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2일 질문(1)

조회 수 1682 추천 수 13 2008.03.21 23:02:29
2008년 3월22일 질문(1)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막 8:19)

예수님은 18절에서 제자들을 향해서 왜 기억하지 못하는가,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것은 물론 6장과 8장에서 보도된 군중 급식에 관한 두 사건을 가리킵니다. 이제 예수님은 그걸 구체적으로 거론하십니다. 오늘 본문 19절에서는 6장의 내용을, 다음 20절에서는 8장의 내용을 질문하셨습니다. 그 질문에 제자들은 각각 정확하게 대답했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고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였고, 사천 명을 먹인 뒤에는 일곱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제자들의 대답은 사실 대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3 곱하기 3은 얼마냐, 하는 질문에 9라고 대답한 것과 똑같습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천 명이 먹고 남은 게 열두 바구니였다는 걸 누가 모릅니까? 예수님이 그런 대답을 듣고 싶어서 이런 질문을 주신 게 아닙니다.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초보적인 질문을 하신 것뿐입니다.
물음과 대답의 과정을 통해서 제자들이 스스로 진리를 깨닫게 하는 교육방식이 소크라테스의 산파법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으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진 일이 많았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어떤 날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언자라 하는 이들도 있고, 세례 요한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고 대답하자, 이어서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하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이런 질문을 하신 게 아닙니다. 제자들을 깨닫게 하기 위한 질문입니다.
20세기 최고의 해석학적 철학자인 가다머는 철학이란 인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관해 질문할 줄 아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라고 했답니다. 신학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지금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 질문할 줄 아는 사람들인가요?

profile

[레벨:28]정성훈

2008.03.21 23:27:18

아멘.!!.. 역시 질문이 중요합니다..
질문이 답이다..
profile

[레벨:23]모래알

2008.03.22 22:35:04

많이 많이 질문하며 살겠습니다.
부활의 새벽을 기다리면서.. 감사합니다.
profile

[레벨:13]바다지기

2008.03.23 23:29:58

설교할 때도 가끔 성도들에게 질문을 던지곤 하는데
장 목사님께서 그 점을 높이 사 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설교에서 질문은 그래서 더욱 중요한가 봅니다.

[레벨:18]눈꽃

2008.11.18 11:34:09

거지가 레스토랑의 창문을 통하여 남들이먹고 있는 것을 본다.
남들의 기쁨을 눈으로 보나 내 배가 부를 리 만무다.

동냥한 것으로 안에 들어가 식사를 한다. 한 때를 즐겼으나
항구적인 해결은 아니다.

일터를 얻어 일한 대가로 나의 양식을 즐긴다. 뿌듯하게 만족스럽다.

옛 사람들이 묻고 옛 사람이 대답한 기록을 읽는 것이 처음 경우요, 살아있는 내가 살아 있는 스승의
말을 듣는 것이 둘째 경우요, 나 스스로 묻고 나 스스로 답을 얻는 전인적 체험이 마지막 경우라 할 수 있다

나 스스로 묻고 답을 얻을 때까지의 기다림 인내가 부족한 나에게는 힘들다. 그래서 가끔 답을 포기할 때도 많다
다비아 큐티 시작 19일 째 .........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8.11.18 13:25:24

와, 눈꽃 님은 문학적인 소질이 있군요.
지금 스스로의 영적 순례의 길을 갖고 있다는 게 눈에 보입니다.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며,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삶의 순례 길을 가보십시오.
생명의 영이신 성령이 함께 한다는 그 신비를 발견한다면
그 혼자의 길이 멋지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그러나 힘들고 외로울 때도 있을 텐데,
그럴 때는 그 자리에 앉아서 길동무를 만날 때까지 기다려보세요.
주의 은초이.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sort 조회 수

5월4일 예수의 경고(1)

  • 2008-05-04
  • 조회 수 1885

2008년 5월4일 예수의 경고(1)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막 8:30)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하는 베드로의 고백을 들은 예수님은 당신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정확한 진술은 가능한대로 널리 선포해야 하는 게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침묵을 명령하시다니,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이 침묵 요청은 마가복음의 신학입니다. 마가복음 곳곳에 이런 침묵 요청이 진술됩니다. 예컨대 죽음에 이르렀던 야이로의 딸을 건져내신 주님은 그 사...

