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5:4

조회 수 382 추천 수 0 2023.10.17 07:14:52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53

15: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로마 황제숭배를 거절한 (순교 당한) 무리가 부르는 찬양이 4절에도 이어집니다. 여기서 저는 두 문장만 짚겠습니다. 하나는 오직 주만 거룩하시다.’라는 문장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여러 번 나온 문장입니다. 구약성경에도 종종 나옵니다. 하나님 경험은 곧 거룩함에 대한 경험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세속적이라는 말과 대립합니다. 이런 대립을 눈에 보이는 어떤 형태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예배를 우리는 거룩한 의식이라고 말합니다. 표면적인 의식은 거룩해 보이나 거기 모인 사람들의 관심은 세속적일 수 있습니다. 오직 주만 거룩하다는 말은 자신의 세속적인 관심이 완전히 사라질 때만 성립됩니다. 상투적인 표현으로, 그분을 거룩한 존재로 경험하면 돈이나 명예나 건강까지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겠지요. 이런 경험이 우리 평생에 몇 번이 있을지요. 한 번이라도 있을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버티고 있어봤자 모든 것들은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는 순간이 옵니다.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나 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뭅니다.

다른 하나는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다.’라는 문장입니다. 여기서 주는 Κύριος의 번역입니다. 3절과 4절에서 반복된 호칭입니다. 영어 성경은 Lord로 번역합니다. 구약 히브리어 단어 아도나이의 헬라어 번역이 퀴리오스입니다. 그 호칭은 하나님께만 해당합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 호칭을 예수께 붙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입니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정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의는 물론 로마 정치가 말하는 정의와는 다르지요. 정치적인 정의는 이해타산에 따라서 들쑥날쑥합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서 정의는 서로 다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도 그렇고, 남한과 북한도 그렇고, 우리와 일본도 그렇습니다. 이런 정치 경제적인 차원에서만 우리가 정의를 생각하고 살기에 하나님의 정의는 너무 멀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사실을 실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겁니다. 그걸 믿는다고 해도 실제의 삶에서 하나님의 정의에만 의존하면서 살기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바리새인이나 로마인이나 그리스도인이나, 그리고 부자나 가난한 자나 똑똑한 자나 무식한 자나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실질적으로 알고 믿는다면 하나님의 정의가 나타났다고 노래할 수 있겠지요. 저는 오늘 이 순간을 그런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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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최용우

2023.10.19 15:01:20

어린양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는 예수님의 찬양을 의미하는데, 복음서에 예수님이 찬양을 하던 장면이 나오던가? 딱 한번 나옵니다. 유월절 만찬을 마치고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26:30) 이것이 어린양의 노래라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드린 사명자의 찬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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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최용우

2023.10.19 15:27:00

1.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2.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3.만국의 왕이시여 

4.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5.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6.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7.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8.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1.모세와 어린양의 노래

계시록에 보면 7년 대환란 때 순교한 성도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거문고(하프)를 타며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계15:1-4)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마친 자들만 부를 수 있는 영광의 찬송입니다. 저도 ‘수정 같은 유리 바다’와 같이 맑고 투명한 하나님의 존전에서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성경에 ‘모세의 노래’는 2곳에 나오는데, 홍해를 건넌 후 뒤따라오던 바로의 군대가 수장되는 모습을 보고 부른 노래(출15장)와 40년간의 사역을 마치고 느보산에 올라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부른 노래(신32장)입니다. 모세는 사역을 찬양으로 시작해서 찬양으로 마쳤습니다. ‘모세의 노래’는 아무나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충성스러운 사명자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어린양의 노래는 ‘예수님의 찬양’을 의미하는데, 복음서에 예수님이 ‘찬양’을 하던 장면이 나오던가? 딱 한번 나옵니다. 유월절 만찬을 마치고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마26:30) 이것이 ‘어린양의 노래’라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드린 ‘사명자의 찬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명을 마친 자들은 가장 먼저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Lord God Almighty)하고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속성에 위배되는 ‘거짓말은 하실 수 없지만’(히6:18) 이외에는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전능’은 ‘모든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간, 모든 방법으로, 모든 것들을 다스리시는 모든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제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믿으며 또 찬양합니다.(막9:23) 할렐루야! 


