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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영혼의 안식(1)

  • 2010-02-13
  • 조회 수 2517

영혼의 안식(1) 그대는 오늘도 즐겁게 하루를 보내셨을 줄로 아오. 우리는 모두 즐거움을 찾고 있으니, 당연히 즐거워야 하지 않겠소. 그런데 문제는 간혹, 또는 자주 즐겁지 않게 산다는 거요. 즐겁지 못한 이유는 찾아보면 거의 끝이 없을 정도로 많을 거요. 그런 거야 다 알고 있는 것이니 일일이 확인할 필요도 없소. 즐겁지 못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가 일상을 심심하게 생각한다는 게 아닐까 생각하오. 이게 정확한지는 나도 잘 모르겠소. 나의 주관적인 판단일지도 모르오. 심심한 걸 해소하기 위해서 더 자극적인 걸 ...

아, 예레미야 [2]

  • 2013-08-31
  • 조회 수 2516

8월31일(토) 아, 예레미야 내일 설교 본문은 유대가 저 나락으로 떨어지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예레미야의 글이다. 우선 우리는 예레미야가 누군지를 알아야만 그 말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한 역사적 인물을 알려면 그 시대를 또한 알아야 한다. 기원전 7세기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나서 고독하게 말씀을 전하던 예레미야는 도대체 무엇을 경험한 것일까? 그래서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은 상황에서도 말씀 선포를 포기하지 않은 것일까? 나는 그것이 정말 궁금하다. 예레미야는 불운한 선지자였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한 ...

10월29일 예수님의 말걸음 (3) [2]

  • 2006-10-29
  • 조회 수 2516

2006년 10월29일 예수님의 말걸음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막 3:3) 누가 손 마른 사람을 회당으로 데리고 왔을까요?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고 싶어 하던 사람들인지, 아니면 그의 장애 치유를 진정으로 바라던 친구들인지, 또는 예수님을 소문을 듣고 무언가 기대를 한 당사자인지 성서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이 처한 형편만은 충분히 헤아릴 수 있습니다. 지금 회당의 한쪽 구석에 앉아있는 이 손 마른 사람은 회당 분위기가 무언가 편치 않다는 사실을 눈치 챘을 겁니...

3월3일 작은 세계 (1) [3]

  • 2007-03-03
  • 조회 수 2515

2007년 3월3일 작은 세계 (1)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막 4:31)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지는 제가 여기서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요. 시력이 별로인 사람에게는 눈에 들오지 않을 정도로 작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씨가 싹이 나서 자라면 경우에 따라서 3m 높이가 된다고 하네요. 이 비유는 작은 것에 담긴 생명의 신비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생태학자들의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이런 말은 낭만적인 것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는 훨씬 본질적입니다. 이 명제...

‘전작권’에 대해 [1]

  • 2010-06-29
  • 조회 수 2514

며칠 전에 대한민국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이 대한민국에서의 ‘전작권’ 이양시기를 2012년 4월에서 2015년 12월1일로, 3년 7개월 늦추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을 그대도 들어서 알고 있을 거요. 2012년 4월은 노무현 정권 때 한국과 미국이 합의했던 시기였소. 이번에 시기를 늦출 수밖에 없었던 몇 가지 이유가 제시되긴 했소. 그걸 여기서 일일이 설명하지 않겠소. 어쨌든지 아직 이양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게 연기 이유의 골자였소. 그대는 내가 종종 이런 첨예한 정치적인 문제를 거론하는 것에 대해서 불편하게 생각하지는 않소? ...

손(2) [2]

  • 2013-09-03
  • 조회 수 2512

9월3일(화) 손(2) 나는 예배 마지막 순서인 후주가 울리는 동안 미리 출입문 쪽으로 가서 밖으로 나가는 교우들과 악수를 나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어린이들과도 악수한다. 예배를 인도한 사람으로서 거기에 참여한 분들과의 사귐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악수를 할 때는 손을 보는 게 아니라 얼굴을 본다. 성찬식을 집행할 때와는 반대다. 손을 안 보고 악수를 하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의 손이 엇갈리기도 한다. 내가 교우의 손끝만 잡는 경우도 생기고, 또 거꾸로 되는 경우도 있다. 악수를 나누는 데도 다 사람의 성격...

