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4월12일

조회 수 825 추천 수 0 2020.04.12 19:31:34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412, 부활 주일

 

1) 찾음의 영성- “위의 것을 찾으라!”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이 문장이 저의 영혼을 강하게 울렸습니다. 저에게 위의 것에 대한 관심이 실제로 있는지, 그것을 실제로 찾으면서살아가는지, 강력하게 압박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설교자로서 평생을 살았는데도 여전히 말씀에서 큰 도전을 받는다는 게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저의 영적 수준이 여전히 미숙하다는 뜻이니 부끄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배우고 느껴야 할 신앙의 내용이 성경 안에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니 기쁘기도 합니다. 설교에서 위의 것은 일상의 깊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거기에 생명의 근원이 감춰져 있습니다. 그게 눈에 보이는 사람이 있고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일상에는 우리 각자의 인생도 포함됩니다. 우리 인생에 무엇이 감춰져 있는지를 찾아보십시오. 그냥 눈으로는 보이지 않겠으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보일 겁니다. 그 보이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이고, 하늘입니다.

 

2) 부활절- 부활절 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렸습니다. 온라인 예배를 진행하기 위해서 모인 몇 사람만 함께하는 예배의 분위기가 어떨지 상상해보셨는지요. 설교자, 반주자, 사회자, 방송담당자, 이렇게 네 사람이 진행했습니다. 방송담당자 아내와 딸이 함께 와서 예배실 바닥을 청소해주었습니다. 사람이 들락거리지 않았는데도 걸레가 새까맣더군요. 오늘은 부활절 꽃 화분을 들고 아무개 집사가 참석했습니다. 평소였다면 부활절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의 예배와 친교 식사 시간으로 이어졌을 텐데, 아쉬웠습니다. 오늘부터 524일까지 부활절 절기가 이어집니다. 531일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어쨌든지 2020년 부활절 예배는 재난영화처럼 오래 잊히지 않을 겁니다. 온라인으로나마 부활의 기쁨이 교우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3) 주보- 요즘 주보를 제가 집에서 6매 만듭니다. 컬러 프린트가 없어서 흑백으로만 나옵니다. 주보 담당인 정*향 집사가 편집한 파일을 홈페이지에 올려줘서 그걸 프린트합니다. 그 파일이 없었다면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주보를 만들었을 텐데, 이제는 아주 편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주보 6매를 만드는 일도 보통 작업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쪽수가 틀리기도 하고, 앞뒤가 거꾸로 나오기도 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숙달되었습니다. 평소에 정 집사는 90매 정도를 혼자서 만들었으니, 그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때는 A43장 앞뒤 프린트이니 수고가 갑절입니다. 그걸 일일이 접어서 스탬플 작업까지 해야 합니다. 앞으로 교회의 일상이 회복되면 교우들은 주보를 소중히 여기게 되겠지요.

 

4) 예배 연습- *연 집사가 예배 사회를 맡아주면서부터는 저의 부담이 크게 줄었습니다. 그래도 평소보다는 여전히 부담이 큽니다. 회중이 없는 예배에 현장감이 떨어지지 않게 하려면 저라도 더 적극적으로 예배의 매 순서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토요일과 주일 아침에 주보를 앞에 놓고 혼자서 예배를 연습합니다. 찬송가와 공동기도와 성경도 다 읽습니다. 물론 설교문도 몇 번에 걸쳐서 읽습니다. 예배 연습을 하면 실제 예배에서도 집중도가 훨씬 높아집니다. 교우들도 홈페이지에 올라간 주보를 중심으로 예배를 연습해보십시오. 30분이면 충분합니다.

 

5) 유튜브- 오늘 드디어 예배 방송이 성공적으로 유튜브로 나갔습니다. 담당 이*희 집사가 준비하려고 교회에 아주 일찍 왔습니다. 저보다 먼저 와서 저를 기다렸으니까요. 유튜브로 나가면 그 파일이 날짜별로 저장됩니다. 나중에라도 찾아서 보기 편리합니다. 오늘 저도 집에 와서 다시 들어가 보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좋았습니다. 다만 작은 두 가지 문제가 눈에 뜨였습니다. 하나는 영상이 조금 흐릿한 것입니다. 아프리카TV에 비해서 유튜브가 조금 더 흐리더군요. 다른 하나는 화면 전체 구도가 산만해 보이는 것입니다.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세련되게 정리할 필요는 있습니다. 아마 촬용 전용 렌즈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오는 주일에는 전용 렌즈를 사용하게 될 테니, 한번 비교해보십시오. 이외에 교정되어야 할 부분이 있으면 의견을 주십시오. 다시, 이 집사, 수고 많았습니다. 오늘 예배 시작 전에 나온 찬송가를 들어보셨는지요. 저는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좋았습니다. 앞으로 종종 들어야겠습니다. 이 노래를 선곡한 이 집사에게서 대구 출신 이무하 씨의 노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링크해 놓을 테니 기독교 음유시인의 노래를 들어보시지요.

     https://www.youtube.com/watch?v=4u12Ad5VZ0o&feature=youtu.be

 

6) 세월호 6주기- 오는 목요일 416일은 세월호 6주기입니다. 설교단 마이크에 세월호 로고를 걸었습니다. 작아서 잘 보이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강단 화면을 캡처해서 올려볼 테니 확인해보십시오. 6년 전 그날이 너무 끔찍하고 생생해서 잊히지 않는군요.

