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4일 ‘어록’6-3

조회 수 2503 추천 수 6 2008.06.23 23:55:34
2008년 6월24일 ‘어록’6-3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 (9:1)

위 구절은 예수님의 재림을 직접적으로가 아니라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한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은 하나라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이 두 개념이 무조건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 일단 표면적으로 볼 때 재림 표상은 역사적 예수가 똑같은 형태로 이 땅에 다시 온다는 의미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이다.” 하는 주기도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가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렇게 질문합시다. 초기 기독교는 무엇을 근거로 예수님을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했을까요? 예수님은 결코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를 대상으로 선포했는데 말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초자연적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 사랑의 가르침, 십자가의 죽음이 바로 그 근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물론 예수와 연결된 그 모든 사건들이 바로 예수의 메시아성을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지만, 결정적인 사건은 예수의 부활입니다. 앞의 사건들은 그것 단독으로가 아니라 부활의 토대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인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바울의 진술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지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시되었고, 이런 신앙에 근거해서 예수의 재림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로 이런 신앙의 전통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레벨:1]머릿돌

2008.06.24 11:27:26

뉴스앤조이에서 정용섭목사님 글을 읽고 여기까지 오게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많은 혼란에 있는데 대한민국탄생이후 약60년의 세월속에서 언젠가는 한번 겪게될 혼란이라고 생각됩니다.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이 혼란은 어느 한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힘의 논리에 의하여 강제로 눌려왔다고 봅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이 나를 돌아보게 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때가 아닐까 합니다.
바른 성서이해와 더불어 바른 기독교사상 정립이 곧 믿음이 아닐까요? 저는 평신도인데 요즘 교회가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목사님의 설교와 이곳 다비아에서의 글이 많은 위로가 됩니다.
저 역시 평신도에 머무는 신앙이 아니라 신앙인은 결국 신학인이 되어야 한다(어느 유명한 분께서 하신 말씀으로 생각나는데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고 생각이 드네요.
지금 교회의 현실과 우리 사회는 예수님께서 오셨던 때와 비슷하게 생각되네요.
어떠한 어려움과 걸림에도 굴하지 마시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처럼 주님을 위하여 외쳐주시길 바랍니다.

[레벨:1]돌멩이

2008.06.24 13:12:30

머릿돌님의 글을 읽으면서 왜 눈물이 날려는지 모르겠습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8.06.24 20:05:08

머릿돌 님,
안녕하세요.
신학이 관심이 많다니,
한편으로는 신앙생활이 불편하겠지만
결국은 신앙의 깊이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한국교회 안에 팽배한 신학무용론이 극복될 수 있도록
지성적 기독교인들의 역할이 기대됩니다.
다비아에 여러 방들이 있으니
천천히 구경하세요.
좋은 사귐이 있기를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6월30일 광채 [4]

  • 2008-06-29
  • 조회 수 2069

2008년 6월30일 광채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막 9:3)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의 변형을 광채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광채는 신적인 영광에 대한 문학적 서술입니다. 출애굽기 34:29의 보도에 따르면 모세가 십계명을 새긴 두 돌 판을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올 때 얼굴 피부에 광채가 가득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와 대화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자기를 보려고 하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서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마리아가 예수님이 묻...

6월29일 변화산에 올라 [2]

  • 2008-06-28
  • 조회 수 1906

2008년 6월29일 변화산에 올라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막 9:2) 마가복음 기자는 앞에서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언급한 뒤에 이제 예수님의 변형 사건을 보도합니다. ‘엿새 후에’라는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엿새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변형 사건이 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이겠지요. 일단 본문을 천천히 따라가겠습니다. 예수님은 세 명의 제자들과 함...

6월28일 ‘어록’6-7 [2]

  • 2008-06-27
  • 조회 수 1632

2008년 6월28일 ‘어록’6-7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 (9:1)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볼 자도 있다는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 주제를 잘 정리만 하면 신학 석사 학위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에게 일어난 구원 사건과 종말론적 세계 완성을 종합적으로 다뤄야 할 테니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짧은 묵상의 주제로만 접근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 진술이 기독론적인 ...