5월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30) [2]

  • 2008-05-03
  • 조회 수 1585

2008년 5월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30)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한 사람의 죄를 다른 사람이 대신 짊어지고 간다는 사실만 놓고 본다면 그것은 분명히 고대인들의 신화적 세계관처럼 보입니다. 고대인들과 달리 현대인들은 자기의 잘못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을 때 아버지가 대신 감옥살이를 할 수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대속론은 현대인들에게 아무런 실효성이 없을까요? 우리는 고대인들의 ...

5월2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9)

  • 2008-05-01
  • 조회 수 1661

2008년 5월2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우리의 죄가 예수의 십자가 처형으로 대속된다는 이 말을 잘 생각해보십시오. 현대인들은 그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해하기도 힘들 겁니다. 그 이유는 죄에 관한 기독교의 가르침이 현대인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힘들다는 데에 놓여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을 죄인이라고 경험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벌어지는 잘못들은 단지 실수이거나 잘못된 교육, 또는 왜곡된 사회구...

5월1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8) [1]

  • 2008-04-30
  • 조회 수 1396

2008년 5월1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8)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주는 그리스도시다.”는 이 명제가 담고 있는 기독론적 근거를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구원, 죄, 십자가, 부활, 생명 등등의 개념들이 여기서 제시되었습니다. 이것 이외에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 종말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생각해야겠지요.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와 종말은 모두 구원의 문제이니까요. 여기서 무한정 시간을 끌 수가 없겠지요. 저는 열 번째 글...

4월3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7)

  • 2008-04-29
  • 조회 수 1591

2008년 4월3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7)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우리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주는 그리스도시다.”는 명제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독자들께서 이미 눈치 챘겠지만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바로 생명의 완성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 예수님이 생명의 완성자라는 뜻입니다. 그 사실을 우리가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우리의 생명이 왜 불완전한지를 알아야 하는데, 저는 그걸 앞에서 간단하게 짚은 것입니다. 우리는...

4월28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6) [3]

  • 2008-04-27
  • 조회 수 1699

2008년 4월28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6)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이 세상의 생명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 더 설명해야겠군요. 이건 그렇게 복잡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대한 작은 통찰만으로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생 먹어야만 합니다.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늘 식욕이 넘치는 게 아닌데도 우리는 먹어야 합니다. 이틀만 잠을 자지 않아도 우리는 견뎌 내지를 못합니다. 먹는 것과 잠만이 아니라 우리...

4월27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5) [1]

  • 2008-04-26
  • 조회 수 1394

2008년 4월27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5)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예술적인 경험, 시인들의 언어경험, 철학자들의 존재경험은 세속적인 소유를 통한 경험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이런 경험은 소유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지 않습니다. 배가 고파도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서 우리는 소유와 다른 삶의 경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그림 그리기와 음악 연주 등을 통해서 정말 살아있다는 경험을 합니다. 지난 인류 역사는 그런 행위들을 가치가 높은 것...

4월26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4)

  • 2008-04-25
  • 조회 수 1381

2008년 4월26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4)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사실 어제 말씀드린 시인, 예술가 등등의 어떤 영적인 경험도 쉬운 게 아닙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오랜 훈련을 통해서 얻는 도의 경험이니까요. 대개의 사람들은 그런 것보다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데서 생명을 경험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소유는 우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가장 자극적으로 확인해주는 어떤 마성적 힘입니다. 어린아이들도 인형...

4월25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3) [2]

  • 2008-04-24
  • 조회 수 1464

2008년 4월25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3)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부활과 생명 경험에 관한 어제의 묵상이 어떤 분들에게는 너무 관념적으로 들렸을 것 같군요. 또는 다 아는 이야기처럼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게 바로 언어의 한계입니다. 말하는 사람의 생각을 언어가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언어 자체의 한계이기도 하고, 양 측의 전이해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족 같겠지만, 어제의 이야기를 조금 더 설명해야겠습니다. 우리는...

4월24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2)

  • 2008-04-23
  • 조회 수 1633

2008년 4월24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2)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부활은 생명 경험입니다. 주는 그리스도라는 명제의 핵심도 역시 생명입니다. 메시아는 구원자인데, 구원은 생명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그 생명의 현실이 부활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부활 현현 경험을 통해서 이제 예수가 생명의 토대라는 사실을 믿게 된 것입니다. 부활과 생명의 관계를 조금 더 설명하는 게 좋겠군요. 부활은 일단 죽음을 전제합니다. 이런 죽음에서 벗어난 사...