      4월12일(1).PNG

 

7) 21대 총선- 오는 수요일 415일은 21대 총선일입니다. 저는 사전 투표를 마쳤습니다. 아직 투표하지 않는 교우들은 가능한 한 당일에라도 투표하십시오. 정치는 필요악입니다. 필요하기는 하지만 선은 아닙니다. 정치 논리에 휩쓸리면 선한 사람도 선하게 살지 못합니다. 앞으로 정치 논리와 힘이 점점 줄어들고 실제의 인간 삶이 풍성해지는 때가 오기를 바랍니다. 아직은 그런 순간이 오지 않았으니, 그리고 민주사회에서 투표가 가장 중요한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이니 투표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8) 헌금: 890,000(통장 입금 412일 낮 130분 기준/ 외부 교인 강*란 윤*식 헌금 포함)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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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16) 요 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서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기독교 신앙에서 핵심은 예수와의 일치다. 다른 말로는 예수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앞 구절인 20절에 언급된 내용이 이를 가리킨다. 예수 안에 존재한다는 것은 예수의 계명을 지키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21절이 말하는 내용이다. 21절의 논리를 다시 차례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예수를 사랑하는 자다. 예수를 자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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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13) 요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예수와 제자들의 관계는 특별하다. 제자들은 예수의 부르심에 자신의 운명을 걸었다. 예수 이전의 삶을 포기한 것이다. 제자들에게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사건이었다. 부모를 여읜 고아가 된 것이다. 고아는 시설에 들어가든지 입양되지 않으면 생존이 위태롭다. 예수는 제자들의 영적 실존을 알고 있었기에 제자들에게 다시 온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은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한다. 이 사실을 아는데도 여전히 우리는 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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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12) 요 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파라클레토스”는 진리의 영이라고 했다. 진리의 영이라는 표현이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는 데 정말 중요하다. 오해도 많다는 의미이다. 진리의 영을 이해하려면 진리(알레테이아) 개념을 먼저 알아야 한다. 진리라는 단어 자체는 어렵지 않다. 진리는 참된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무엇이 참된 것인지, 참되다는 기준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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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11)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보혜사”라는 특이한 단어가 나왔다. 헬라어 “파라클레토스”의 번역이다. 루터 성경의 파라클레토스 단어에는 위로하는 자, 또는 대신 기도해주는 자라는 각주가 달렸다. 우리말 성경의 보혜사(保惠師)는 지켜주고 은혜를 베풀 스승이라는 뜻이다. 뜻은 좋은데 낱말 자체의 어감은 편하게 와닿지 않는다. 요즘 이런 단어를 쓰는 사람은 없다. 차라리 위로자라고 번역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우리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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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10)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예수를 “사랑하면” 당연히 예수의 “계명”을 지키게 된다. 여기서 계명은 앞에서 새 계명이라고 언급된 “서로 사랑”(요 13:34)이다. 예수 사랑이 사랑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예수를 사랑한다는 말은 예수에게서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사랑받은 자만이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단지 어떤 이를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다. 감정은 사랑의 능력에 뒤따르는 현상이지 사랑의 능력 자체는 아니다. 사랑은 삶의 능력이다. 예를 들어 바람을 통해서 삶...

예수 어록(309) 요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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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09) 요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3절에 나온 문장이 여기 14절에 다시 나온다. “무엇이든지” 예수가 행한다는 약속이다. 나는 이 약속을 진리도 믿는다. 예수는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을 행하시는 분이라고 말이다. 이는 곧 예수의 제자라면 예수가 행할 것만 구한다는 뜻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의 제자 앞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일절 예수가 행하는 일이다. 나는 예수 제자이기에 내 운명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내가 구한 것에 대한 예수의 응답이라고 믿는다. 예수는 내가 ...

예수 어록(308) 요 14:13

  • 202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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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08) 요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예수가 그대로 행한다고 했다. 매력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이 말을 오해하여 예수를 통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그대로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기독교 신앙을 자기 삶의 존재론적 근거가 아니라 삶의 도구로 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통해서 좋은 대학교나 직장에 들어가고, 좋은 사람과 결혼하고, 자식 문제를 해결하...

예수 어록(307) 요 14:12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 2020-04-15
  • 조회 수 1237

예수 어록(307) 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의 일을 한다. 아니 해야만 한다. 이 말씀을 오해하여 우리가 예수의 도움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읽으면 곤란하다. 예수의 일은 자기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결국 자기 영광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그 차이를 구분하기...

