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293)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에서 가장 잘 알려졌으면서도 가장 중요한 구절을 하나 손에 꼽으라고 한다면 요 13:34절을 택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손가락에 꼽힐만하다고는 생각한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준 새 계명은 사랑이다. 예수 부활 이후를 다룬 요 2115절 이하에서 예수는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질문한다.

10:25 이하에는 소위 선한 사마리아 사람비유가 나온다. 어떤 율법 교사가 예수에게 영생의 길을 가르쳐달라고 요구했다. 예수는 율법 교사 스스로 답을 찾도록 이끈다. 율법은 이미 그 답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율법 교사는 몰라서 예수를 찾아온 게 아니라 예수를 시험하려고 찾아왔다. 그는 다시 예수에게 이웃이 누구냐고 묻는다. 이 질문은 일종의 함정이다. 유대인은 유대민족만을 이웃으로 생각하기에 예수가 자칫하면 율법을 어기는 사람이 되든지, 보편적인 사랑을 외면한 사람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이 대목에서도 예수는 율법 교사가 스스로 답을 찾게 한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고 자비를 베푼 자라고 대답한다. 사마리아 사람을 입에 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는 그 율법 전문가에게 말한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10:37).

궁극적으로 예수는 단순히 율법이 말하는 이웃 사랑에 머물지 않고 원수 사랑까지 요구한다(5:44). 13:34절이 말하는 새 계명은 바로 그 사랑을 말하는 게 아닐는지. 원수 사랑이 이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서로 따지기 시작하면 훨씬 종합적인 차원에서의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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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일지 4월26일 file [1]

  • 202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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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4월26일, 부활절 셋째 주일 1) 눈이 밝아짐- 한 제자의 이름이 ‘글로바’라 불리는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다가 부활의 예수를 만났다는 특별한 이야기를 오늘 설교의 본문으로 읽었습니다. 누가복음 기자는 이야기를 담백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는 방식으로 이끌어갔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이 밀려옵니다.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서 부활의 주를 알아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눈이 밝아졌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우리에게 잘 통하는 말로 바꾸면 영적인 ...

예수 어록(316) 요 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 2020-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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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16) 요 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서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기독교 신앙에서 핵심은 예수와의 일치다. 다른 말로는 예수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앞 구절인 20절에 언급된 내용이 이를 가리킨다. 예수 안에 존재한다는 것은 예수의 계명을 지키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21절이 말하는 내용이다. 21절의 논리를 다시 차례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예수를 사랑하는 자다. 예수를 자랑하는...

예수 어록(315) 요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 202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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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15) 요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19절 후반부에 예수는 “살아있고” 제자들도 “살아있을 것”이라고 했다. 예수는 곧 죽는다는 사실이 분명하기에 “살아있다.”라는 말은 일단 뭔가 이상하다. 이제 20절이 이것을 설명한다. 여기서 살아있다는 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살아있다는 말과 뜻이 다르다. 생명의 근원과 접속되는 것이 살아있는 것이다. 생명의 근원은 당연히 하나님이다. 이에 대한 성서적이고 신앙적인 근거를 설명할 수 있는 기...

예수 어록(314) 요 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 20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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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14) 요 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있고 너희도 살아있겠음이라. 예수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예수 당신도 알며, 제자들도 안다. 세상은 다시 예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서의 예수 생명은 끝장나기 때문이다. 세상의 생명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방식의 삶이다. 하루에 두 끼나 세 끼를 먹고 숨을 쉬어야 우리의 몸이 유지된다. 자식을 낳고 키워야 하고, 먹고살 만한 수입을 얻으려면 노동해야 한다. 예수도 삼십삼 년을 세상...

예수 어록(313) 요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 2020-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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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13) 요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예수와 제자들의 관계는 특별하다. 제자들은 예수의 부르심에 자신의 운명을 걸었다. 예수 이전의 삶을 포기한 것이다. 제자들에게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사건이었다. 부모를 여읜 고아가 된 것이다. 고아는 시설에 들어가든지 입양되지 않으면 생존이 위태롭다. 예수는 제자들의 영적 실존을 알고 있었기에 제자들에게 다시 온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은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한다. 이 사실을 아는데도 여전히 우리는 고아...