4월2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1) [2]

  • 2008-04-22
  • 조회 수 1348

2008년 4월2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1)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지난 며칠 동안의 묵상이 본문에서 너무 멀리 나간 것 같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다.”라는 한 문장을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와 묵시문학으로 끌고 들어갔으니까요. 그 이외에도 더 많은 문제들이 그 명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짧은 묵상에서 모두 다룰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앞의 진술을 바탕에 놓고 본문과 가장 가까운 문제로 들어가야겠습니다. 초기 기독교가 예...

4월22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0) [4]

  • 2008-04-21
  • 조회 수 1780

2008년 4월22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0)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주는 그리스도시다.”라는 초기 기독교의 가장 원초적인 신앙고백이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관점은 구약의 묵시문학적인 배경입니다. 묵시문학만이 이런 우주론적 기독론의 토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틀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구약으로는 다니엘, 에스겔, 이사야 등등의 여러 문서에서, 그리고 신약으로는 요...

4월21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9) [2]

  • 2008-04-20
  • 조회 수 1443

2008년 4월21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주는 그리스도시다.”라는 초기 기독교의 가장 기초적인 신앙고백은 어제 말씀드린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가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되었다, 또는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그런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를 염두에 두고 이런 고백을 했다는 건,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철학자나 물리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학자도 아닌 베드로가 그런 고상한 개념...

4월2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8) [3]

  • 2008-04-19
  • 조회 수 1625

2008년 4월2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8)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하나님의 현실을 경험하는 데에는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 겁니다. 또는 “주는 그리스도시다.”는 명제를 우주론적 지평으로 확대하면 결국 기독교의 정체성이 훼손된다고 주장할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 말은 기독교 신앙이 무언지 잘 모르는데서 나오는 염려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의 하나님은 ‘창조자’입니다. ‘전능하사 천지...

4월19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7) [3]

  • 2008-04-18
  • 조회 수 1603

2008년 4월19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7)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하나님의 현실을 우주론적 생명의 깊이에서 모색”하는 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의 현실을 획득하는 데 중요하다는 어제의 말씀을 조금 더 보충해야겠군요. 그에 앞서 위에 언급된 ‘현실’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잠간 짚는 게 좋겠습니다. 이런 단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건 기독교 신앙의 깊이로 들어가기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랍니다. ‘하나님’도 사실 단어거든요. 그 단...

4월18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6) [2]

  • 2008-04-17
  • 조회 수 1563

2008년 4월18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6)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성화론도 아니고, 구원파도 아니라면 우리는 어떻게 칭의의 현실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서 성화론의 행동주의도 아니고 구원파의 열광주의도 아닌, 제 삼의 길은 무엇일까요? 제 삼의 길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유별나게 다른 데 있는 건 아닙니다. 기독교 정통이 말하는 데 귀를 기울이면 됩니다. 이 말은 곧 한국교회에서 득세하고 있는 성화론과 구원파는 지난 2천년 기독교 ...

4월17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5) [2]

  • 2008-04-16
  • 조회 수 1688

2008년 4월17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5)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어제 말씀드린 성화론자들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소위 구원파가 그들입니다. 성화론자들이 칭의의 현실을 실제로 드러나는 행동에서 찾으려고 하는 반면에 구원파는 존재론적 깊이에서 찾습니다. 그들은 구원이 이미 실행, 또는 완성되었다는 사실에 온전히 집중합니다. 다만 하늘의 구원과 지상의 구원을 구별합니다. 하늘에서는 이미 완전하게 성취되었지만 지상에서는 그...

4월16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4) [10]

  • 2008-04-15
  • 조회 수 1966

2008년 4월16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4)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는 명제는 곧 초기 기독교의 구원론과 직결된다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 구원론이 바로 칭의론이었다는 것도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으로 우리의 질문이 모두 정리되는 건 아닙니다. 칭의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현실이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칭의(justification)를 얻었다고 해서 실제로 우리가 변화되는 건 아닙니다....

4월15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3) [1]

  • 2008-04-14
  • 조회 수 1349

2008년 4월15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3)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어제 저는 칭의론을 말씀드렸습니다. 그게 말이 되나, 또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근거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여기에서 바로 기독교인이 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가 갈립니다.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그는 기독교인이 되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겠지요. 각자가 결단하고 선택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를...

4월14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2) [1]

  • 2008-04-13
  • 조회 수 1241

2008년 4월14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2)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명제는 예수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신약 성서가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의롭다고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인정받는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실제로 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건 아닙니다. 죄가 없다고,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뿐입니...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