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7월12일

조회 수 1032 추천 수 0 2020.07.13 20:43:53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712, 성령강림 후 여섯째 주일

 

1) 명분/ 실리- 쌍둥이 형제 야곱과 에서 이야기는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중에 팥죽 한 그릇에 장자 명분을 팔았다는 이야기는 동화적인 요소가 풍부해서 인기가 더합니다. 오늘 설교의 성경 본문이 그 이야기입니다. 에서는 허기를 채우는 게 중요했고,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얻는 게 중요했습니다. 실리와 명분의 충돌입니다.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고대 선지자들이 비판했던 우상숭배는 실리에 무게를 두는 삶이고, 여호와 하나님 신앙은 명분에 무게를 두는 삶입니다. 그런 신앙의 역사가 유대 민족을 만들었고, 그 유대 민족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출했습니다. 명분이 구원의 능력인 셈입니다. 오늘 예수의 제자라는 명분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사는 기독교인이 있고,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차이가 당장은 손에 잡히지 않기에 많은 기독교인이 혼란을 느끼거나 무시합니다.

 

2) - 예배 후에 보니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주간일지를 쓰는 시간(713, , 오전)에는 바람과 함께 세찬 비가 쏟아집니다. 주일 밤부터 월요일 오전까지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내일 오전까지 계속될 모양입니다. , 아직 지구에 비가 내리다니,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맑으면 맑은대로, 구름이 끼면 구름낀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대로, 황사가 날리면 날리는대로 지구에서 벌어지는 모든 지질, 기상 현상은 놀랍고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아는 한, 또는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한 이런 현상은 지구에서만 벌어집니다. 농사꾼들은 걱정이 많겠군요. 지금 자두 수확철입니다. 복숭아도 익어갑니다. 비바람으로 과수원 농사에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비바람이 코로나19 바이러스나 싹 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가 정말 오래 가는군요. 이 친구들이 오늘의 인간 문명을 완전히 바꿔놓으려고 모의를 꾸미나 봅니다.

 

3) 모니터 스피커- 우리 예배당 바닥에는 고급 타일이 깔려 있습니다. 보기에는 깔끔해서 좋습니다만 소리 전달에는 방해됩니다. 소리를 흡수하지 않고 반사해서 파울링의 원인이 됩니다. 어제처럼 예배 참석자가 소수일 경우에는 이런 소리 울림 현상이 더 심해집니다. 음향의 원리에 충실하려면 바닥을 양탄자로 까는 게 좋겠지요. 그렇게 하기는 힘드니 앰프를 좀더 세밀하게 조정해야겠습니다. 강단 안쪽으로 깊숙한 위치에서 설교하는 사람에게 어려움은 자기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서 잘 전달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강단에서 소리를 확인할 수 있도록 모니터 스피커를 설치하는 게 좋겠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발음이 편하게 나옵니다.

 

