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끈 (4월10일)

조회 수 5029 추천 수 32 2006.04.10 23:23:23
2006년 4월10일, 신발끈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막 1:7)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요한의 고백은 자신을 가장 낮은 곳으로 낮출 때 사용하는 그 당시의 관습적 용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떤 사람의 신발끈을 풀려면 본인은 일단 허리를 구푸리고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리고 시선을 신발에 두어야 합니다. 몸의 위치를 가장 낮은 곳에 두고, 시선을 아래로 깐다는 것은 극단의 겸손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자신을 그렇게 낮춘 사람이었으며, 그런 방식으로 그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마 톨스토이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반(半)지하에서 구둣방을 하는 할아버지가 살았습니다. 그는 창문을 통해서 그 앞으로 지나다니는 동네 사람들의 발을 보며 살았습니다. 그들의 발에 신긴 구두를 보았다는 게 조금 더 사실에 가깝겠지요. 그는 그것만 보고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낼 정도로 이웃의 발과 구두에 마음을 두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밤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서, 다음날 직접 찾아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뒤의 줄거리는 여러분이 아실 테니까 그만 두겠습니다. 그가 낮에 만났던 평범한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남의 발만 보고 사는 사람은 마음이 겸손하겠지요. 그런 사람에게 예수님이 찾아가셨다는 겁니다. 아마 우리에게도 찾아오시지만 우리는 너무 많은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건 아닐는지요.
요한복음에(12:1-8) 따르면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는 삼백 데나리온이나 나가는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걸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요 12:7) 누가복음은 그 여자가 죄인이었다고 설명합니다.(눅 7:39)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평판이 아주 나쁜 여자가 점잖은 사람들이 모인 공개석상에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울면서 눈물로 예수의 발을 적시고,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다는 게 해괴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는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7)
예수님도 당신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어느 날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기신 일이 있습니다. 요즘 고난주간에 세족식을 행하는 교회들이 있는 것 같더군요. 예수님처럼 자신을 가장 낮은 자리로 끌어내리겠다는 의미이겠지요. 비록 형식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이런 걸 통해서 낮춤의 영성이 풍성해지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신발끈의 영성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아닌지 저는 아직 확신이 없습니다. 자신을 땅처럼 낮춘다는 게 말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렇게 산다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예컨대 지금 내가 모든 일을 접어두고 치매노인들의 수발을 들어주면서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테레사 수녀처럼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의 친구가 될 자신이 없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그 이외에 다른 할 일이 많다고 자위할 수는 있겠지만, 이건 할 일이 있다 없다, 하는 차원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영성의 차원입니다. 과연 내가 다른 사람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자신을 낮추면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런 영성은 하루 이틀에 주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를 그렇게 지배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비우는 것부터 천천히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능한 시선을 위로 두지 말고, 아래로 둔다면 언젠가는 남의 신발끈을 푸는 일만으로도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주님, 낮아짐의 영성을 배우기 원합니다. 하늘로부터 땅으로 자신을 낮추신 주님만을 통해서만 그 일이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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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일지, 9월10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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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강해(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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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6-11절: 영원한 영광과 잠깐의 고난 6.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시리라 8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10.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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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 (193)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 201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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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193) 요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진리 말씀은 진리에 속한 자에게 들린다. 생명은 생명에 속한 자에게 보이고 경험된다. 예수는 진리인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이 말씀이 아무에게나 들리는 게 아니다. 마음이 온통 자신에게 기울어진 사람에게 이 말씀은 헛소리다. 설교도 아무에게나 들리는 게 아니다. 자기 귀에 들리는 설교, 그게 바로 자기의 영적인 수준이다. 시도 그렇다. 시에 마음의 귀를 연 사람에게나 시...

목사 구원(7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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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막 10:17-22절에는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사태인지 절감하게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공관복음에 다 나오는 이야기다. 어떤 사람이 예수에게 와서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는 뜻이다. 윤리적인 관점에 해당되는 질문이다. 이 사람은 유대의 지혜 전통에 따라서 성실하게 인생을 살았기에 이미 답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이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수는 그의 눈높이에 따른 질문을 한다. 십계명의 몇몇 항목을 말씀하셨다. 이...

19대 대선(-18), 황지우 안도현 [1]

  • 2017-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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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선(-18) 황지우 안도현 대개의 사람들은 설교 한 편, 시 한줄, 소설의 한 대목에서 삶의 격정이나 깊이를 종종 경험한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다. 시인 두 사람이 내 기억에 선명하다. 한 사람은 황지우다. 한예종 총장 하다가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잘렸다. 그의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에서 뭔가 삶의 아득함을 경험했다. 글이나 말을 통해서 그의 시를 다른 이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표제가 된 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를 다시 읽겠다. 초경을 막 시작한 ...

