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1일 바리새인과 헤롯당

조회 수 5691 추천 수 45 2006.11.11 08:47:58
2006년 11월11일 바리새인과 헤롯당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막 3:6)

회당 안에서의 일은 일단락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보내는 무언의 압력을 무시하고 손 마른 사람을 고쳤습니다. 그때 바리새인들은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이제 걸려들었구나, 하고 쾌재를 불렀을까요, 아니면 뭐 저런 친구가 있어, 우리를 물로 보는 거야 뭐야, 하고 속상해했을까요. 그들의 속이야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이 회당에서 나가 헤롯당과 공모하기 시작했다고 사실이 중요합니다.
원래 바리새인과 헤롯당은 별로 친하게 지낼만한 이들이 아닙니다. 헤롯당은 친(親)로마적이고 보수적인 기득권자들입니다. 이에 반해서 바리새인들은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내심 반(反)로마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진보적인 사람들입니다. 결정적으로 헤롯당은 매우 정치적인 집단이었지만 바리새인은 매우 종교적인 집단이라는 점에서 다릅니다. 모르긴 해도 평소에 바리새인들은 헤롯당 사람들은 세속적이라고 무시했을 것이며, 거꾸로 헤롯당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을 꽉 막힌 사람들이라고 무시했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를 죽이는 일에는 공모를 합니다.
이런 걸 보면 바리새인들이 종교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인 속성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헤롯당과 이렇게 위험한 일을 의논할 까닭이 없으니까요. 종교와 정치,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놀랍게도 잘 어울립니다. 콘스탄틴 황제 이후로 로마에서 교황과 황제가 사이좋게 세상을 지배했던 것처럼, 요즘도 자칭 보수적이고 복음적이라고 하는 분들이 정치적인 행동을 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진보적인 사람들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겠지요. 종교와 정치가 의논할 때는 거의 나쁜 일을 한다고 보면 맞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 종교와 정치가 의논할 일은 거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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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주간일지 file

  • 201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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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샘터교회 주간일지 10월22일, 창조절 여덟 번째 주일 1) 오늘(10월22일) 주보 표지에 실린 프레스코화를 보셨는지요. 요즘 국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카탈루냐 주도 바르셀로나 국립미술관 벽화입니다. 12세기 작품인데도 생생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손 생김새가 너무 날렵합니다. 목수 출신 예수의 손은 노동자의 그것처럼 투박할 텐데요. 그림의 손에서 엄지와 검지와 중지는 편안하게 펼쳐져 있는 반면에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약간 구부러져 있습니다. 화가가 무슨 뜻으로 저렇게 묘사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19대 대선(-18), 황지우 안도현 [1]

  • 2017-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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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선(-18) 황지우 안도현 대개의 사람들은 설교 한 편, 시 한줄, 소설의 한 대목에서 삶의 격정이나 깊이를 종종 경험한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다. 시인 두 사람이 내 기억에 선명하다. 한 사람은 황지우다. 한예종 총장 하다가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잘렸다. 그의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에서 뭔가 삶의 아득함을 경험했다. 글이나 말을 통해서 그의 시를 다른 이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표제가 된 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를 다시 읽겠다. 초경을 막 시작한 ...

목사 구원(107) [6]

  • 201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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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다른 한 가지는 예배다. 전업 목사는 눈만 떴다 하면, 그리고 평생에 걸쳐서 밥 먹듯이 예배를 인도하기에 자칫 예배의 매너리즘에 떨어질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예배를 이벤트처럼 진행하는 경우도 제법 된다. 곁길로 빠져드는 것이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 젊은이들이 나와서 율동을 곁들인 찬양을 부르게 하거나 관현악단이 포함된 성가대 역할을 확대하기도 한다. 한국교회에서 대형 빔 프로젝터 사용은 일반화된 것 같다. 예배를 쇼나 대중가요 콘서트처럼 진행하는 교회도 제법 된다. 교회 형편에 따라서 이색적인 ...

예수 어록(327) 요 15: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 2020-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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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27) 요 15: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매우 엄중한 말씀이다. 참포도나무인 예수에게 붙어 있지 않은 가지는 농부인 아버지 하나님이 제거해 버리고, 붙어 있는 가지는 깨끗하게 하신다. 예수에게 붙어 있으면 당연히 열매를 맺으니, 핵심은 예수에게 붙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예수에게 붙어 있다는 표현도 은유다. 사람이 사람에게 직접 붙어 있을 수는 없다. 예수의 생각...

