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로고스 008, 1:43

 

나를 따르라!”(2)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하게 들린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지 왜 남을 따르면서 사느냐, 하는 것이다. 두 가지 관점에서 그렇다. 하나는 자신의 내면에서 진리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다른 이를 따르는 것은 자신의 내면이 충실하지 못한 증거라는 말이 가능하다. 다른 하나는 일단 어느 누구의 제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당연히 스승을 떠나는 게 옳다는 사실이다. 동서양의 대다수 스승들은 제자들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떠나보냈다. ‘하산 하거라.’

이와 달리 기독교 신앙의 알파와 오메가는 예수를 뒤따름이다.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은 처음만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기독교 신앙에서 예수는 진리를 가르치는 스승이 아니라 진리 자체이기 때문이다. 진리 자체라는 말은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이게 지성적인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의 깊이로 들어가기 어려운 점이다. 그들은 예수를 존경하고 많은 걸 배울만한 스승으로 인정할 수 있지만 신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물론 예수에게는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 볼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 없지 않다. 그가 신이었다면 십자가에서 죽을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하고 사람들을 구원시킬 수 있었어야만 한다. 유대교도 예수를 위대한 선지자로 받아들일 뿐이다. 이슬람교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입장을 수용하면 기독교를 전파하는데 오히려 유익한 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이런 점에서 타협하지 않는다. 예수는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궁극적인 진리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에서 관건은 신에 대한 이해다. 만약 신을 초월적인 능력으로 세상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한다면 예수는 신이 아니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신은 인간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낮추는 존재다. 신의 자기 낮춤이 예수에게서 발생했다. 예수가 인간이면서 동시에 신이니 우리는 그를 따름으로써만 구원받을 수 있다.


[레벨:17]홍새로

2018.12.14 18:56:24

비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가

초월적인 신 이해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네요, 그리스 신화의 신 표상처럼.
신의 자기 낮춤이 예수에게서 발생했고,

그를 따름으로 구원 받을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기독교인 이군요.

예수를 뒤따름은 처음만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계속 되어야 하는것 이네요.

진리를 가르치는 스승이 아니라 진리자체, 하나님 이므로..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8.12.14 21:28:23

본회퍼는 '비종교화' 개념으로 유명한 신학자입니다.

기독교는 일반적인 종교성에 의존하는 종교가 아니라

예수의 제자가 되는 종교라고 했지요.

나도 죽을 때까지 종교적으로 경건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예수에게 가까이 가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레벨:18]은나라

2018.12.14 21:43:56

기독교 관점의 신이해가 참으로 새롭습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8.12.14 21:50:30

더 깊이 알면 더 새로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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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따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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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수 1118

10월29일 예수 따름 바디매오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은 그가 즉시 예수를 따른 것이다. 예수가 누군지를 알아본 사람에게서는 그런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신앙은 취미생활처럼 안 해도 되지만 하면 더 좋은 대안적인 것이 아니다. 자신의 영혼 전체와 관련된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실존적인 결단이 뒤따른다. 이런 일은 바디매오나 당시 제자들만이 아니라 지난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일이다. 예수를 따른다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의 제자가 되어 그의 뜻에 순종해서 살아가는 ...

예수 어록(172) 요 8:23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 2019-08-07
  • 조회 수 1117

예수 어록(172) 요 8:23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예수를 거부하는 바리새인들은 철저하게 세상의 논리로 살았다. 그 논리는 나쁜 게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합리적인 작동방식이다. 바리새인들이 수호하는 율법만 해도 그렇다. 오랜 역사 경험을 통해서 축적된 삶의 질서를 상대화하기 시작하면 세상이 카오스로 떨어진다. 율법은 세상이 야만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범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

재앙과 죄

  • 2017-03-28
  • 조회 수 1117

3월28일, 화 재앙과 죄 지난 설교 성경 본문인 요 9장은 선천성 시각장애인을 둘러싼 이야기다. 제자들은 ‘누구의 죄냐?’ 하고 물었다. 설교에서 설명했듯이 이건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자네 잘못을 인정하라.’고 한 말과 마찬가지로 당시 유대인들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그들은 인간에게 일어나는 재앙의 원인을 죄로 보았다. 그것의 정점은 창세기의 타락 설화에 나온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한 죽음이다. 성서가 인간의 죄로 인해서 재앙과 죽음이 인간 운명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그건 표면적인 것이고 더 깊은 차원...

