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천사들, 5월1일

조회 수 4314 추천 수 33 2006.05.01 23:21:17
2006년 5월1일 예수와 천사들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막 1:13)

마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이 시험받는 마지막 장면은 예수님을 돕는 천사들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도왔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자세한 내막은 말할 수 없지만 예수님도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만은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짐승들이 예수님과 함께 했던 것처럼, 이제 천사들이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서 예수님을 도왔습니다.
성서는 천사에 대해서 자주 언급합니다. 그것만 주제로 삼아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하더라도 책 한권으로도 부족할 겁니다. 성서는 타락한 천사에 대해서도 언급하기 합니다. 그게 사탄이겠지요. 이 자리에서 천사가 과연 있냐, 없냐 하고 묻지는 마십시오. 우리는 늘 그런 방식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근원적인 것을 놓치는 수가 많습니다. 원래 실제로 있는 것도 근원적으로는 없을 수 있으며, 지금 당장 없다고 해서 실제로도 없는 게 아니기도 합니다. 우리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만 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확인할 수 있는 사물들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존재의 1차원에 머물고 마는 겁니다. 이렇게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들도 많습니다. 실체가 아니라 과정으로 존재하는 것들도 적지 않습니다. 아니 지금은 없지만 앞으로 존재하게 될 것들도 역시 우리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왕에 무엇이 있나, 하는 말이 나왔으니까 다시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봅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있나요?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 있나요? 아니면 미래에 있게 될 것인가요? 그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우리의 삶과 전혀 상관없이 존재하게 될는지, 아니면 지금 우리의 삶과 결속될는지, 여러분은 잘 알고 있나요? 이런 질문은 더 궁극적인 곳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존재하나요? 그는 앞으로 존재하게 될 그 어떤 분인가요? 그는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나요? 만약 하나님을 어떤 사물로 생각한다면 그런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합니다. 즉 우리가 전혀 새로운 존재론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하나님의 존재를 전혀 인식할 수 없을 겁니다.
천사가 예수님을 도왔다는 말이 실제적으로 무엇인지 여러분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자신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저는 그것에 관해서 구체적인 설명은 못하지만 그 사실 자체만은 인정합니다. 여러 사람들의 눈에 공통적으로, 공개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볼 눈을 가진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사적으로 나타나는 그 신비한 메신저가 있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흡사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요정과 유령이 자주 등장하듯이 이 세상의 삶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의 눈에는 그런 힘들이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런 천사가 없다면 우리 삶은 건조하기 이를 데 없을 겁니다. 천사가 없는 우리의 삶은 그저 생존본능에 따라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단백질 덩어리의 소통에 불과하겠지요.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개인이나 집단이나 인간의 삶은, 그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 세계는 그것을 초월하는 힘들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힘들이 성령이며, 그것의 동화식 표현이 곧 천사입니다.
여러분은 천사의 도움을 받아본 적이 있으신가요? 여러분은 천사를 경험한 적이 있나요? 아기의 숨결에, 별빛 속에, 남녀의 사랑 속에, 바람과 파도에도 천사들이 춤을 추며 함께 합니다. 마음의 눈을 뜨기만 하면 곳곳에서 우리를 돕는 천사들이 보이게 될 겁니다.

주님, 천사를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허락해주십시오. 아멘.

[레벨:18]은나라

2016.07.11 22:00:04

적극적으로..아멘!!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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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일지 1월30일 주현후4주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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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54) 요 11:44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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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54) 요 11:44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죽었던 나사로가 동굴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손과 발이 베로 묶였고 얼굴은 수건으로 싸인 모습이다. 괴기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요즘도 간혹 장례가 진행되는 중에 고인이 살아났다는 소식이 토픽으로 나올 때가 있다. 나사로 이야기는 이런 거와 다르다.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일이 드러났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나사로 이야기가 요한복음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요한복음은 이 장면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강시 모습으로 비쳤을 나사로를 보고 사람들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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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샘터교회 주간일지 10월22일, 창조절 여덟 번째 주일 1) 오늘(10월22일) 주보 표지에 실린 프레스코화를 보셨는지요. 요즘 국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카탈루냐 주도 바르셀로나 국립미술관 벽화입니다. 12세기 작품인데도 생생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손 생김새가 너무 날렵합니다. 목수 출신 예수의 손은 노동자의 그것처럼 투박할 텐데요. 그림의 손에서 엄지와 검지와 중지는 편안하게 펼쳐져 있는 반면에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약간 구부러져 있습니다. 화가가 무슨 뜻으로 저렇게 묘사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19대 대선(-18), 황지우 안도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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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선(-18) 황지우 안도현 대개의 사람들은 설교 한 편, 시 한줄, 소설의 한 대목에서 삶의 격정이나 깊이를 종종 경험한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다. 시인 두 사람이 내 기억에 선명하다. 한 사람은 황지우다. 한예종 총장 하다가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잘렸다. 그의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에서 뭔가 삶의 아득함을 경험했다. 글이나 말을 통해서 그의 시를 다른 이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표제가 된 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를 다시 읽겠다. 초경을 막 시작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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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8일, 화 재앙과 죄 지난 설교 성경 본문인 요 9장은 선천성 시각장애인을 둘러싼 이야기다. 제자들은 ‘누구의 죄냐?’ 하고 물었다. 설교에서 설명했듯이 이건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자네 잘못을 인정하라.’고 한 말과 마찬가지로 당시 유대인들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그들은 인간에게 일어나는 재앙의 원인을 죄로 보았다. 그것의 정점은 창세기의 타락 설화에 나온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한 죽음이다. 성서가 인간의 죄로 인해서 재앙과 죽음이 인간 운명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그건 표면적인 것이고 더 깊은 차원...

목사 구원(5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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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하루를 맞는 아침 시간이 나에게는 황홀하다. 여명이 찾아오면서 내가 침실로 사용하는 서재의 사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젊었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서 내려왔다. 60대 중반인 지금은 침대에서 내려오면서 두발로 서는 순간의 느낌이 더 생생하게 전달된다. 발목의 힘이 약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늙고 가난하고 외롭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삶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계기가 된다. 이런 느낌의 중심에 지구의 중력과 내 몸의 교감이 자리한다. 그 교감이 예술적인 차원에 이르면 우리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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