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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3월30일 두려움 (4) [6]

  • 2007-03-29
  • 조회 수 2467

2007년 3월30일 두려움 (4)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막 4:40) 예수님은 침몰하는 배로 인해서 죽을지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되는군요. 우리의 일반적인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이렇게 구체적인 죽음과의 직면으로 당하게 될 두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잘 알고 계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믿음 운운한 것은 무슨 뜻일까...

비빔밥 file [2]

  • 2013-05-27
  • 조회 수 2466

오늘 오후 1:25분에 시작되는 수업 하러 가다가 마침 혼자 점심을 먹게 되어 신학교 근처의 '깁밥천국' 집에 들어가 메뉴를 들여다보니 비빔밥이 마음에 들어 시켜 먹었다. 비빔밥에 참 많은 게 들어 있다. 온갖 종류의 나물반찬에다가 계란후라이, 적당하게 맛을 들인 고추장까지 가지수를 세기도 힘들다. 식당에 들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사람이 너무 많이 먹고 사는 것 같다. 먹는 게 즐거운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만 나는 그런 축에 끼지 못한다. 살기 위해서 그냥 먹는다. 물론 맛난 걸 먹으면 맛있게 먹는다. 함께 먹으면서 사람들...

6월1일 종말과 하나님의 통치 [2]

  • 2009-05-31
  • 조회 수 2466

2009년 6월1일 하나님의 통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13:30) 초기 공동체는 예수님의 재림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흔적은 곳곳에 있습니다. 재산을 팔아서 교회에 바치고 그것으로 공동생활을 한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사도행전도 그 흔적이고, 주님의 재림을 살아 있는 때 볼 자로 있을 거라는 주님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위 구절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마지막 때의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의 믿음은 하...

설교 맛보기

  • 2013-08-03
  • 조회 수 2465

8월3일(토) 설교 맛보기 내일 설교 본문은 골 3:1-11절이다. 제목은 4절을 그대로 따왔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이게 과연 말이 될까? 현대인들이 골로새서의 이런 진술에 진실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일까? 이런 표현이 자칫하면 일종의 열광주의로 이해된다. 신앙적 열기로만 말하면 열광주의를 따라올 세력은 없다. 그래서 그런 이들이 교회의 주축세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한국교회의 상당한 부류가 이런 이들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런 입장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시한부 종말론에 떨어진다. 예수가 재림할...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9) [3]

  • 2011-01-26
  • 조회 수 2464

복음주의 신학의 과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벽한 내용과 완벽한 형태로 듣고, 이해하며, 말하는 것인데, 이것은 은혜의 계약과 평화의 계약에 관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그리스도 안에서 육신을 입으셨다는 점에서 특수하지만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이스라엘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구주이시다.(43) 신학의 과제를 바르트는 위에서 짧지만 정확한 문장으로 진술했소. 신학의 과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은혜의 계약과 평화의 계약이라는 관점에서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해하고 진술...

천당 방문기(4) [4]

  • 2010-04-13
  • 조회 수 2463

천당 방문기(4) 그대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리다. 천당에 가도 밥을 먹을 수 있소. 먹는 즐거움을 거기서도 누릴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오? 혹시 그대는 먹는 걸 귀찮아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소. 그럴 수도 있긴 하오. 만성 소화불량에 걸려 있다면 먹는 것처럼 번잡스러운 일도 없을 거요. 그렇게 타고난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 외에 대다수 사람들은 먹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소. 소화불량도 주로 과식을 한다거나 신경이 과민해지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오. 평소 적당량을 먹고 마음을 편안하게 갖는다면 소...

8월24일 기도의 능력(2) [2]

  • 2008-08-23
  • 조회 수 2463

2008년 8월24일 기도의 능력(2)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한국교회가 기도 만능론에 빠졌다는 사실은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기도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는지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새벽에 드리는 기도를 잘 들어주신다는 논리도 있고, 릴레이식 기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돌리려는 생각도 있고, 안수 기도와 안찰 기도도 있으며, 철야기도회, 수능수험생을 위한 기도회 등등, 이루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전문적인 기도 꾼으로 행세하는 이들...

