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일 옳음의 문제 (2)

조회 수 2417 추천 수 46 2006.11.01 07:45:33
2006년 11월1일 옳음의 문제 (2)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막 3:4)

어제 함께 나눈 루터 이야기를 조금 더 하겠습니다. 루터 앞에는 로마 교황청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1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교황청과 맞짱을 뜰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떤 국가도, 어떤 철학도, 어떤 이념도 없었습니다. 갈릴레오도 역시 자기의 소신을 표면적으로는 꺾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보면 그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루터는 진리의 준거로 자타가 인정하던 로마 교황청을 향해서 공개적으로 “당신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외쳤습니다. 그 용기는 그가 옳음의 근거를 종교체제와 구분해서 보는 데서 나왔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안식일과 옳음을 일치한 것으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 당시 안식일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체제나 제도, 형식은 쉽게 진리를 거스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부단히 그것을 구별해서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레드 콤플렉스에 빠져 있는 분들을 보면 연민을 느낍니다. 그들은 자본주의는 선이고 공산주의는 악이라는 구도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들의 역사경험이 그렇게 만들었겠지만, 안타까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공산주의가 살리기도 하며, 자본주의가 생명을 죽이기도 하고 공산주의가 생명을 죽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명을 정치 및 경제 이데올로기 자체와 구분해서 보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정치체제가 우월하다면 우리에게 선과 생명이 일어나도록 힘쓰면 됩니다. 우리 기독교가 진리라고 한다면 우리에게서 선과 생명이 일어나도록 힘쓰면 됩니다. 안식일이라는 종교형식이 진리가 아니라 그것이 선과 생명을 살려내기 때문에 진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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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일 “여기” [2]

  • 2008-07-01
  • 조회 수 1933

2008년 7월2일 “여기”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막 9:4) 오늘 본문에도 베드로의 성격이 여지없이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말씀드렸습니다. 그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여기가 좋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서 세 채의 초막집을 짓겠다는 것입니다. ‘여기’는 천상적인 장소를 가리킵니다. 그곳에서는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 메커니즘이 허물어집...

7월1일 엘리야와 모세 [3]

  • 2008-06-30
  • 조회 수 3229

2008년 7월1일 엘리야와 모세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막 9:3) 예수님의 변형 순간에 함께 했다는 엘리야와 모세는 몇 가지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모두 산에서 하나님 경험을 했습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둘째, 그들은 모두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엘리야의 승천 기사는 아주 분명하게(왕하 2:11) 기록되었지만, 모세의 승천은 유대교 이외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셋째,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

6월30일 광채 [4]

  • 2008-06-29
  • 조회 수 2071

2008년 6월30일 광채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막 9:3)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의 변형을 광채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광채는 신적인 영광에 대한 문학적 서술입니다. 출애굽기 34:29의 보도에 따르면 모세가 십계명을 새긴 두 돌 판을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올 때 얼굴 피부에 광채가 가득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와 대화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자기를 보려고 하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서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마리아가 예수님이 묻...

6월29일 변화산에 올라 [2]

  • 2008-06-28
  • 조회 수 1909

2008년 6월29일 변화산에 올라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막 9:2) 마가복음 기자는 앞에서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언급한 뒤에 이제 예수님의 변형 사건을 보도합니다. ‘엿새 후에’라는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엿새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변형 사건이 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이겠지요. 일단 본문을 천천히 따라가겠습니다. 예수님은 세 명의 제자들과 함...

6월28일 ‘어록’6-7 [2]

  • 200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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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28일 ‘어록’6-7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 (9:1)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볼 자도 있다는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 주제를 잘 정리만 하면 신학 석사 학위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에게 일어난 구원 사건과 종말론적 세계 완성을 종합적으로 다뤄야 할 테니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짧은 묵상의 주제로만 접근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 진술이 기독론적인 ...

6월27일 ‘어록’6-6 [1]

  • 2008-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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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27일 ‘어록’6-6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 (9:1) 본문은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한다고 합니다. 권능은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그 어떤 방식으로도 막을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끌어내거나 생산해내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납니다. 우리는 그것을 놀라움으로 바라볼 뿐이지요. 이런 권능을 우리가 무엇에 비교할 수...

6월26일 ‘어록’6-5

  • 2008-06-25
  • 조회 수 1654

2008년 6월26일 ‘어록’6-5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 (9:1) 어제 저는 주님의 재림 사건을 만화처럼 그릴 수는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종말에 완성될 그 생명을 지금 우리는 그 어떤 상상력으로도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온다는 것만은 성서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사실이며, 그 때가 바로 주님이 재림하는 때라는 것도 분명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재림의 주님이 초림의 주님...

6월25일 ‘어록’6-4

  • 2008-06-24
  • 조회 수 1342

2008년 6월25일 ‘어록’6-4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 (9:1) 예수의 재림은 우리의 머릿속에 아주 분명한 그림으로 그려지지만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별로 그렇지 못합니다. 이런 구도를 단순화한다면, 전자는 실증적이고 후자는 관념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증과 관념은 어떤 현실(reality)에 접근하는 전혀 다른 방식이래서 그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기독교 신앙은 바로 그 긴장 가운데 자리...

6월24일 ‘어록’6-3 [3]

  • 200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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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24일 ‘어록’6-3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 (9:1) 위 구절은 예수님의 재림을 직접적으로가 아니라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한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은 하나라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이 두 개념이 무조건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 일단 표면적으로 볼 때 재림 표상은 역사적 예수가 똑같은 형태로 이 땅에 다시 ...