미라

  • 2011-12-16
  • 조회 수 2511

며칠 전에 경북 안동 지역 어딘가에서 4백년 이상 된 미라가 나왔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소.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들처럼 의학적으로 미라 처리를 하지 않았는데도 생전의 모습을 하나도 잃지 않은 모습을 유지했소. 무덤을 이장하는 작업 중에 나왔다 하오. 후손들은 미라를 다시 관 안에 넣었다 하오. 무언가를 두려워한 탓인지, 아니면 영구 보관할 방법을 찾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소. 미라를 자주 보도록 하시오. 그게 우리 모두의 운명이오. 아무리 잘 보관된 미라라고 하더라도 거기서 생명을 느낄 수는 없소. 건강도, 아름다...

1월23일 돌밭에 떨어진 씨 (1) [2]

  • 2007-01-23
  • 조회 수 2509

2007년 1월23일 돌밭에 떨어진 씨 (1)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이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막 4:5) 돌밭에 떨어진 말씀의 씨도 있었습니다. 이 씨는 잠시 뿌리를 내리긴 했지만 온전한 생명으로 자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식물의 생명을 지탱시켜주는 흙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돌과 흙의 차이가 무엇인지 제가 지질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세하게 설명할 자신은 없습니다. 상식적의 차원에서 말씀드린다면, 돌과 흙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은 물기와 미생물인 것 같습니다. 돌에는 물기도 없고 미생물도 ...

6월29일 헤롯, 헤로디아, 요한

  • 2007-06-29
  • 조회 수 2508

2007년 6월29일 헤롯, 헤로디아, 요한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막 6:17) 헤롯 안티파스이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았다는 사실은 유대인 로마 역사학자인 요세푸스의 역사기록에도 나오는 사실입니다. 동생의 아내를 강제로 빼앗은 것은 아니고 동생이 죽은 다음에 정식으로 아내로 맞은 겁니다. 그런 것이 정력적인 결혼에 익숙했던 왕궁의 관습으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민중들의 정서에는 맞지 ...

5월5일 혈루증을 앓던 여자

  • 2007-05-05
  • 조회 수 2508

2007년 5월5일 혈루증을 앓던 여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막 5:25) 예수님을 에워싸는 무리 중에 혈루증을 앓아온 한 여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네는 한 두 해가 아니라 자그마치 12년 동안 그런 지병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네가 그것으로 얼마나 깊은 좌절을 맛보았을지 상상이 갑니다. 결혼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혼자만의 비밀을 숨기느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지요. 아이를 낳지 못한 건 아니었을까요? 어쨌든지 그녀는 어떤 의학적인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로서...

6월24일 ‘어록’6-3 [3]

  • 2008-06-23
  • 조회 수 2507

2008년 6월24일 ‘어록’6-3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 (9:1) 위 구절은 예수님의 재림을 직접적으로가 아니라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한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은 하나라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이 두 개념이 무조건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 일단 표면적으로 볼 때 재림 표상은 역사적 예수가 똑같은 형태로 이 땅에 다시 ...

8월5일- 신성모독 (2)

  • 2006-08-05
  • 조회 수 2507

2006년 8월5일 신성모독 (2)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막 2:7) 서기관들과 바리새인, 제사장 등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언행에서 신성모독을 느낀 이유는 자신들이 절대적인 대상으로 생각하던 하나님을 예수님이 상대화 한다고 판단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들이 야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없다고 여길 정도로 하나님의 신성을 절대화 하고 있었으니까 하나님을 아주 가까운 호칭인 ‘아빠’로 부른 예수님의 태도를 용납할 수 없었겠지요...

하나님 나라(25)- 교회의 사명

  • 2010-04-30
  • 조회 수 2504

복지시설, 보육원, 간호시설, 병원, 학교 등, 교회의 사회적인 활동은 부차적이고 잠정적인 것이다. 교회는 정치 공동체의 대리인으로서 이런 일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교회는 오히려 사회의 정치적 기구에 속한 이런 책임들을 국가가 인수하도록 준비시키고, 또 인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교회가 국가를 시기하고 어떤 복지 활동을 독점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교회의 사명감을 기묘하게 곡해하는 것이다. 교회는 정치 단체로 하여금 그 책임을 인수하게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교회의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사회적 ...

