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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物) 059- 쪽지!
우리 집 중문에 붙여놓은 쪽지다.
“천천히!”
중문을 열면 현관이다.
거기서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선다.
중문 열고닫기는 예술이다.
신공이라 해도 좋다.
고양이는 아무리 영특해도 열지 못하고,
침팬지 정도는 돼야
강훈련을 통해서 열 수 있겠다.
손잡이가 따로 없고 세로로 파인 홈만 있으니
일단 그 홈에 손가락 끝을 들이밀어야 한다.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손가락의 힘만으로는 열지 못한다.
손 전체와 손목과 팔과 어깨,
그리고 발과 엉덩이와 허리와 가슴,
몸 전체가 밸런스를 맞춰서 적당하게 힘을 줘야 한다.
2초 정도 걸리는 그 순간에
소리도 듣고 무게도 느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문과 몸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렇게 작은 사물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생명 경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 집 중문은 유달리 무겁다.
문을 열고 다시 당겨서 닫을 때 자칫
집이 흔들릴 정도로 큰 소리가 난다.
문소리 안 나게 하자고 가족에게 신신당부했으나
그게 안 되는 모양이다.
몇 번이나 시범을 보여줬다.
문과 문틀이 만나는 그 순간을
세밀하게 몸으로 느끼면서 ‘이렇게’ 힘을 빼라고 말이다.
그런데도 계속 무심코 문을 여닫는다.
쪽지까지 붙였으나 여전히 해결이 안 된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 기도를 드렸다.
주님, 하루빨리
저의 ‘가는 귀’를 멀게 해주십시오.
그렇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소리를 듣고 살았으니,
여전히 듣고 싶은 소리도 여럿이긴 하나
이제 소리 없는 세계에서 살 준비를 해야겠다.
완전한 침묵과 적막과 고요!
목사님, 저희 집(사택) 중문에 붙여놓은 손잡이와 스티로품이 부끄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