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1일 ‘어록’1(4)

조회 수 1533 추천 수 10 2008.05.30 23:40:35
2008년 5월31일 ‘어록’1(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막 8:34)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른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우리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에게 드린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나요? 이런 질문 앞에서 저는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제 삶이 별로 주님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열정도 별로 없으니까요. 그래도 이런 질문을 피해갈 수는 없으니,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일단 교회 생활을 잘 하는 게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신앙 공동체에 구체적으로 참여하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지난 2천년 기독교의 복음이 지탱되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교회생활이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유일한 증거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형식적으로 교회생활을 할 수 있으니까요.
교회생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세상에서 기독교인답게 살아가는 모습도 중요할 겁니다. 역사의식이 있는 성숙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삶이 바로 본회퍼가 말하는 성숙한 시대에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런 구체적인 삶도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완전한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으니까요.(고전 13:3)
예수님을 따르는 구체적인 삶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구체적인 노력들은 상대적으로만 괜찮을 뿐이지 절대적인 기준 앞에서는 무의미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동은 종말에 모두 드러날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잠정적으로만 가치 있는 일을 선택해서 살아갈 수 있을 뿐입니다. 물론 이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비록 잠정적이지만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그때 우리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받겠지요.

발의무리

2008.06.09 10:45:04

목사님 '말씀과 삶'에 그 많은 지면... 목사님의 묵상의 글을 좀 더 많이 채워주시면 안될까요? 세상이야기'는 아무리 좋아도 흥미를 끌지 못하는 독자가 가끔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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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06.09 10:54:31

발의무리 님,
앞으로 여건이 갖추어진다면
<다비안>에 한달 분량의 묵상을 실을 날이 오겠지요.
아직은 그럴 준비가 덜 되었답니다.
그런데요,
다른 글들도 세상 이야기가 아니랍니다.
그리고 세상 이야기도 중요하고요.
왜냐하면 세상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한 바로 그 세상이거든요.
발의무리 님의 뜻은 무엇인지 잘 알겠습니다.
좋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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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1일 ‘어록’1(5)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막 8:34)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의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그 내면적인 기준은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이 말하는 대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할 때만 우리는 주님을 따를 수 있고, 그럴 때만 우리의 행위는 근거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자기를 부인하지 못할 때 우리의 모든 종교 행위는 허위의식으로 빠지게 됩니다. 자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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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31일 ‘어록’1(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막 8:34)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른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우리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에게 드린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나요? 이런 질문 앞에서 저는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제 삶이 별로 주님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열정도 별로 없으니까요. 그래도 이런 질문을 피해갈 수는 없으니,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일단 교회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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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30일 ‘어록’1(3)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막 8:34) 어제의 묵상에서 거론된 ‘값싼 은혜’가 무슨 뜻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한번 짚고 넘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이 개념은 마틴 루터의 ‘오직 은총’ 개념과 연결됩니다. 루터는 구원이 종교적 업적으로 우리가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이런 은총 중심적 구원론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오용될 수도 있습니다.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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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29일 ‘어록’1(2)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막 8:34)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을 따른다는 사실은 기독교 신앙에서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예수님을 영접했다든지, 예수님을 뒤따라 산다는 말을 자주 들었겠지만 그런 신앙의 사태 안으로 들어가는 건 그렇게 간단하게 아닙니다. 왜 그런지 일단 ...

5월28일 ‘어록’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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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28일 ‘어록’1(1)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막 8:34) 우리는 이제 오늘부터 예수님의 유명한 경구를 연속적으로 살피게 될 겁니다. 그 내용은 막 8:34-9:1에 나오는 여섯 경구입니다. 각각 독립된 이 경구는 기본적으로 ‘어록집’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마가복음 기자에 의해서 보충된 것도 있습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아무래도 ‘어록집’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고 지나가야겠군요. 어록집은 말 그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모아놓은 책...

5월27일 사탄아!(8)

  • 2008-05-26
  • 조회 수 1407

2008년 5월27일 사탄아!(8)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막 8:33) “사탄아!” 하는 제목으로 나눈 지난 일주일간의 묵상이 너무 이론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이 단락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전형적인 큐티 방식의 묵상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저 책망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그 대답은 본문이 분명하게 제기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

5월26일 사탄아!(7) [4]

  • 2008-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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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26 사탄아!(7)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막 8:33) 짧은 묵상의 글에서 제가 번번이 위험한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아 성 문제는 이렇게 짧은 글로는 다루기 힘든 주제인데도, 자꾸 그쪽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복음서의 중심 주제가 결국은 예수가 누구인가, 하는 것에 집중되기 때문일 겁니다. 어느 본문을 다루든지 깊이 들어가다 보면 그 문제를 건드리게...

5월25일 사탄아!(6)

  • 2008-05-24
  • 조회 수 1345

2008년 5월25일 사탄아!(6)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막 8:33) 위의 본문이 자신의 메시아 성에 대한 요구를 예수님이 거절한 것이라는 어제의 묵상을 조금 더 보충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 성을 거절했다는 사실이 그분의 메시아 성에 대한 근거를 훼손시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비록 예수님이 메시아 성을 원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는 메시아로 살았기 때문에 아무런 상...

5월24일 사탄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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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24일 사탄아!(5)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막 8:33) 예수님이 베드로를 향해서 “사탄아!” 하고 강한 어조로 책망하신 이유는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보다는 사람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앞에서 살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이고,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메시아 성과 연관됩니다. 마가복음 기자가 전하는 이야기의 흐름을 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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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23일 사탄아!(4)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막 8:33) “사탄아!” 하는 표현이 불편하게 들리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이건 바로 선악 이원론, 성속 이원론이 아니냐, 또는 사탄을 실체론적으로 인정하는 거 아니냐, 하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사탄은 악의 심층을 가리키는 고대인들의 종교적 메타포입니다. 사탄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으면 도저히 해명될 수 없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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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22일 사탄아!(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막 8:33)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이 대립할 때를 우리가 분간하기 어렵다고 어제의 묵상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이 고난 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며, 사람의 일은 그런 걸 피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의 시각을 보면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구원이 아직 기독교의 신앙으로 받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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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21일 사탄아!(2)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막 8:33) 우선 예수님의 설명에 대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잘못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고난과 죽임과 부활이 일어나지 말도록 요구했습니다. 여기서 부활 문제는 조금 복잡하니까 빼고 생각하는 게 좋겠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당하실 고난과 죽임을 만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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