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0일 둔한 마음

조회 수 1553 추천 수 6 2008.03.19 23:22:33
2008년 3월20일 둔한 마음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막 8:17)

어제의 묵상에서 우리는 동문서답 하는 제자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생각을 전혀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결국 주님의 일에 크게 쓰임을 받았다는 그런 역사적 사실에서 우리는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능력으로만 하나님 나라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미래에 일어납니다. 제자들은 아직 어리석음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영적 상태를 지적하십니다.
그것이 네 가지 특징으로 그려졌습니다. 수군거림, 알지 못함, 깨닫지 못함, 둔한 마음이 그것입니다. 이 네 가지 특성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제가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이 묵상의 독자들께서 각각 생각해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다만 저는 마지막으로 거론된 특징인 ‘둔한 마음’에만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나머지의 것들을 모두 함축하고 있다거나 가장 특징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 마음이 둔하다는 것은 어떤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단지 현상에만 머물러 있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으면서도 그가 누구인지 잘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거꾸로 우리는 어떻게 마음이 둔하지 않고 예민해질 수 있을까요? 거기에 왕도가 따로 있는 건 아닙니다. 마음이 예민했던 신앙의 스승들에게서 배우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림을 잘 그리려면 그런 스승을 찾아가야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스승들을 성서와 지난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 경전과 전통을 바르게 배우는 것은 우리의 신앙에서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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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3]달팽이

2008.03.20 13:13:42

우리가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현상에 머물러 진작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를 잃어버리겠군요.
그런의미에서 매일 자신의 삶을 점검해 보며,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임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발견하고 동참하고 싶네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8.03.20 23:25:35

달팽이 님은 이미 그 길을 잘 가고 있습니다.
산 높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가족들과 알콩달콩 재미 있고 성실하게 사는
달팽이 님을 보면 부럽습니다.
좋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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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2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1)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지난 며칠 동안의 묵상이 본문에서 너무 멀리 나간 것 같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다.”라는 한 문장을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와 묵시문학으로 끌고 들어갔으니까요. 그 이외에도 더 많은 문제들이 그 명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짧은 묵상에서 모두 다룰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앞의 진술을 바탕에 놓고 본문과 가장 가까운 문제로 들어가야겠습니다. 초기 기독교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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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22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0)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주는 그리스도시다.”라는 초기 기독교의 가장 원초적인 신앙고백이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관점은 구약의 묵시문학적인 배경입니다. 묵시문학만이 이런 우주론적 기독론의 토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틀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구약으로는 다니엘, 에스겔, 이사야 등등의 여러 문서에서, 그리고 신약으로는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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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21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주는 그리스도시다.”라는 초기 기독교의 가장 기초적인 신앙고백은 어제 말씀드린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가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되었다, 또는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그런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를 염두에 두고 이런 고백을 했다는 건,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철학자나 물리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학자도 아닌 베드로가 그런 고상한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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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2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8)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하나님의 현실을 경험하는 데에는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 겁니다. 또는 “주는 그리스도시다.”는 명제를 우주론적 지평으로 확대하면 결국 기독교의 정체성이 훼손된다고 주장할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 말은 기독교 신앙이 무언지 잘 모르는데서 나오는 염려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의 하나님은 ‘창조자’입니다. ‘전능하사 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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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19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7)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하나님의 현실을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에서 모색”하는 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의 현실을 획득하는 데 중요하다는 어제의 말씀을 조금 더 보충해야겠군요. 그에 앞서 위에 언급된 ‘현실’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잠간 짚는 게 좋겠습니다. 이런 단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건 기독교 신앙의 깊이로 들어가기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랍니다. ‘하나님’도 사실 단어거든요. 그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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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18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6)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성화론도 아니고, 구원파도 아니라면 우리는 어떻게 칭의의 현실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서 성화론의 행동주의도 아니고 구원파의 열광주의도 아닌, 제 삼의 길은 무엇일까요? 제 삼의 길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유별나게 다른 데 있는 건 아닙니다. 기독교 정통이 말하는 데 귀를 기울이면 됩니다. 이 말은 곧 한국교회에서 득세하고 있는 성화론과 구원파는 지난 2천년 기독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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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17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5)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어제 말씀드린 성화론자들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소위 구원파가 그들입니다. 성화론자들이 칭의의 현실을 실제로 드러나는 행동에서 찾으려고 하는 반면에 구원파는 존재론적 깊이에서 찾습니다. 그들은 구원이 이미 실행, 또는 완성되었다는 사실에 온전히 집중합니다. 다만 하늘의 구원과 지상의 구원을 구별합니다. 하늘에서는 이미 완전하게 성취되었지만 지상에서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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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16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4)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는 명제는 곧 초기 기독교의 구원론과 직결된다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 구원론이 바로 칭의론이었다는 것도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으로 우리의 질문이 모두 정리되는 건 아닙니다. 칭의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현실이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칭의(justification)를 얻었다고 해서 실제로 우리가 변화되는 건 아닙니다....

