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31일- 세관에 앉은 사람 (5)

조회 수 1462 추천 수 29 2006.08.31 23:47:52
2006년 8월31일 세관에 앉은 사람 (5)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막 2:14)

아내와 나는 어젯밤 시몬의 집에서 돌아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거나, 회개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말입니다. 아내도 그렇지만 나도 그런 말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는 힘들었습니다. 물론 어렴풋이는 알겠는데,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라고 하면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예수의 그 말은 마치 과녁 중심에 꽂힌 화살처럼 내 마음 깊은 곳에 박힌 건 분명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궁금증이 도저히 떠나지 않으니 말입니다.
사실 저는 평소에 야훼 하나님을 약간 생각하기는 했지만 별로 진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그럴 여유도 없었지요. 그냥 자식새끼 굶기지 않고, 아내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고, 그렇게 살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대충 그렇게 살아가는데 뭐 나라고 다른 수가 있나 자위하면서도 어딘가 허전한 구석은 늘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간혹 회당에도 가고, 지난번에는 예루살렘 성지순례도 다녀오기도 했지요. 그런다고 해서 허전한 게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별 다른 뾰족한 수가 없으니까 그렇게라도 했던 거지요. 그런데 지난 며칠간 예수 때문에 내 마음이 매우 복잡해졌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던 생각과 어쩔 수 없지 하는 생각에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어젯밤 예수의 말씀이 끝났을 때 친구가 나를 예수에게 인사를 시켰습니다. 물론 그 옆에는 시몬이 서 있었지요. 나는 세관에서 일하는 레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내 집사람입니다, 하고 인사를 하자, 예수는 아, 그래요, 나는 나사렛에서 온 예수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를 받더군요. 나이는 그렇게 많이 들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나보다 서너 살 많아 보였습니다. 지난 번 친구에게 들은 바로는 예수의 직업이 목수라고 했습니다. 목수라면 힘든 일인데, 그에게서는 그렇게 노동에 찌든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랑 전도자라거나 서기관 같은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겉모습으로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내면적으로 신비한 힘을 갖고 있는 사람 같았습니다. 이런 건 직접 만나보아야만 알 수 있는 거지요.
예수는 나에게 요즘 일이 힘들지 않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이런 질문은 흔하게 들었던 겁니다. 똑같은 질문인데도 예수에게 직접 듣는 질문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는 아주 오래된 친구를 대하듯이 나에게 그렇게 물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이런 평화로움을 전해 받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나는 조금 힘듭니다, 하고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세리라는 직업이 평소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하지만 요즘은 더욱 그렇습니다. 고기가 잘 잡히지 않으니까 모든 게 힘들어집니다. 그래도 이런 어려움들이야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거니까 그런대로 헤쳐 나갈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선생님,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마음이 허전합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너무나 진부한 질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묻기는 했지만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레위, 나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전하러 다닙시다.” 예수는 나에게 전혀 뜻밖의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무언지도 잘 모르는 나에게 그걸 함께 전하러 가자니, 이 말은 나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밤새도록 나는 고민했습니다. 예수의 말이 무언지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그를 따라나서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점점 커졌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요구를 했을 거라는 믿음도 아주 짧은 순간에 점점 자라났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나에게서 일어나는 걸까요? 이제는 정말 나는 예수를 따라나서야 한다는 소리를 외면할 수 없을 것 같군요. 내 운명을 예수에게 걸어야 한다는 내면의 소리 말입니다.

[레벨:1]똑소리

2006.09.01 15:29:30

정확한 명칭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런식의 글쓰기를 <이야기식 큐티>라고 부르나요?
색다른 맛이 있긴한데
아깝게도 정목사님 특유의 힘찬 필치가 살아나지 않아 보이는군요.
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아무래도 이전 방식대로 회귀하는게 좋을 듯합니다.
조회수가 갑자기 뚝 떨어진 걸 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방식도 좋지만
목사님의 고유한 컬러를 살리는 쪽으로 밀고 가는게 더 좋을 듯 합니다.

[레벨:1]한진영

2006.09.01 16:30:44

정목사님 말씀대로
우연한 방식으로 사소한 일상이 우주론적 사건이되는 것을
세리의 입장으로 표현해 가시는게 흥미롭습니다.