2.크고 기이하도다

사명을 마친 자들은 (하나님의)“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Great and marvellous are thy works)”하고 찬양합니다. 하나님이 장차 행하실 7대접 재앙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놀라운(Great and marvellous) 사건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든 죽어버리면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사실은 죽음 이후에 더 긴 제3생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2생에서의 결과로 제3생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생명이 붙어있는 순간순간을 진지하게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3생에서 가장 큰 심판을 받을 자들은 2생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여서 ‘순교자’가 되게 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7대접 재앙이 부어지는 지옥에 갈 것입니다. 

불교는 팔열팔한지옥(八熱八寒地獄)을 비롯하여 지옥에 대한 이미지가 다양합니다. 구품왕생은 죄를 지은 정도에 따라 9가지 등급의 지옥에 간다고 하며, 지옥에도 극락에도 못가는 사람은 ‘축생계’라 하여 사람이 아닌 다른 동물로 태어난다고 하고, ‘아귀도’는 아귀가 되어 끝없는 배고픔에 시달리는 형벌을 받는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옥과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은 많이 다른데 1천년 이상 불교의 영향을 받아서 기독교인들도 사실은 지옥을 불교처럼 생각합니다.

단테의 <신곡>에는 ‘지옥의 입구’에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는 글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오귀스트 로댕이 만든 ‘지옥의 문’ 윗부분의 턱을 손으로 받치고 앉아있는 조각상이 바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지금처럼 살다가는 지옥의 문으로 들어갈텐데, 진지하게 자신의 운명을 생각하라는 것이죠.


3.만국의 왕이시여

사명을 마친 자들은 (하나님께)“만국의 왕이시여(King of the nations)”하고 찬양합니다. 만국의 왕 앞에는 정관사 the가 붙어 있습니다. 오직 ‘유일하신 왕’이라는 뜻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오직 성부 하나님과 한 속성이신 성자 예수님만 만국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신다는 것을 소리높여 찬양한 것입니다. 

역사상 얼마나 많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자신이 재림한 예수라고 사기를 쳤습니까? 탁지원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은 국내 소종파 지도자들 중에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만 20여명, 자신을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50명이 넘고 자신을 하나님 어머니, 보혜사 성령, 엘리야, 다윗을 자처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이 ‘지칭 예수’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두 ‘적그리스도’입니다.

가짜에 속으면 안 됩니다. 초림으로 오신 예수님은 구약에 예언된 대로 오셨고, 재림하실 예수님은 신약에 약속한 대로 오십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내가 가는 모습 그대로(구름에 쌓여 승천하심)’ 다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구름에 쌓여 승천하는 모습이 정확하게 어떤 상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모습을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았다고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정보통신의 눈부신 발전 속도로 보아 예수님의 재림은 전 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볼 수 있는 어떤 시스템이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참 좋다’고 했던 아름다움이 죄로 타락하여 망가져 무질서와 혼돈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다시 아름답게 복구시켜서 다스리려고 하십니다. 만국의 왕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4.의롭고 참된 길

사명을 마친 자들은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Righteous and true are Your ways)”하고 찬양합니다. 만왕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은 의와 참으로(Rightcous and true)로 만국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찬양하는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①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심이 의롭고 참되시다는 것을 찬양합니다. 이는 심판의 정당성에 대한 찬양입니다. ②또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의롭고 참되시다”(3절下)고 찬양하는데 이는 최후 심판을 내리기 전에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변증하는 찬양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단자들은 ‘지옥 교리’를 사탄의 교리라고 하면서 부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의로우시기 때문에 구원하시기도 하고 심판하여 지옥으로 보내기도 하시는 것입니다.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훼손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계시록은 반복해 ①“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계15:3).②“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계16:5). ③“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계16:7). ④“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계19:2)하고 거듭거듭 변증합니다. 

