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5일 케리그마(8)

조회 수 1691 추천 수 13 2008.05.14 22:21:13
2008년 5월15일 케리그마(8)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막 8:31)

‘사흘 후의 부활’이 후대의 삽입이라는 사실관계가 정말 옳은가, 하는 문제를 여기서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렵겠군요. 신학적으로 까다롭기도 하고, 이런 짧은 묵상의 글로 담기도 힘드니까요.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마가복음의 뒷부분으로 넘어가면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만나게 되겠지만, 그것이 어떤 실증적인 사실보도가 아니라는 걸 일단 전제해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일어난 부활 사건은 우리의 모든 인식을 근본적으로 뛰어넘는 종말론적 생명 사건입니다. 그것의 실체를 우리가 온전히 인식하려면 세상의 마지막이 와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오해는 마세요. 예수님의 부활 자체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단지 초기 기독교의 신앙고백에 불과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부활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완벽하게 해명하거나 증명할 수 있는 한계를 초월한 것입니다. 우주론적 차원에서 오직 예수님 한 분에게만 일어났던 그런 생명 사건을 우리가 실증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했다는 사실과 그가 제자들에게 부활의 몸으로 현현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죽음과 부활 사이에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복음서도 그것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마술이라고 한다면 세부적인 묘사를 했겠지요. 복음서에는 그런 묘사가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선포만 있습니다. 그런 선포 안에 ‘사흘’이라는 숫자가 들어 있습니다. 그들이 그런 숫자에 도달하게 된 이유는 구약성서의 영향입니다. 부활경험을 구약에 근거해서 해석한 결과가 바로 그런 결과를 낳았습니다.

[레벨:4]ryu570412

2008.05.15 13:21:23

아직 신앙의 초보입니다. 이런 글을 묵상함에 있어서 어떤 접근과 무엇에 대해 묵상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시겠어요? 이 글만으로는 무엇을 묵상해야할지 잘 모르겠네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8.05.15 18:03:07

아이디가 복잡하군요.
ryu570412 님,
반갑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묵상하는 거랍니다.
그 근거는 바로 마가복음이구요.
2천년 전 마가복음 기자가
어떤 영적 경험을 했는지,
또 마가복음과 같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왜 이런 문서를 남기게 되었는지를 말입니다.
학생은 어떤 목적 의식을 버리고
그냥 글을 읽어보세요.
천천히요.
무얼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버리구요.
자주 놀러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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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22일 사탄아!(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막 8:33)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이 대립할 때를 우리가 분간하기 어렵다고 어제의 묵상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이 고난 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며, 사람의 일은 그런 걸 피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의 시각을 보면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구원이 아직 기독교의 신앙으로 받아들...

5월21일 사탄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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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21일 사탄아!(2)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막 8:33) 우선 예수님의 설명에 대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잘못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고난과 죽임과 부활이 일어나지 말도록 요구했습니다. 여기서 부활 문제는 조금 복잡하니까 빼고 생각하는 게 좋겠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당하실 고난과 죽임을 만류...

5월20일 사탄아!(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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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20일 사탄아!(1)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막 8:33) 베드로의 항변을, 사실은 예수님을 위한 항변인데, 들으신 예수님은 예상외의 태도를 보이셨습니다. 일단 제자들을 돌아보면서 베드로를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꾸짖음은 베드로만이 아니라 모든 제자를 향한 것이라는 뜻이겠지요. “사탄아!” 병행구인 마태복음 16:21절 이하에는 “사탄아!” 하는 예수님의 책망이 거론되지...

5월19일 베드로의 항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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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19일 베드로의 항변(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막 8:32)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고난, 죽임, 부활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항변한 이유는 그 당시의 메시아 상이 이것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어제 말씀드렸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아무래도 ‘부활’에 관해서 한 마디 더해야겠습니다. 오늘 우리의 기준으로만 본다면 아무리 고난과 죽임이 예고되었다고 하더라도 부활이 뒤따른다는 사실이 확실하다면 예수의 운명을 마다할 까닭이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명시적으로 ...

