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4일 기도의 능력(2)

조회 수 2457 추천 수 11 2008.08.23 23:27:16
2008년 8월24일 기도의 능력(2)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한국교회가 기도 만능론에 빠졌다는 사실은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기도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는지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새벽에 드리는 기도를 잘 들어주신다는 논리도 있고, 릴레이식 기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돌리려는 생각도 있고, 안수 기도와 안찰 기도도 있으며, 철야기도회, 수능수험생을 위한 기도회 등등, 이루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전문적인 기도 꾼으로 행세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기도는 많이 드릴수록 좋은 아니냐, 하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 겁니다. 물론 기독교인이 기도를 드리지 않아도 좋다거나, 기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기도의 본질을 바르게 지키지 못하고 그것이 오용, 남용되는 것을 지적하는 중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 만능론으로 집약될 수 있다는 뜻이구요.

기도 만능론이 일으키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신학적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도 만능론이 결국 하나님의 초월성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기투사(self-projection)의 대상으로 제한시킵니다. 자신의 종교적 욕망을 해결해주어야 할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여기서는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에 기계적으로 응답해야 할 분인 것처럼 다루어집니다. 결국 기도 만능론은 하나님의 자유를 손상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자유’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인격적으로 반응하시는 분이시면서 동시에 초월해서 행위 하십니다. 마치 아이가 울지만 예방 주사를 놓아야 할 어머니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 너머에서 그분의 고유한 섭리로 통치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보기에 기도 만능론은 하나님의 자유를 제한하고, 인간의 욕망을 무절제하게 확대시킬 위험성이 높습니다.  

[레벨:1]머릿돌

2008.08.24 14:09:28

하나님의 자유 그리고 의지,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역사와 우주의 운행
하나님에 대하여 깊게 공부하고 생각해야만 될 이유가 여기에 있군요.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하면서 우리 사회에 무관심한 경우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여기에 기도를 강조하면서 말이죠.
촛불집회를 가지 말고 기도해라. 나라걱정하지 말고 기도해라. 등등
중언부언 기도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기억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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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08.24 23:19:39

머릿돌 님,
중요한 점을 지적하셨군요.
하나님의 섭리 신앙이 자칫 역사 허무주의로 빠질 위험성이 있습니다.
사회 참여는 반드시 신앙적인 차원이라기보다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마틴 루터 식으로 말해서
우리는 천국 시민이면서 동시에 지상 시민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참여한 역사와 사회가 하나님의 뜻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책임을 져야겠지요.
이 두 세계가 구별은 되나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는,
일종의 역설적 긴장 관계를 유지한다고 보아야겠지요.
이런 긴장에서 바른 선택을 하려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신학적으로 깊이 인식해야 하고,
이 세상을 사회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겠지요.
이것의 결합을 영적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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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30일 기도의 능력(8)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야겠군요. 기도의 능력이라는 건 아예 없는 걸까요? 기도의 능력이라는 것이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일 뿐이라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지난 2천년의 기독교 역사에서 어느 한 순간에도 기도를 소홀하게 취급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신앙인들, 신학자들, 영성가들, 신비주의자들, 그리고 설교자들은 모두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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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29일 기도의 능력(7)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기도에 대한 앞서의 묵상에서 기도에 대한 생각이 더 혼란스러워진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간질병을 고친 기도의 능력이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것이라 하더라도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면 바로 그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 하고 생각던 분들이 바로 그런 분들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신앙생활이 완전히 몸에 각인된 분들에게는 저의 설명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8월28일 기도의 능력(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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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28일 기도의 능력(6)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시다. 간질병 아이에 얽힌 이야기 끝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히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오늘 한국교회의 기도가 아주 선정적이고 기복적이고 이기적인 것으로 변질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 간질병 아이가 치유된 것이 기도의 능력이라는 오늘 본문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게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문제는 ...

8월27일 기도의 능력(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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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27일 기도의 능력(5)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앞에서 저는 가장 모범적인 기도는 ‘주기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에 대해서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우리가 이 주기도를 바르게 이해하기만 한다면 바리새인의 외식이나 이방인의 중언부언과는 전혀 다른 기도의 영성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주기도’를 해설하는 데만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이미 주기도문 해설을 책으로 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깊이 들어가지 말고 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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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26일 기도의 능력(4)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주님은 바리새인과 이방인들을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외식의 기도, 중언부언의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은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바리새인의 외식과 이방인의 중언부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기도 문제를 생각할 때도 역시 중요한 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

8월25일 기도의 능력(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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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25일 기도의 능력(3)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기도’에 관한 가장 중요한 성경구절은 ‘주기도’를 포함하고 있는 마태복음 6:5-15절이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이 구절이 지적하고 있는 기도의 잘못된 행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입니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의 전형인 외식하는 기도입니다. 이를 경계하신 주님은 골방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기도하라고 이르셨습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본다면 오늘 우리에게 관행이 ...

8월24일 기도의 능력(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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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24일 기도의 능력(2)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한국교회가 기도 만능론에 빠졌다는 사실은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기도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는지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새벽에 드리는 기도를 잘 들어주신다는 논리도 있고, 릴레이식 기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돌리려는 생각도 있고, 안수 기도와 안찰 기도도 있으며, 철야기도회, 수능수험생을 위한 기도회 등등, 이루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전문적인 기도 꾼으로 행세하는 이들...

