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9)

조회 수 935 추천 수 0 2019.09.13 22:02:11

하나님의 보호하심

살아있는 희망이 우리에게 있다는 말의 두 번째 이유는 5절이 가리키고 있듯이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다.”라는 데에 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보호하시는가? 비행기나 배 사고로 수많은 사람이 죽는 상황에서 기독교인들만 하나님이 살리신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간혹 그런 선정적이고 극적인 이야기로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상식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는 말은 어려움에 대처할 능력을 하나님이 믿는 이들에게 허락하신다는 뜻이다. 귀하게 키운 자녀가 병이나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하자. 참척(慘慽)의 고통이다. 견디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살펴나감으로써 그 고통을 견딜 수 있다. 베드로전서가 기록되던 시기에는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로 인해서 여러 가지 사회적인 불이익을 받았다. 때로는 순교로 일어났다. 순교의 상황을 하나님이 막아주지는 않으시나 그걸 극복할 힘을 허락하신다. 가난 문제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인들이 경제적으로 몰락할 수 있으나 그가 믿음의 중심을 놓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가난한 인생살이에서도 생명 충만을 느낄 수 있도록 보호하신다. 사형이 집행되기 몇 달 전 1944년 겨울 감옥에서 쓴 본회퍼의 선한 능력으로라는 기도문이 이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선한 능력에 언제나 고요하게 둘러싸여서

보호받고 위로받는 이 놀라움 속에

여러분과 함께 오늘을 살기 원하고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고 싶습니다

선한 능력에 우리는 너무 잘 보호받고 있으며

믿음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이나 아침이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또한, 매일의 새로운 날에 함께 하십니다

옛것이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어두운 날들의 무거운 짐은 여전히 우리를 누르지만

, 주님 내몰려 버린 우리의 영혼 가운데로

당신께서 준비해 놓으신 구원을 주십시오

선한 능력에 우리는 너무 잘 보호받고 있으며

믿음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이나 아침이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또한, 매일의 새로운 날에 함께 하십니다

당신께서 우리의 어두움 속으로 가져오신 그 초들이

오늘 밝고 따뜻하게 타오르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다시 하나 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는 압니다 당신의 빛이 밤을 비추고 있음을

선한 능력에 우리는 너무 잘 보호받고 있으며

믿음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이나 아침이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또한, 매일의 새로운 날에 함께 하십니다

 

실제로 삶이 망가지고 있는데도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신다고 믿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가능하다. 이건 누가 억지로 가르쳐 줘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어떤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산길을 가는 중이라고 상상해보라. 밤이 깊었다. 비바람이 분다. 아이는 두렵다. 아버지는 예약해둔 호텔에 곧 도착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지금 가는 길이 불편하고 고생스럽기는 하나 두렵지 않다. 그가 영성이 더 깊은 사람이라면 지금의 비바람을 쾌적한 호텔로 느낄 수 있다. 오늘 우리 기독교인의 삶도 이와 비슷하다. 문제는 거룩한 호텔을 실재(reality)로 경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는 곧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경험을 의미한다. 그 하나님의 능력은 세상을 무()로부터 창조했고,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렸다. 이 두 관점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실질적으로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 창조와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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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3일 하나님의 나라 (10) [2]

  • 2006-05-13
  • 조회 수 4481

2006년 5월13일 하나님의 나라 (10)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하나님의 나라’를 주제로 한 이 성서묵상은 오늘로 일단락을 맺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초석이며 목표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훨씬 많은 논의가 필요하긴 합니다. 어제 언급한 부활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도 여전히 보충 발언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타종교의 문제나 하나님 나라의 속성인 평화와 오늘의 폭력 문제도 다루어야 하겠지요. 하나님의 나라와 윤리 문제도 할 말...

5월13일 하나님의 나라 (10) [1]

  • 200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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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13일 하나님의 나라 (10)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하나님의 나라’를 주제로 한 이 성서묵상은 오늘로 일단락을 맺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초석이며 목표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훨씬 많은 논의가 필요하긴 합니다. 어제 언급한 부활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도 여전히 보충 발언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타종교의 문제나 하나님 나라의 속성인 평화와 오늘의 폭력 문제도 다루어야 하겠지요. 하나님의 나라와 윤리 문제도 할 말...

