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4월5일

조회 수 1842 추천 수 0 2020.04.05 19:55:52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45, 사순절 여섯째 (종려) 주일

 

1) 주의 손- 지난 주일의 설교에 이어서 오늘 설교의 주제도 주의 손이었습니다. 주의 손은 주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시편 기자는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다.”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앞날이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정말 강력한 발언입니다. 우리말 성경이 나의 앞날이라고 번역한 단어를 영어와 독일어 성경은 나의 시간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비슷한 뜻이긴 하지만 뉘앙스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My times are in thy hand.” 이 문장이 가리키는 세계를 아는 사람이라면 어떤 재난과 불행 앞에서도 겁먹지 않을 겁니다. 그런 믿음이 더 성숙해지면 죽음까지 넘어설 수 있겠지요. 매월 첫 주일에는 원래 어린이 설교를 했는데, 벌써 두 달째 어린이 설교를 하지 못하고 있네요. 그때가 그립습니다. 오늘 설교가 좀 길었습니다. 설교자가 자기 생각에 도취하면 길어집니다. 별로 좋은 현상이 아닙니다. 눈치챈 분들이 있겠지만, 오늘 오랜만에 시편을 설교 본문으로 삼았습니다. 오랫동안 첫째말씀, 둘째말씀, 셋째말씀에 해당하는 본문으로 설교했습니다. 앞으로 일 년에 두세 번이라도 시편을 본문으로 설교하겠습니다.

 

2) 공동예배서- 예배 시작 전에 처음으로 온라인 예배에 참석한 분들을 위해서 예배의 특징을 간략히 설명했습니다. 핵심적으로 대구 샘터교회의 예배는 미국연합장로교회에서 나온 공동예배서(Book of Common Worship, 1993/ 번역판은 한국장로교출판사 2001년 발행)가 제시한 예배 순서와 내용을 토대로 합니다. 예전이 살아있는 예배입니다. 오늘 예배를 설명하게 된 이유는 김*혜 청년이 토요일 저에게 보낸 문자 때문입니다. 김 선생은 혼자 우리 교회에 나오고, 부모님과 동생은 다른 교회에 나갑니다. 처음으로 가족이 함께 집에서 온라인으로 우리 교회 예배에 참석하기로 했는데, 자신이 처음 대구 샘터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릴 때의 그 낯선 경험이 가족에게 조금이라도 해소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저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다른 교우들에게도 참고가 될까 해서 공동예배서를 이 자리에서 다시 소개했습니다. 한국의 장로교회라고 한다면 이런 형식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신학대학원 예배학 교수들은 한결같이 예전예배를 드리라고 강의하는데도 한국교회는 용기가 없어서, 또는 신학적인 마인드가 없어서 약식 예배 방식을 따르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유튜브로 방송 예고가 어긋났습니다. *희 집사가 요즘 수고가 많습니다. 이쪽의 전문가가 아니니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다니면서 우리 교회 실정에 가장 어울리는 기술을 접목해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오늘은 유튜브가 안 되고 아프리카TV로만 나갔습니다. 오는 주일에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방송이 나갈 겁니다. 아프리카TV와 유튜브만이 아니라 교회 밴드에도 링크가 된다고 합니다. 기대하십시오. 만에 하나 다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한쪽이 안 되면 다른 쪽으로 옮겨보세요. 오는 주일에는 좀 일찍 라이브 방송을 열기로 했습니다.

 

3) 고난주간 성경 읽기-주보에 나온 내용입니다. 다음 한 주간은 고난주간, 또는 성주간(Holy Week)이라고 합니다. 아래 도표의 순서에 따라서 성경 본문을 매일 읽기 바랍니다. 그 내용은 세계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lectionary)입니다.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으실 터이니 이번 고난주간을 말씀과 함께 보내보십시오.