예수 어록(312) 요 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 2020-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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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12) 요 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파라클레토스”는 진리의 영이라고 했다. 진리의 영이라는 표현이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는 데 정말 중요하다. 오해도 많다는 의미이다. 진리의 영을 이해하려면 진리(알레테이아) 개념을 먼저 알아야 한다. 진리라는 단어 자체는 어렵지 않다. 진리는 참된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무엇이 참된 것인지, 참되다는 기준은 무...

예수 어록(311) 요 14:16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 2020-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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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11)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보혜사”라는 특이한 단어가 나왔다. 헬라어 “파라클레토스”의 번역이다. 루터 성경의 파라클레토스 단어에는 위로하는 자, 또는 대신 기도해주는 자라는 각주가 달렸다. 우리말 성경의 보혜사(保惠師)는 지켜주고 은혜를 베풀 스승이라는 뜻이다. 뜻은 좋은데 낱말 자체의 어감은 편하게 와닿지 않는다. 요즘 이런 단어를 쓰는 사람은 없다. 차라리 위로자라고 번역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우리 기독교...

주간일지 4월19일 file [6]

  • 2020-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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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4월19일, 부활절 둘째 주일 1) 도마 이야기- 사도 도마는 의심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며칠 전에 죽었던 예수를 “보았다.”라는 제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물론 믿을 수도 있긴 합니다. 자신의 주체적인 생각을 모두 포기할 때만 가능합니다. 요한복음 기자는 도마를 비판하기 위해서 그를 오늘 본문의 주인공으로 삼은 게 아닙니다. 오히려 칭찬하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를 직접 목격한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으니...

예수 어록(310)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 2020-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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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10)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예수를 “사랑하면” 당연히 예수의 “계명”을 지키게 된다. 여기서 계명은 앞에서 새 계명이라고 언급된 “서로 사랑”(요 13:34)이다. 예수 사랑이 사랑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예수를 사랑한다는 말은 예수에게서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사랑받은 자만이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단지 어떤 이를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다. 감정은 사랑의 능력에 뒤따르는 현상이지 사랑의 능력 자체는 아니다. 사랑은 삶의 능력이다. 예를 들어 바람을 통해서 삶...

예수 어록(309) 요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 2020-04-17
  • 조회 수 5804

예수 어록(309) 요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3절에 나온 문장이 여기 14절에 다시 나온다. “무엇이든지” 예수가 행한다는 약속이다. 나는 이 약속을 진리도 믿는다. 예수는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을 행하시는 분이라고 말이다. 이는 곧 예수의 제자라면 예수가 행할 것만 구한다는 뜻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의 제자 앞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일절 예수가 행하는 일이다. 나는 예수 제자이기에 내 운명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내가 구한 것에 대한 예수의 응답이라고 믿는다. 예수는 내가 ...

예수 어록(308) 요 14:13

  • 202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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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08) 요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예수가 그대로 행한다고 했다. 매력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이 말을 오해하여 예수를 통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그대로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기독교 신앙을 자기 삶의 존재론적 근거가 아니라 삶의 도구로 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통해서 좋은 대학교나 직장에 들어가고, 좋은 사람과 결혼하고, 자식 문제를 해결하...

예수 어록(307) 요 14:12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 2020-04-15
  • 조회 수 1237

예수 어록(307) 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의 일을 한다. 아니 해야만 한다. 이 말씀을 오해하여 우리가 예수의 도움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읽으면 곤란하다. 예수의 일은 자기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결국 자기 영광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그 차이를 구분하기...