5월14일 회개와 복음 (1) [3]

  • 2006-05-14
  • 조회 수 4749

2006년 5월14일 회개와 복음 (1)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를 뜻한 ‘메타노이아’라는 말은 세례요한이 선포한 설교의 핵심이기도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세례요한에게서 이 회개라는 사상을 배웠다는 의미일까요? 우리는 그런 내막을 정확하게 풀어낼 수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예수님이 먼저 출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세례 요한에게서 나름대...

5월14일 회개와 복음 (1) [2]

  • 200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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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14일 회개와 복음 (1)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를 뜻한 ‘메타노이아’라는 말은 세례요한이 선포한 설교의 핵심이기도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세례요한에게서 이 회개라는 사상을 배웠다는 의미일까요? 우리는 그런 내막을 정확하게 풀어낼 수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예수님이 먼저 출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세례 요한에게서 나름대...

5월15일 회개와 복음 (2) [1]

  • 200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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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15일 회개와 복음 (2)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회개는 이 땅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하늘로 관심의 축을 옮기는 신앙적 태도이며 결단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우주 공간의 어느 한 지역을 복음서가 말하는 그런 하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하늘은 곧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곧 하늘이 가까이 왔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까이 온 그 하늘은 우주 물리학적인 차원에서의...

5월15일 회개와 복음 (2)

  • 200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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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15일 회개와 복음 (2)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회개는 이 땅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하늘로 관심의 축을 옮기는 신앙적 태도이며 결단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우주 공간의 어느 한 지역을 복음서가 말하는 그런 하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하늘은 곧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곧 하늘이 가까이 왔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까이 온 그 하늘은 우주 물리학적인 차원에서의...

5월16일- 회개와 복음 (3) [2]

  • 200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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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16일 회개와 복음 (3)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오늘 본문의 구조를 그대로 따른다면 회개는 복음을 믿는 것의 전제 조건입니다. 혹은 회개가 복음의 선행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을 바꾼다는 의미의 회개 경험이 없다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논리를 따라오지 못할 것 같은 노파심이 들어, ...

5월16일- 회개와 복음 (3) [1]

  • 200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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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16일 회개와 복음 (3)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오늘 본문의 구조를 그대로 따른다면 회개는 복음을 믿는 것의 전제 조건입니다. 혹은 회개가 복음의 선행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을 바꾼다는 의미의 회개 경험이 없다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논리를 따라오지 못할 것 같은 노파심이 들어, ...

5월17일- 회개와 복음 (4) [3]

  • 2006-05-17
  • 조회 수 4542

2006년 5월17일 회개와 복음 (4)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어제 묵상의 마지막은 신앙적인 업무를 대폭적으로 축소하고, 하나님의 통치에 관심을 쏟는 것이 회개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대목에서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모이기에 힘써야 하고,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해야 할 마당에 그런 일들을 줄이라는 게 말이 될까요? 그리고 더 본질적으로, 그런 축소가 왜 회개인가요?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오해되는 것은 그리스도인...

5월17일- 회개와 복음 (4) [3]

  • 2006-05-17
  • 조회 수 2149

2006년 5월17일 회개와 복음 (4)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어제 묵상의 마지막은 신앙적인 업무를 대폭적으로 축소하고, 하나님의 통치에 관심을 쏟는 것이 회개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대목에서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모이기에 힘써야 하고,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해야 할 마당에 그런 일들을 줄이라는 게 말이 될까요? 그리고 더 본질적으로, 그런 축소가 왜 회개인가요?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오해되는 것은 그리스도인...

5월18일- 일상의 힘 [2]

  • 2006-05-18
  • 조회 수 4205

2006년 5월18일 일상의 힘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막 1:16)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님과 시몬 형제와의 만남을 아주 간단하게 묘사합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고기를 잡고 있던 그 형제를 보았다고 합니다. 본문이 정확하게 보도하지 않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상식적으로 봐도 예수님은 매일 새벽마다 그 해변을 산책하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시몬 형제를 한 두 번 본 게 아닐 겁니다. 어쩌면 그들...

5월18일- 일상의 힘 [2]

  • 2006-05-18
  • 조회 수 2074

2006년 5월18일 일상의 힘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막 1:16)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님과 시몬 형제와의 만남을 아주 간단하게 묘사합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고기를 잡고 있던 그 형제를 보았다고 합니다. 본문이 정확하게 보도하지 않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상식적으로 봐도 예수님은 매일 새벽마다 그 해변을 산책하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시몬 형제를 한 두 번 본 게 아닐 겁니다. 어쩌면 그들...