4) 소모임-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자가 좀체 줄어들지 않습니다. 매일 수천, 수만 명의 확진자가 나오는 나라와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확진자가 나오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교회의 소모임을 통한 확진자도 끊이지 않습니다. 공식 예배 이외의 소모임을 자제해달라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기독교인들도 있습니다. 그동안 교회가 보여준 협조를 무시하는 조치라고 말입니다. 억울하든 않든지 현재는 정부의 지침을 따르는 게 마땅합니다. “주일 예배 공동체라는 정체성에 충실한 대구샘터교회에는 원래 소모임이 거의 없었습니다. 여성 교우 자치 모임인 루디아회와 노래 동아리와 책 읽기 동아리가 소모임의 전부입니다. 다만 예배 후의 친교 식사 시간이 없다는 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입니다. 일반적으로 한국교회에는 소모임이 정말 많습니다. 점조직처럼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소모임이 오랫동안 이어지지 못하면 교회의 구심력이 크게 흔들릴 것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여파가 한국교회에 얼마나 심각한 위기를 불러올지를 실감하지 못하는 교회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이 위기는 개별 교회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교단이나 한국교회 전체의 차원에서 이 사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합니다. 소모임 자제에 대한 정부의 방침을 불평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사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5) 예배 방송- 현재 대구샘터교회 예배는 유튜브와 아프리카TV를 통해서 라이브로 나갑니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가능하게 된 좋은 세상입니다. 좋은 세상인지 너무 속도가 빠른 세상인지는 확정으로 말하기는 어렵군요. 어쨌든지 여러 가지 사정으로 현장예배에 올 수 없는 분들이 가상공간으로나마 예배에 참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사실만은 바람직하지요. 중세기에 성직자만 읽었던 성경을 인쇄술의 발달로 일반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된 현상과 비슷합니다. 아프리카TV는 유튜브보다 화질이 좋습니다만, 접근성은 유튜브가 좋습니다. 현재 이동식 촬영 장비를 고정식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고정식으로 바꾸면 줌(렌즈의 밀고 당김)이 가능하고 유선으로 접속하기에 안정적으로 방송이 나갈 겁니다. 오는 주일에는 전문가가 우리 교회에 직접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6) - 교우 중에 아픈 분들이 몇 분 계십니다. 교우의 가족 중에도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수술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치료가 빨리 가능한 분도 있고, 멀리 내다보고 가야 할 분도 있습니다. 치료하는 영이 그들과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7) 예배 사회자- 지난 두 주간에 걸쳐서 류*규 집사가 예배 사회를 보았습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예배 시작 전에 인사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장예배에 참석한 대구샘터 교우들,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대구샘터 교우들과 서울샘터 교우들과 그 외의 온라인 예배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에게 인사말을 전했습니다. , 오프라인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이들과 나누는 인사가 의례적이지만 실제로는 (인식하는 분에게는) 아주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누는 인사이기 때문입니다. 숨을 거두는 사람과 나누는 작별 인사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이제 7월 남은 두 주간은 박*연 집사가 예배 사회를 맡을 예정입니다.

 

8) 헌금: 72주차(712) 620,000(오프라인 150,000원 온라인 470,000, 등록 교인 외- *, *)/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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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7월26일, 성령강림 후 여덟째 주일 1) 바실레이아- 주일 설교 제목인 “하늘나라”는 헬라어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의 번역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바실레이아입니다. 바실레이아는 “나라”로 번역되는데, 공간적인 의미라기보다는 통치 개념이 강합니다. 헬라어 의미에 맞도록 번역하면 “하늘의 통치”, 또는 순수 우리말로 바꿔서 “하늘의 다스림”이라고 해야 합니다. 공간적 의미와 통치 개념은 다릅니다. 전자는 실체라면 후자는 운동이자 힘입니다.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을 우리말 성경은 “...

예수 어록(382) 요 18:4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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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장 예수 어록(382) 요 18:4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요 17장은 기도문이다. 그 내용은 예수의 고별설교인 요 14-16장에 대략 나온 것들이다. 참고로, 예수의 기도문은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다. 이 기도문이 공관복음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과 이렇게 긴 기도문을 당시 매우 긴급한 상황에서 제자들이 기억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이 이에 관한 이유다. 다만 요한복음 공동체의 기독론(christology)이 이런 기도문 형식으로 전승되었다고 추정할 뿐이다. 17장을 건너뛰고 18장으로 넘어가겠다. 예수는 고별설교를 마친 뒤에...

예수 어록(381) 요 16:33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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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81)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제 요 16:33절로 제자들을 향한 예수의 고별설교(14-16장)는 끝이다. 17장은 예수의 마지막 기도문이다. 이를 고별설교에 포함해도 된다. 고별설교의 목적은 제자들이 예수 안에서 평화를 누리게 하는 데에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평화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그게 실제로 가능한지를 오늘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게 쉽지 않다. 행복한 삶의 조...

예수 어록(380) 요 16:32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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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80) 요 16: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예수가 수난당할 때 제자들은 흩어질 것이다. 대표적으로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다. 제자 중에 아무도 예수의 십자가 처형 자리에 없었다. 여자들은 여러 명이 있었다. “사랑하는 제자”(요 19:26)가 요한일까? 확실하지 않다. 십자가 처형 장면에서만 제자들이 예수를 혼자 두고 흩어진 게 아니라 그 사건 뒤에 모든 걸 포기하고 각각 고향...

