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9일 의사(4)

조회 수 1386 추천 수 19 2007.05.09 07:38:10
2007년 5월9일 의사(4)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막 5:26)

고장 난 생명을 치료하는 의료행위는 하나님의 구원사역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의사는 거룩한 직업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중에 행한 일들 중에서 질병 치료가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의료행위는 구원론적 사건입니다. 문제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풍요롭게 해야 할 행위가 오히려 사람을 괴롭힐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의료행위가 단지 치부의 수단으로 전락할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나겠지요. 요즘처럼 모든 직업이 소명(calling, Beruf)의식을 상실한 시대에 유독 의사들에게만 이런 걸 요구하는 게 생뚱맞아보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최후의 보루로 남아있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목사인 저는 지금 남의 말을 할 처지가 아닙니다. 가장 노골적으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고 자처하는 목사들이 과연 신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헌신하고 있는지 별로 확신이 없으니 말입니다. 이런 문제는 다른 데서도 많이 언급되었고, 이미 나올만한 말은 다 나왔기 때문에 더 이상 말씀드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오늘 본문에 비추어서 나 자신을 비롯한 목사님들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신자들을 괴롭히지 맙시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가 의사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만 했다는데, 우리 목사들도 신자들을 괴롭히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파렴치한 경우는 접어두고, 비교적 건전하게 목회를 한다고 하더라도 신학적 영성이 성숙하지 못하면 신자들을 괴롭힐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회 공동체에서 희망을 접을 수 없습니다.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전이 집행되는 한 우리가 모르는 방식으로 성령이 그 안에서 활동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령 의존적인 목회로의 전환이 시급한 것 같군요.

[레벨:1]균형

2007.05.09 13:39:31

아직 다비아를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어느 날 부터,
일상적인 언어로 언급하지만
다비아의 정신을 말 하고 묵묵히 걸어가는 현장이
바로 '다비아 매일 Q.T'가 아닐가, 생각되더군요.

최근의 격한 논쟁으로 관심이 한 곳으로만 집중되는 것이 아닌지...
은은한 보고가 이렇게 곁에 있음에도 말이지요.
이미 다 아시겠지만, 괜히 하는 말입니다.

신앙교육의 명분으로
혹은 선교, 아니면 성장의 명분으로 들이미는 프로그램들이,
오히려 교우를 괴롭힐수 있다는 지적이 따끔합니다.

'바른 말씀의 선포'와 '옳바른 성례의 집행'를 통해
'우리가 모르는 방식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을 감지 하는 일이
곧 성령 의존적인 목회/신앙을 가능케 하는 출발이라는 뜻으로 이해 됩니다.

과연 '성령 의존적인' 신앙이란 무었일가요?
Let it be?
열림?

늘 새로운 생각거리를 얻을 수 있는 '매일 Q.T' 감사합니다.

[레벨:0]求道者

2007.05.09 22:51:20

정목사님의 신학적 산책길을 찾으신
균형님의 발자국에서 따뜻함을 느낍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7.05.10 00:06:29

'성령 의존적인 신앙'이 제 신학과 목회와 설교의 '자리'입니다.
성령,
의존,
신앙이 결합된 개념이겠지요.
무엇이 성령인지, 성령은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와의 소통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질문해야 하고,
의존적이라는 말과 주체적이라는 말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인간의 인식과 하나님의 계시는 어떻게 연관되는지,
인간 주체성을 넘어서 자유가 확보될 수 있는지 생각해야하고,
그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여기에 들어와야겠지요.
위의 글에 한정해서만 말한다면
성령 의존적인 신앙은 방법론적 목회로부터
말씀 중심적 목회로 방향을 돌리는 것이겠지요.
성령은 곧 성서 텍스트를 역사 안에 드러나게 한 능력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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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5일 예수의 지혜와 권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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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5일 예수의 지혜와 권능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막 6:2) 고향사람들은 예수의 지혜와 권능에 놀랐습니다.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일들이 예수에게서 일어났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자기의 예상으로 재단하면서 살아갑니다. 수능이 높게 나온 학생들이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거나 경쟁력이 높은 사람이 많은 연봉을 받아야 한다는 예상...

