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6일 생명과 법 (3)

조회 수 2229 추천 수 37 2006.11.06 07:28:35
2006년 11월6일 생명과 법 (3)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막 3:5)

바리새인들의 마음이 완악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그들은 앞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일종의 법실증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안식일 법을 문자적으로 수호하는 것에만 모든 것의 무게를 놓는 신앙적 태도가 바로 완악한 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서가 말하는 완악성, 또는 죄는 반드시 파렴치한 행위나 부도덕한 행위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이런 차원에서만 본다면 바리새인은 완악한 사람들은 아니라 오히려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세련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서가 말하는 완악성은 훨씬 본질적인 것입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자기 절대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율법은 바로 자신들의 정체성 자체였습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그들은 율법의 절대적인 수호를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삼았습니다. 율법을 절대화한다는 것은 곧 자기를 절대화한다는 말이겠지요. 이런 자기 절대화 안에 빠지게 되면 모든 대상들이 상대화됩니다. 그들에게는 손 마른 사람도 역시 안식일 준수를 시험할 수 있는 대상으로만 보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율법의 절대화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제가 여기서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충분히 알고 있을 겁니다.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지식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고,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겠지요. 심지어 우리는 국가보안법을 절대화하거나 친미 사대주의를 절대화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는 생명을 거들떠보기 힘듭니다. 우리는 쉽게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완악한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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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새로운 현실

  • 2015-12-19
  • 조회 수 1122

12월19일 새로운 현실 설교 마지막 구절은 다음이다. ‘그 하나님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현실이 되었으니 우리가 어찌 기뻐하고 노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설교 제목을 다시 강조한 결론이었다. ‘새로운 현실’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을지 모른다는 염려가 있었지만, 과감하게 그대로 그 단어를 사용했다. 일상에서 익숙한 다른 마땅한 단어를 찾기 힘들었다. ‘하나님의 구원이 실현되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실현과 현실은 비슷해보여도 다르다. 현실, 또는 현실성은 실현보다 ...

예수 어록(089) 요 5:29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 2019-04-12
  • 조회 수 1122

예수 어록(089) 요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인자로서의 정체성과 아들로서의 정체성을 언급하다가 갑자기 선한 일을 행한 자와 악한 일을 행한 자라는 표현이 29절에 나온다. 인자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인 예수를 믿는 것과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의 관계가 명확하지는 않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늘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고,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늘 악한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 구절이 말하려는 핵심은 선한 일과 악한 일을 구분하려는 ...

예수 어록(023) 요 2:16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3)

  • 2019-01-03
  • 조회 수 1122

예수 어록(023) 요 2:16 “이것을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3) 하나님을 가장 친근하고 가장 신뢰할만한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이야말로 신구약성경의 요체다. 우리가 말로는 이런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다. 어떤 이들은 기도와 예배와 말씀과 봉사를 통해서 일단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방식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예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누구에게나 존경받을 정도로 ...

예수 어록(335) 요 15:10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 2020-05-20
  • 조회 수 1121

예수 어록(335) 요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 14:15절과 21절에 나오는 사랑과 계명의 관계가 여기 요 15:10절에 다시 나온다. 이에 앞서 요 13:34절에도 언급되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 구절만 본다면 “서로 사랑”이 새 계명이다. 원칙적으로만 본다면 계명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랑은 하나님의 존재 능력이고 계명은 우리가 거기에 기대서 실천...

베드로전서 강해(36) [2]

  • 2019-10-17
  • 조회 수 1121

만물의 마지막과 기도에 대해서 말한 뒤에 본문은 이제 구체적인 삶에 대해서 말한다. 서로 사랑하라(8절). 서로 원망 없이 대접하라(9). ‘원망 없이’가 중요하다. 이게 쉽지 않다. 원망이 나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10절에서 은사를 말한다. 은사론은 고전 12장에 자세하게 나온다. 직책에 따른 은사가 있고, 기능에 따른 은사가 있다. 은사론에는 몇 가지 개념이 따른다. 첫째, 은사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 둘째, 모든 은사는 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셋째, 은사의 독립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넷째, 은사의 목표는 섬김과 봉사다. ...

