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2일 질문(1)

조회 수 1669 추천 수 13 2008.03.21 23:02:29
2008년 3월22일 질문(1)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막 8:19)

예수님은 18절에서 제자들을 향해서 왜 기억하지 못하는가,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것은 물론 6장과 8장에서 보도된 군중 급식에 관한 두 사건을 가리킵니다. 이제 예수님은 그걸 구체적으로 거론하십니다. 오늘 본문 19절에서는 6장의 내용을, 다음 20절에서는 8장의 내용을 질문하셨습니다. 그 질문에 제자들은 각각 정확하게 대답했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고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였고, 사천 명을 먹인 뒤에는 일곱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제자들의 대답은 사실 대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3 곱하기 3은 얼마냐, 하는 질문에 9라고 대답한 것과 똑같습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천 명이 먹고 남은 게 열두 바구니였다는 걸 누가 모릅니까? 예수님이 그런 대답을 듣고 싶어서 이런 질문을 주신 게 아닙니다.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초보적인 질문을 하신 것뿐입니다.
물음과 대답의 과정을 통해서 제자들이 스스로 진리를 깨닫게 하는 교육방식이 소크라테스의 산파법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으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진 일이 많았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어떤 날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언자라 하는 이들도 있고, 세례 요한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고 대답하자, 이어서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하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이런 질문을 하신 게 아닙니다. 제자들을 깨닫게 하기 위한 질문입니다.
20세기 최고의 해석학적 철학자인 가다머는 철학이란 인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관해 질문할 줄 아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라고 했답니다. 신학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지금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 질문할 줄 아는 사람들인가요?

profile

[레벨:28]정성훈

2008.03.21 23:27:18

아멘.!!.. 역시 질문이 중요합니다..
질문이 답이다..
profile

[레벨:23]모래알

2008.03.22 22:35:04

많이 많이 질문하며 살겠습니다.
부활의 새벽을 기다리면서.. 감사합니다.
profile

[레벨:13]바다지기

2008.03.23 23:29:58

설교할 때도 가끔 성도들에게 질문을 던지곤 하는데
장 목사님께서 그 점을 높이 사 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설교에서 질문은 그래서 더욱 중요한가 봅니다.

[레벨:18]눈꽃

2008.11.18 11:34:09

거지가 레스토랑의 창문을 통하여 남들이먹고 있는 것을 본다.
남들의 기쁨을 눈으로 보나 내 배가 부를 리 만무다.

동냥한 것으로 안에 들어가 식사를 한다. 한 때를 즐겼으나
항구적인 해결은 아니다.

일터를 얻어 일한 대가로 나의 양식을 즐긴다. 뿌듯하게 만족스럽다.

옛 사람들이 묻고 옛 사람이 대답한 기록을 읽는 것이 처음 경우요, 살아있는 내가 살아 있는 스승의
말을 듣는 것이 둘째 경우요, 나 스스로 묻고 나 스스로 답을 얻는 전인적 체험이 마지막 경우라 할 수 있다

나 스스로 묻고 답을 얻을 때까지의 기다림 인내가 부족한 나에게는 힘들다. 그래서 가끔 답을 포기할 때도 많다
다비아 큐티 시작 19일 째 .........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8.11.18 13:25:24

와, 눈꽃 님은 문학적인 소질이 있군요.
지금 스스로의 영적 순례의 길을 갖고 있다는 게 눈에 보입니다.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며,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삶의 순례 길을 가보십시오.
생명의 영이신 성령이 함께 한다는 그 신비를 발견한다면
그 혼자의 길이 멋지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그러나 힘들고 외로울 때도 있을 텐데,
그럴 때는 그 자리에 앉아서 길동무를 만날 때까지 기다려보세요.
주의 은초이.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4월24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2)

  • 2008-04-23
  • 조회 수 1611

2008년 4월24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2)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부활은 생명 경험입니다. 주는 그리스도라는 명제의 핵심도 역시 생명입니다. 메시아는 구원자인데, 구원은 생명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그 생명의 현실이 부활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부활 현현 경험을 통해서 이제 예수가 생명의 토대라는 사실을 믿게 된 것입니다. 부활과 생명의 관계를 조금 더 설명하는 게 좋겠군요. 부활은 일단 죽음을 전제합니다. 이런 죽음에서 벗어난 사...