시편은 ‘그의 손이 하는 일은 진실과 정의이며 그의 법도는 다 확실하니 영원무궁토록 정하신 바요 진실(眞實)과 정의(正義)로 행하신 바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속량하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의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시111:7-9) 하고 찬양합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주의 길은 언제나 의롭고 참되시기 때문에 안심하고 주님을 따라가며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5.누가 주의 이름을

사명을 마친 자들은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Who will not fear, O Lord, and glorify Your name?)”하고 찬양합니다. 모든 인생들은 창조의 주요, 또 심판의 주가 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또 그분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무섭고 준엄한 심판이 내려질 것입니다. 

‘주의 이름이 두렵다’는 말은 ‘심판의 두려움’을 나타낸 말입니다. 주님은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종국적으로 심판을 내리십니다. 사도 요한은 환상 가운데 7대접 심판이 임하는 것을 보고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고 합니다.

‘영화롭게 한다’는 말은 주님의 위대하심을 인식하고 주님께 찬양과 경배로 명예를 올려드린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면서도 자신을 낮추어 세상에 종의 모습으로 오셨고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십자가에서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그의 이런 사랑에 너무나도 감격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오래도록 기다리시는 인내의 기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기간에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회개할 생각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을 비웃으며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벧후3:3)고 하면서 노아, 롯의 때와 같은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밷후3:10)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합니까? 


6.오직 주만 거룩하시다

사명을 마친 자들은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For You alone are holy)”하고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주변에서 수종드는 네 생물(그룹)들도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계4:8)하며 찬양합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하는 것이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11:45)하신 말씀처럼 우리도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 인생의 최종 목적입니다.

‘거룩’이란 히브리어로 ‘코데쉬’(kodesh)인데, ‘잘라냄, 분리함, 더러움과 분리된 상태, 일반 세속적인 것이나 부정한 것으로부터의 탈퇴, 신성하고 성스럽고 순수한 것에 대한 헌신을 의미합니다. 코데쉬라는 단어가 구약에만 830번이나 나옵니다. ‘거룩’이라는 단어를 ‘중후(重厚)하다’나 ‘장엄(莊嚴)’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거룩’을 소리 이미지로 표현하면 두웅~ 두웅~ 울리는 ‘북소리’ 같은 것입니다. 대앵~ 대앵~ 천천히 울리는 범종 소리’ 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기독교보다 ‘가톨릭’이나 ‘불교’는 소리로 ‘거룩’을 잘 표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웬만한 교회에서는 예배 시작 전 드럼 밴드와 전자악기(전자올겐, 전자기타)로 율동과 함께 경쾌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음악이 점점 고조되며, 전자 악기가 소리를 비틀어 짜는 비명소리 비슷한 요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소리에 흥분하여(?) 박수를 치고 몸을 흔들며 이성을 잃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예배를 시작합니다. 이러고 있으니 기독교가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에 들어가겠습니까? ‘거룩’과는 멀어도 너무 멉니다.


7.주의 의로운 일

사명을 마친 자들은 “주의 의로운 일이 나타났으매(For your righteous acts have been revealed)”하고 찬양합니다. 7인(印)과 7나팔과 7대접으로 상징되는 7년 대환란의 사건을 통해 불의한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났기에 이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심판대 앞에 선 ‘죄인’을 어떻게 해서든 죄가 있지만 ‘의롭다’고 선언하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그 죄를 용서받고 해결할 방법을 고안해 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심판대 앞에 선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죄 씻음 받았는지 살펴서, 그 사실이 확인되면 죄인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의롭게 되었다’고 선언해 주십니다. 이것을 ‘칭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의 운명을, 영원한 멸망, 즉 둘째 사망과 죄악의 모든 세력으로부터 건져내시고 생명을 주셨습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도 말입니다.(요1:12, 3:16, 10:28, 롬6:5-9, 롬8:14)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나님의 의로운 일이 온 인류에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도 어쩔 수가 없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든 거절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의지’이고 결과도 개인이 책임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대앞에서는 아무도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규칙대로 의인은 ‘영생으로’ 죄인은 ‘영벌’로 판결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사명을 마친 자들은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8.주께 경배하리이다