5월18일 베드로의 항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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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18일 베드로의 항변(1)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막 8:32) 고난, 죽임, 부활은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서 본질적인 것인데, 그것을 베드로가 가로막았다는 건 약간 이상하게 보입니다. 우리가 이런 고난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다면 어떻게 반응을 했을까요? 고난과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었다면 베드로처럼 우리도 항변했겠지만,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도 함께 말씀하셨다면 당연히 아멘으로 화답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뜯어말린 ...

5월17일 케리그마(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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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17일 케리그마(10)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막 8:31) 우리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고난과 죽임과 부활을 케리그마로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만이 우리의 구원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 공동체에 속한 우리는 이 케리그마에 매진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런 신앙을 관념적이라거나 실천이 없다고 비판하지만, 그건 케리그마를 잘 모르는 데서 나오는 오해입니다. 케리그마에 천착...

5월16일 케리그마(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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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16일 케리그마(9)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막 8:31) 예수님이 고난, 죽임, 부활을 예고하셨다는 위의 본문은 예수님의 삶과 초기 기독교인들의 신앙고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완성된 초기 기독교의 신앙적 명제입니다. 이 명제에 기독교 신앙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케리그마라고 합니다. 이 내용을 조금 더 확대하면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도 역시 케리그마에 속합니다....

5월15일 케리그마(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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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15일 케리그마(8)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막 8:31) ‘사흘 후의 부활’이 후대의 삽입이라는 사실관계가 정말 옳은가, 하는 문제를 여기서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렵겠군요. 신학적으로 까다롭기도 하고, 이런 짧은 묵상의 글로 담기도 힘드니까요.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마가복음의 뒷부분으로 넘어가면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만나게 되겠지만, 그것이 어떤 실증적인 사실보도가 아니라...

5월14일 케리그마(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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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14일 케리그마(7)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막 8:31) 케리그마의 세 번째 항목은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아마 이 대목이 조금 이상하게 보일 겁니다. 이상하게 보이지 않으면 아래와 같이 둘 중의 하나입니다. 믿음이 너무 좋거나, 아니면 생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분들은 성서에서 어떤 내용을 만나도 아무런 갈등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

5월13일 케리그마(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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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13일 케리그마(6)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막 8:31) 예수님이 유대교의 지도자들에게 노골적으로 배척받았다기보다는 관심을 끌지 못했을 뿐이라는 어제의 묵상 내용이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군요. 자칫하면 복음서의 기존 흐름을 깨뜨리는 것 같아 보이니까요.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거기서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객관적인 역사가의 눈으로 예수 사건을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역사가의 ...

5월12일 케리그마(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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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12일 케리그마(5)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막 8:31) 케리그마의 둘째 항목은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이것은 고난과의 연장선에 놓여 있긴 하지만, 고난의 궁극이라는 점에서 구별해야 합니다. 본 구절에는 인자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 및 서기관들에게 버림받고 죽임을 당한다고 진술되어 있습니다. 장로, 대제사장, 서기관들은 그 당시 유대교의 고위 성직자들입니다. 이 세상의 권세자들입니다. 초기 ...

5월11일 케리그마(4) [1]

  • 2008-05-10
  • 조회 수 1440

2008년 5월11일 케리그마(4)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막 8:31) 예수님의 고난, 또는 수난이 말하려는 핵심을 이해하려면 우선 인간의 삶과 고난의 문제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인간의 실존이 가장 명백하게 확인되는 순간이 바로 고난입니다. 우리가 인간이라면 당연히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지난 인류 역사는 바로 그것의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어느 누구도 여기서 제외된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

5월10일 케리그마(3)

  • 2008-05-09
  • 조회 수 1613

2008년 5월10일 케리그마(3)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막 8:31)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겠지요. 멜 깁슨이 제작자 겸 감독이었다고 합니다. 시사회에 참석한 신학자 존 파이퍼는 이 영화가 예수님의 고난을 훌륭하게 묘사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왜 예수가 그렇게까지 고난을 당해야 했는가?”에 대한 의문점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미국에서 영화가 개봉되기 전인 2004년 초에 이에 관...

