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5일- 바다 이야기

조회 수 1503 추천 수 48 2006.08.25 23:26:06
2006년 8월25일 바다 이야기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막 2:13)

본문의 바다는 물론 갈릴리 호수를 가리킵니다. 갈릴리 호수와 그 호수를 낀 몇몇 마을, 그리고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난 벳세다 광야 등등, 갈릴리 호수는 예수님 활동의 실질적인 중심무대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출생지는 베들레헴이지만 그가 성장한 고향은 갈릴리 지역의 한 작은 동네 나사렛입니다. 복음서의 개괄적인 보도에 따르면 때가 되어 출가하신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일단 남쪽 예루살렘 근방으로 내려가신 것 같습니다. 그 뒤로 예수님의 본격적인 활동이 갑자기 갈릴리 호수 근방에서 시작됩니다. 복음서 기자들이 예수님의 활동을 정확한 연대기에 따라서 보도하는 게 아니라 중요한 사건 중심으로 보도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어쨌든지 예수님의 활동에서 갈릴리 호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겁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특히 갈릴리 호수를 초기 활동의 중심무대로 삼았다는 것은 그 지역이 활동하기에 편리했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갈릴리 호수 부근은 유대교 지도층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던 예루살렘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이 말은 곧 그들의 영향력에서 그만큼 자유롭다는 뜻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공생애 초기부터 유대지역과 예루살렘 중심으로 활동하셨다면 현재 우리가 예수님의 운명에 대해서 알고 있는 역사적 결과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졌을지 모릅니다.
갈릴리에 사는 사람들은 원래 혁명적인 기질이 강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아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에 의해서 지배받았을 뿐만 아니라 수도인 예루살렘에 의해서도 적지 않은 불이익을 당한 지역이기 때문에 그런 기질이 쌓이게 된 건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반정부, 반로마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은 거의 갈릴리 출신이거나 갈릴리를 본거지로 삼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 당시 빌라도 총독도 역시 예수님을 그런 혁명가로 생각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나사렛 예수 집단이 기본적으로 갈릴리 출신이라는 사실과 그가 선포하는 하나님 나라가 현실유지(status quo)를 허문다는 사실에서 그런 오해를 받을 만합니다. 물론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서 그런 정치적인 성격을 완전히 배제했지만 빌라도가 그 당시 로마제국이 파송한 지방장관이라는 사실에서 볼 때 빌라도의 사법적인 판단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예수는 그 당시 명실상부하게 반역자에게 해당되는 십자가에 처형될만한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예수님은 여러 명의 제자들을 선택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모두 어부들이었습니다. 열두 명의 제자들 중에서 최소한 네 명이 어부라는 말이 됩니다. 예수님의 직업이 목수였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이런 결과는 약간 의외처럼 보입니다. 목수는 뭍에서 일하고, 어부는 물에서 일하기는 하지만 양자 모두 사회 상류층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즉 이 세계의 변화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습니다.
바다와 호수는 인간의 영원한 고향인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곳입니다. 지구의 생명체가 바다에서 시작되었듯이 인간 개인도 역시 어머니의 자궁에서 시작됩니다. 갈릴리 호수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예수님의 희망이 잉태된 영적인 자궁과 같습니다. 부활 이후의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났다는 사실에서도 우리는 갈릴리 호수가 바로 예수님의 영적인 고향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영적인 갈릴리 호수는 어디인가요?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갈릴리 호수 말입니다.

주님, 당신이 곧 우리 영혼의 호수이십니다. 아멘.

[레벨:7]

2006.08.26 00:14:48

"예수는 그 당시 명실상부하게 반역자에게 해당되는 십자가에 처형될만한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예수가 정말 당시 로마의 실정법을 어기는 반역죄를 저질렀나요?
아니면 유대 기득권 세력의 압력이 빌라도의 판결에 영향을 준 것인가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6.08.26 00:22:43

길벗 님,
처음이죠?
반갑습니다.
예수님이 폭력을 행사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고,
로마에 대항하라고 대중을 선동하지 않은 것도 분명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반역자에게만 해당되는 십자가에 처형되었다는 사실도 분명합니다.
이런 명제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요?
그 사이에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보물찾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신학적으로 생각한다는 건,
그리고 성서의 깊이로 들어간다는 것 보물찾기와 같습니다.
그건 숨어 있어요.
사람들은 겉만 보려고 하지요.
성서의 행간을 읽지 않고,
그리스도교 교리의 숨은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명시적으로 드러난 것에 치우칩니다.
빌라도가 유대 종교 권력자들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개연성이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구요.
빌라도가 볼 때 예수는 로마 체제을 위협할만한 인물이 아니었을까요?
왜 그렇게 판단했을까요?
이런 말을 하려면 길어집니다.
오늘은 여기서 끝내야겠네요.
한 마디만,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로마와 병존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팍스 크리스티)와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나)는 함께 할 수 없어요.
왜 그럴까요?....

[레벨:7]

2006.08.26 06:44:21

목사님,
저는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찾아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ㅠ.ㅠ
성서에서는 찾아야 될텐데..
당시 빌라도가 팍스 크리스티까지 생각을 했을까요? 하나님 나라에까지 이해가 미쳤을까요?
그렇다면 빌라도는 대단한 선견지명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군요.
빌라도의 통찰력이 그렇게까지 깊었을 줄은 몰랐는데..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6.08.27 00:06:35

팍스 크리스티는 현대용어이기 때문에
빌라도가 그걸 예측했다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런 단초를 느낄 수는 있는 거에요.
예수를 만난 빌라도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건 끝나지 않을 대화의 주제입니다.
빌라도와 예수.
이 두 인물을 중심으로 앞으로도 소설이 쓰여질 겁니다.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어떤 위기와 두려움을 느꼈을까요?
그런 것도 없이
다만 유대인들의 선동에 부화뇌동한 걸까요?
인도의 신비사상가의 말에 따르면
예수는 혁명을 넘어, 반역을 살았다고 하네요.
부드럽지만 현체제에 반역하는 인물은
결국 스스로 존재의 근거가 있다고 보는 로마제국에게 위험인물이지요.
지금 이런 말을 결정적인 주장으로 생각하지는 마세요.
그러나 허무맹랑한 주장도 아닙니다.
예수와 하나님 나라.
그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가 그와 일치한 역사의 신비.
도대체 예수는 왜 로마법에 의해서 처형당했을까요?
인류의 사법역사에서 일어난 최대의 오판이었을까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는
자기를 절대화하는 모든 세력을 해체시키는 힘입니다.
빌라도는 최소한 그걸 눈여겨 보았을 것이며,
그걸 근거로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했을 겁니다.
천천히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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