6월23일 ‘어록’6-2 [2]

  • 2008-06-22
  • 조회 수 1640

2008년 6월23일 ‘어록’6-2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 (9:1) 1992년의 일로 기억됩니다만, 한국교회만이 아니라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아주 씁쓸한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일명 다미선교회 사건입니다. ‘다미’는 ‘다가올 미래’의 이니셜입니다. 그 낱말 자체는 기독교의 본질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문제는 다미선교회의 종말론 이해가 미숙하다는 것입니다. 미숙할 뿐만 아니라 대중성에 편승...

6월22일 ‘어록’6-1 [3]

  • 2008-06-21
  • 조회 수 1979

2008년 6월22일 ‘어록’6-1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 (9:1) 이틀 전의 묵상에서 저는 위의 본문을 잠시 언급했습니다. 제자들이 살아있을 때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이라는 표현이 바로 바로 예수님의 재림을 가리키는 걸까요? 일단 바로 앞 절과 연결해서 본다면 그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6월21일 ‘어록’5-9 [4]

  • 2008-06-21
  • 조회 수 1500

2008년 6월21일 ‘어록’5-9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 8:38) 예수의 재림이 곧 세계 완성이라는 어제의 묵상을 조금 더 보충해서 설명해야겠습니다. 여기서 일단 키워드는 ‘세계완성’입니다. 도대체 세계가 완성된다니, 그게 무엇일까요? 우리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이 세상을 완성된 것으로, 또는 완전한 것으로, 아니면 대단히 뛰어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세상을 잘 이용하면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도...

6월20일 ‘어록’5-8

  • 2008-06-19
  • 조회 수 1424

2008년 6월20일 ‘어록’5-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 8:38) 예수님은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온다.”는 것은 물론 재림을 가리킵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런 재림신앙을 근본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살아있을 때 재림이 이루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막 9:1) 재림이 지연되면서 초기 기독교 내부에서 어떤 혼란이 일어나기도 ...

6월19일 ‘어록’5-7 [4]

  • 2008-06-18
  • 조회 수 1906

2008년 6월19일 ‘어록’5-7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 8:37)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온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우선 고대인들이 왜 천사를 생각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기독교 화가들의 그림에도 천사가 자주 등장합니다. 라파엘의 천사 상이 저에게는 아주 인상적입니다. 한 손을 턱을 괴고 하늘을 쳐다보는 천사의 그림이 저의 집에 있는데, 그걸 볼 때마다 라파엘에게는 하늘에 대해 관심이 참으로 많았...

6월18일 ‘어록’5-6 [2]

  • 2008-06-17
  • 조회 수 1486

2008년 6월18일 ‘어록’5-6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 8:37) 인자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마지막 심판에 관한 이야기는 앞서의 언급으로 접고,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라는 말씀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영광과 거룩한 천사는 사실 심판과 연관되는 용어라는 점에서 심판 개념의 보충 설명이라고 해도 좋겠군요. 아버지의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킵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

6월17일 ‘어록’5-5 [2]

  • 2008-06-16
  • 조회 수 1415

2008년 6월17일 ‘어록’5-5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 8:37) 기독교 신앙의 토대가 ‘생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또는 의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다는 말은 하지만 그 생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 신앙을 추상적으로만 접근한다는 데에 있겠지요. 구원도 결국 죽어서 천당 가는 정도로만 받...

6월16일 ‘어록’5-4

  • 2008-06-15
  • 조회 수 1291

2008년 6월16일 ‘어록’5-4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 8:37) 한국교회에는 심판자라는 단어에 대한 오해가 적지 않습니다. 마지막 심판자이신 예수님을 마치 염라대왕쯤으로 생각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에 태만한 자들을 유황불이 뜨겁게 타고 있는 지옥으로 보내는 것처럼 겁을 주기도 합니다. 성서에는 그런 그림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모두 종교적 메타포이지 실체를 말...

6월15일 ‘어록’5-3 [6]

  • 2008-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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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15일 ‘어록’5-3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 8:37) 어제 묵상의 마지막 문장을 다시 오늘 묵상의 말머리로 삼아야겠습니다. “심판당한 분을 심판자로 믿으니 말입니다.” 이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런 문장이 저의 독창적인 생각인지, 아니면 어디서 읽은 게 무의식적으로 기억이 난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심판 ...

6월14일 ‘어록’5-2

  • 2008-06-13
  • 조회 수 1407

2008년 6월14일 ‘어록’5-2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 8:37) 위의 어록에 나오는 단어인 “인자”, 즉 ‘사람의 아들’은 우리말로는 특별한 의미를 찾아볼 수는 없지만, 구약성서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묵시문학적 전승과 연관된 것인데, 이 세상(에온)의 마지막에 올 심판자를 가리킵니다. 인자가 단지 심판자라는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어떤 특별한 권능을 소유한 분이...

6월13일 ‘어록’5-1

  • 2008-06-12
  • 조회 수 1564

2008년 6월13일 ‘어록’5-1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 8:37) 위의 말씀을 앞에 둔 저는 지금 현기증이 날 것 같습니다. 저 말씀이 말하려는 세계를 저의 짧은 생각으로는 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설명하지 못할 것도 없지요.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신앙을 바르게 드러내지 못하면 결국 종말론적인 차원에서 크게 부끄러움을 당한다는 뜻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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