6월4일 고향 회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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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4일 고향 회당에서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막 6:2)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에서 안식일을 맞아 회당에 들어가 가르쳤다는 사실은 그가 고향에서도 이미 랍비로 인정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만 그들은 곧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그 상황을 이렇게 이해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예수님이 방랑 설교자로서의 입지를 굳혔기 때문에 비록 고향사람들이 내...

6월3일 다시 고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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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3일 다시 고향으로!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막 6:1) 예수님은 고향을 방문하십니다. 나사렛입니다. 예수님이 출생은 베들레헴이지만 자란 곳은 나사렛입니다. 그곳은 예수님의 가족, 친척, 동네어른들이 계신 곳이고, 예수님의 어린 시절 추억이 긷든 곳입니다. 저는 고향이 없습니다. 서울을 고향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곳의 추억만 남아있지 형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서울시 삼선동에서 초등학교 5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가, 2학기부터 광나루 다리 건거 천호동에서 살았습...

6월2일 메시아 은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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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2일 메시아 은폐성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막 5:43) 예수님은 죽었다던 소녀가 다시 살아난 사건을 비밀로 하라고 단단히 이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사건이라면 널리 선전하는 게 마땅한 거 아닌가요?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면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텐데요. 이번 경우만이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예수님은 자신의 메시아성(性)을 감추시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메시아성의 은폐성입니...

6월1일 놀라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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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1일 놀라움 (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막 5:42)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인문학적 성서공부 강의안 중에서 일부를 여기에 게재합니다. 칼 바르트는 신학적 실존을 바로 이런 두려움, 즉 놀라움에서 찾았다. 거의 글을 아래와 같이 인용한다. 누구나 신학에 종사하기 시작하면서 놀라지 않는 사람은 일단 신학에서 손을 떼고 편견 없이 자신이 다루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가 숙고해야 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놀라움의 경험이 솟아올라서 더 이상 상실된 상태에 있지 않...

5월31일 놀라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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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31일 놀라움 (1)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막 5:42) 죽었다고 생각했던 소녀가 일어나서 걷자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고 합니다. 반복해서 놀랐다고 하는군요. 놀라움은 성서 전체의 주제와 연결됩니다. 복음서만이 아니라 구약성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아브라함의 모리아 산 전승에 대한 공부의 한 대목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이 공부는 오늘 저녁에 있을 서울오프 모임을 위해서 준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시험을 통과했다는 사실보다는 그가 하나님...

5월30일 열두 살의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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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30일 열두 살의 소녀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막 5:42) 죽었다고 생각되던 소녀가 “달리다굼!”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일어나서 걸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런 일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질문은 필요하기는 하지만 크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기본적으로 질문을 그 바탕에 놓는다는 점에서는 필요하지만, 본문의 중심이 거기에 놓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 중심이 무엇인가는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 소녀의 나...

5월29일 번역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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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29일 번역의 신앙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막 5:41) 본문의 중심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한번 짚어둘만한 것은 성서기자가 달리다굼을 ‘번역’해주었다는 사실입니다. 달리다굼은 그 당시 유대지역의 일상 언어였던 아람어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모두 그 언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성서기자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친절하게 번역해 준 것입니다. 기독교 신학은 기본적으로 번역 행위입니다. 예수님의 언어인 아람어를 헬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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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28일 달리다굼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막 5:41) 비웃는 사람들을 내보시고 아이의 부모와 제자 몇 명을 데리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 이를 번역하면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상황을 오늘 만나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요? 저의 입장에서도 이건 말이 안 된다고 펄쩍 뛰었을 겁니다. 죽어 누워있는 아이에게 일어나라고 소...

5월27 비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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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27 비웃음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막 5:40)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거기 모여서 떠들며 울던 사람들이 비웃었다고 합니다. 비웃는다는 표현이 헬라어로 어떤 뉘앙스인지 제가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요. 말 그대로 비아냥거림일지도 모릅니다. 죽음이라는 실증적인 사실을 거부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들이 비웃는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겠지요. 어떤 점에서 교회는 세상으...