8월23일 기도의 능력(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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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23일 기도의 능력(1)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공동번역은 위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기도하지 않고서는 그런 것을 쫓아낼 수 없다.’ 하고 대답하셨다.” 루터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기를, 이런 것은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다고 하셨다.” 모두 비슷한 뜻인데, 루터는 기도와 더불어 금식을 첨가했습니다. 그가 사용한 사본에 금식이 들어 있었겠지요. 그 사본은 금식이 강조되던 공동체에서 사용되던 것이었다고 ...

8월22일 제자들의 질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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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22일 제자들의 질문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막 9:28) 간질병 아이를 고친 후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집에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그 집이 어디에 있는 건지, 누구의 집인지는 성서기자가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건 관심의 대상이 아니니까요. 여러분들이 성서를 읽을 때 바로 그 관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서 이야기는 오직 예수에게만 포커스를 맞춥니다. 나머지 요소들은 희미한 배경으로 넘어가고 예수만이 클로즈업으로 처리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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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21일 예수의 손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막 9:27) 간질 발작이 끝난 뒤 죽은 듯이 쓰러져 있던 아이의 손을 예수님이 붙잡아 일으키시자, 그 아이가 일어섰다고 합니다. 손을 잡아 일으켰다면 당연히 예수님의 손이 그 아이의 손을 잡은 거겠지요. 아마 그 아이가 완전히 실신한 건 아닌가 봅니다. 그랬다면 예수님이 그 아이를 안아서 일으켜 세웠을 테니까요. 이런 건 별로 중요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또한 위 구절은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이 이야기의 마무리 부분에 대한 사실적 ...

8월20일 경련에 빠진 아이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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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20일 경련에 빠진 아이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막 9:26) 본문은 귀신이 나가는 순간에 간질병 아이가 경련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치 죽은 듯이 조용해졌습니다. 경련 현상은 이미 20절에도 나타났었습니다. 이렇게 추정해볼 수 있겠군요. 20절의 묘사는 간질 발작의 초기이고 26절은 마지막 순간입니다. 간질 증상의 전형적인 모습이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고대인들은 그걸 귀신 현상으로 본 거지요. 우리는 여기...

8월19일 “귀신아!”(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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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19일 “귀신아!”(7)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막 9:25) 이제 이 ‘귀신아!’라는 대목을 오늘로 끝내야겠습니다. 복음서 기자가 귀신 문제를 거론한 이유에 대한 앞서의 두 가지 대답이 우리의 실제 삶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짚는 것으로 정리하겠습니다. 1. 우리 기독교인들은 악의 존재론적 깊이를 보아야 합니다. 즉 악은 계몽과 교육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뜻...

8월18일 “귀신아!”(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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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18일 “귀신아!”(6)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막 9:25) 복음서 기자들이 왜 귀신을 거론했는지에 대한 두 번째 대답은 악한 힘의 존재론적 깊이라 할 귀신을 제어하는 분이 바로 예수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라고 한다면 그는 당연히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귀신을 제어할 수 있어야만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런 문제들에 연루된 기독교 신앙...

8월17일 “귀신아!”(5) [9]

  • 2008-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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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17일 “귀신아!”(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막 9:25) 우리는 성서가 왜 귀신을 거론하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악한 힘을 존재론적 차원에서 접근했다는 게 첫 번째 대답입니다. 이 대답은 제가 앞에서 이미 지적한 것이지만, 여기서 다시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야겠습니다. 이런 설명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듣는 사람들이 일단 여기에 연루된 개념들을 알고 있...

8월16일 “귀신아!”(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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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16일 “귀신아!”(4)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막 9:25) 어떤 분들은 오늘날에도 귀신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근거로 귀신에 대한 성서의 진술을 실증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직접 그런 현상을 목격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확실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한국교회 안에 적지 않습니다. 부흥회 때 그런 일들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부흥강사는 귀신 들...

8월15일 “귀신아!”(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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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15일 “귀신아!”(3)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막 9:25) 위 구절의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십시오. 한 남자 아이가 땅에 구르면서 거품을 흘리고 있었고, 그 옆에서 아버지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무슨 큰 구경이라도 난듯이 몰려들었습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님이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하고 명령을 내리셨다고 보도합니다. 이게 과연 사실일까요,...

8월14일 “귀신아!”(2) [7]

  • 2008-08-13
  • 조회 수 2704

2008년 8월14일 “귀신아!”(2)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막 9:25) ‘마가복음 묵상’의 앞부분 어딘가에서 저는 성서를 바르게 읽고 이해하려면 성서가 기록되던 당시의 눈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관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그들은 바람을 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한 현실(reality)로 느낄 수 있는 바람이 곧 생명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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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13일 “귀신아!”(1)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막 9:25) 예수님은 간질병 아이를 향해서, 더 정확하게는 그 아이를 병들게 한 귀신을 향해서 이렇게 꾸짖으셨다고 합니다.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이 표현만 본다면 아이의 병이 간질과는 달라 보입니다. 경련을 일으키면서 땅에 구르고 거품을 흘렸다는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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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12일 “믿습니다!”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막 9:24) 간질병 아이의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반복적으로 ‘믿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간질병을 고치지 못했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여” 하고 책망하셨고, 바로 앞 구절인 23절에서는 “믿는 자에게는 ...”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제자들의 무능력을 강조하려고 믿음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이것을 마치 믿음만 있으면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다는 듯...

8월11일 믿음의 능력(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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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11일 믿음의 능력(6)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어떤 분들은 저를 향해서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위 구절이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이냐 하고 조금 불편하게 생각하실지 모르겠군요. 제가 드린 말씀이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의 능력이 우리와 단절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믿음에 의존해서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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