6월27일 ‘어록’6-6 [1]

  • 2008-06-26
  • 조회 수 1321

2008년 6월27일 ‘어록’6-6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 (9:1) 본문은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한다고 합니다. 권능은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그 어떤 방식으로도 막을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끌어내거나 생산해내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납니다. 우리는 그것을 놀라움으로 바라볼 뿐이지요. 이런 권능을 우리가 무엇에 비교할 수...

6월26일 ‘어록’6-5

  • 2008-06-25
  • 조회 수 1652

2008년 6월26일 ‘어록’6-5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 (9:1) 어제 저는 주님의 재림 사건을 만화처럼 그릴 수는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종말에 완성될 그 생명을 지금 우리는 그 어떤 상상력으로도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온다는 것만은 성서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사실이며, 그 때가 바로 주님이 재림하는 때라는 것도 분명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재림의 주님이 초림의 주님...

6월25일 ‘어록’6-4

  • 2008-06-24
  • 조회 수 1339

2008년 6월25일 ‘어록’6-4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 (9:1) 예수의 재림은 우리의 머릿속에 아주 분명한 그림으로 그려지지만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별로 그렇지 못합니다. 이런 구도를 단순화한다면, 전자는 실증적이고 후자는 관념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증과 관념은 어떤 현실(reality)에 접근하는 전혀 다른 방식이래서 그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기독교 신앙은 바로 그 긴장 가운데 자리...

6월24일 ‘어록’6-3 [3]

  • 2008-06-23
  • 조회 수 2503

2008년 6월24일 ‘어록’6-3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 (9:1) 위 구절은 예수님의 재림을 직접적으로가 아니라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한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은 하나라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이 두 개념이 무조건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 일단 표면적으로 볼 때 재림 표상은 역사적 예수가 똑같은 형태로 이 땅에 다시 ...

6월23일 ‘어록’6-2 [2]

  • 2008-06-22
  • 조회 수 1640

2008년 6월23일 ‘어록’6-2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 (9:1) 1992년의 일로 기억됩니다만, 한국교회만이 아니라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아주 씁쓸한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일명 다미선교회 사건입니다. ‘다미’는 ‘다가올 미래’의 이니셜입니다. 그 낱말 자체는 기독교의 본질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문제는 다미선교회의 종말론 이해가 미숙하다는 것입니다. 미숙할 뿐만 아니라 대중성에 편승...

6월22일 ‘어록’6-1 [3]

  • 2008-06-21
  • 조회 수 1979

2008년 6월22일 ‘어록’6-1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 (9:1) 이틀 전의 묵상에서 저는 위의 본문을 잠시 언급했습니다. 제자들이 살아있을 때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이라는 표현이 바로 바로 예수님의 재림을 가리키는 걸까요? 일단 바로 앞 절과 연결해서 본다면 그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6월21일 ‘어록’5-9 [4]

  • 2008-06-21
  • 조회 수 1496

2008년 6월21일 ‘어록’5-9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 8:38) 예수의 재림이 곧 세계 완성이라는 어제의 묵상을 조금 더 보충해서 설명해야겠습니다. 여기서 일단 키워드는 ‘세계완성’입니다. 도대체 세계가 완성된다니, 그게 무엇일까요? 우리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이 세상을 완성된 것으로, 또는 완전한 것으로, 아니면 대단히 뛰어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세상을 잘 이용하면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도...

6월20일 ‘어록’5-8

  • 2008-06-19
  • 조회 수 1422

2008년 6월20일 ‘어록’5-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 8:38) 예수님은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온다.”는 것은 물론 재림을 가리킵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런 재림신앙을 근본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살아있을 때 재림이 이루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막 9:1) 재림이 지연되면서 초기 기독교 내부에서 어떤 혼란이 일어나기도 ...

6월19일 ‘어록’5-7 [4]

  • 2008-06-18
  • 조회 수 1900

2008년 6월19일 ‘어록’5-7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 8:37)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온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우선 고대인들이 왜 천사를 생각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기독교 화가들의 그림에도 천사가 자주 등장합니다. 라파엘의 천사 상이 저에게는 아주 인상적입니다. 한 손을 턱을 괴고 하늘을 쳐다보는 천사의 그림이 저의 집에 있는데, 그걸 볼 때마다 라파엘에게는 하늘에 대해 관심이 참으로 많았...