5월26 죽음과 잠 (3)

  • 2007-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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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26 죽음과 잠 (3)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막 5:39)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예수님은 떠들며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울도 그리스도인의 죽음을 잠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

5월25 죽음과 잠 (2)

  • 2007-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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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25 죽음과 잠 (2)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막 5:39) 야이로의 딸 이야기는 간접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하는 말씀에 근거해서 본다면 이 사실이 더 분명하게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제자들도 떠들며 울었을 것입니다. 물론 복음서 기자들은 제자들의 태도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지만, 우리는 선생의 죽음 앞에서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그 슬픔과 절망의 무게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

5월24 죽음과 잠 (1) [1]

  • 2007-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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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24 죽음과 잠 (1)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막 5:39) 열두 살 소녀의 죽음으로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휩싸인 야이로의 집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씀을 하십니다. 왜 떠들며 우는가, 이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록된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겠지요. 그런 신앙은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문제...

5월23일 죽음의 집 [1]

  • 2007-05-23
  • 조회 수 1307

2007년 5월23일 죽음의 집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막 5:38) 복음서 기자는 열두 살짜리 소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여러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만 따라갑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장본인인 회당장에게도 관심이 없고, 거기 모였던 큰 무리들에게도 관심이 없습니다. 이 절박한 순간에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리요. 오직 예수님만 아무런 머뭇거림도 없이 이 상황을 헤쳐 나갑니다. 회당장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회당장이 집을 떠...

5월22일 제자 삼총사 [2]

  • 2007-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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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22일 제자 삼총사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는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막 5:37)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외에는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게 하고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가셨다는 오늘 본문에 따르면 이들이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변모했던 자리에도 이 세 사람만 예수님과 함께 했었고, 마지막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도 이들 세 사람만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이들만을 특별하게 대우했을까요? 우리는 그 당시 나...

5월21일 두려움과 믿음 [2]

  • 2007-05-20
  • 조회 수 1297

2007년 5월21일 두려움과 믿음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막 5:36) 본문은 딸의 부음을 들은 회당장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서 아무 말이 없습니다. 반응은 둘째 치고 입 벙긋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지금 회당장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복음서의 보도 방식은 늘 이렇습니다. 오직 예수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언급은 예수님의 행위를 드러나게 할 경우로 한정됩니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회당장의 심정을 ...

5월20일 부음(訃音)

  • 2007-05-20
  • 조회 수 1270

2007년 5월20일 부음(訃音)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막 5:35) 혈루증 여인의 치유 사건이 끝나가는 순간에 회당장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달되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에게 도움을 청하러 득달같이 달려 나올 수밖에 없을 정도로 위독했던 그 소녀가 급기야 생명 줄을 놓친 것 같습니다. 어떤 죽음인들 애처롭지 않으리요만은 어린 소녀의 죽음은 허탈하다 못해 화가 납니다. 우리는 늘 부음을 듣고 삽니다. ...

5월19일 구원과 건강

  • 2007-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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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19일 구원과 건강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막 5:34) 예수님이 이 여자에게 구원을 언급하시면서 건강을 허락하신 걸 보면 이 여자에게 구원은 곧 건강 회복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성서에는 구원에 대한 다양한 표상이 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출애굽입니다. 선악과를 취한 아담과 이브가 죽지 않았다는 것도 구원의 한 모습이겠지요. 노아의 방주는 대표적인 구원 표상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자손과 땅을 주시겠다는 야훼 하나님의 약속이 ...

5월18일 믿음과 구원

  • 2007-05-18
  • 조회 수 1696

2007년 5월18일 믿음과 구원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막 5:34) 예수님은 이 여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아주 유명한 말씀입니다. 이 여자에게 무슨 믿음이 있었다는 말인가요? 이 여자의 믿음은 요즘 우리의 믿음과 당연히 다릅니다. 그는 예수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지금 우리는 정확하게 압니다. 어떤 사람은 이 여자도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믿은 거 아닌가 하고 ...

5월17일 속을 터놓다.

  • 2007-05-17
  • 조회 수 1727

2007년 5월17일 속을 터놓다.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막 5:33) 이 여자는 자신의 행동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장면은 작은 에피소드이긴 하지만 기독교 신앙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두 가지 관점에서 그렇습니다. 첫째, 예수와의 만남은 자신의 전체 실존에 해당됩니다. 이 여자가 모든 사실을 예수님에게 말씀드렸다는 것은 자신의 부끄러웠던 질병까지 그대로 드러냈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자신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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