예수 어록(306) 요 14:11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 2020-04-14
  • 조회 수 1237

예수 어록(306) 요 14: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예수는 거듭해서 당신이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당신 안에 있다는 사실을 믿으라고 제자들에게 말한다. 예수에게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요청한 빌립도 믿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요한복음 공동체 안에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며, 주변의 유대인들은 더더욱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예수라는 인격체를 믿기 힘들면 예수에게 나타나는 일(work)은 믿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

예수 어록(305) 요 14: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 2020-04-13
  • 조회 수 1825

예수 어록(305) 요 14: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는 보았다.”(9절)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10절이 친절하게 설명한다.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다는 뜻이다. 예수의 이 발언은 자신이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일치해서 말도 하고 행동한다는 뜻이다.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알고 따르기가 쉽지 않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

주간일지 4월12일 file

  • 2020-04-12
  • 조회 수 826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4월12일, 부활 주일 1) 찾음의 영성- “위의 것을 찾으라!”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이 문장이 저의 영혼을 강하게 울렸습니다. 저에게 ‘위의 것’에 대한 관심이 실제로 있는지, 그것을 실제로 ‘찾으면서’ 살아가는지, 강력하게 압박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설교자로서 평생을 살았는데도 여전히 말씀에서 큰 도전을 받는다는 게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저의 영적 수준이 여전히 미숙하다는 뜻이니 부끄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배우고 느껴야 할 신앙의 내용이 성경 안에 무궁무진하다...

예수 어록(304) 요 14:9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 2020-04-11
  • 조회 수 1270

예수 어록(304) 요 14:9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아버지를 보여달라.”는 빌립의 요구를 받고 예수는 다시 7절과 비슷한 내용으로 말한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이 표현은 요한복음 공동체의 신앙고백이다. 그들은 자신들과 대립하던 유대교 대표자들을 향해서 “우리의 하나님 경험은 당신들의 경험과 다르다.”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유대교는 하나님 경험을 말할 때 세 가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

예수 어록(303) 요 14:7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 20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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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03) 요 14: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앞에서 비슷한 진술이 몇 번 나왔지만 요 14:7절도 폭탄 발언이나 마찬가지다. 예수를 알면 그가 아버지라고 부른 하나님을 아는 거라니, 그렇다면 예수가 하나님이란 말인가, 하는 질문이 가능하다. 이 문장을 따른다고 해도 예수가 하나님 자신이라는 말은 아니다. 예수에게서 하나님을,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요한복음 공동체가 이렇게 고백하는 근거는 예수를 통해서...

예수 어록(302) 요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2020-04-09
  • 조회 수 1714

예수 어록(302)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여기에 다시 ‘에고 에이미 … ’(나는 … 이다.)라는 헬라어 문장 형식이 나온다. 이와 같은 형식의 문장이 나오는 요 11:25절은 이렇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 10:7절은 “나는 양의 문이다.”라고 했고, 요 10:11절은 “나는 선한 목자이다.”라고 했다. ‘에고 에이미’ 문장은 요한복음의 특징이다. 요한복음 공동체가 예수의 정체성을 좀 더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담아내려는 시도가 이런 문장 형...

예수 어록(301) 요 14:5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 2020-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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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01) 요 14: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도마는 솔직한 사람이다. 베드로를 닮았다. 우리는 그가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의심이 많은 게 아니라 질문이 많은 것이다. 질문이 많아야 진리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간다. 도마의 진술은 그 의미가 명료한 것 같지만 좀 까다로운 편이다. 그는 예수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에 그 ‘길’을 모른다는 것이다. 어디로 간다는 사실보다는 ‘길’에 방점이 있는 발언이다. 길은 헬라어 ‘호도스’의 번역이...

예수 어록(300) 요 14: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2]

  • 20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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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00) 요 14: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예수는 지금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6절에 따르면 예수는 ‘아버지’에게 간다. 아버지는 친밀감의 표현이다. 예수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가깝게 느꼈다. 그게 어떤 건지 우리 눈에 들어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와 비슷한 진술은 앞에서 자주 나왔다. 대표적으로 요 10:30절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이 말을 듣고 유대인들은 돌로 예수를 치려고 했다. 신성모독 발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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