'먹는 게 그다.' [3]

  • 2017-02-08
  • 조회 수 1117

2월8일, 수 ‘먹는 게 그다.’ 사람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하루만 굶어도 배가 고파 죽겠다고 야단이다. 어떤 이는 너무 살이 쪄서 다이어트로 바쁘다. 비만은 주로 잘사는 선진국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에티오피아, 베트남, 북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비만을 찾기 힘들다.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 코스플레 하느라 일부러 살을 찌운 게 아닐는지. 한쪽에 비만인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다른 한쪽에 그런 정도로 먹을 게 없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지구에서 생산되는 먹을거리는 제한적이어서 어쩔 수 없다....

바람과 불 [2]

  • 2016-12-06
  • 조회 수 1117

12월6일, 화 바람과 불 앞 주일 설교 성경 본문인 마 3:11절에 예수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푼다는 말이 나온다. 성령은 헬라어 프뉴마의 번역이고 그 뜻이 무엇인지를 설교 시간에 설명했다. 바람(영)과 불은 고대인들에게 생명의 능력이었다. 이건 물리학적으로도 틀린 말이 아니다. 만약 지구에 바람과 불이 없다면 생명 현상은 불가능하다. 고대인들은 지구의 물리 현상을 몸으로 느끼면서 살았지만 오늘 현대인들은 그것을 소외시키고 있다. 인간 자신이 소외당하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 오늘 기독교인들이 ...

주간일지, 9월4일 [3]

  • 2016-09-04
  • 조회 수 1117

대구샘터교회 주간일지, 9월4일, 창조절 첫째 주일 1) 오늘은 성찬 예식이 거행되는 주일이었습니다. 설교가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성찬은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배의 핵심 요소는 바로 이 두 가지, 즉 설교와 성찬입니다. 저는 성찬 예식을 거행할 때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금하지 못합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습니다. 첫째는 빵과 포도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는 사실을 실질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찬 집행자인 목사가 이 사실을 어렴풋하게 알고 있으면 성찬의 의미는 대...

렘 1:4 [2]

  • 2016-08-26
  • 조회 수 1117

8월26일 렘 1:4 어제의 묵상 ‘예레미야의 소명’ 이야기를 좀더 보충하겠다. 본문이 대화 식으로 전개되지만 그것을 실제 대화로 보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하나님과의 대화는 성경에 종종 나온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대화했고, 모세도 그렇다. 그런 대화는 문학적 수사다. 수사에 매달리지 말고 본문의 핵심을 붙들어야 한다. 그 핵심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렘 1:4)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다는 발언은 천기누설처럼 위험하다. 말씀이 임했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는 건 하나...

주간일지 1월30일 주현후4주 file

  • 2022-01-31
  • 조회 수 1116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2년 1월30일, 주현 후 4주 1) 탄원- 시편을 문학 유형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민족 탄원시, 개인 탄원시, 민족 감사시, 개인 감사시, 찬양시, 예배 의식시, 시온의 노래, 제왕시, 하나님 왕권 찬양시, 지혜시. 모든 시편을 이런 유형에 끼어맞출 수는 없습니다. 여러 유형에 서로 걸쳐 있는 시도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71편은 개인 탄원(歎願) 시입니다. 하나님께 탄원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 세상에서 탄원을 드릴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

누가복음 톺아 읽기 128

  • 2021-04-29
  • 조회 수 1116

대구 성서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128, 눅 4:40 https://youtu.be/fjou-bMJ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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