4월15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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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15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3)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어제 저는 칭의론을 말씀드렸습니다. 그게 말이 되나, 또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근거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여기에서 바로 기독교인이 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가 갈립니다.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그는 기독교인이 되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겠지요. 각자가 결단하고 선택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를...

4월14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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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14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2)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명제는 예수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신약 성서가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의롭다고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인정받는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실제로 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건 아닙니다. 죄가 없다고,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뿐입니...

4월1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1) [1]

  • 2008-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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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1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1)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요즘 제가 다루고 있는 내용들, 즉 죄, 대속, 하나님, 구원 등등의 개념들이 너무 관념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소위 케리그마를 구성하고 있는 이런 개념들은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이 세상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해석하는 통로였습니다. 이 개념들은 그들에게만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을 그대로 지켜오는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

4월12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0)

  • 2008-04-12
  • 조회 수 1396

2008년 4월12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0)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사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으로만 본다면 그건 결코 구원과 상관이 없습니다. 상관없는 정도가 아니라 대립적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십자가 처형은 두 가지 결정적인 실체를 가리킵니다. 하나는 죽음이며, 다른 하나는 저주입니다. 구원은 이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어야 합니다. 죽음이 아니라 삶이며,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초기 기독교는 바로 그런 십자가 처형을 구원...

4월11일 주는 그리스도시다(9) [2]

  • 2008-04-10
  • 조회 수 1494

2008년 4월11일 주는 그리스도시다(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명제에서 ‘예수’는 아주 명백합니다. 예수는 자연인이었던 어떤 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로 전락해 있던 1세기 초반에 목수였던 아버지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나 30대 초반에 십자가에 달려 죽은 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그 당시에 흔했던 이름인 예수로 살았습니다. 그는 아주 정상적이고 아주 평범한 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의 ...

4월1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8) [10]

  • 2008-04-09
  • 조회 수 2140

2008년 4월1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8)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저주 받은 운명이 구원의 길로 인식된 이 맥락에 바로 기독교의 정체성이 담겨 있습니다. 이걸 놓치면 기독교의 본질을 잃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신앙을 계승하고 있는 교회에서도 이걸 잃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십자가가 축복의 비법쯤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흔합니다. 예수 믿고 범사에 모든 것이 잘 된다는 기복적인 신앙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승리의 길로 생각합니다...

4월9일 주는 그리스도시다(7) [2]

  • 2008-04-08
  • 조회 수 1458

2008년 4월9일 주는 그리스도시다(7)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고대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아는 게 여기서 중요합니다. 십자가 처형은 로마의 사형법입니다. 십자가 처형 장소는 예루살렘만이 아니라 로마 제국이 통치하던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죄수들은 십자형의 나무틀을 지고 목에는 죄목의 명패를 단 채 그곳으로 끌려가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키케로(Cicero)는 라비리우스(Rabirius)를 위한 연설에서...

4월8일 주는 그리스도시다(6) [2]

  • 2008-04-07
  • 조회 수 1545

2008년 4월8일 주는 그리스도시다(6)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의 증거는 우선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라고 말해도 될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신앙고백에 의하면 위의 주장은 당연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구절들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가 당할 십자가의 죽음을 뜯어 말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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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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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7일 주는 그리스도시다(5)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어제에 이어서 다시 묻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어떤 분들은 “뜻은 무슨 뜻, 그것은 그대로 명백한 사실 아니냐?” 하고 생각할 겁니다. 그렇게 자꾸 따져 묻지 말고 소박하게 믿으면 충분하지 않느냐, 하고 말입니다. 옳습니다. 그것을 분명한 사실로 믿는 것만으로 우리는 기독교인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의 실질적인 의미를 가능한대로 깊이 아는 것은 우...

4월6일 주는 그리스도시다(4)

  • 2008-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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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6일 주는 그리스도시다(4)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공관복음서에 따라서 제 각각 다르다고 어제 말씀드렸습니다. 공통되는 부분은 ‘그리스도’입니다. 공관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의 대답이 원형에 가깝겠지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첨부한 마태복음은 아마 베드로의 권위가 막강했던 공동체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진술하는 누가복음의 노선은 마태...

4월5일 주는 그리스도시다(3) [1]

  • 2008-04-04
  • 조회 수 1518

2008년 4월5일 주는 그리스도시다(3)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는 고백으로 제자 집단 중에서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마태복음은 약간 확장된 신앙고백을 제시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참고적으로 누가복음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눅 9:20)라고 전합니다. 이 신앙고백의 중심은 똑같지만 그 표현 방식은 서로 다릅니다. 어제 묵상의 마지막 대목에서 짚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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