8월31일- 세관에 앉은 사람 (5) [5]

  • 2006-08-31
  • 조회 수 2504

2006년 8월31일 세관에 앉은 사람 (5)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막 2:14) 아내와 나는 어젯밤 시몬의 집에서 돌아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거나, 회개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말입니다. 아내도 그렇지만 나도 그런 말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는 힘들었습니다. 물론 어렴풋이는 알겠는데,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라고 하면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예수의 그 말은 마치 과녁 중심에 꽂힌 화살처럼 내 ...

착각하지 말기

  • 2011-05-20
  • 조회 수 2504

청소년들이 연예계 스타들에게 몰입하는 이유는 스타들이 청소년들에게 환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른들도 그런 환상에 빠질 때가 많소. 그런 심정으로 일일 드라마나 연예인들의 자질구레한 일상을 담은 프로그램에 심취하오. 영웅 이야기도 그렇게 자리를 잡소. 민중들은 영웅 서사를 통해서 자아를 성취하는 것이오. 일종의 성공신화가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바로 착각이라는 것이오. 그 착각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그리스도교 영성이 출발점이오. 성공 신화의 대상이...

비텐베르크 file [7]

  • 2015-10-31
  • 조회 수 2499

10월31일 비텐베르크 1517년 10월31일은 마틴 루터가 95개 항목의 신학 명제를 비텐베르크 성당 문 위에 내다 걸은 날로 알려져 있다. 대자보를 만들어 붙였다는 말이 되는데, 분량으로 볼 때 실제로 그걸 붙이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아무도 정확한 거는 모른다. 아래 사진은 비텐베르크 성당 출입문이다. 당시에는 가톨릭 성당이었지만 종교개혁 운동을 거치면서 교회당으로 바뀌었다. 성당이었다가 교회당으로 바뀐 건물이 독일에는 제법 된다. 베를린에서 가장 큰 고딕식 교회당도 그렇다. 가톨릭을 따르는 영주...

12월26일 당신의 어머니 (4) [1]

  • 2006-12-26
  • 조회 수 2499

2006년 12월26일 당신의 어머니 (4)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막 3:32) 우리 개신교회는 마리아를 숭배하는 로마 가톨릭교회를 약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봅니다. 마리아가 이미 신의 영역에 들어간 것 아니냐, 하는 문제 제기입니다. 예컨대 그들은 마리아에게 기도를 올립니다. 제가 지금 가톨릭의 마리아 숭배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할만한 입장은 아닙니다. 실제로 마리아를 대상으로 하는 기도인지, 아니면 주님에게 대신 아뢰어달라는 요구인지 찬찬히 ...

삶(10) [2]

  • 2013-09-25
  • 조회 수 2498

9월25일(수) 삶(10) 숲을 피상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잘 알려면 가까이 가서 나무를 살펴야한다는 말이 있다. 멀리서 보면 나무를 구분할 수 없지만 가까이 가면 차이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멀리 숲도 보고 가까이 나무도 보라고 한다. 삶을 이해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형이상학적으로 보는 게 숲을 보는 거라 한다면 일상적인 현실을 보는 게 나무를 보는 거다. 양쪽의 관점이 조화를 이뤄야 인간 삶을 비교적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너무 일상적인 현실에 치우치면 현실주의자가 되고 너무 형이상학적인 관점에 치우치면 이상주의...

11월11일 바리새인과 헤롯당

  • 2006-11-11
  • 조회 수 2498

2006년 11월11일 바리새인과 헤롯당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막 3:6) 회당 안에서의 일은 일단락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보내는 무언의 압력을 무시하고 손 마른 사람을 고쳤습니다. 그때 바리새인들은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이제 걸려들었구나, 하고 쾌재를 불렀을까요, 아니면 뭐 저런 친구가 있어, 우리를 물로 보는 거야 뭐야, 하고 속상해했을까요. 그들의 속이야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이 회당에서 나가 헤롯당과 공모하기 시작했다고 사실이 중요합니다. 원래 ...

8월15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 [2]

  • 2009-08-14
  • 조회 수 2497

2009년 8월15일 대제사장 관저에서(1)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14:53)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드리다가 체포당한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관저로 끌려갑니다. 마태와 누가는 이 대제사장의 실명을 ‘가야바’라고 밝힙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가야바에게 가기 전에 가야바의 장인인 안나스에게 끌려갔다고 합니다. 마가복음 기자가 가야바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은 이유는 자연인인 가야바가 아니라 대제사장이라는 직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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