사명을 마친 자들은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For all The nations will come and worship before you)” 하고 찬양합니다. 천년왕국의 모습을 소개한 스가랴 14장 16절부터 18절까지의 말씀에 초막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오지 않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비를 내리지 않으시고,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만왕의 왕이 되시면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할 것입니다. 

계시록에는 15개의 ‘찬양’이 나옵니다. 결국 계시록은 ‘만물이 주님을 경배한다’는 것을 기록한 성경입니다. ‘네 생물의 찬양’(계4:8), 이십사 장로의 찬양(계4:11),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의 찬양(계5:9-11), 천천만만 천사들의 합창(계5:12),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피조물의 찬양(계5:13), 셀 수 없는 무리들의 찬양(계7:10),  모든 천사들의 찬양(계7:12), 하늘에 있는 큰 무리들의 찬양(계11:15), 이십사 장로의 찬양(계11:17-18), 하늘에 있는 큰 무리들의 찬양(계12:10-12), 짐승을 이긴 자들의 찬양(계15:3-4), 천사와 제단의 찬양(계16:5-7), 하늘에 있는 허다한 무리들의 찬양(계19:1-3),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의 화답, 그리고 보좌의 찬송명령(계16:5-7)...

계시록에는 심지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찬양도 나옵니다.(계19:6-8) 알 수 없는 것을 억지로 풀려고 하다가는 잘못 풀 수 있으니 그것이 풀려질 때까지 그냥 두는 것이 맞습니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아도 나중에는 알게 될 것입니다. 

저도 달려갈 사명을 층성스럽게 마치고 사명을 마친 자들이 부르는 ‘모세와 어린양의 찬양’을 기쁘게 부르고 싶습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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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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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77 16:20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 앞에서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오간 데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섬과 산악은 인간이 살 수 있는 육지 전체를 가리킵니다. 요한은 우주론적 차원의 심판을 바라보는 겁니다. 우주 전체가 약간 바뀌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완전히 파괴되어야만 새로운 세상이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묵시 사상의 기본이 여기에 있습니다. 낡은 에온(세상)이 가야만 새로운 에온이 올 수 있습니다. 새로운 에온이 오려면 낡은 에온은 사라져야 합...

계 16:19 [1]

  • 2023-11-20
  • 조회 수 25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76 16: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잔을 받으매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진다.’라는 말은 로마 제국이 분열되는 걸 가리킨다고 성서주석학자들이 설명합니다. 요한이 활동하던 시대에 이미 그런 조짐이 있었는지는 제가 확실하게 알지 못합니다. 설령 그런 조짐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제국이 구심력을 잃고 원심력이 강해지면 쪼개지는 순간이 온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특히 로마 제국처럼 역...

계 16:18 [1]

  • 2023-11-17
  • 조회 수 283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75 16:18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할 순간이 가까이 이르렀습니다. 요한에게 그 심판은 바벨론이라고 부르는 로마 제국을 향합니다. 묵시적 대재앙입니다. 이 세상은 고쳐서 쓸 수 없을 정도로 병들었기에 철저하게 파멸되어야 합니다. 완전히 파멸하면 그제야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그 마지막 심판의 내용은 17장과 18장에 나옵니다. 그 ...