예수 어록(379) 요 16:31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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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79) 요 16:31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제자들은 예수 말씀을 “지금에야” 다 알아들었다고 한다(29, 30절). 예수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말을 듣는다고 늘 알아듣는 게 아니다. 오해도 많고 억측도 많다. 아무리 귀한 말이라고 해도 듣는 사람이 준비되어야 알아들을 수 있다. 그래서 예수는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고 종종 말씀하셨다. 지금 우리도 성경을 읽을 때 알아듣기도 하고 알아듣지 못하기도 한다. 이전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가 나중에 알게 되는 일도 있고, 이전에는 부분적으로만 ...

예수 어록(378) 요 16:28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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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78) 요 16:28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예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 그리고 이제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에게로 간다.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진술이다. 인생은 흔히 말하듯이 잠시 왔다가 떠나는 나그네의 삶과 같다. 당연한 말이라고 하더라도 그걸 누가 말했느냐에 따라서 무게는 달라진다. 예수의 이 발언에는 그의 인격과 삶과 운명이 그대로 담겨 있다. 단순히 왔다가 가는 게 인생이라는 깨달음이나 훈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지칭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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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7월19일, 성령강림 후 일곱째 주일 1) 소마- “몸의 속량”(롬 8:23)이라는 표현에서 몸은 헬라어 소마의 번역이라고 설교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헬라 사람들은 사람의 몸을 두 가지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하나는 소마이고, 다른 하나는 사르크스입니다. 우리말로 소마는 몸으로, 사르크스는 육체로 번역합니다만 이게 정확한 번역이 아닙니다. 몸은 우리말이고, 육체는 한자라는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신체라는 한자도 여기서 가능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소마와 사르크스가 구분될 때도 있고, 구분되...

예수 어록(377) 요 16:27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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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77) 요 16: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제자들과 예수의 관계를 요 16:27절이 압축적으로 설명했다. 두 가지다. 하나는 제자들이 예수를 사랑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들이 예수를 하나님에게서 온 자인 줄로 믿었다는 사실이다. 사랑과 믿음이야말로 제자들을 예수와 결속시키는 능력이다. 사랑과 믿음은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믿지 않을 수 있으며, 사랑하지 않지만 믿을 수 있다. 여...

예수 어록(376) 요 16:26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 20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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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76) 요 16:26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앞 구절인 25절이 말하는 “때”는 이제 26절이 말하는 “날”이다. 때와 날은 미래일 수도 있고 현재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은폐된 과거일 수도 있다. 하나님의 계시가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때와 날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바로 그 “때와 날”을 기다리면서 살았다. 단지 그 순간을 기다릴 뿐만 아니라 미리 당겨서 살았다. 미리 당겨서 살아낸다면 생명 충만을 누릴 수 있었을 것...

예수 어록(375) 요 16:25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 2020-07-16
  • 조회 수 2094

예수 어록(375) 요 16:25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비유는 진리를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서 예수는 마 13장에서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를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로 말씀하셨다. 씨가 떨어진 땅은 길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이다. 씨는 하늘나라 말씀이고, 땅은 그 말씀을 받은 사람이다. 그 사람의 영혼이 어떤 밭이냐에 따라서 말씀이 죽을 수도 있고, 큰 결실을 볼 수도 있다. 예수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

예수 어록(374) 요 16:24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3]

  • 2020-07-15
  • 조회 수 3226

예수 어록(374) 요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라는 말씀은 마태복음의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마 7:7)라는 말씀과 상응한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구하라.”는 “찾으라.”이기도 하고, “문을 두드리라.”이기도 하다. 구원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의 구도적 태도를 가리킨다. 예수의 발언은 세상살이에 필요한 ...

예수 어록(373) 요 16:23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 2020-07-14
  • 조회 수 1012

예수 어록(373) 요 16:23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본문이 가리키는 “그날”은 제자들이 성령을 통해서 예수를 영원한 생명의 근원으로 경험하는 날이다.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이 종말에 실현할 미래의 생명이다. 그 미래의 생명은 예수에게서 선취되었다. 그걸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외면한다. 그걸 아는 사람은 제자다. 제자들은 이제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궁극적인 생명과 진리를 경...

