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12월5일, 대림절 2주

조회 수 1104 추천 수 0 2021.12.06 13:24:19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1125, 대림절 2

 

1) 빈 들- 누가복음 기자는 예수님과 요한의 출가 활동을 빈 들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말 성경 번역자가 헬라어 에레모스를 요한 이야기에서는 순수 우리말 빈 들, 예수님 이야기에서는 한문 광야로 번역했습니다. 번역의 일관성이 떨어져서 아쉽습니다. 누가는 요한의 빈 들을 말하기 전에 황제와 총독과 왕과 대제사장들을 언급함으로써 빈 들을 더 도드라지게 합니다. 황제 같은 이들은 빈 들에서 살지 않으나 선지자는 빈 들에서 삽니다. 모든 선지자가 빈 들에서 사는 건 아닙니다. 유대 역사에서 보면 왕궁에서 연봉을 받는 선지자도 있긴 했습니다만 대개는 자유인으로 살면서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왕궁과 빈 들, 대척점에 있는 장소입니다. 왕궁에서 살면 호화롭기는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경험하기가 쉽지 않고, 빈 들에서 살면 불편하기는 하나 하나님 말씀을 경험하기가 좋습니다. 물론 이런 현상이 기계적으로 일어나는 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접속해있는 사람은 어디서 살건 당연히 빈 들의 영성으로 살 것이며, 말씀과 격리된 사람은 어디서 살건 당연히 왕궁을 갈망하면서 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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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찬식- 20202월 이후로 오늘 202112월에 처음 성찬식을 집행했습니다. 22개월만입니다. 성찬식이 뭐 그리 중요하냐, 하고 생각할 분도 계실 겁니다. 성찬식이 있어야만 미사나 예배가 가능한 로마가톨릭과 성공회, 또는 루터교회를 제외하고 다른 일반 개신교에서는 성찬식 논쟁이 늘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 논쟁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정 목사의 개인적인 신앙에서만 한마디 보탭니다. 빵과 포도주는 가장 소박한 먹을거리입니다. 하나는 고체이고, 다른 하나는 액체입니다. 빵과 포도주만 있으면 우리는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게 없으면 우리는 죽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소박한 먹을거리가 얼마나 신비로운 사건인지를 더 절감합니다. 빵 한 조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상해보십시오. 한 모금의 포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상해보십시오. 마술과 같습니다. 빵과 포도주를 구성하는 원소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소와 같습니다. 빵과 포도주가 바로 우리의 몸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사실을 어느 정도 인식하는 기독교인이라면 빵과 포도주를 통한 성찬식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감동할 것입니다. 오늘 성찬에서 사용된 빵을 한번 보십시오. 사진으로 올렸습니다. 미리 예쁘게 잘라놓았군요. 부드러운 우유 식빵 맛이 납니다. 포도주와 함께 먹었으니 감칠맛이 났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크기도 적당하던데, 다른 분들을 어떻게 느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한가지 방심한 게 있더군요. 이전처럼 현장 예배에 참석한 이들이 볼 수 있도록 물티슈로 손을 씻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코로나19 방역 기준에도 지장이 없으리라 생각해서 물티슈 옆에 올려놓은 비닐장갑을 끼지 않았습니다. 그게 꺼림칙했던 교우들이 있더군요. 앞으로는 비닐장갑을 끼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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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요공부- 수요 성경공부를 이번 수요일인 128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교재가 나왔습니다. 제목은 <사도행전 함께읽기>입니다. 신약 사도행전은 바울의 제자라 할 수 있는 누가라는 인물이 자기 스승인 바울을 변증한 책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기독교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사실 예수님 생전에 예수님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바울이 자칭 사도라고 하니까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서 지도력을 행하하던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와 수제자인 베드로가 달가워할 리가 없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유대교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끌어가려면 유대 기독교인 지도자들과 유대 전통을 멀리한 바울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누가는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가 염려할 만큼 극단적인 사람이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의 전통을 소중하게 여기려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해명하려고 사도행전을 기록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의 목사 생활 과정에서 저는 사도행전을 여러 번 읽기도 했고, 교인들과 공부도 했습니다. 이번에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서 공부하겠습니다. 오후 2시에 교회당에서 시작합니다.