(요일)

첫째 말씀

시편

둘째말씀

셋째말씀

6()

42:1-9

36:5-11

9:11-15

12:1-11

7()

49:1-7

71:1-14

고전 1:18-31

12:20-36

8()

50:4-9(a)

70

12:1-3

13:21-32

9()

12:1-4, 11-14

:116:1-2, 12-19

고전 11:23-26

13:1-17, 31(b)-35

10()

52:13-53:12

22

10:16-25

18:1-19:42

11()

14:1-14

31:1-4, 15-16

벧전 4:1-8

27:57-66

 

4) 코로나19 전쟁- 온 세계가 코로나19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도시 지역에는 안전한 곳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네팔이나 티베트 등의 오지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겠지요. 미국은 유달리 힘든 상황입니다. 뉴욕이 주로 그렇다지요. 트럼프는 이를 전쟁으로 비유해서 말했다고 합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앞으로 이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거나 어떻게 종료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의 상황이 1-2년 지속한다면 기존의 모든 체제가 복구될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될 겁니다. 백신이 빨리 개발되면 좋겠으나 정해진 건 없습니다. 코로나19로 이름이 붙은 이 바이러스가 변이에 변이를 더 거쳐서 지금보다 더 나쁜 상황으로 치닫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지구와 인류의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5백 년 후의 우리 후손들이 오늘을 기억하면서 당시에 인류의 반이 죽었답니다.”라고 회고하게 될까요? 지구에 수많은 종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습니다.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이 사라지지 말라는 보장 역시 없습니다. 과학의 힘으로 해결하겠다는 주장은 별로 믿을만하지 못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벌어진 이 상황에서 교회는 어떤 메시지를 준비하고, 어떤 교회 형태를 갖춰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겠습니다. 그 대답은 성경을 새롭게 읽는 데서 시작하겠지요. 하여튼 이번 코로나19가 일단은 빨리 진정되었으면 합니다.

 

5) 3월 재정보고- 주보에 나온 내용을 다시 싣습니다. 아래 재정보고(보고자: 재정부장부장 김*근 집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통장 이체 방식인데도 다른 달보다 헌금 액수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었습니다. 다섯 주일의 합계이기도 하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들이 하나로 모인 것 같습니다. 재정부장의 말을 들으니 우리 교인이 아닌 네 분이 3월 한 달간 1,210,000원을 헌금했다고 합니다. 저도 한분을 제외하고는 다 모르는 분들인데,작은교회를 염려해주시는 마음, 고맙습니다.

수 입

지 출

헌금

1

2,500,000

예배부

50,000

주보

2

1,820,000

교육문화부

0

 

3

1,130,000

봉사 경조부

18,000

생수

4

1,690,000

나눔선교부

1,650,000

정기후원

5

2,520,000

어린이청소년부

 

 

소 계

9,660,000

사무관리부

2,136,718

예배처소 임차료, 목활비, 카니발 보험 외

기타

예금이자

0

재정부

3,205,700

목사 사례비(22십만), 퇴직적립, 일반적립 외

합 계

9,660,000

합계

7,060,418

3월 잔액 (2,599,582)

이월

6,618,403

차기이월

9,217,985

총계

16,278,403

총계

16,278,403

 

6) 집단 영성- 대구 샘터교회는 지금 실험적인 제도를 도입해서 실행 중입니다. 장로로 구성된 당회가 없습니다. 운영위원회가 당회 역할을 합니다. 운영위원회를 구성하는 운영위원들은 모두 일반 신자들입니다. 남녀 균형을 맞추고, 나이도 노소의 균형을 맞춰서 선택합니다. 운영위원장 역시 2019년부터 목사가 아니라 일반 신자가 맡습니다. 전체적으로 평신도교회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입니다. 이런 제도가 흔들리지 않고 탄력을 받으려면 집단 영성이 필요합니다. 사회에서도 집단 지성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이요. 개인은 장단점이 있어서 실수하게 마련이지만 공동체 전체를 놓고 보면 단점이 줄어들고 장점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집단 영성이 잘 발휘되면 대구 샘터교회가 단단해지겠지만, 그게 부족하면 단점이 더 두드러질 겁니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용감하게 이 길을 가봅시다. 성령에 의지해서!

