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3일 제자들이 본 것

조회 수 1752 추천 수 13 2008.07.13 09:42:34
2008년 7월13일 제자들이 본 것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막 9:9)

마가복음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예수님은 제자들이 본 것을 발설하지 말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들이 본 것은 앞에서 이미 설명되었습니다. 예수의 옷에 광채가 났고, 모세와 엘리아가 등장했으며, 구름 속에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소리가 났습니다. 일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어떤 현상인데, 그것은 바로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것입니다. 그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것의 암시가 광채를 비롯한 특이한 현상으로, 즉 고대인들이 알고 있는 세계관의 방식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말하자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존재의 신비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몸으로 이 세상에서 살았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일상의 차원에서 증명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교리인 성육신(incarnation)도 역시 우리의 오감으로 경험되는 일상의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의 인식은 거의 일상의 틀에서 작동되기 때문에 이러한 신앙적 신비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완전히 비이성적 열광주의에 빠지든지, 아니면 냉소적 불가지론에 빠지고 맙니다.
예를 들어야겠군요. <카핑 베토벤>에서 베토벤은 자기의 머리 안에 온갖 소리가 가득하다고 소리칩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못 듣는 소리를 듣고 본 사람이었습니다. 예술가들은 억지로 작곡하는 게 아닙니다. 소리가 존재론적 차원에서 예술가를 끌고 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작곡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일상이 아니라 음악의 세계에서 무엇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에게서 신성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온전히 계시되었다는 인식입니다.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는 부활로 증명이 되었습니다만, 최종적으로는 종말에 증명되겠지요. 우리는 그 사실에 현재와 미래의 운명을 맡긴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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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4]저별과 달

2008.07.13 23:13:51

변화산 예수님의 모습에서 실제로 영광스런 광채를 제자들은 직접 보지 않았을까요?
고대인들이 알고 있는 세계관의 방식으로 나타난게 아니구요..

주님의 영광스런 광채를 실제로 제자들은 보았기 때문에 후에 각자의 자리에서
순교의 길을 기꺼이 가지 않았나 싶어서요..

[레벨:19]이선영

2008.10.13 21:57:48

목사님!
여기 묵상과는 좀 다른 질문인 것 같은데요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에게서 신성을 경험했다는 것이
십자가 사건의 해석과도 연관이 있는 것인가요?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하나님으로 고백했다고 하는게
갑자기 익숙치 않게 다가와서요.
요즘으로 치면 지하철이나 기차역에서 볼 수 있는 노숙자들을 대하는 꺼림칙함이었을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하나님으로 경험되었다는 게,,
놀랍기만합니다.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는 부활로 증명이 되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는데
예수가 그리스도다라는 고백인가요? 생명의 완성?
어떻게 이런일이 가능한지,,
예수의 제자들이 경험한 예수의 신성은 무엇인지,,
초기기독교 공동체에서 그리스도예수는 과연 어떻게 경험되었는지
그 경험이 어떤 걸까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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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10.13 23:26:08

이선영 청년,
생각할수록 기특하군.
어째 저런 생각을 다 한단 말이오.
남친 있소?
저런 이야기를 남친과 하기 어려울 거요.
연애 할 때는 저런 얘기 하지 말도록 하시오.
지금 한꺼번에 모든 걸 설명할 수가 없네.
풀어야 할 그 출발점만 말함세.
제자들의 예수 그리스도 경험은 어느 한 순간에 갑자기 일어난 게 아니라
아주 점진적인 과정이 있었다네.
예수의 공생애 중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지.
그런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 출발이 바로 부활이네.
여기서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도대체 제자들의 예수 부활 경험이 무엇이냐 하는 거네.
그걸 이해하지 않으면
기독교의 모든 가르침이 혼란스러워지네.
천천히 길을 가보게나.
아자.

[레벨:19]이선영

2008.10.14 18:59:08

연애 할 때는 저런 얘기 하지 말도록 하시오.하는
목사님의 댓글에 왠지 자꾸 웃음이 나와요 ㅋㅋ
친구에게 이런 얘길하면 약 먹을 시간 됫네 할거같은데요 ㅋ
이런 글과 마음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구성서아카데미밖에는 털어 놓을 곳이 없거든요
어떤 때는 나 이거 좀 이상한 별종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가끔 이런 생각들로 내가 너무 무겁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나이에 걸 맞게 좀 즐기면서 가볍게 생각하고 살지 못하나 싶기도하고요
이대로도 크게 나쁘진 않은 것 같으니
젊음을 이런 방식으로 즐길 수도 있구나 싶어요
쉬엄쉬엄, 천천히 길을 가보아야겠어요
감사해요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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