예수 어록(306) 요 14:11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 2020-04-14
  • 조회 수 1234

예수 어록(306) 요 14: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예수는 거듭해서 당신이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당신 안에 있다는 사실을 믿으라고 제자들에게 말한다. 예수에게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요청한 빌립도 믿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요한복음 공동체 안에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며, 주변의 유대인들은 더더욱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예수라는 인격체를 믿기 힘들면 예수에게 나타나는 일(work)은 믿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

예수 어록(305) 요 14: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 2020-04-13
  • 조회 수 1825

예수 어록(305) 요 14: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는 보았다.”(9절)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10절이 친절하게 설명한다.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다는 뜻이다. 예수의 이 발언은 자신이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일치해서 말도 하고 행동한다는 뜻이다.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알고 따르기가 쉽지 않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

주간일지 4월12일 file

  • 2020-04-12
  • 조회 수 825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4월12일, 부활 주일 1) 찾음의 영성- “위의 것을 찾으라!”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이 문장이 저의 영혼을 강하게 울렸습니다. 저에게 ‘위의 것’에 대한 관심이 실제로 있는지, 그것을 실제로 ‘찾으면서’ 살아가는지, 강력하게 압박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설교자로서 평생을 살았는데도 여전히 말씀에서 큰 도전을 받는다는 게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저의 영적 수준이 여전히 미숙하다는 뜻이니 부끄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배우고 느껴야 할 신앙의 내용이 성경 안에 무궁무진하다...

예수 어록(304) 요 14:9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 20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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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04) 요 14:9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아버지를 보여달라.”는 빌립의 요구를 받고 예수는 다시 7절과 비슷한 내용으로 말한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이 표현은 요한복음 공동체의 신앙고백이다. 그들은 자신들과 대립하던 유대교 대표자들을 향해서 “우리의 하나님 경험은 당신들의 경험과 다르다.”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유대교는 하나님 경험을 말할 때 세 가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

예수 어록(303) 요 14:7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 2020-04-10
  • 조회 수 1146

예수 어록(303) 요 14: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앞에서 비슷한 진술이 몇 번 나왔지만 요 14:7절도 폭탄 발언이나 마찬가지다. 예수를 알면 그가 아버지라고 부른 하나님을 아는 거라니, 그렇다면 예수가 하나님이란 말인가, 하는 질문이 가능하다. 이 문장을 따른다고 해도 예수가 하나님 자신이라는 말은 아니다. 예수에게서 하나님을,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요한복음 공동체가 이렇게 고백하는 근거는 예수를 통해서...

예수 어록(302) 요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2020-04-09
  • 조회 수 1714

예수 어록(302)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여기에 다시 ‘에고 에이미 … ’(나는 … 이다.)라는 헬라어 문장 형식이 나온다. 이와 같은 형식의 문장이 나오는 요 11:25절은 이렇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 10:7절은 “나는 양의 문이다.”라고 했고, 요 10:11절은 “나는 선한 목자이다.”라고 했다. ‘에고 에이미’ 문장은 요한복음의 특징이다. 요한복음 공동체가 예수의 정체성을 좀 더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담아내려는 시도가 이런 문장 형...

예수 어록(301) 요 14:5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 2020-04-08
  • 조회 수 1235

예수 어록(301) 요 14: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도마는 솔직한 사람이다. 베드로를 닮았다. 우리는 그가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의심이 많은 게 아니라 질문이 많은 것이다. 질문이 많아야 진리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간다. 도마의 진술은 그 의미가 명료한 것 같지만 좀 까다로운 편이다. 그는 예수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에 그 ‘길’을 모른다는 것이다. 어디로 간다는 사실보다는 ‘길’에 방점이 있는 발언이다. 길은 헬라어 ‘호도스’의 번역이...

예수 어록(300) 요 14: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2]

  • 2020-04-07
  • 조회 수 998

예수 어록(300) 요 14: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예수는 지금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6절에 따르면 예수는 ‘아버지’에게 간다. 아버지는 친밀감의 표현이다. 예수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가깝게 느꼈다. 그게 어떤 건지 우리 눈에 들어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와 비슷한 진술은 앞에서 자주 나왔다. 대표적으로 요 10:30절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이 말을 듣고 유대인들은 돌로 예수를 치려고 했다. 신성모독 발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도신...

예수 어록(299) 요 14:3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2020-04-06
  • 조회 수 1047

예수 어록(299) 요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앞 구절에서 말했듯이 이 세상을 예수가 말한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한다면 기독교 신앙의 한 대목이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죽어서 저 하늘나라 어딘가로 가서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는 희망없이 어떻게 기독교 신앙이 성립될 수 있느냐는 문제 제기다. 일리가 있다. 나도 그런 내세 신앙을 무시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내세 신앙의 실질적인 내용을 알고 믿어야 한다고...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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