 

7) 그리움- 오늘로 온라인만의 예배가 일곱 번째로 드려졌습니다. 거의 두 달이 돼가는군요. 일주일에 한 번 같은 공간에 모이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그게 안 되니 뭔가 허전할 겁니다. 일종의 그리움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그리우신가요? 모든 것이겠지요. 주보를 손에 들었던 순간이 그리울 수도 있습니다. 어떤 교우의 따뜻한 미소나 인사, 각각의 목소리, 식사 찬송과 먹을거리, 청소와 성가 연습, 1층 카페에서의 담소 등등, 이루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설교를 온라인이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듣고 싶은 그리움도 거기에 포함되겠지요. 환풍기는 여전히 잘 돌아갑니다. *아 집사의 붓글씨 족자도 두 군데에 잘 걸려있습니다. 게시판에 붙은 안내 쪽지도 여전합니다. 거울도 안녕하고, 엠프와 디지털 피아노도 잘 지냅니다. 생수는 오래 쓰지 않아서 심심하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가장 보고 싶으신가요? 그리움이 해소될 날이 빨리 왔으면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결정적인 순간도 올 거고요. 어떻게 보면 신앙생활을 비롯하여 모든 인생살이는 그리움으로 남는 게 아닐는지요.

 

8) 주보 표지- 주보 표지 사진을 여기 다시 올립니다. 일전에 카니발 뒷문이 열리지 않아 차량 서비스 센터에 가서 차를 맡기고 바로 옆에 있는 북안 초등학교 옆길을 따라 잠시 걷다가 눈에 들어오는 벚나무를 사진기에 담았습니다. 눈부실 정도로 꽃이 만발한 벚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웃고 떠드는 아이들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꽃 같은 아이들이 없으니 꽃도 슬퍼 보이는군요.

     북안초.jpg

 

9) 헌금: 1,270,000(통장 입금 45일 낮 130분 기준)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레벨:29]모모

2020.04.06 00:28:47

라이* 방송을 조금 일찍 열고 조금 늦게 닫았으면합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0.04.06 21:15:13

모모 님, 좋은 의견을 주셨네요. 

시작 전 10분, 끝나고 5분은 여유를 두겠습니다.

[레벨:17]시골뜨기

2020.04.06 16:18:31

정말 함께 모여 서로 얼굴들을 보면서 예배하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상희 집사님이 수고가 많으시군요!

유투브로 방송이 안 나오기에 내 컴퓨터가 잘못된 줄 알았습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0.04.06 21:18:08

ㅎㅎ 글쎄 말입니다. 

이 집사가 집에서 잘 됐는데 교회 폰으로 하니 안 된다면서 

애를 태우다가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습니다. 

아마 다음 주일에는 최적의 상태로 방송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profile

[레벨:13]뚜벅이

2020.04.07 17:20:34

꼼꼼한 주간일지 감사합니다.

집단영성과 그리움에서 눈물이 나네요.

봄탓을 해보며 이전같은 일상이 와도 

이전과 같지는 않을거라 생각하며 

그날이 속히 오기를 기원합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0.04.07 21:33:57

ㅎㅎ 봄에는 꽃이 많아 눈물도 흔하고 알러지도 흔합니다.

그리움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이겠지요.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멋진 봄밤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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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09) 요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3절에 나온 문장이 여기 14절에 다시 나온다. “무엇이든지” 예수가 행한다는 약속이다. 나는 이 약속을 진리도 믿는다. 예수는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을 행하시는 분이라고 말이다. 이는 곧 예수의 제자라면 예수가 행할 것만 구한다는 뜻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의 제자 앞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일절 예수가 행하는 일이다. 나는 예수 제자이기에 내 운명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내가 구한 것에 대한 예수의 응답이라고 믿는다. 예수는 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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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08) 요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예수가 그대로 행한다고 했다. 매력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이 말을 오해하여 예수를 통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그대로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기독교 신앙을 자기 삶의 존재론적 근거가 아니라 삶의 도구로 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통해서 좋은 대학교나 직장에 들어가고, 좋은 사람과 결혼하고, 자식 문제를 해결하...

예수 어록(307) 요 14:12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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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07) 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의 일을 한다. 아니 해야만 한다. 이 말씀을 오해하여 우리가 예수의 도움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읽으면 곤란하다. 예수의 일은 자기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결국 자기 영광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그 차이를 구분하기...

