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8일- 세관에 앉은 사람 (2)

조회 수 1927 추천 수 42 2006.08.28 23:16:56
2006년 8월28일 세관에 앉은 사람 (2)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막 2:14)

나는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그날도 내 자리에 앉아서 내가 맡은 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세관에서 내가 맡은 일은 유대인들에게서 징수한 세금을 상부에 납부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서 로마 공무원 시험을 보고 벌써 5년 동안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마음이 복잡합니다. 가버나움에 사는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점점 힘들어지고, 그래서 세금은 잘 들어오지 않는데, 위에서는 작년보다 더 많은 액수를 보내라고 닦달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세금을 거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보니 민중들과 자주 다투게 됩니다. 우리를 보는 그들의 눈빛을 우리는 참아내기 어렵습니다.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뭐, 이런 분위기야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지만요. 실제로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별로 의미를 찾지 못합니다. 내가 지금 남에게 못할 짓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자책감에 사로잡힐 때도 많지요. 내 일이라는 게 로마 총독부 좋은 일만 시키는 것 같기에 말입니다.    
며칠 전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서른을 갓 넘긴 듯한 어떤 낯선 사람이 저를 유심히 바라보더군요. 저는 이곳 가버나움에서 태어나서 한 번도 이곳을 떠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직업 관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은 대충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은 완전히 생면부지였습니다. 새로 이사 온 사람인가, 아니면 총독부에서 내려 보낸 감사관인가,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 주변에 몇몇 사람이 함께 있는 걸 보니 그런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 일행 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들도 있었거든요.
그날 저녁밥을 먹고 잠시 쉬는데, 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는 바로 세관에서 나를 바라보던 그 낯선 사람과 함께 서 있던 일행 중의 한 사람이었지요. 그 친구는 나를 동네 차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친구는 나에게 그 낯선 사람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는 나사렛에서 온 목수 예수라고 하네요. 그가 귀신도 쫓아내고, 중풍병자도 고쳤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는 “당신 죄가 용서를 받았소.” 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랍비와 서기관들은 예수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특별 조사위원회를 꾸렸고, 그의 고향인 나사렛에 조사관들을 파견했답니다. 그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일반 민중들은 서기관들과는 달리 그 일 이후로 예수에게 대해서 더 큰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군요. 어느 날에는 갈릴리 호숫가에 5백 명도 넘는 사람들이 예수의 말을 듣기 위해서 모였다고 합니다. 나를 예수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나는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내로부터 예수에 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때가 찼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우리 갈릴리 사람들은 그런 말만 들으면 마음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이스라엘 해방을 위한 마카비 왕조의 독립운동이 로마 전차부대에 의해 박살난 다음에 우리는 지금 자포자기 상태입니다. 아버지가 나에게 세리라도 하라고 말씀하신 건 그런 이유도 컸습니다. 로마의 막강한 힘의 현실을 인정하고 살아가라는 말씀인 거죠. 그러나 우리는 야훼 하나님이 언젠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실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때가 찼다.”는 예수의 말은 바로 그 기회가 왔다는 걸까요? 그는 휴화산과 같은 우리 갈릴리 민중의 마음속에 불을 지르고 있나요?  
바로 그 예수가 저녁 무렵 세관을 찾아온 낯선 사람이었다니, 놀랍군요. 지금 내 마음이 혼란스럽습니다. 여태껏 살아온 것처럼 아내와 자식들과 오순도순 그대로 사는 게 속편할 것 같은데, 왠지 나에게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드네요.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주님, 당신은 나를 보십니다. 내가 모르는 중에도.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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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2일 혼인집에서 (2)

  • 200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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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22일 혼인집에서 (2)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막 2:19) 신약성서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혼인집은 그림말(Bildwort)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를 들은 독자들은 혼인집에 관한 그림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성서는 하나님 나라를 혼인 잔치와 연결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종말을 어린양의 혼인 잔치로 설명하고, 지혜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도 역시 혼인 잔치를 배경으로 합니다....