4월2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1) [2]

  • 2008-04-22
  • 조회 수 1337

2008년 4월2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1)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지난 며칠 동안의 묵상이 본문에서 너무 멀리 나간 것 같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다.”라는 한 문장을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와 묵시문학으로 끌고 들어갔으니까요. 그 이외에도 더 많은 문제들이 그 명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짧은 묵상에서 모두 다룰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앞의 진술을 바탕에 놓고 본문과 가장 가까운 문제로 들어가야겠습니다. 초기 기독교가 예...

4월22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0) [4]

  • 2008-04-21
  • 조회 수 1769

2008년 4월22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0)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주는 그리스도시다.”라는 초기 기독교의 가장 원초적인 신앙고백이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관점은 구약의 묵시문학적인 배경입니다. 묵시문학만이 이런 우주론적 기독론의 토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틀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구약으로는 다니엘, 에스겔, 이사야 등등의 여러 문서에서, 그리고 신약으로는 요...

4월21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9) [2]

  • 2008-04-20
  • 조회 수 1432

2008년 4월21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주는 그리스도시다.”라는 초기 기독교의 가장 기초적인 신앙고백은 어제 말씀드린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가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되었다, 또는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그런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를 염두에 두고 이런 고백을 했다는 건,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철학자나 물리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학자도 아닌 베드로가 그런 고상한 개념...

4월2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8) [3]

  • 2008-04-19
  • 조회 수 1614

2008년 4월2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8)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하나님의 현실을 경험하는 데에는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 겁니다. 또는 “주는 그리스도시다.”는 명제를 우주론적 지평으로 확대하면 결국 기독교의 정체성이 훼손된다고 주장할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 말은 기독교 신앙이 무언지 잘 모르는데서 나오는 염려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의 하나님은 ‘창조자’입니다. ‘전능하사 천지...

4월19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7) [3]

  • 2008-04-18
  • 조회 수 1592

2008년 4월19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7)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하나님의 현실을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에서 모색”하는 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의 현실을 획득하는 데 중요하다는 어제의 말씀을 조금 더 보충해야겠군요. 그에 앞서 위에 언급된 ‘현실’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잠간 짚는 게 좋겠습니다. 이런 단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건 기독교 신앙의 깊이로 들어가기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랍니다. ‘하나님’도 사실 단어거든요. 그 단...

4월18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6) [2]

  • 2008-04-17
  • 조회 수 1552

2008년 4월18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6)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성화론도 아니고, 구원파도 아니라면 우리는 어떻게 칭의의 현실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서 성화론의 행동주의도 아니고 구원파의 열광주의도 아닌, 제 삼의 길은 무엇일까요? 제 삼의 길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유별나게 다른 데 있는 건 아닙니다. 기독교 정통이 말하는 데 귀를 기울이면 됩니다. 이 말은 곧 한국교회에서 득세하고 있는 성화론과 구원파는 지난 2천년 기독교 ...

4월17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5) [2]

  • 2008-04-16
  • 조회 수 1676

2008년 4월17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5)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어제 말씀드린 성화론자들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소위 구원파가 그들입니다. 성화론자들이 칭의의 현실을 실제로 드러나는 행동에서 찾으려고 하는 반면에 구원파는 존재론적 깊이에서 찾습니다. 그들은 구원이 이미 실행, 또는 완성되었다는 사실에 온전히 집중합니다. 다만 하늘의 구원과 지상의 구원을 구별합니다. 하늘에서는 이미 완전하게 성취되었지만 지상에서는 그...

4월16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4) [10]

  • 2008-04-15
  • 조회 수 1957

2008년 4월16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4)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는 명제는 곧 초기 기독교의 구원론과 직결된다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 구원론이 바로 칭의론이었다는 것도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으로 우리의 질문이 모두 정리되는 건 아닙니다. 칭의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현실이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칭의(justification)를 얻었다고 해서 실제로 우리가 변화되는 건 아닙니다....

4월15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3) [1]

  • 2008-04-14
  • 조회 수 1340

2008년 4월15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3)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어제 저는 칭의론을 말씀드렸습니다. 그게 말이 되나, 또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근거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여기에서 바로 기독교인이 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가 갈립니다.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그는 기독교인이 되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겠지요. 각자가 결단하고 선택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를...

4월14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2) [1]

  • 2008-04-13
  • 조회 수 1231

2008년 4월14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2)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명제는 예수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신약 성서가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의롭다고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인정받는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실제로 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건 아닙니다. 죄가 없다고,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뿐입니...