6월4일 고향 회당에서

  • 2007-06-04
  • 조회 수 2463

2007년 6월4일 고향 회당에서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막 6:2)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에서 안식일을 맞아 회당에 들어가 가르쳤다는 사실은 그가 고향에서도 이미 랍비로 인정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만 그들은 곧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그 상황을 이렇게 이해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예수님이 방랑 설교자로서의 입지를 굳혔기 때문에 비록 고향사람들이 내...

헌금(8)

  • 2013-12-09
  • 조회 수 2461

헌금(8) 앞의 글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처럼 개교회주의가 유달리 강한 교회에서는 목사 사례비의 제도적 일원화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를 마냥 내버려둘 수도 없다. 한국교회의 많은 문제가 여기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도시의 대형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나 시골의 작은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가 큰 차이 없는 사례비를 받는다면 굳이 큰 교회로 가려고 애를 쓰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다른 이유로 도시교회를 선호하겠지만,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도시 학교를 선호하듯이, 지금처럼...

말씀과 하나님(요 1:1), 요한복음 묵상(4)

  • 2013-04-21
  • 조회 수 2460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을 읽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 문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 문장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요한복음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할 수 있다. 어쩌면 기독교 신앙 전체가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런 오류의 하나는 신인동성동형론이다. 이런 문제는 포이에르바흐나 프로이트, 니체 등이 소상하게 밝힌 바 있다. 하나님을 인간의 자기 투사로 여기는 것이다. 초자아가 곧 하나님 표상이 된다. 하나님을 자기의 완벽한 복사로 여기는 것이다. 이들의 비판은 일...

하나님에 관한 경험(17) [3]

  • 2010-12-11
  • 조회 수 2460

이틀 전에 말한 대로 예수 경험에서 중요한 것은 성서와 교회공동체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오. 성서와 교회공동체가 바로 예수 경험의 통로이기 때문이오. 이 대목에서 ‘아는’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가 관건이오. 내가 보기에 거기에 이르는 길은 신학이요. 신학을 우습게 생각하지 마시오. 거꾸로 신학을 두려워하지도 마시오. 신학은 그리스도교 영성에 대한 논리적 해명이오. 어떤 사람들은 신학을 신앙과 대립되는 것으로 주장하오. 이것처럼 어처구니없는 주장도 없소. 성서가 신학의 결과라는 걸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는 거요. ...

주기도(7)

  • 2010-07-26
  • 조회 수 2459

세속사회에서 실제적인 형제 공동체는 불가능한 거요? 어제 묵상에서 나는 형제 공동체가 일반적인 게 아니라고 말했소. 엄격하게 말하면 형제 사이에도 경쟁심이 작동할 때가 많소. 가장 두르러진 예를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소. 카인은 시기심으로 동생 아벨을 들로 데리고 나가 돌로 쳐 죽였소. 형제끼리도 경쟁의식이 잠재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에 따르면 아들이 무의식적으로 아버지를 연적으로 느낀다고 하니, 더 긴말이 어디 필요하겠소. 수도원이나 수녀원도 완...

“추적 60분” [4]

  • 2010-11-18
  • 조회 수 2456

어제 나는 KBS 티브이 ‘추적 60분’(이하 ‘추적’)을 시청했소. 밤 11시15분부터 1시간 동안 방영된 프로그램이오. 주제가 ‘천안함’이었소. 불방될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있었소. 담당 피디와 간부들의 줄다리기 끝에 약간의 손질을 거쳐서 결국 방송되었소. 이명박 정권 이후로 케이비에스가 공영방송이라는 정체성보다는 정권의 나팔수로 변질되어갔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이런 프로그램이 제작되고 방영된 것을 보니 한국사회의 저력이 그래도 살아있는 것 같소. 추적의 결론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합조단의 최종발표에 ...

천당 방문기(3) [7]

  • 2010-03-26
  • 조회 수 2456

어젯밤에 갑자기 기억이 되살아난 사건이 있는데, 그걸 오늘 그대에게 하겠소. 천당 사무실의 어느 방에 들어가면 특별한 장치를 볼 수 있소. 각각의 사람들이 주님 앞에서 받은 심판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라오. 마치 사이버스페이스처럼 번호만 누르면 어떤 사람의 심판 결과와 그 과정이 입체 동영상으로 펼쳐진다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의 심판까지 미리 볼 수 있다는 거요. 천당은 시간 여행이 가능한 곳이라는 걸 그대도 알고 있지 않소. 내가 그대를 진작 알았으면 그대의 미래를 알아오는 건데, 안타...