주간일지 7월12일

  • 20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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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7월12일, 성령강림 후 여섯째 주일 1) 명분/ 실리- 쌍둥이 형제 야곱과 에서 이야기는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중에 팥죽 한 그릇에 장자 명분을 팔았다는 이야기는 동화적인 요소가 풍부해서 인기가 더합니다. 오늘 설교의 성경 본문이 그 이야기입니다. 에서는 허기를 채우는 게 중요했고,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얻는 게 중요했습니다. 실리와 명분의 충돌입니다.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고대 선지자들이 비판했던 우상숭배는 실리에 무게를 두는 삶이고, 여호와 하...

예수 어록(372) 요 16:22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 20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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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72) 요 16: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스승인 예수가 보지 못하게 된다는 근심이 다시 예수를 보게 됨으로써 기쁨으로 바뀐다는 말씀이 반복된다.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매우 강력한 표현이다. 빼앗을 자가 없는 기쁨은 구원의 기쁨이다. 구원의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만 주어지기에 세상의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세상의 것으로는 이 구원의 기쁨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제자들은 예수에게서...

예수 어록(371) 요 16:21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 20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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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71) 요 16: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본문은 근심과 고통 문제를 여자의 해산에 비춰서 설명한다. 일반적인 비유다. 우리의 삶에 근심이 없을 수 없다. 누구나 인정한다. 근심거리를 적당하게 피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건 착각이다. 자식이 없는 사람은 자식이 없어서 근심하고, 자식이 있는 사람은 그 자식으로 인해서 근심한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이나 떨어진 사...

예수 어록(370) 요 16:20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 20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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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70) 요 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스승을 잃는 제자들의 슬픔은 역설적으로 세상의 기쁨이 된다. 스승인 예수의 죽음으로 인해서 세상이 구원받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와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예수의 죽음이 제자들에게 슬픔이지만 예수를 제거한 세상의 권력에는 기쁨이 된다고 말이다. 나는 첫 번째 해석이 옳다고 본다. 두 번째 해석은 신앙의 세계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 어록(369) 요 16:19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 2020-07-08
  • 조회 수 920

예수 어록(369) 요 16:19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예수의 제자들은 소위 엘리트 집단이 아니었다. 열두 명 제자들의 직업이 모두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가 대충이라도 아는 직업은 어부, 세리 정도다. 반로마 무장 혁명가도 있었던 것 같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 주변에는 세리와 죄인이 많았다. 제자들도 그런 이들 중의 하나에 속한다. 지적 수준과 사회적 신분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이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웠...

예수 어록(368) 요 16:16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 202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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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68) 요 16: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요한복음이 전하는 예수 말씀은 종종 선문답처럼 들린다. 제자들은 알아듣기 힘들었다. “무슨 말씀이냐?”(요 16:17). 오늘날 우리는 예수에게 벌어진 엄청난 사건 한복판에 끼어들었던 제자들이 아니라 모든 일의 결과를 아는 시대에 살기에 저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안다. 그렇다고 우리가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다. 앞으로 역사가 진행하면 지금 우리가 몰랐던 사실이 더 드러날 것이다. 영적으로 깨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

주간일지 7월5일

  • 20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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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7월5일, 성령강림 후 다섯째 주일 1) 안식-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라는 말씀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 말씀 중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잘 알려진 것입니다. 세상의 힘든 일을 힘들지 않게 해주겠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예수 잘 믿어도 세상의 짐은 그대로 남습니다. 미국 흑인 노예들은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노예 신세를 면할 수 없었습니다. 폴 틸리히는 이 말씀이 율법이라는 짐에서의 해방이라고 설교했습니다. 그 율법이 단순히 종...

예수 어록(367) 요 16: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 2020-07-04
  • 조회 수 3193

예수 어록(367) 요 16: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라는 문장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아버지의 것이라거나 내 것이라는 표현이 어떤 소유물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사랑은 소유의 대상이 아닌 것처럼 아버지의 것이나 아들인 예수의 것도 역시 소유의 대상은 아니다. 이 문장이 가리키려는 핵심은 예수가 하나님과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이 문장만이 아니라 요한복음 전체가 이 사실을 전한다. 요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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