목사 구원(58) [2]

  • 2018-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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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하루를 맞는 아침 시간이 나에게는 황홀하다. 여명이 찾아오면서 내가 침실로 사용하는 서재의 사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젊었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서 내려왔다. 60대 중반인 지금은 침대에서 내려오면서 두발로 서는 순간의 느낌이 더 생생하게 전달된다. 발목의 힘이 약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늙고 가난하고 외롭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삶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계기가 된다. 이런 느낌의 중심에 지구의 중력과 내 몸의 교감이 자리한다. 그 교감이 예술적인 차원에 이르면 우리는 전...

생명, 최초의 30억년(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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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5일 생명, 최초의 30억년(11) 마지막으로 우리는 뗏목을 해안으로 돌린다. 헬리콥터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다가와 발굴을 끝내야 할 시간임을 알리기 전에 한 번 더 노두를 살펴볼 생각이다. 배를 시냇가 자갈 위로 안전하게 끌어올려 놓고, 우리는 앞에 치솟은 베이지색의 절벽을 뜯어본다. 어디서 본 듯한 암석들이다. 그렇다. 우리는 지구 곳곳을 다니며 30억 년의 자연사 여행을 한 후, 마침내 코투이칸 강변의 캄브리아기 절벽에 다시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엘리엇이 깨달았듯이 이 암석들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

예수 어록(342) 요 15:17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 2020-05-29
  • 조회 수 1105

예수 어록(342) 요 15: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을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서로 사랑하는 말이 예수의 고별 연설을 다루는 이 대목에서 반복해서 나온다. 이 말은 듣기에 따라서 상투적으로 들린다. 요즘도 “성도 여러분,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 사랑의 열매를 통해서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라는 식의 발언을 종종 듣는다. 이런 발언은 아무리 상투적인 발언이라고 해도 우리의 삶과 신앙을 살리는 능력이기에 계속 귀를 기울이면서 삶의 현실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랑은 우리가 운전면허...

누가복음 톺아 읽기 054, 눅 2:1

  • 202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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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성서 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054, 눅 2:1 https://youtu.be/qR2EYyv3thA

주간일지 11월11일 file

  • 201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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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샘터교회 주간일지 2018년 11월11일, 창조절 11주 1)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설교에 가장 큰 은혜를 받는 사람은 설교자 자신이라는 걸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깊이 느낍니다. 이런 점에서는 설교자로 산다는 건 행운이겠지요. 오늘 설교에서 ‘가난하니까 할 수 없는 일과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을 간략하게 열거했습니다. 만약 가난하게 살아도, 아니 오히려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면 굳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 삶을 소비하지는 않겠지요. 이게 단순히 논리로만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분명합니다. 우리...

예수 어록(008)- “나를 따르라!”(2) [4]

  • 2018-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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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로고스 008, 요 1:43 “나를 따르라!”(2)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하게 들린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지 왜 남을 따르면서 사느냐, 하는 것이다. 두 가지 관점에서 그렇다. 하나는 자신의 내면에서 진리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다른 이를 따르는 것은 자신의 내면이 충실하지 못한 증거라는 말이 가능하다. 다른 하나는 일단 어느 누구의 제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당연히 스승을 떠나는 게 옳다는 사실이다. 동서양의 대다수 스승들은 제자들이 어...

루터(18) [3]

  • 2017-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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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6일, 목 루터(18) 롬 1:17절의 첫 문장은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다. 복음은 예수 사건이다. 예수의 오심, 하나님 나라 선포, 십자가와 부활에 이르는 그의 운명이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구원 등등의 뜻이다. 예수 사건이 왜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말인가? 가장 원론적인 대답은 ‘예수를 통해서 우리가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죄는 자기 스스로 자기를 완성할 수 있다는 욕망이며, 죽음은 두려움의 원인인 자기 소멸이다. 이게 인간 실존이다. 여기서 벗어난 사람은 없다...

어린이 번제 의식

  • 2017-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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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5일, 수 어린이 번제 의식 창 22:1-14절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이삭 번제 시도 사건은 구약성경에서도 아주 드문 이야기다. 딱 한번 사사 입다 이야기에 나온다. 입다는 전쟁에서 이기고 집으로 돌아갈 때 자기를 환영하러 나오는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원한다. 미친 서원이다. 그는 아마 자기 종들 중의 하나가 먼저 나올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입다의 무남독녀가 나왔다. 딸은 두 달의 말미를 얻어 친구들과 산에 들어가서 지내다가 돌아온다. 입다는 딸을 번제물로 바쳤다고 한다(삿 11:39). 고대 이스라...