별다른 것 없이 무료한 세리 마태의 일상에
별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찾아 오시는 주님의 방문과 그들의 만남이
지난 주에 본 괴물이라는 영화의 어떤 장면과 겹쳐지네요.

난데없는 괴물의 출현으로 한강 둔치가 발칵 뒤집혔는데
맹렬하게 날뛰는 괴물을 숨가쁘게 쫓던 카메라가
갑자기 스톱하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흥얼거리며 고요하게 강물을 보는 한 여대생에게 시선을 맞춥니다.

혼란과 광기로 출렁이던 전형적인 호러영화 식의 카메라 워크가
이 장면에서는 갑자기 커피 광고처럼 클래식해지면서 순진하고 고요해지는데,
다음 순간 괴물이 홀로 앉아 음악을 듣던 그녀를 순식간에 채어서 끌고 가는 장면으로
다시 박진감 있게 이어 가더군요.

한 여대생 피해자와 무서운 괴물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점을 바꿈으로 인해 더 극적이면서도 사실감을 주면서 표현되었습니다.

감독은 장면을 이어감에
이런 방식으로 음악적 감각의 리듬을 준 것이겠지요.


묘미가 이런데 있는 것 같습니다.

위성에서 찍어 보낸 우주의 사진을 보면
끝없는 바다같은 우주에서
치밀하게 계산되어 돌아가는 별들의 공전과 자전등이 무슨 낭만적 요소를 찾아 내기 힘든
광대하고 막막하며 웅장한 장면이지만,
시점을 바꾸어 보면
서산에 지는 해가 먼지같은 사람의 일상을 가르는 분기점이 되며,
상처난 가슴을 어루만지는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엄연한 시적 현실로서 서로 관여되어 있는 것 처럼,

마태의 독백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심은,
궁극적인 영적 세계의 주인인 예수와
너무나도 육적인 듯한 마태의 일상의 만남의 장면을 통해
사실상 영적인 것과 인간의 매일의 생활이 내적으로 깊이 연락하며
관여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한
드라마틱한 조치로 읽혀집니다.

우리가 모르는 중에도 우리를 보고 계시는 주님의
너무 나도 일상적인 일하심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레벨:11]권현주

2006.09.01 19:36:37

레위가 마태입니까?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6.09.02 00:06:49

똑소리 님,
그냥 한번 새로운 방식으로 성서 안으로 들어가보려는 시도였어요.
뭐, 새로울 것도 없지만요.
레위가 우리와 똑같은 삶의 조건 가운데서 살았고,
예수와의 만남도 그런 일상의 한 순간이었다는 걸
조금 더 리얼하게 포착해보려고 있지요.
이전의 글에 힘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구요.

한진영 님,
글을 잘 새겨주셨네요.
괴물, 봤어요?
나는 못봤는데요.

권현주 선생,
맞습니다.
레위가 마태이고, 마태가 레위입니다.
이게 100% 맞는 건 아니에요.
이름에 대한 건 이 시리즈 글 (1)번에 설명되어 있어오.

[레벨:15]namoo

2006.09.02 10:07:56

처음 예수를 만났을때의 잔잔하지만 그 주체할 수 없었던 울렁임이 되살아 나네요.

불치병이 치료되었단 얘기나 전복된 차 속에서 혼자 살아 남았단 간증보다도
어쩜 밋밋하기까지한 한마디 예수의 속삭임이 일상의 신앙고백이 될 수 있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9월22일 혼인집에서 (2)

  • 2006-09-22
  • 조회 수 1472

2006년 9월22일 혼인집에서 (2)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막 2:19) 신약성서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혼인집은 그림말(Bildwort)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를 들은 독자들은 혼인집에 관한 그림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성서는 하나님 나라를 혼인 잔치와 연결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종말을 어린양의 혼인 잔치로 설명하고, 지혜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도 역시 혼인 잔치를 배경으로 합니다....

9월21일 혼인집에서 (1)

  • 2006-09-21
  • 조회 수 1561

2006년 9월21일 혼인집에서 (1)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막 2:19) 마가복음 기자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을 예상 외로 길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질문과 관련된 상황은 18절 한 절에 불과한데 답변은 19-22절에 이르고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이 이렇게 길게 답변하셨는지 우리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의 고유한 말씀과 그 당시의 격언과 초기 공동체의 해석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9월20일 어찌하여?