9월21일 혼인집에서 (1)

  • 200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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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21일 혼인집에서 (1)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막 2:19) 마가복음 기자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을 예상 외로 길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질문과 관련된 상황은 18절 한 절에 불과한데 답변은 19-22절에 이르고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이 이렇게 길게 답변하셨는지 우리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의 고유한 말씀과 그 당시의 격언과 초기 공동체의 해석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9월20일 어찌하여?

  • 200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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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20일 어찌하여?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막 2:18) 오늘 본문은 요한과 바리새인을 한 묶음으로 놓고 예수님을 거기에 대립시키고 있습니다. 앞의 사람들은 금식을 중요한 종교행위로 삼고 있는데 반해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말하지만 예수님까지 포함해야겠지요. 출가 직후 40일 동안의 광야생활을 제외하고 예...

9월19일 세례요한과 바리새인

  • 200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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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19일 세례요한과 바리새인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막 2:18) 오늘 본문의 문장은 약간 부정확합니다. 앞부분에서는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다고 했는데, 뒷부분에서는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이 금식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이 금식한다는 말인가요, 아니면 바리새인의 제자들이 금식한다는 말인가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요한은...

9월18일 죄인 (3)

  • 200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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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18일 죄인 (3)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7) 제가 보기에 죄와 연관해서 그리스도인의 의식은 분열증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입으로는 “죄인입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의인입니다.” 하니까요. 그러나 이런 분열증적인 현상을 실감하는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심리작용은 아주 은밀해서 자기 자신도 눈치 채기 힘들 정도니까요. 누가복음 18:9-14...

9월17일 죄인 (2) [3]

  • 200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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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17일 죄인 (2)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6) 죄인은 죄를 지은 사람일까요? 아니면 죄에 대한 인식이 강한 사람일까요?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가 힘든 이유는 죄의 정의가 간단하지 않다는 데에 놓여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실정법을 위반한 행위가 죄이며, 또는 한 사회의 전통과 관습을 어긴 행위도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정법 자체가 절대적...

9월16일 죄인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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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16일 죄인 (1)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6)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죄인은 어떤 사람을 의미할까요? 본문의 배경을 전제한다면 세리, 창녀, 이방인처럼 유대교 율법에서 부정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겠지요. 이 죄인의 목록에 실제로 살인자, 강도, 성폭력범, 유아 납치범들이 포함되는지 단정하기는 어렵네요. 물론 근본적으로는 그런...

9월15일 의인 (3) [2]

  • 200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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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15일 의인 (3)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6) 어제 저는 “의인은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노파심으로 다시 말씀드린다면, 의로움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의 의를 부정하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여기서의 불행이라는 것은 의가 자기 능력, 소유, 업적으로 나타나는 사태를 가리킵니다. 의는 옳...

9월14일 의인 (2) [3]

  • 200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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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14일 의인 (2)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6) 우리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앞서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미가 쓸데없다는 말씀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특별한 해석이 없어도 그 뜻이 우리에게 그대로 들어옵니다. 우리도 평소에 아파야만 병원이나 의사를 생각합니다. 의인은 의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건강한 사람처럼 하나님...

9월13일 의인 (1) [1]

  • 2006-09-13
  • 조회 수 1514

2006년 9월13일 의인 (1)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6) 왜 죄인들과 어울려 다니느냐는 서기관의 불만을 듣고 주신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야말로 촌철살인입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듯이 의인에게는 예수가 필요 없다는 말보다 더 정확하게 인간의 내면을, 그리고 예수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의인(義人)은 구약성서의 중심 사상입...

9월11일- 바리새인 (6)

  • 200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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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11일 바리새인 (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막 2:16) 바리새인 서기관에게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그의 진보성입니다. 바리새인이 과연 진보적인 사람들인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사두개인들처럼 로마의 체제 안에 안주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그들이 진보적이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오늘 우리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진보적이었던 바리새인들이 왜 예수님과 대립...

9월10일- 바리새인 (5)

  • 200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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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10일 바리새인 (5)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막 2:16) 지식인이 신비를 못 본다는 어제의 말은 그렇게 기계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모든 지식인들이 아니라 지식이라는 외피에 눈을 가린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자기의 업적이 큰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통치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건 아주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이는 흡사 티브이를 크게 틀어놓는 집에서는 사는 사람들은 가을바람소리, 귀뚜...