예수 어록(306) 요 14:11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 2020-04-14
  • 조회 수 1237

예수 어록(306) 요 14: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예수는 거듭해서 당신이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당신 안에 있다는 사실을 믿으라고 제자들에게 말한다. 예수에게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요청한 빌립도 믿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요한복음 공동체 안에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며, 주변의 유대인들은 더더욱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예수라는 인격체를 믿기 힘들면 예수에게 나타나는 일(work)은 믿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

예수 어록(305) 요 14: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 2020-04-13
  • 조회 수 1825

예수 어록(305) 요 14: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는 보았다.”(9절)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10절이 친절하게 설명한다.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다는 뜻이다. 예수의 이 발언은 자신이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일치해서 말도 하고 행동한다는 뜻이다.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알고 따르기가 쉽지 않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

주간일지 4월12일 file

  • 2020-04-12
  • 조회 수 827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4월12일, 부활 주일 1) 찾음의 영성- “위의 것을 찾으라!”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이 문장이 저의 영혼을 강하게 울렸습니다. 저에게 ‘위의 것’에 대한 관심이 실제로 있는지, 그것을 실제로 ‘찾으면서’ 살아가는지, 강력하게 압박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설교자로서 평생을 살았는데도 여전히 말씀에서 큰 도전을 받는다는 게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저의 영적 수준이 여전히 미숙하다는 뜻이니 부끄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배우고 느껴야 할 신앙의 내용이 성경 안에 무궁무진하다...

예수 어록(304) 요 14:9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 2020-04-11
  • 조회 수 1270

예수 어록(304) 요 14:9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아버지를 보여달라.”는 빌립의 요구를 받고 예수는 다시 7절과 비슷한 내용으로 말한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이 표현은 요한복음 공동체의 신앙고백이다. 그들은 자신들과 대립하던 유대교 대표자들을 향해서 “우리의 하나님 경험은 당신들의 경험과 다르다.”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유대교는 하나님 경험을 말할 때 세 가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

예수 어록(303) 요 14:7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 20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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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03) 요 14: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앞에서 비슷한 진술이 몇 번 나왔지만 요 14:7절도 폭탄 발언이나 마찬가지다. 예수를 알면 그가 아버지라고 부른 하나님을 아는 거라니, 그렇다면 예수가 하나님이란 말인가, 하는 질문이 가능하다. 이 문장을 따른다고 해도 예수가 하나님 자신이라는 말은 아니다. 예수에게서 하나님을,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요한복음 공동체가 이렇게 고백하는 근거는 예수를 통해서...

예수 어록(302) 요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20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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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02)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여기에 다시 ‘에고 에이미 … ’(나는 … 이다.)라는 헬라어 문장 형식이 나온다. 이와 같은 형식의 문장이 나오는 요 11:25절은 이렇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 10:7절은 “나는 양의 문이다.”라고 했고, 요 10:11절은 “나는 선한 목자이다.”라고 했다. ‘에고 에이미’ 문장은 요한복음의 특징이다. 요한복음 공동체가 예수의 정체성을 좀 더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담아내려는 시도가 이런 문장 형...

예수 어록(301) 요 14:5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 2020-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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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01) 요 14: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도마는 솔직한 사람이다. 베드로를 닮았다. 우리는 그가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의심이 많은 게 아니라 질문이 많은 것이다. 질문이 많아야 진리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간다. 도마의 진술은 그 의미가 명료한 것 같지만 좀 까다로운 편이다. 그는 예수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에 그 ‘길’을 모른다는 것이다. 어디로 간다는 사실보다는 ‘길’에 방점이 있는 발언이다. 길은 헬라어 ‘호도스’의 번역이...

예수 어록(300) 요 14: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2]

  • 20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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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00) 요 14: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예수는 지금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6절에 따르면 예수는 ‘아버지’에게 간다. 아버지는 친밀감의 표현이다. 예수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가깝게 느꼈다. 그게 어떤 건지 우리 눈에 들어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와 비슷한 진술은 앞에서 자주 나왔다. 대표적으로 요 10:30절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이 말을 듣고 유대인들은 돌로 예수를 치려고 했다. 신성모독 발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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