6월18일 ‘어록’5-6 [2]

  • 2008-06-17
  • 조회 수 1484

2008년 6월18일 ‘어록’5-6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 8:37) 인자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마지막 심판에 관한 이야기는 앞서의 언급으로 접고,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라는 말씀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영광과 거룩한 천사는 사실 심판과 연관되는 용어라는 점에서 심판 개념의 보충 설명이라고 해도 좋겠군요. 아버지의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킵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

6월17일 ‘어록’5-5 [2]

  • 2008-06-16
  • 조회 수 1410

2008년 6월17일 ‘어록’5-5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 8:37) 기독교 신앙의 토대가 ‘생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또는 의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다는 말은 하지만 그 생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 신앙을 추상적으로만 접근한다는 데에 있겠지요. 구원도 결국 죽어서 천당 가는 정도로만 받...

6월16일 ‘어록’5-4

  • 2008-06-15
  • 조회 수 1291

2008년 6월16일 ‘어록’5-4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 8:37) 한국교회에는 심판자라는 단어에 대한 오해가 적지 않습니다. 마지막 심판자이신 예수님을 마치 염라대왕쯤으로 생각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에 태만한 자들을 유황불이 뜨겁게 타고 있는 지옥으로 보내는 것처럼 겁을 주기도 합니다. 성서에는 그런 그림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모두 종교적 메타포이지 실체를 말...

6월15일 ‘어록’5-3 [6]

  • 2008-06-14
  • 조회 수 1682

2008년 6월15일 ‘어록’5-3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 8:37) 어제 묵상의 마지막 문장을 다시 오늘 묵상의 말머리로 삼아야겠습니다. “심판당한 분을 심판자로 믿으니 말입니다.” 이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런 문장이 저의 독창적인 생각인지, 아니면 어디서 읽은 게 무의식적으로 기억이 난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심판 ...

6월14일 ‘어록’5-2

  • 2008-06-13
  • 조회 수 1407

2008년 6월14일 ‘어록’5-2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 8:37) 위의 어록에 나오는 단어인 “인자”, 즉 ‘사람의 아들’은 우리말로는 특별한 의미를 찾아볼 수는 없지만, 구약성서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묵시문학적 전승과 연관된 것인데, 이 세상(에온)의 마지막에 올 심판자를 가리킵니다. 인자가 단지 심판자라는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어떤 특별한 권능을 소유한 분이...

6월13일 ‘어록’5-1

  • 2008-06-12
  • 조회 수 1564

2008년 6월13일 ‘어록’5-1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 8:37) 위의 말씀을 앞에 둔 저는 지금 현기증이 날 것 같습니다. 저 말씀이 말하려는 세계를 저의 짧은 생각으로는 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설명하지 못할 것도 없지요.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신앙을 바르게 드러내지 못하면 결국 종말론적인 차원에서 크게 부끄러움을 당한다는 뜻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6월12일 ‘어록’4

  • 2008-06-11
  • 조회 수 1386

2008년 6월12일 ‘어록’4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막 8:37) 그렇습니다. 자기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말씀을 단순히 무슨 일이 있어도 죽지는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만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당연히 죽기 싫어합니다. 이 세상의 삶이 아무리 삭막하더라도 살아남는 건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생명은 우리가 도구적으로 다룰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어떤 방식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사건이기 때문입니...

6월11일 ‘어록’3(5)

  • 2008-06-10
  • 조회 수 1841

2008년 6월11일 ‘어록’3(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막 8:36) 목사들은 우선 자기 구원에 천착해야 한다는 어제 묵상의 마지막 구절을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목사들은 이미 구원의 확신과 기쁨을 경험했으며, 이제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들이 아니냐, 하고 말입니다. 이런 사명감은 사실 목사만이 아니라 교회에서 믿음이 좋다 하는 사람들에게서 일반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인데, 그런 생각은 큰 오해입니다. 이 세상에 어...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