음식물 찌꺼기, 3월18일(월) [2] [1]

  • 2013-03-18
  • 조회 수 2455

음식물 찌꺼기 처리가 문제다. EM 효소로 처리해서 퇴비를 만들든지, 아니면 개나 닭을 키우라고 조언하는 분들이 계시다. 장기적으로는 그런 쪽으로 나가야겠지만 지금 당장은 좀 힘들다. 궁리 끝에 아주 간단한 방법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뒷마당에 그냥 버리는 거다. 그걸 야생 동물이 와서 먹기를 바란다. 아마 도둑고양이들이 제일 좋아하지 않겠는가. 그놈들은 밤낮 없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먹을 걸 찾는다. 다음은 밤중에만 출몰하는 고라니의 먹이가 될 수도 있다. 고라니가 사람이 먹던 음식물 찌꺼기를 먹을지는 모르겠다. ...

삶(9) [2]

  • 2013-09-20
  • 조회 수 2454

9월20일(금) 삶(9) 삶의 반대말은 죽음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인간은 왜 죽어야 하나? 여기서 ‘왜’라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모든 피조물의 숙명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죽어야 할 뿐이다. 인간만 죽는 게 아니다. 모든 생명체는 탄생, 노화, 죽음으로 이어지는 길을 간다. 생명체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그런 숙명에 놓여 있다. 태양도 노화되고 죽을 것이다. 다른 별들도 다 마찬가지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가는 길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실제...

어린왕자(11), 2월23일(토) [2]

  • 2013-02-23
  • 조회 수 2454

어린왕자가 지구에서 처음 만난 생명체는 아프리카 사막에 살고 있는 뱀이다. 뱀은 어린왕자에게 무엇 하러 지구에 왔느냐고 묻는다. “나는 어떤 꽃과 좀 다투어서...” 뱀은 어이없어 했다. 그깟 일로 이 먼 지구까지 오다니. 그러나 그게 진실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지구라는 별에 태어난 것은 꽃과의 다툼이라는 에피소드와 비슷한 일 때문인지 모른다. 연인들은 그런 것으로 다툰다. 그리고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는다. 기독교 신앙이 저런 식의 세계관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세...

7월10일 예수 사건의 유일회성 [8]

  • 2008-07-09
  • 조회 수 2454

2008년 7월10일 예수 사건의 유일회성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막 9:9) 기독교 신앙의 토대가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이라는 건 아주 분명한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왜 기독교만의 배타적 사건이냐, 하는 데 있습니다. 반국가사범에 대한 로마의 사형제도인 십자가로 죽은 사람은 예수만이 아니라 수없이 많습니다. 어떤 이들은 전태일의 죽음을 예수의 죽음과 비교하기도 합니다. 부활 전승도 기독교에게만 있는 건 아닙니...

누스 [4]

  • 2016-11-22
  • 조회 수 2450

11월22일 누스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사용한 언어는 아람어인데도 신약성경이 헬라어로 기록된 이유는 독자들이 헬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말 성경에 모든 ‘지각’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누스’다. 바울은 하나님의 평화가 헬라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누스’보다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거기서 강조다. 누스는 이성, 지성, 정신, 영혼이라는 말로 번역이 가능한 단어다. 풀어서 말하면 세계를 지배하는 근원적 힘, 또는 원리가 누스다. 스토아학파가 강조하는 ‘로고스’와 비슷한...

하나님 나라(9) [3]

  • 2010-03-02
  • 조회 수 2450

하나님 나라(9) 하나님은 하나의 실존하는 실체가 아니라 오고 있는 나라의 미래이다. 하나님은 이 미래로서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증언한 예수를 통해서 존재하였고 또 현재도 존재한다.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은 신앙을 창조함으로써 자유와 생명을 주는 성령으로 세상에 현재하신다. 이 신앙은 만물이 모든 생명의 근원과 깊이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인간의 지각이다. <중략> 그러므로 삼위일체론은 철학적 신 관념에 덧붙여진 단순한 기독교적 부가물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가 그 나라를 선포한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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