9월9일- 바리새인 (4)

  • 2006-09-09
  • 조회 수 1409

2006년 9월9일 바리새인 (4)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막 2:16) 저는 어제 지식인의 한 전형인 바리새인 서기관의 문제가 진리보다는 정보에 치우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죄인들과 밥을 먹는 그 행위 안에 담긴 생명보다는 자기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율법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지식인의 한계를 다른 각도에서 다시 한 번 더 확인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지식에 사로잡...

9월8일- 바리새인 (3) [1]

  • 2006-09-09
  • 조회 수 1827

2006년 9월8일 바리새인 (3)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막 2:16)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 서기관은 대표적인 지식인입니다. 서기관은 유대교 율법을 연구하고, 수많은 불문율법을 해석하거나 구약성서의 사본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다가 이 사람은 보수적인 사두개파가 아니라 진보적인 바리새파라고 합니다. 진보 지식인! 멋있는 말이군요. 그가 바로 나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식인은 지적인 능력이 뛰...

9월7일- 바리새인 (2)

  • 200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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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7일 바리새인 (2)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막 2:16) 우리는 어제 ‘바리새인’에 관한 요아킴 그닐카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 설명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바리새인이 어느 한 순간에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라 상당히 점진적인 변화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 서로 다른 신학적 경향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보도에 따르면 바울은 산헤드린에서 심문을 받을 때 부활 신앙으로 ...

9월6일- 바리새인 (1)

  • 2006-09-06
  • 조회 수 1678

2006년 9월6일 바리새인 (1)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막 2:16) 아래의 글은 요아킴 그닐카의 <마가복음 주석>(국제성서주석 39,1)에서 각주를 빼고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우리는 전문적인 신약학자의 눈을 통해서 신약성서가 형성되던 시기의 정황을 조금 맛볼 수 있을 겁니다. 바리사이파는 예수의 시대에 (사두가이파와 에쎄네파와 함께) 중요한 정치적 영향력을 지녔던 종교적인 당파를 이루었다. 이 운동의 발단...

9월5일- 세리와 죄인들 (3)

  • 200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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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5일 세리와 죄인들 (3)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막 2:15) 요즘 설교비평을 하면서 가장 곤혹스러운 순간이 여러모로 괜찮은 목사들의 설교에서 복음과 신앙의 본질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기복적이지도 않고 감정에 치우지지도 않은, 매우 건전한 신앙을 설교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모든 가르침들이 그리스도교의 근본을 드러내기보다는 단지 모범적인 신앙만을 해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9월4일 세리와 죄인들 (2) [4]

  • 2006-09-04
  • 조회 수 1506

2006년 9월4일 세리와 죄인들 (2)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막 2:15) 예수님 주변에 세리와 죄인들이 늘 함께 했다는 사실과 예수님이 그들을 모범생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오늘 우리는 복음과 설교의 근본이 무엇인지에 대한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설교는 청중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마음을 열라는 초청이지 그들을 쓸 만한 인간으로 개조하려는 훈계가 아닙니다. 초청과 훈계는 근본적으로 다...

9월2일- 세리와 죄인들 (1) [4]

  • 2006-09-02
  • 조회 수 2036

2006년 9월2일 세리와 죄인들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막 2:15) 본문에 세리와 죄인이 병렬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세리와 죄인이 별 다를 게 없다는 뜻이겠지요. 신약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본문에 나오는 세리들은 국경을 통과하는 상품에 대해 부과되었던 변칙적인 세금을 징수하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조세는 로마 황제의 국고로 들어가지만 관세는 지방 군주의 금고로, 즉 갈릴리의 분봉왕인 헤로데 안...

9월1일- 잡수시는 예수

  • 2006-09-01
  • 조회 수 1627

2006년 9월1일 잡수시는 예수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막 2:15) 본문에 따르면 예수님은 세리 레위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성서기자는 예수님이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셨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언급합니다. 그 당시는 오늘과 달리 먹을거리가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불어서 무엇을 먹는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었을 겁니다. 특히 오늘 본문 뒤로 이어지는 일련의 상황을 보면 먹는 문제는 나사렛 예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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