  • 2006-09-20
  • 조회 수 1483

2006년 9월20일 어찌하여?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막 2:18) 오늘 본문은 요한과 바리새인을 한 묶음으로 놓고 예수님을 거기에 대립시키고 있습니다. 앞의 사람들은 금식을 중요한 종교행위로 삼고 있는데 반해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말하지만 예수님까지 포함해야겠지요. 출가 직후 40일 동안의 광야생활을 제외하고 예...

9월19일 세례요한과 바리새인

  • 2006-09-19
  • 조회 수 2085

2006년 9월19일 세례요한과 바리새인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막 2:18) 오늘 본문의 문장은 약간 부정확합니다. 앞부분에서는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다고 했는데, 뒷부분에서는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이 금식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이 금식한다는 말인가요, 아니면 바리새인의 제자들이 금식한다는 말인가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요한은...

9월18일 죄인 (3)

  • 2006-09-18
  • 조회 수 1241

2006년 9월18일 죄인 (3)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7) 제가 보기에 죄와 연관해서 그리스도인의 의식은 분열증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입으로는 “죄인입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의인입니다.” 하니까요. 그러나 이런 분열증적인 현상을 실감하는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심리작용은 아주 은밀해서 자기 자신도 눈치 채기 힘들 정도니까요. 누가복음 18:9-14...

9월17일 죄인 (2) [3]

  • 2006-09-17
  • 조회 수 1660

2006년 9월17일 죄인 (2)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6) 죄인은 죄를 지은 사람일까요? 아니면 죄에 대한 인식이 강한 사람일까요?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가 힘든 이유는 죄의 정의가 간단하지 않다는 데에 놓여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실정법을 위반한 행위가 죄이며, 또는 한 사회의 전통과 관습을 어긴 행위도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정법 자체가 절대적...

9월16일 죄인 (1) [4]

  • 2006-09-16
  • 조회 수 1909

2006년 9월16일 죄인 (1)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6)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죄인은 어떤 사람을 의미할까요? 본문의 배경을 전제한다면 세리, 창녀, 이방인처럼 유대교 율법에서 부정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겠지요. 이 죄인의 목록에 실제로 살인자, 강도, 성폭력범, 유아 납치범들이 포함되는지 단정하기는 어렵네요. 물론 근본적으로는 그런...

9월15일 의인 (3) [2]

  • 2006-09-15
  • 조회 수 1487

2006년 9월15일 의인 (3)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6) 어제 저는 “의인은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노파심으로 다시 말씀드린다면, 의로움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의 의를 부정하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여기서의 불행이라는 것은 의가 자기 능력, 소유, 업적으로 나타나는 사태를 가리킵니다. 의는 옳...

9월14일 의인 (2) [3]

  • 2006-09-14
  • 조회 수 1527

2006년 9월14일 의인 (2)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6) 우리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앞서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미가 쓸데없다는 말씀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특별한 해석이 없어도 그 뜻이 우리에게 그대로 들어옵니다. 우리도 평소에 아파야만 병원이나 의사를 생각합니다. 의인은 의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건강한 사람처럼 하나님...

9월13일 의인 (1) [1]

  • 2006-09-13
  • 조회 수 1514

2006년 9월13일 의인 (1)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6) 왜 죄인들과 어울려 다니느냐는 서기관의 불만을 듣고 주신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야말로 촌철살인입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듯이 의인에게는 예수가 필요 없다는 말보다 더 정확하게 인간의 내면을, 그리고 예수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의인(義人)은 구약성서의 중심 사상입...

9월11일- 바리새인 (6)

  • 2006-09-11
  • 조회 수 1970

2006년 9월11일 바리새인 (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막 2:16) 바리새인 서기관에게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그의 진보성입니다. 바리새인이 과연 진보적인 사람들인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사두개인들처럼 로마의 체제 안에 안주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그들이 진보적이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오늘 우리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진보적이었던 바리새인들이 왜 예수님과 대립...

9월10일- 바리새인 (5)

  • 2006-09-10
  • 조회 수 1576

2006년 9월10일 바리새인 (5)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막 2:16) 지식인이 신비를 못 본다는 어제의 말은 그렇게 기계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모든 지식인들이 아니라 지식이라는 외피에 눈을 가린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자기의 업적이 큰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통치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건 아주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이는 흡사 티브이를 크게 틀어놓는 집에서는 사는 사람들은 가을바람소리, 귀뚜...

