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지는 하늘, 4월15일

조회 수 4452 추천 수 31 2006.04.15 23:56:51
2006년 4월15일 갈라지는 하늘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0)

마가복음의 보도에 따르면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는 순간에 나타난 특별한 현상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하늘이 갈라진 것이며, 둘째는 비둘기 같은 성령이 내려왔으며, 셋째는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첫 번 현상입니다.
예수님이 요단강 물속에 잠겼다가 올라오는 순간에 하늘이 갈라졌다고 합니다. 도대체 하늘이 어떻게 갈라졌다는 것일까요? 하늘이 갈라질 수 있나요? 간혹 먹구름 사이가 열리고 햇살이 내리비출 때 하늘이 갈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긴 하지만 오늘 마가복음 기자가 그런 물리적인 현상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이 갈라졌다는 말을 이해하려면 고대인들이 하늘을 무엇으로 생각했는지에 대해서 먼저 짚어야 합니다. 창조설화에 의하면 하나님은 둘째 날에 물과 물을 나누어서 하늘을 만드셨습니다. 물과 물 사이가 궁창, 곧 하늘입니다. 이런 논리라면 하늘이 생기기 전의 세상은 온통 물이었다는 것이며, 하늘 너머에 여전히 물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노아 홍수 때 하늘의 창이 열리고 그 물이 쏟아졌습니다. 고대인들은 하늘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였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진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약성서 시대의 사람들은 하늘을 생명이 숨어있는 곳으로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이 당연히 하늘에 계신 분이고, 예수님은 승천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생명의 신비와 그들이 도달할 수 없는 하늘의 신비가 일치한 것이죠.
오늘 첨단의 생물학과 물리학을 자랑하는 현대인들의 눈에 고대인들의 생각이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보다 앞선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생명의 신비에 자신을 맡기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영적인 사람들입니다. 생명의 신비를 파괴하는 오늘 우리의 삶은 그저 생명의 정보에 치우칠 뿐이지 생명의 신비에는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물속에서 나올 때 하늘이 갈라졌다는 건 바로 예수님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의미입니다. 생명의 신비가 곧 예수님에 의해서 열렸다는 것이겠지요. 예수님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은 말 그대로 개천(開天)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그 개천을 경험하고 거기에 우리의 운명을 맡겼습니다. 그 개천은 오늘 이 시간, 바로 우리의 일상에서도 일어나야 합니다. 생명이 열리는 그런 일들 말입니다.

주님, 당신은 길과 진리와 생명이십니다. 당신을 통해서 생명을 얻은 줄로 믿습니다. 아멘.

[레벨:18]은나라

2016.11.04 23:45:47

그동안 그냥 신앙했습니다.

가르쳐주면 그냥 받아들였습니다.

어느친구의 질문을 통해 신앙의 질문들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기초부터 공부하다보니, 그동안 그냥 믿었던 것들에 작은 질문들이 생깁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때 어떤일이 있었길래..그들은 하늘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을까? 하구요.

물론 예수를 통해 내가 생명을 얻음에는 의심이 없지만요.

[레벨:18]은나라

2017.02.07 10:05:57

다시 읽어보니,

"예수님이 물속에서 나올때 하늘이 열린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을 설명을 하기위한 메타포이군요?ㅎ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7.02.07 21:51:48

예, 성경은 시(詩)로 읽어야 합니다.

종교 언어로 진리를 전하는 글쓰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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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따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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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9일 예수 따름 바디매오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은 그가 즉시 예수를 따른 것이다. 예수가 누군지를 알아본 사람에게서는 그런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신앙은 취미생활처럼 안 해도 되지만 하면 더 좋은 대안적인 것이 아니다. 자신의 영혼 전체와 관련된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실존적인 결단이 뒤따른다. 이런 일은 바디매오나 당시 제자들만이 아니라 지난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일이다. 예수를 따른다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의 제자가 되어 그의 뜻에 순종해서 살아가는 ...

예수 어록(342) 요 15:17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 2020-05-29
  • 조회 수 1113

예수 어록(342) 요 15: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을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서로 사랑하는 말이 예수의 고별 연설을 다루는 이 대목에서 반복해서 나온다. 이 말은 듣기에 따라서 상투적으로 들린다. 요즘도 “성도 여러분,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 사랑의 열매를 통해서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라는 식의 발언을 종종 듣는다. 이런 발언은 아무리 상투적인 발언이라고 해도 우리의 삶과 신앙을 살리는 능력이기에 계속 귀를 기울이면서 삶의 현실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랑은 우리가 운전면허...

예수 어록(023) 요 2:16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3)

  • 2019-01-03
  • 조회 수 1113

예수 어록(023) 요 2:16 “이것을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3) 하나님을 가장 친근하고 가장 신뢰할만한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이야말로 신구약성경의 요체다. 우리가 말로는 이런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다. 어떤 이들은 기도와 예배와 말씀과 봉사를 통해서 일단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방식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예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누구에게나 존경받을 정도로 ...

누가복음 읽기 00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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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성서 아카데미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읽기』 003, 눅 1:5-7 https://youtu.be/yBaV7uGaUx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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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89) 요 18: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예수는 발언을 이어간다. “왜 내게 묻느냐?” “내 말을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안나스가 묻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이 수하에 있는 이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확실한지 확인하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의 발언에서 실수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추정할 뿐이지 확실한 이유는 우리가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안나스의 질문이 요식 행위라는 것이다. 안나스로 대표되는 산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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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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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내 삶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야말로 죄로부터 해방되는 첫걸음이다. 하나님의 선물은 그것 자체로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라서 내가 거기에 어떤 것을 더 보탤 필요가 전혀 없다. 나의 노력으로 어떤 것을 더 보태야만 완성될 것 같다는 염려가 바로 죄다. 죄로부터의 해방은 자신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선한지를 아는 데서 시작된다. 그걸 모르면 평생 자신이 보충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고 산다. 보충해봐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불안해지며, 그 불안을 해소하려고 다시 자신의 나머지 ...

목사 구원(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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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목사의 경우에 죄는 목회 업적의 강요와 유혹에 굴복당하는 것이다. 구원이 죄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한다면 목사 구원은 목회 업적의 강요와 유혹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목회 업적의 강요와 유혹은 목사에게 숙명적이다. 여기에는 외부적인 요인도 있고, 내부적인 요인도 있다. 외부적인 요인은 한국교회 구조다. 목사가 순전히 목회 업적으로만 평가되는 구조다. 목회 업적을 이루지 못하면 목사와 가족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다. 내부적인 요인은 목사 자신이 목회의 업적에 매달리는 것이다. 자신이 담임 목사로 있는 교회...

예수 어록(120) 요 6:39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 2019-05-25
  • 조회 수 1111

예수 어록(120) 요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예수를 보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39절과 40절에 각각 나온다. 비슷한 내용이 문구만 바뀌었다. ‘내게 주신 자’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한 자다. 하나님의 아들에게만 나타날 수 있는 생명 사건이 예수에게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식한 자다. 예수의 제자들을 비롯한 초기 기독교인들을 가리킨다. 그들을 ‘내게 주신 자’라고 한 이유는 예수에게서 발생한 하나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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