계 16:17 [1]

  • 2023-11-16
  • 조회 수 242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74 16:17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하시니 드디어 마지막 일곱째 천사가 등장해서 대접을 공중에 쏟았습니다. 이런 표현은 문학적인 메타포입니다. 우리가 다 파악할 수 없는 어떤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진다는, 혹은 벌어졌다는 사실을 저렇게 묘사한 겁니다. 하늘 성전 안에 있는 보좌로부터 ‘큰 음성’이 울렸습니다. 보좌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직면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보좌라고만 표현했습니다. 큰 음...

계 16:16 [1]

  • 2023-11-15
  • 조회 수 26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73 16:16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아주 특이한 지명이 16절에 나옵니다. 아마겟돈은 성경에서 이곳이 유일합니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전쟁이 자주 일어난 곳이라고 합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군대가 세상의 악한 군대와 벌일 최후의 격전지라는 의미로 아마겟돈을 상징적으로 거론한 듯이 보입니다. 이미 14절에서 전쟁이 언급되었습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악을 박멸할 마지막 기회이기에 끔찍하게 전개되겠지요. 혹시 지금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거의 일...

계 16:15 [2]

  • 2023-11-14
  • 조회 수 27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72 16:15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도둑 같이 온다는 말은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순간에, 그리고 예측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통치가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말이 어떤 분들에게는 말장난처럼 들릴 겁니다.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 첨단으로 발전된 21세기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말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미래를 거의 예측할 수 있다는 듯이 살...

계 16:14 [1]

  • 2023-11-13
  • 조회 수 253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71 16:14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 영은 ‘귀신의 영’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영입니다. 13절에서 짚었듯이 귀신의 영도 이적(σημεῖον)을 행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이적은 사람들을 유혹하려는 것이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게 아닙니다. 당시에 어떤 사건이나 현상을 보고 요한이 저런 말을 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혹시...

계 16:13 [2]

  • 2023-11-10
  • 조회 수 30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70 16: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더러운 영을 왜 개구리 같다고 표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출애굽 당시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의 하나도 개구리 떼였습니다. 사실 개구리를 친근하게 느끼기는 쉽지 않습니다. 생김새도 그렇고, 털이 없는 피부도 느낌이 좋지는 않습니다. 처음 인간인 아담과 이브를 유혹했다 해서 미움을 받는 뱀은 우리 인간에게 더 불편한 느낌을 주는 동물입니다. 그러나 개구리나 뱀 자체가 무슨 잘...

계 16:12 [1]

  • 2023-11-09
  • 조회 수 28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69 16:12 또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이제 여섯째 천사가 등장해서 대접을 유브라데에 쏟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징벌이 유브라데 강에서 시작한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동방에서 오는 왕들은 로마 제국을 침략하는 왕들입니다. 로마 제국은 방대한 영역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수많은 종족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역사는 한마디로 전쟁의 역사입니다. 이는 곧 한시도 평안한 순간이 없는...

계 16:11 [3]

  • 2023-11-08
  • 조회 수 32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68 16:11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하나님의 징벌을 받은 자들이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한다고 합니다. 그 징벌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성경의 표현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자칫 하나님을 사람의 잘잘못에 따라서 상을 주거나 벌을 주는 옥황상제 비슷한 어떤 존재로 여길 수 있으니까요. 성경에 그런 표현이 나오기는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내린 심판 같은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부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

계 16:10 [1]

  • 2023-11-07
  • 조회 수 28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67 16:10 또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다섯째 천사는 대접을 왕의 자리에 쏟았다고 합니다. 그 왕은 요한계시록이 짐승이라고 부르는 존재입니다. 로마 황제, 또는 그 체제를 가리킵니다. 로마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했습니다. 모든 로마 황제가 박해에 앞장서지는 않았으나 전반적으로 그렇게 봐야 합니다. 그들이 볼 때 그리스도교는 로마 문명에 순응하지 않는 집단이었습니다. 사회에 불만이 많은 하층 계급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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