9월9일- 바리새인 (4)

  • 2006-09-09
  • 조회 수 1408

2006년 9월9일 바리새인 (4)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막 2:16) 저는 어제 지식인의 한 전형인 바리새인 서기관의 문제가 진리보다는 정보에 치우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죄인들과 밥을 먹는 그 행위 안에 담긴 생명보다는 자기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율법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지식인의 한계를 다른 각도에서 다시 한 번 더 확인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지식에 사로잡...

9월8일- 바리새인 (3) [1]

  • 2006-09-09
  • 조회 수 1827

2006년 9월8일 바리새인 (3)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막 2:16)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 서기관은 대표적인 지식인입니다. 서기관은 유대교 율법을 연구하고, 수많은 불문율법을 해석하거나 구약성서의 사본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다가 이 사람은 보수적인 사두개파가 아니라 진보적인 바리새파라고 합니다. 진보 지식인! 멋있는 말이군요. 그가 바로 나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식인은 지적인 능력이 뛰...

9월7일- 바리새인 (2)

  • 2006-09-07
  • 조회 수 1642

2006년 9월7일 바리새인 (2)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막 2:16) 우리는 어제 ‘바리새인’에 관한 요아킴 그닐카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 설명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바리새인이 어느 한 순간에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라 상당히 점진적인 변화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 서로 다른 신학적 경향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보도에 따르면 바울은 산헤드린에서 심문을 받을 때 부활 신앙으로 ...

9월6일- 바리새인 (1)

  • 2006-09-06
  • 조회 수 1676

2006년 9월6일 바리새인 (1)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막 2:16) 아래의 글은 요아킴 그닐카의 <마가복음 주석>(국제성서주석 39,1)에서 각주를 빼고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우리는 전문적인 신약학자의 눈을 통해서 신약성서가 형성되던 시기의 정황을 조금 맛볼 수 있을 겁니다. 바리사이파는 예수의 시대에 (사두가이파와 에쎄네파와 함께) 중요한 정치적 영향력을 지녔던 종교적인 당파를 이루었다. 이 운동의 발단...

9월5일- 세리와 죄인들 (3)

  • 2006-09-05
  • 조회 수 2119

2006년 9월5일 세리와 죄인들 (3)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막 2:15) 요즘 설교비평을 하면서 가장 곤혹스러운 순간이 여러모로 괜찮은 목사들의 설교에서 복음과 신앙의 본질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기복적이지도 않고 감정에 치우지지도 않은, 매우 건전한 신앙을 설교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모든 가르침들이 그리스도교의 근본을 드러내기보다는 단지 모범적인 신앙만을 해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9월4일 세리와 죄인들 (2) [4]

  • 2006-09-04
  • 조회 수 1506

2006년 9월4일 세리와 죄인들 (2)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막 2:15) 예수님 주변에 세리와 죄인들이 늘 함께 했다는 사실과 예수님이 그들을 모범생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오늘 우리는 복음과 설교의 근본이 무엇인지에 대한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설교는 청중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마음을 열라는 초청이지 그들을 쓸 만한 인간으로 개조하려는 훈계가 아닙니다. 초청과 훈계는 근본적으로 다...

9월2일- 세리와 죄인들 (1) [4]

  • 2006-09-02
  • 조회 수 2036

2006년 9월2일 세리와 죄인들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막 2:15) 본문에 세리와 죄인이 병렬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세리와 죄인이 별 다를 게 없다는 뜻이겠지요. 신약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본문에 나오는 세리들은 국경을 통과하는 상품에 대해 부과되었던 변칙적인 세금을 징수하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조세는 로마 황제의 국고로 들어가지만 관세는 지방 군주의 금고로, 즉 갈릴리의 분봉왕인 헤로데 안...

9월1일- 잡수시는 예수

  • 2006-09-01
  • 조회 수 1627

2006년 9월1일 잡수시는 예수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막 2:15) 본문에 따르면 예수님은 세리 레위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성서기자는 예수님이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셨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언급합니다. 그 당시는 오늘과 달리 먹을거리가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불어서 무엇을 먹는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었을 겁니다. 특히 오늘 본문 뒤로 이어지는 일련의 상황을 보면 먹는 문제는 나사렛 예수 ...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