예수 어록(100) 요 5:40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 2019-04-27
  • 조회 수 1121

예수 어록(100) 요 5: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도대체 ‘영원한 생명’은 무엇인가? 아니 ‘영원’은 무엇인가? 우리는 아직 영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아마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할 것이다. 아니 세상이 끝나도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다음과 같은 정도만 말할 수 있다. 끝이 없는(endless) 것은 성경적인 의미가 아니고 우주물리학적으로도 옳은 게 아니다. 우주의 나이 138억년이 길긴 하지만 영원한 게 아니고, 앞으로 200억년 후도 역시 영원한 게 아니다. ...

위로하라(5) [2]

  • 2017-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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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9일, 토 위로하라(5) 내일 대림절 둘째 주일 예배의 헌금찬송과 마침찬송은 105장 ‘오랫동안 기다리던’ 1절과 2절을 각각 부른다. 나이가 든 이들은 이 찬송가를 처지는 속도로 부를 텐데, 찬송가 악상으로는 조금 빠르게(1분에 사분음표 100번의 속도) 부르는 게 좋다. 대림절 찬송이니 기쁜 마음으로 가볍게, 뭔가를 치고나가는 느낌으로 불러야 한다. 가사를 읽어보자. 1절: 오랫동안 기다리던 주님 강림하셔서 죄에 매인 백성들을 자유 얻게 하시네 주는 우리 소망이요 힘과 위로되시니 오래 기다리던 백성 많은 복을 ...

주간일지 [2]

  • 2017-06-05
  • 조회 수 1121

대구샘터교회 주간일지 6월4일, 성령강림주일, 대구샘터교회 설립 14주년 기념주일 1) 오늘(6월4일)은 성령강림주일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대구샘터교회 설립 14주년 기념 주일이었습니다. 딱 떨어지는 조합입니다. 본질적으로 성령공동체인 교회가 성령강림주일에 시작되었으니까요. 오늘 예배는 전체적으로 품격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친밀감이 넘쳤습니다. ‘토기장이의 집’ 공동체에서 8명이 참석하셨고, 솔로로 예배에 오시던 분들 중에서 몇 분이(제 기억으로 네 분) 파트너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이 네 분이 누군지를 맞추는 ...

생명 완성

  • 2015-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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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8일 생명 완성 나는 지난주일 설교 후반부에서 ‘부활은 하나님만이 고유한 능력으로 행할 수 있는 생명의 완성’이라고 말했다. 부활과 생명 완성이 설교의 중심 주제라 아니라서 더 긴말은 하지 않았다. 오늘 간단하게나마 보충하려고 한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속하는 이 주제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으면 기독교 신앙의 전체를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고, 때로는 오해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의 생명은 완성된 것일까, 아닐까? 이런 질문이 간단한 게 아니다. 우리는 아프고, 늙고, 그리고 죽는다. 이런 것만 보면 생명의...

누가복음 톺아 읽기 054, 눅 2:1

  • 202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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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성서 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054, 눅 2:1 https://youtu.be/qR2EYyv3thA

목사 구원(110) [2]

  • 2018-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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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앞에서 나는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 경험에 대한 세 편의 이야기를 설명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이사야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목사 구원’의 중심인 하나님 경험을 거기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경험을 배운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배워서 하나님 경험이 이를 수는 물론 없다. 여기서 배운다는 것은 하나님 경험의 정보를 배운다는 게 아니라 그런 정보를 통해서 드러나는 하나님 경험의 실체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다른 공부도 이와 비슷한 점이 있다. 아인슈타인의 ‘질량 에...

목사 구원(100) [4]

  • 2018-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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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스스로 존재하는 자’에 대한 경험이 우리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꾼다는 말은 자칫 공허한 말로 들릴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혁명적으로 바뀐다는 말 자체를 별로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은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교회 생활에서도 이런 경향은 비슷하게 나타난다. 자신이 알고 있던 기존의 신앙 패러다임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낀다. 한국교회에 성서문자주의가 계속해서 힘을 발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젊은 시절에 읽은 몇 권의 책에서 나는 사유가 혁명적으로 바뀐...

