 제가 앞에서 이미 지적한 것이지만, 여기서 다시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야겠습니다. 이런 설명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듣는 사람들이 일단 여기에 연루된 개념들을 알고 있...

바벨론에서의 고통스런 기억

  • 2011-06-22
  • 조회 수 2226

아래는 수요성경공부 강의 초안이오. 결론 부분이 어렵소. 원수 증오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요. 시편기자는 직접 원수를 갚기 위해서 계획을 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탄원을 드렸다는 사실이 여기서 중요하오. 자기가 직접 원수를 갚지 않는 이런 신앙 태도로 원수 갚기의 악순환이 끊어지는 게 아닌가 싶소. 하여튼 이 문제는 우리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하오. 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2011년 6월22일, 저녁 8시, 시편 137편 바벨론에서의 고통스런 기억 구약성경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건은 기원전...

5월28일 달리다굼

  • 2007-05-28
  • 조회 수 2227

2007년 5월28일 달리다굼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막 5:41) 비웃는 사람들을 내보시고 아이의 부모와 제자 몇 명을 데리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 이를 번역하면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상황을 오늘 만나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요? 저의 입장에서도 이건 말이 안 된다고 펄쩍 뛰었을 겁니다. 죽어 누워있는 아이에게 일어나라고 소...

원당일기(4) [3]

  • 2011-04-30
  • 조회 수 2227

오늘 오후에 하양 동네에서 가까운 화원에 들렸소. 집사람이 원당 농가에 심을 영산홍 묘목이 더 필요하다는 거요. 원당 농가는 얼마 전 묘목과 꽃을 심은 지금도 어설프기는 매한가지요. 특히 평토하느라 언덕을 절개했는데, 그 부분이 마치 3도 화상을 입은 것처럼 처참하기 짝이 없소. 그 부분을 조금이라고 가리려고 영산홍을 심어야겠다는 거요. 그래봤자 크게 달라질 것은 없소. 집 옆에 지천으로 널린 대나무를 옮겨 심는 게 훨씬 낫소. 사실 나는 영산홍보다는 다른 걸 마음에 두고 화원에 들어갔소. 모과나무요. 묘목도 있지만 ...

주기도(22)

  • 2010-08-10
  • 조회 수 2229

-당신의 나라(2)- 아래는 특강 발제문의 두 번째 인용이오. 예수 사건과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설명이오. 이런 설명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데 무슨 소용이 있는지, 혹시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오? 그 대답은 이 자리에서 하지 않겠소. 언젠가는 저저로 알게 될 것이라 믿소. 예수님의 축귀와 치유 사건도 하나님 나라와 직결된다. 축귀와 치유는 바로 하나님 나라의 속성인 해방과 자유를 가리킨다. 인간을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현대의 사회과학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10월5일 안식일 (1)

  • 2006-10-05
  • 조회 수 2230

2006년 10월5일 안식일 (1)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막 2:24)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행한 사소한 행동을 문제 삼아 이렇게 트집을 잡았습니다. 왜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가? 남의 밭에서 밀 이삭을 잘라먹는 행위는 구약성서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행동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밀 이삭을 자른 제자들의 행위가 안식일 법이 금지한 노동 행위라는 것입니다. 이것...

교회의 공공성(7), 1월15일(화)

  • 2013-01-16
  • 조회 수 2230

교회의 공공성에 대한 앞의 글을 다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신학적으로 교회의 공공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교회 내부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 외부의 문제다. 교회는 내부적으로 하나다. 개교회를 뛰어넘어 보편적인 교회를 지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교구 제도가 정착되어야 한다. 이게 한국교회에서는 요원한 일이다. 형식적으로 노회나 총회가 있긴 하지만 교회 일치 정신은 전혀 자리를 잡지 못한다. 교회의 정치적인 성격만 확대된다. 총회장이나 총무 같은 교권에만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서 개...

10월8일 눈의 범죄 [11]

  • 2008-10-07
  • 조회 수 2231

2008년 10월8일 눈의 범죄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막 9:47) 손의 범죄나 발의 범죄라는 표현과 마찬가지로 눈의 범죄도 역시 죄를 범한 인격의 구체성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손이나 발에 비해서 눈은 유혹에 훨씬 민감하다는 점에서 훨씬 유별나 보입니다. 죄와 연관해서 손이나 발은 수동적인 반해서 눈은 능동적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가 3장에 인류 최초의 범죄 행위가 등장합니다. 하와는 뱀의 유혹을 받습니다. 뱀은 에...

11월6일 생명과 법 (3)

  • 2006-11-06
  • 조회 수 2232

2006년 11월6일 생명과 법 (3)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막 3:5) 바리새인들의 마음이 완악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그들은 앞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일종의 법실증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안식일 법을 문자적으로 수호하는 것에만 모든 것의 무게를 놓는 신앙적 태도가 바로 완악한 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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