4월1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1) [1]

  • 2008-04-12
  • 조회 수 1269

2008년 4월1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1)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요즘 제가 다루고 있는 내용들, 즉 죄, 대속, 하나님, 구원 등등의 개념들이 너무 관념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소위 케리그마를 구성하고 있는 이런 개념들은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이 세상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해석하는 통로였습니다. 이 개념들은 그들에게만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을 그대로 지켜오는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

4월12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0)

  • 2008-04-12
  • 조회 수 1396

2008년 4월12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0)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사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으로만 본다면 그건 결코 구원과 상관이 없습니다. 상관없는 정도가 아니라 대립적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십자가 처형은 두 가지 결정적인 실체를 가리킵니다. 하나는 죽음이며, 다른 하나는 저주입니다. 구원은 이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어야 합니다. 죽음이 아니라 삶이며,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초기 기독교는 바로 그런 십자가 처형을 구원...

4월11일 주는 그리스도시다(9) [2]

  • 2008-04-10
  • 조회 수 1494

2008년 4월11일 주는 그리스도시다(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명제에서 ‘예수’는 아주 명백합니다. 예수는 자연인이었던 어떤 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로 전락해 있던 1세기 초반에 목수였던 아버지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나 30대 초반에 십자가에 달려 죽은 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그 당시에 흔했던 이름인 예수로 살았습니다. 그는 아주 정상적이고 아주 평범한 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의 ...

4월1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8) [10]

  • 2008-04-09
  • 조회 수 2140

2008년 4월1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8)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저주 받은 운명이 구원의 길로 인식된 이 맥락에 바로 기독교의 정체성이 담겨 있습니다. 이걸 놓치면 기독교의 본질을 잃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신앙을 계승하고 있는 교회에서도 이걸 잃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십자가가 축복의 비법쯤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흔합니다. 예수 믿고 범사에 모든 것이 잘 된다는 기복적인 신앙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승리의 길로 생각합니다...

4월9일 주는 그리스도시다(7) [2]

  • 2008-04-08
  • 조회 수 1458

2008년 4월9일 주는 그리스도시다(7)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고대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아는 게 여기서 중요합니다. 십자가 처형은 로마의 사형법입니다. 십자가 처형 장소는 예루살렘만이 아니라 로마 제국이 통치하던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죄수들은 십자형의 나무틀을 지고 목에는 죄목의 명패를 단 채 그곳으로 끌려가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키케로(Cicero)는 라비리우스(Rabirius)를 위한 연설에서...

4월8일 주는 그리스도시다(6) [2]

  • 2008-04-07
  • 조회 수 1545

2008년 4월8일 주는 그리스도시다(6)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의 증거는 우선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라고 말해도 될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신앙고백에 의하면 위의 주장은 당연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구절들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가 당할 십자가의 죽음을 뜯어 말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

4월7일 주는 그리스도시다(5)

  • 2008-04-06
  • 조회 수 1381

2008년 4월7일 주는 그리스도시다(5)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어제에 이어서 다시 묻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어떤 분들은 “뜻은 무슨 뜻, 그것은 그대로 명백한 사실 아니냐?” 하고 생각할 겁니다. 그렇게 자꾸 따져 묻지 말고 소박하게 믿으면 충분하지 않느냐, 하고 말입니다. 옳습니다. 그것을 분명한 사실로 믿는 것만으로 우리는 기독교인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의 실질적인 의미를 가능한대로 깊이 아는 것은 우...

4월6일 주는 그리스도시다(4)

  • 2008-04-05
  • 조회 수 1841

2008년 4월6일 주는 그리스도시다(4)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공관복음서에 따라서 제 각각 다르다고 어제 말씀드렸습니다. 공통되는 부분은 ‘그리스도’입니다. 공관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의 대답이 원형에 가깝겠지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첨부한 마태복음은 아마 베드로의 권위가 막강했던 공동체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진술하는 누가복음의 노선은 마태...

4월5일 주는 그리스도시다(3) [1]

  • 2008-04-04
  • 조회 수 1518

2008년 4월5일 주는 그리스도시다(3)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는 고백으로 제자 집단 중에서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마태복음은 약간 확장된 신앙고백을 제시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참고적으로 누가복음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눅 9:20)라고 전합니다. 이 신앙고백의 중심은 똑같지만 그 표현 방식은 서로 다릅니다. 어제 묵상의 마지막 대목에서 짚었...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