5월9일 케리그마(2)

  • 2008-05-08
  • 조회 수 1554

2008년 5월9일 케리그마(2)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막 8:31) 인자(人子)가 많은 고난을 받는다는 본 구절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밥을 굶었다거나 몸이 아팠다는 말은 아니겠지요. 예수님의 아버지는 목수였는데, 목수라는 직업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절절 매는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현장 노동자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밥걱정을...

5월8일 케리그마(1)

  • 2008-05-07
  • 조회 수 1904

2008년 5월8일 케리그마(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막 8:31) 오늘 우리는 감당하기 힘든 구절을 만났습니다. 이 한 구절을 심도 있게 해석하려면, 조금 과장해서 책 한 권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한 후에 바로 이 구절을 말씀하셨습니다. 27-30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나’라고 호칭합니다. 그런데 여기 31절에서는 ‘인자’(Des Menschen Sohn, 루터 역본)라고 칭했습...

5월7일 주님의 경고(4)

  • 2008-05-06
  • 조회 수 1390

2008년 5월7일 주님의 경고(4)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막 8:30)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밖으로 떠들지 말라고 경고하셨다는 사실과 연관해서 예수님의 자기 인식을 한번 짚는 게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메시아(그리스도)로 인식하셨는지, 그렇다면 그 때가 언제인지에 대한 질문은 “주님은 그리스도시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는 경고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예수님은 자신을 누구로 인식했을까요? 성서기자들도 그것에 관해서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복음서에 따른다고 하더라...

5월6일 주님의 경고(3) [2]

  • 2008-05-05
  • 조회 수 1691

2008년 5월6일 주님의 경고(3)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막 8:30)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밖으로 떠들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이 메시아 비밀이라는 마가의 신학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을 온 세상에 전해야 한다는 증언이 신약성서에 흔하게 나온다는 사실과 지난 2천년 동안 기독교가 매우 적극적인 선교를 지향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와 연루된 문제를 교회사의 관점에서 두 가지만 짚겠습니다. 우리...

5월5일 주님의 경고(2)

  • 2008-05-04
  • 조회 수 1357

2008년 5월5일 주님의 경고(2)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막 8:30) 오늘의 교회도 역시 어제 묵상에서 언급되었듯이 복음을 비밀과 선포의 변증법적인 긴장 가운데서 접근해야 합니다. 선포의 차원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예수와 그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바로 곧 교회의 존재 이유로 부각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가슴 띠와 확성기로 번화가의 청중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아주 일상적으로 활동하고 있을 정도니까, 더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복음의 비밀에 관해...

5월4일 예수의 경고(1)

  • 2008-05-04
  • 조회 수 1881

2008년 5월4일 예수의 경고(1)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막 8:30)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하는 베드로의 고백을 들은 예수님은 당신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정확한 진술은 가능한대로 널리 선포해야 하는 게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침묵을 명령하시다니,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이 침묵 요청은 마가복음의 신학입니다. 마가복음 곳곳에 이런 침묵 요청이 진술됩니다. 예컨대 죽음에 이르렀던 야이로의 딸을 건져내신 주님은 그 사...

5월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30) [2]

  • 2008-05-03
  • 조회 수 1583

2008년 5월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30)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한 사람의 죄를 다른 사람이 대신 짊어지고 간다는 사실만 놓고 본다면 그것은 분명히 고대인들의 신화적 세계관처럼 보입니다. 고대인들과 달리 현대인들은 자기의 잘못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을 때 아버지가 대신 감옥살이를 할 수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대속론은 현대인들에게 아무런 실효성이 없을까요? 우리는 고대인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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