렘 1:4 [2]

  • 2016-08-26
  • 조회 수 1103

8월26일 렘 1:4 어제의 묵상 ‘예레미야의 소명’ 이야기를 좀더 보충하겠다. 본문이 대화 식으로 전개되지만 그것을 실제 대화로 보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하나님과의 대화는 성경에 종종 나온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대화했고, 모세도 그렇다. 그런 대화는 문학적 수사다. 수사에 매달리지 말고 본문의 핵심을 붙들어야 한다. 그 핵심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렘 1:4)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다는 발언은 천기누설처럼 위험하다. 말씀이 임했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는 건 하나...

예수 어록(254) 요 11:44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 20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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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54) 요 11:44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죽었던 나사로가 동굴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손과 발이 베로 묶였고 얼굴은 수건으로 싸인 모습이다. 괴기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요즘도 간혹 장례가 진행되는 중에 고인이 살아났다는 소식이 토픽으로 나올 때가 있다. 나사로 이야기는 이런 거와 다르다.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일이 드러났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나사로 이야기가 요한복음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요한복음은 이 장면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강시 모습으로 비쳤을 나사로를 보고 사람들이 보...

누가복음 톺아읽기 172

  • 2021-06-30
  • 조회 수 1101

대구 성서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172, 눅 7:11~17 나인성 과부의 아들 https://youtu.be/VYe01WuTNnI

예수 어록(326) 요 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 2020-05-07
  • 조회 수 1101

15장 예수 어록(326) 요 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요한복음서만의 특수한 전승인 예수 연설이 15장으로 이어진다. 정확하게는 요한복음 공동체의 신앙고백으로 읽는 게 옳다. 여기서도 하나님은 아버지로 불린다. 하나님은 예수에게 “내 아버지”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내 아버지”가 아니라 “예수의 아버지”이다. 우리도 하나님이 아들이기에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예수의 경우와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면 예수는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이...

예수 어록 (193)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 2019-11-15
  • 조회 수 1101

예수 어록(193) 요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진리 말씀은 진리에 속한 자에게 들린다. 생명은 생명에 속한 자에게 보이고 경험된다. 예수는 진리인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이 말씀이 아무에게나 들리는 게 아니다. 마음이 온통 자신에게 기울어진 사람에게 이 말씀은 헛소리다. 설교도 아무에게나 들리는 게 아니다. 자기 귀에 들리는 설교, 그게 바로 자기의 영적인 수준이다. 시도 그렇다. 시에 마음의 귀를 연 사람에게나 시...

1박2일(5) [3]

  • 2017-11-04
  • 조회 수 1101

11월4일, 토 1박2일(5)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행사가 이렇게 끝났다. 정 목사 오픈 하우스, 기념 재즈 연주회(이은혜), 특강 2회(정용섭, 이길용), 예배, 작은 음악회(남성 중찬은 류원진 외 7인, 피아노는 문혜숙) 등이다. 사이사이에 담소하고, 차를 마시고, 밥 먹고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이틀 벌어졌던 일들을 내가 다 아는 게 아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평생 기억으로 남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한국교회가 기념행사를 하는 것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루터를 중심으로 하는 개혁자들의 개혁 ...

매실 file [4]

  • 2015-05-05
  • 조회 수 1101

내 생활을 단조롭다. 단조로울 정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면 재미 없는 거로 보인다. 내 입장에서는 특별히 재미 붙일 게 없기도 하고, 게으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디를 잘 다니지 않고, 먹는 거를 즐기지도 않는다. 수요일은 욥기 공부 준비와 공부 인도, 목요일은 주보 준비, 금요일과 토요일은 설교 준비, 주일은 교회에 가서 예배 인도, 월요일과 화요일은 각종 원고 정리와 독서를 주로 한다. 요즘 원고 정리는 판넨베르크의 <사도신경해설> 녹취 문건이다. 이번 가을 안으로 제본 작업에 들어갈 수 ...

누가복음 톺아읽기 217

  • 20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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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성서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217, 눅 9:51~56, 사마리아에서 https://youtu.be/m0j5RNpLh_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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