 

4) 신학공부- 오늘 예배 후 오후 2시에 신학공부가 있었습니다. 에티엔느 트로크메의 <초기 기독교의 형성>입니다. 열 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강독 방식으로 공부했습니다. 저는 저 책을 읽을 때마다 많은 걸 배웁니다. 애매하던 부분이 선명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늘 공부한 내용의 키워드를 찾는다면 기원후 ‘100’년입니다. 이 시기도 기독교 역사에서 분기점이 됩니다. 기독교가 유대교와 완전히 결별하고 독립적인 길을 가기 시작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에는 여전히 유대교와 직간접적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회당 출입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유대교와 결별하게 되면 일종의 보호막이 없어지는 겁니다. 기독교가 허허벌판에 버려져서 고독사하든지, 아니면 독립적인 성숙한 공동체가 되는지, 갈림길이었습니다. 우리는 답을 알고 있으나 당시 기독교인은 몹시 불안했겠지요. 저는 아주 흥미진진했는데, 교우들은 어땠는지 모르겠군요. 관심 있는 분들은 202212일 오후 2시에 다시 만나겠습니다. ‘신학공부수요성경공부는 앞으로 교육부에서 맡기로 했으니,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오*주 집사에게 확인하십시오.

 

5) 재정보고- 11월 재정보고(부장 김*근 집사)입니다. 운영위원 회의 때 나온 이야기를 들어보니 헌금 수입이 2021년도 예산 안에 미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11월 말 이월금이 넉넉한 이유는 원래 작년 결산에서 넘어온 이월금이 있고, 코로나19로 지출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부장의 보고 중에서 특이한 점은 등록 교인이 아닌 분이 참여한 헌금 액수가 전체로 볼 때 14% 가까이 된다는 것입니다. 등록 교인의 헌금은 줄고, 다른 분의 헌금이 보충되어서 현재 상태가 되었습니다. 등록 교인이 아닌 분 중에서 기부금 확인서가 필요한 분은 정 목사(010-8577-1227)에게 문자를 주세요. 그러면 재정부장에게 전달하겠습니다. 대구샘터교회가 온라인 신자와 오프라인 신자를 병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바람직할지 모르겠습니다. ‘포스트 코로나시대를 미리 준비하는 겁니다. 대구샘터만이 아니라 미래 대다수 교회에 이런 변화가 찾아오지 않을까요? 그 구체적인 방법은 더 연구해봐야겠지요. 어쨌든지 코로나19 재난 시절에 대구샘터교회 재정 운영에 직간접으로 참여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구샘터교회는 헌금을 허투루 사용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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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등록교우- 오늘 대구샘터교회에 정식으로 등록하신 분을 소개합니다. 김민채 청년입니다. 지난 주일에 등록한 김윤수 청년이 인도했습니다. 이미 지난 주일에도 교회에 나왔지만, 등록은 오늘 했습니다. 민채 청년은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거의 초신자나 마찬가지인데, 두 번 예배에 참석해서 어떤 느낌이 들었을지 궁금합니다. 요즘은 코로나 비상시국이라서 이런 점이 가장 아쉽습니다. 이전 같으면 새신자 환영 순서가 예배 후 친교 식사 시간에 진행되고, 담임 목사가 새신자와 식사를 함께했습니다. 윤수와 민채 두 분이 각별한 사이로 보이는데, 신앙의 차원에서도 각별한 사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7) 서울샘터교회- 11월 한 달간 현장 예배를 다시 드리던 서울샘터교회가 수도권 확진자 급증 상황을 맞아 다시 휴지기로 들어갔습니다. 예정되었던 1212일 저의 방문도 취소되었습니다. 다시 대구샘터교회 유튜브 방송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앞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리라 예상됩니까? 모든 사람이 4개월마다 반복해서 백신주사를 맞고, 실내에서 마스크는 계속 쓰고, 확진자나 중증자 숫자에 따라서 사적 모임 숫자를 조정하며, 종교 참석자도 계속 제한을 받게 되는 건 아닐까요? 교회도 온라인이 모임이 활성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상당히 진정 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서울샘터교회 교우들, 온라인으로나마 다시 납시다.