요한계시록

  • 201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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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3일 요한계시록 어제 설교의 본문은 계 1:4-8절이다. 요한계시록은 위험한 성서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 오해의 소지가 높다. 설교에서 언급한 것처럼 요한계시록은 묵시문학의 전형이다. 극단적인 상징을 통해서 궁극적인 진리를 알리는 문학 장르가 묵시문학이다. 숫자와 이상한 동물과 현상에 대한 묘사가 자주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묘사들을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이면 성서에 대한 오해가 발생한다. 사실은 요한계시록만이 아니라 다른 성서에도 이런 상징이나 은유는 많다. 성서는 사실언어가 아니라...

목사 구원(5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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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하루를 맞는 아침 시간이 나에게는 황홀하다. 여명이 찾아오면서 내가 침실로 사용하는 서재의 사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젊었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서 내려왔다. 60대 중반인 지금은 침대에서 내려오면서 두발로 서는 순간의 느낌이 더 생생하게 전달된다. 발목의 힘이 약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늙고 가난하고 외롭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삶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계기가 된다. 이런 느낌의 중심에 지구의 중력과 내 몸의 교감이 자리한다. 그 교감이 예술적인 차원에 이르면 우리는 전...

어린이 번제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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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5일, 수 어린이 번제 의식 창 22:1-14절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이삭 번제 시도 사건은 구약성경에서도 아주 드문 이야기다. 딱 한번 사사 입다 이야기에 나온다. 입다는 전쟁에서 이기고 집으로 돌아갈 때 자기를 환영하러 나오는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원한다. 미친 서원이다. 그는 아마 자기 종들 중의 하나가 먼저 나올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입다의 무남독녀가 나왔다. 딸은 두 달의 말미를 얻어 친구들과 산에 들어가서 지내다가 돌아온다. 입다는 딸을 번제물로 바쳤다고 한다(삿 11:39). 고대 이스라...

천기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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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3일 천기누설 어제 설교 초반부에서 선동적인 표현을 한 가지 했다. 요 16:12-15절을 소개하면서 ‘들을 귀를 가지신 분들은 천기누설과 같은 차원의 엄청난 이야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정신 차리고 내 설교에 귀를 기울이라는 선동이었다. 없는 말을 한 건 아니다. 실제로 성경은 천기누설과 같은 세계를 말하고 있다. 거기서 천기누설과 같은 충격을 받지 못한다면 성경을 오해하거나 성경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실용적인 문헌으로 대한다. 성경 말씀을 읽고 그대로 살면 실...

물(物) 168- 고량주 fil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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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안면에 있는 중국집 식당에서 정말 오랜만에 125ml짜리 고량주인가 뭔가 하는 중국 술을, 사진에서 보듯이 정확히는 이과두주를 반만 마시고 반은 가져와서 저녁때 다 마셨다. 알코올도수가 자그마치 56도다. 술은 역시 도수가 높아야 제맛이다. 중세기 수도사들이 왜 술을 마셨는지 조금씩 더 실감하는 중이다.

렘 1: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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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6일 렘 1:4 어제의 묵상 ‘예레미야의 소명’ 이야기를 좀더 보충하겠다. 본문이 대화 식으로 전개되지만 그것을 실제 대화로 보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하나님과의 대화는 성경에 종종 나온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대화했고, 모세도 그렇다. 그런 대화는 문학적 수사다. 수사에 매달리지 말고 본문의 핵심을 붙들어야 한다. 그 핵심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렘 1:4)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다는 발언은 천기누설처럼 위험하다. 말씀이 임했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는 건 하나...

목사 구원(107) [6]

  • 201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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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다른 한 가지는 예배다. 전업 목사는 눈만 떴다 하면, 그리고 평생에 걸쳐서 밥 먹듯이 예배를 인도하기에 자칫 예배의 매너리즘에 떨어질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예배를 이벤트처럼 진행하는 경우도 제법 된다. 곁길로 빠져드는 것이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 젊은이들이 나와서 율동을 곁들인 찬양을 부르게 하거나 관현악단이 포함된 성가대 역할을 확대하기도 한다. 한국교회에서 대형 빔 프로젝터 사용은 일반화된 것 같다. 예배를 쇼나 대중가요 콘서트처럼 진행하는 교회도 제법 된다. 교회 형편에 따라서 이색적인 ...

예수 어록(089) 요 5:29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 2019-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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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089) 요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인자로서의 정체성과 아들로서의 정체성을 언급하다가 갑자기 선한 일을 행한 자와 악한 일을 행한 자라는 표현이 29절에 나온다. 인자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인 예수를 믿는 것과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의 관계가 명확하지는 않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늘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고,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늘 악한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 구절이 말하려는 핵심은 선한 일과 악한 일을 구분하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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