5월19일- 말의 힘 [2]

  • 2006-05-19
  • 조회 수 4127

2006년 5월19일 말의 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6) 예수님은 그물을 던지고 있던 시몬 형제들을 보시고 이렇게 말을 거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예수님이 구체적인 사람을 보고 말씀하신 첫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는군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소리를 내어 말씀하셨답니다. 인간은 언제부터 말을 하게 되었을까요? 이를 위해서는 고고학의 도움을 받아야하겠지만, 우리는 정확한 시대를 알 필요가 없으니까 대신 신생아를 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

5월19일- 말의 힘

  • 2006-05-19
  • 조회 수 2034

2006년 5월19일 말의 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6) 예수님은 그물을 던지고 있던 시몬 형제들을 보시고 이렇게 말을 거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예수님이 구체적인 사람을 보고 말씀하신 첫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는군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소리를 내어 말씀하셨답니다. 인간은 언제부터 말을 하게 되었을까요? 이를 위해서는 고고학의 도움을 받아야하겠지만, 우리는 정확한 시대를 알 필요가 없으니까 대신 신생아를 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

5월20일- “나를 따라오라!” (1) [2]

  • 2006-05-20
  • 조회 수 4438

2006년 5월20일 “나를 따라오라!” (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7) “나를 따라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지난 2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뿌리째 흔들었습니다. 이 말씀에 의지해서 세속에서 이루고 싶었던 모든 삶을 포기하고 수도원으로, 오지로 떠난 이들이 어디 한 둘이겠습니까? 인류 역사에 등장한 수많은 위인들의 어록에서 바로 이 예수님의 말씀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 말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 명령문은 두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나’를 ‘따라...

5월20일- “나를 따라오라!” (1) [2]

  • 2006-05-20
  • 조회 수 2301

2006년 5월20일 “나를 따라오라!” (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7) “나를 따라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지난 2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뿌리째 흔들었습니다. 이 말씀에 의지해서 세속에서 이루고 싶었던 모든 삶을 포기하고 수도원으로, 오지로 떠난 이들이 어디 한 둘이겠습니까? 인류 역사에 등장한 수많은 위인들의 어록에서 바로 이 예수님의 말씀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 말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 명령문은 두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나’를 ‘따라...

5월21일- “나를 따라오라!” (2) [2]

  • 2006-05-21
  • 조회 수 3916

2006년 5월21일 “나를 따라오라!”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7) “나를 따라오라!”는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두 번째 단어는 “따라오라”입니다. 예수님은 “네 속의 부처를 찾으라!”라거나 “네 내면의 평화를 확보하라!”고, 또는 “네 사랑의 능력을 키워라!”가 아니라 아주 명백하게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두 번째 핵심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일까요? 어제의 말씀묵상에서도 한번 ...

5월21일- “나를 따라오라!” (2)

  • 2006-05-21
  • 조회 수 1777

2006년 5월21일 “나를 따라오라!”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7) “나를 따라오라!”는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두 번째 단어는 “따라오라”입니다. 예수님은 “네 속의 부처를 찾으라!”라거나 “네 내면의 평화를 확보하라!”고, 또는 “네 사랑의 능력을 키워라!”가 아니라 아주 명백하게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두 번째 핵심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일까요? 어제의 말씀묵상에서도 한번 ...

5월22일 “나를 따라오라!” (3) [3]

  • 2006-05-22
  • 조회 수 4391

2006년 5월22일 “나를 따라오라!”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7) 예수님은 왜 시몬 형제들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본문은 그 대답을 정확하게 제시합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사람을 낚는다는 표현이 우리에게 썩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고기를 낚는 것처럼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들인다는 의미일 텐데, 번역자들이 그걸 우리말로 아름답게 표현할 길이 없었나 봅니다. 이미 우리에게 잘 적용된 용어...

5월22일 “나를 따라오라!” (3) [3]

  • 2006-05-22
  • 조회 수 1687

2006년 5월22일 “나를 따라오라!”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7) 예수님은 왜 시몬 형제들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본문은 그 대답을 정확하게 제시합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사람을 낚는다는 표현이 우리에게 썩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고기를 낚는 것처럼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들인다는 의미일 텐데, 번역자들이 그걸 우리말로 아름답게 표현할 길이 없었나 봅니다. 이미 우리에게 잘 적용된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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