목사 구원(66)

  • 2018-04-03
  • 조회 수 1120

(66) 목사의 경우에 죄는 목회 업적의 강요와 유혹에 굴복당하는 것이다. 구원이 죄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한다면 목사 구원은 목회 업적의 강요와 유혹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목회 업적의 강요와 유혹은 목사에게 숙명적이다. 여기에는 외부적인 요인도 있고, 내부적인 요인도 있다. 외부적인 요인은 한국교회 구조다. 목사가 순전히 목회 업적으로만 평가되는 구조다. 목회 업적을 이루지 못하면 목사와 가족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다. 내부적인 요인은 목사 자신이 목회의 업적에 매달리는 것이다. 자신이 담임 목사로 있는 교회...

섬뜩한 기분으로서의 불안(2)

  • 201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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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6일 섬뜩한 기분으로서의 불안(2) 어제 말한 섬뜩한 기분, 또는 아주 낯선 느낌, 또는 거룩한 두려움은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게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모든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지만 대다수는 그걸 외면한다. 순간적으로 그런 느낌이 다가온다 하더라도 너무 낯설기 때문에 거기로부터 도피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부모를 피하는 것과 비슷하다. 박찬국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현존재는 불안에서 드러난 섬뜩한 세계를 감내하지 못하고 세계 내의 존재자들에 의지하고 매달리게 된다. 즉 현존재는 돈이...

베드로전서 강해(24)

  • 2019-10-03
  • 조회 수 1120

베드로 사도가 하인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참는 것이 신앙적으로 옳다고 말한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하셨다는 사실에 있다. 23절은 이렇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여기서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만이 공의로 심판하실 수 있다. 사람의 판단은 늘 오류를 전제한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걸 맡긴다는 게 쉽지 않다. 하나님의 현실성(reality of God)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

예수 어록(027) 요 3:3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1)

  • 2019-01-09
  • 조회 수 1119

예수 어록(027) 요 3:3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1) 요 3장에는 그 유명한 니고데모 이야기가 나온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밤에 예수를 찾아와서 논쟁을 벌이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도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요한복음만의 독자 전승이다. 다른 복음서에 나오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어느 부자 청년에 관한 것이다. 마 19:16-30, 막 10:17-31, 눅 18:18-30절이 그것이다. 공관복음 이야기는 재물과 하나님 나라의 관계를 주제로 ...

사순절 묵상(16)

  • 2015-03-07
  • 조회 수 1119

16) 3월7일(토) <본문읽기> 시 19편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5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7 여호와의 율법...

9월16일 오병이어 (53)

  • 2007-09-15
  • 조회 수 1119

2007년 9월16일 오병이어 (53) 다 배불리 먹고 (막 6:42) 오병이어에 관한 해석인 요한복음 6:22-59절은 초기 기독교의 기독론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야말로 참된 생명의 양식이라고 믿었습니다. 35절 말씀은 이렇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에게 오는 사람이 굶주리지 않는다는 말은 분명히 문자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밥을 먹지 않으면 배고프고, 물을 마시지 않으면 목마르고, 감기 몸살에 걸리면 괴롭습...

누가복음 톺아읽기 173

  • 2021-07-01
  • 조회 수 1118

대구 성서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173, 눅 7:18~23 세례 요한의 제자들 https://youtu.be/8cAv5PdoB9o

예수가 온다(3) [2]

  • 2017-12-15
  • 조회 수 1118

12월15일, 금 예수가 온다(3) 생명 완성의 순간이 종말이라는 주장은 크게 이상하지 않다. 교회 밖의 사람들도 인정할 수 있다. 다른 종교만이 아니라 물리학이나 생물학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주장이다. 문제는 여기서 왜 예수가 개입되는가에 달려 있다. 교회는 처음부터 이 주장을 끈질기게 이어왔다. 예수 없는 종말론적 생명 완성은 교회에서는 말이 안 된다. 설교와 신학과 영성을 포함한 기독교의 모든 복음 활동은 바로 이 사실에 대한 변증이다. 그것이 경우에 따라서 설득력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설득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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