 

8) 헌금- 125: 770,000(온라인 500,000, 현장 270,000, 등록 교인 외- *)

   온라인 통장: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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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404) 요 20:22 성령을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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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404) 요 20:22 성령을 받으라.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씀을 이어간다. “성령을 받으라.” 예수는 십자가 처형으로 세상을 떠나면 더는 제자들과 함께할 수 없다. 제자들은 이제 성령에 이끌림을 받을 것이다. 이에 관해서 요한복음 기자는 이미 고별설교인 16:1-24절에서 길게 설명했다. 체포, 고문, 재판, 십자가 처형이 다 지나고 세상을 완전히 떠나서 하나님에게로 갈 그 순간에 예수는 다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한다. 그 성령은 제자들을 진리로 이끌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을 기억나게 할 것이다. 이 성령...

예수 어록(389) 요 18: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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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89) 요 18: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예수는 발언을 이어간다. “왜 내게 묻느냐?” “내 말을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안나스가 묻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이 수하에 있는 이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확실한지 확인하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의 발언에서 실수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추정할 뿐이지 확실한 이유는 우리가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안나스의 질문이 요식 행위라는 것이다. 안나스로 대표되는 산헤드...

목사 구원(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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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구원(5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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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하루를 맞는 아침 시간이 나에게는 황홀하다. 여명이 찾아오면서 내가 침실로 사용하는 서재의 사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젊었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서 내려왔다. 60대 중반인 지금은 침대에서 내려오면서 두발로 서는 순간의 느낌이 더 생생하게 전달된다. 발목의 힘이 약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늙고 가난하고 외롭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삶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계기가 된다. 이런 느낌의 중심에 지구의 중력과 내 몸의 교감이 자리한다. 그 교감이 예술적인 차원에 이르면 우리는 전...

생명, 최초의 30억년(11) [4]

  • 2016-03-05
  • 조회 수 1103

3월5일 생명, 최초의 30억년(11) 마지막으로 우리는 뗏목을 해안으로 돌린다. 헬리콥터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다가와 발굴을 끝내야 할 시간임을 알리기 전에 한 번 더 노두를 살펴볼 생각이다. 배를 시냇가 자갈 위로 안전하게 끌어올려 놓고, 우리는 앞에 치솟은 베이지색의 절벽을 뜯어본다. 어디서 본 듯한 암석들이다. 그렇다. 우리는 지구 곳곳을 다니며 30억 년의 자연사 여행을 한 후, 마침내 코투이칸 강변의 캄브리아기 절벽에 다시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엘리엇이 깨달았듯이 이 암석들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

예수 어록(058) 요 4: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

  • 2019-02-28
  • 조회 수 1102

예수 어록(058) 요 4: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예수의 발언은 점입가경이다. 여자의 정체를 낱낱이 밝힌다. 아무리 영적인 각성을 위한 발언이라고 해도 지나친 것으로 느껴진다. 다섯 남자를 거쳐서 지금 함께 사는 남편은 여섯 번째라는 것이다. ‘네 남편이 아니’라는 표현에 따르면 지금 이 여자와 살고 있는 남자는 유부남일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당시 현실에서 일어나기는 어렵다. 여자가 사별하거나 이혼했을 경우에 재혼하기도 쉽지 않았다. 한 번도 아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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